영국 성공회의 위대한 주교요 신학자인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위대한 신학사상은 대륙(독일)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교정되며 미국에서 타락한다.”(The great theological thought is created in Continent, corrected in England and corrupted in America). 이것을 가리켜 흔히 신학의 3C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Creation, Correction, Corruption. 스위스의 한 신학자에 의하면 한 세기 동안 위대한 신학자 세 사람만 태어나면 교회가 타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20세기 어두운 세기에 스위스의 칼 바르트,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체코의 로마드카 등의 위대한 신학자들이 없었다면 유럽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 꽤 오래 전에 독일을 방문한 송건호 선생은 저의 교회에서 강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재준, 서남동, 안병무, 문익환 등 한국의 신학자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현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 위대한 신학자들은 GNP나 GDP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한국교회는 이 분들이 없었다면 정말 중세적 몽매와 어둠 속에서 헤맸을 것이다.

오늘 저는 존경하는 안병무 선생님이 하신 일 가운데 일 부분을 부각하면서 추모모임에서 몇마디 말씀드리고자 한다. 그것은 곧 그 분이 우리에게 지식과 신앙을 통일함으로써 충만한 사람 즉 자기 완성을 달성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의 활동 후기에는 주로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과의 논쟁적 편지들을 보냈다. 다시 말하자면 로마나 갈라디아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데 주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특히 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해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것은 당시 바울에 의해서 선교된 이방인 기독교 가운데 유대적 기독교인들이 들어와서 바울과 그의 선교활동을 비난하고 방해했기 때문이다. 유대적 기독교인들에 의하면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야고보 베드로, 요한 등과는 달리 그리스도가 선택한 직계 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방인 기독교인들도 유대적 기독교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유대적 기독교인들의 비난과 공격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도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주장하고, 나아가서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중심내용 특히 율법이 정하고 있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적 기독교와 이방적 기독교 사이의 논쟁적 사태가 지나가고 나서 감옥에 갇히게 된 바울은 에베소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와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밝히는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우주적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모든 사람들(만물)이 그 안에서 통일되고 충만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경륜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인류역사를 경륜하시는 한 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고 통일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유의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엡 4:6). 만유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만유를 통일하시고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에베소서를 “만물의 충만의 서신”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만물의 통일은 일차적으로는 서로 갈라져서 살던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통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십시오. 손으로 육신에다가 행하는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무할례자'라고 일컬었습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시민권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에서는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오셔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이방인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시고,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와 같은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엡 2:11-19).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만드시고 또 전체 인류를 하나님과 화해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류의 통일과 함께 인류의 충만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거기에 속한 사람들에게 은사를 통한 직무들을 주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도나 예언자, 교사나 전도자 등의 직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은사에 따라서 활동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물의 통일과 충만을 위해서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섬기는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의 사건은 만물의 통일(하나 됨)과 만물의 충만(완성)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궁극적 역사경륜인 이러한 만물의 통일과 완성이 어떻게 가능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역사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만물의 통일과 완성을 위해서 그 구성원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또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가를 보여준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만물의 통일과 완성의 방법론을 가르쳐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는 이러한 방법론 즉 바울이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론을 우리의 위대한 스승인 안병무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성실하게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또 몸소 실천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안선생님 3주기를 마지해서 이 본문을 택해서 그 분의 뜻을 기리고 또 우리 특히 우리 교회의 갱신의 길잡이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첫째 본문 13절을 첫 부분을 보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자”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의 역사에서는 중세기 이래로 “이성과 계시”라고 하는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고 또 많은 신학자들은 물론 위대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믿음과 지식:(Glauben und Wissen)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 주제를 철학적 영역까지 확대했다.(황설중 옮김 대우고전총서 007번 아카넷 2003년) 이 주제 “지식과 신앙의 통일”을 해명하는 것이 안병무 선생님의 일생의 주제였다. 그 분은 이 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초기에는 키르케고르로부터 시작하여 불트만을 거치면서 이 주제와 씨름했다. 참된 신앙인은 지적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고, 참된 지식인은 신앙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그는 신앙공동체였던 향린교회의 실험을 통해서 구체화하고 싶었다. 향린 공동체를 통해서 신앙과지식을 통일하는 공동체로 실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초기에 향린공동체에서 얻은 경험을 좀더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는 독일 유학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독일유학시절 철두철미 “신앙과 지식”이라는 주제를 파고들었다. 그의 학위논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개념과 맹자의 인의 사상을 비교 연구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신앙과 지식, 앎과 행동의 통일을 지향했던 것이다.

