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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4 09:51
세상의 평화와 그리스도교 평화: 안보와 평화
글쓴이 : 손규태
          

"너희는 내가 땅 위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제 아버지를, 딸이 제 어머니를, 며느리가 제 시어머니를 거슬러서 갈라서게' 하러 왔다. '사람의 원수가 제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 10:34-39).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약 45년간을 휴전상태에서 살아오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휴전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나라는 지상에 없다. 우리와 같이 분단되었던 월남은 73년 북쪽월맹에 의해서 통일되었다. 우리와 같이 분단되었던 동서독은 비교적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다가 1990년 서독으로 흡수통일 되었다. 전쟁에 의해서건 흡수에 의해서건 월남과 독일은 일단 민족의 분단문제를 해결했다. 아직도 이러한 분단의 벽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뿐이다. 이러한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일차적 책임은 정치가들에게 있다. 이러한 민족적 고통을 방기해 둔 것은 정치가들의 무능력이거나 아니며 국민들의 고통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가진 정치적 기득권만을 누리려 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일성 북한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오랜만에 예정되었던 남북한 정상회담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두 정상이 만나서 뭔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기대가 허무하게 문어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국민들은 인위적인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남북이 화해의 시대를 열어가기를 기대했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그 동안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이 서로 상봉하고 또 같이 살수 있는 기회도 생길 수 있다고 믿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루하게 계속되어 온 휴전상태가 끝나고 평화상태가 올 것을 온 국민들은 기대했던 것이다.

남북한 통치권자들의 입장에서 봐도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선물도 장만하지 못하고 결렬시키기에는 국민의 기대가 너무나 큰 것이었다. 빈손으로 돌아온다면 국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실상 계획되었던 정상회담은 양 정상에게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어느 면에서는 정권이 달린 모험적 회담이었다. 이런 점에서 진정으로 정상회담을 바라지 않았으면서도 국민적 여망에 굴복했던 사람에게는 김일성주석의 사망이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일성주석이 죽고 나서 한반도에는 급격한 변화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남북정상회담 내지는 통일을 바라지 않던 극우 보수 세력들의 이데올로기적 총공세라고 할 수 있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에 의해서 매개되었던 정상회담에 대해서 커다란 불신과 회의를 가지고 있던 기득권 세력들이 총궐기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에서 잘 나타나 있다. 북한권력의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에 대한 인신공격과 인위적인 조문파동의 야기, 서강대 박홍총장의 입을 통한 한총련 학생들의 북한지령설 그리고 한국전쟁문서의 공개 그리고 귀순자들을 통한 북핵문제의 제기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노동운동에 대한 공권력투입을 통한 엄청난 억압 등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이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북미고위급회담을 좌절시키려고 하는 음모까지도 했다. 이것이 바로 5월에 귀순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북한이 핵폭탄 5개를 가지고 있다는 허위진술을 하게끔 한 것이다.

이런 남한의 기득권층이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서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계속 지키기 위해서 현 단계에서 북한정권이 몰락해 주는 것이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분단 상태를 고착화시켜두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과 특권을 전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안보도 말하고 때로는 통일도 말하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주석을 만나서 남북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기회로도 생각되었지만 동시에 대단한 모험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주석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앞지르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지켜준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남한에서 지난 45년 동안 기득권 내지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반민족적이며 친일적이고 친미적 세력들은 통일을 통해서 생겨나는 새로운 상황을 원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확고한 자리가 어떤 변화를 겪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의 안보, 자신들의 특권의 유지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을 유지하는 것을 또한 평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안보란 자기들의 기득권에 대한 안보요, 그들이 말하는 평화란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의 보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4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안보정책내지 평화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내용이다. 이것이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는 안보와 평화다.

성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세상이 말하는 안보 이데올로기와 예수가 말하는 평화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즉 성령을 받은 사람이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말하는 평화와 세상이 말하는 평화 즉 안보이데올로기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세상의 평화란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로마인들의 평화(pax romana)다. 이 로마의 평화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서 실현된 것인데 그 황제 하에서 로마 제국 안에서 모든 다른 민족들의 봉기가 종식되었기 때문에 사용된 말이다. 다시 말하면 로마제국 안에서 다른 민족들의 독립운동과 같은 봉기들이 완전히 평정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로마의 평화란 군사력의 억압에 의해서 달성된 일종의 공동묘지의 평화와 같은 것이다. 다른 의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무력으로 억압해서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을 내도록 하는 그런 평화다. 가정으로 말하면 무시무시한 가장의 명령에 아내나 아이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지내는 것을 가리켜 가정의 평화가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란 이런 세상의 평화이데올로기와는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 10:34-39). 여기서 예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은 자기는 이런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평화 말하자면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로마의 평화 다시 말하면 군사력에 의한 평화, 군사적 사고로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는 내용이 가정 내의 문제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마지막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내용에서 그것이 단순히 가정 내의 갈등과 연관된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는 군사력에 의한 안보, 즉 세상평화에 대해