그의 연구의 출발점은 지식 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며, 신앙 없는 지식은 공허하다는 명제였다. 좀더 부연하자면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경륜, 역사 운영을 파악하게 하고 신앙은 그의 뜻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고 나아가서 그 뜻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즘 철학적 표현대로 말하자면 “이론과 실천의 종합”이라는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 없는 실천은 맹목적이고,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한 것과 같이 지식 없는 신앙은 광신에 빠지고 신앙 없는 지식은 허무에 덜어진다는 것이다. 이 둘의 통합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삶에서 결실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안선생님은 유학시절에는 이러한 “신앙과 지식의 통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키르케고르와 불트만과 같은 실존론적인 차원의 학자들에게서 “신앙과 지식의 통일”은 실존론적인 차원에서 추구되어서 그것은 개인주의적인 것이었고 그 결과는 당시 유럽교회가 직면하고 있던 “신앙과 지식의 의사(擬似) 통일” 말하자면 부르주아적 사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주의적이고 내적 경건에서 믿음과 지식의 통일을 구했던 것이 바로 자유주의 신학이었고 프리드리히 나우만식의 윤리생활이었다. 안선생님은 이러한 유럽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사고구조에 대해서 실망하고 귀국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상황은 더욱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한국교회에서는 “지식 없는 신앙” 아니면 “바리새주의 교리주의”를 지식으로 혼동하는 교권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신학운동” 즉 믿음과 지식이 통합되어 “성숙한 인간”(본문 13절)을 목표로 한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했다. 믿음과 지식이 통일된 성숙한 인간양성이 바로 그가 “한국신학연구소”를 만들게 된 동기였다. 즉 인간의 갱신 없는 제도의 갱신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갱신 없는 제도적 교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선생님은 일생 동안 “지식과 신앙이 통합된 인간” 즉 “성숙한 인간”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갱신을 말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의 갱신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르트가 로마서 1판에서 사회혁명을 말하지만 2판에 가서는 인간혁명을 더 강조한 것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교회개혁의 전제는 인간개혁이며 그것은 안으로부터가 아니라 밖으로부터만 주어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지 헌 부대에 넣어보아야 아무런 결과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 인간, 성숙한 인간의 출현을 전제로 향린교회를 “제도권 교회”로 만드는 것에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안선생님은 이러한 지식과 신앙의 통일을 통한 “새로운 인간상”을 결국에는 나치 하에서 히틀러에 대항하여 투쟁하다가 순교를 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에게서 발견한다. 안선생님은 특히 이러한 새로운 인간상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본회퍼의 다음과 같은 시를 늘 높이 평가했습니다.

 

"순간의 쾌락에 동요되지 말고, 정의를 단호히 행하고,
가능성에서 동요되지 말고, 현실적인 것을 담대해 붙잡아라.
사고의 세계로 도피하지 말라.
오직 행위에만 자유가 존재한다.
두려워 주저하지 말고 인생의 폭풍우 속으로 나아가라.
신의 계명과 너의 신념이 너를 동반하며,
자유는 그의 혼은 환호하며 맞아주리라,"

 

다시 말하자면 “지식과 신앙을 통합한 새로운 인간”은 곧 행동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이것이 안선생님의 삶의 두 번째 단계에서의 참여와 실천의 장에서 나타난다. 1976년 명동 사건 이후 그는 서재의 신학자이기를 포기하고 거리의 신학자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키르케고르나 불트만과 같이 사변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본회퍼와 같이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자들 즉 민중들과 연대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그는 사고나 지식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고 오직 행동 즉 믿음에서만 자유를 찾았던 본회퍼의 삶을 따라서 현장의 신학자로 나섰다.
이렇게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 본회퍼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의 폭풍우 속으로 나아감으로써” 그는 비로소 본문에 나오는 대로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안선생님은 말년에 병환으로 고생하면서도 결코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것을 통해서 키르케고르나 불트만을 연구하던 시절의 형이상학적 공허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안선생님이 우리 살아있는 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결국 지식과 신앙을 통일한 온전한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자기를 완성해 가는 행동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대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숙한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고 충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안병무박사 3주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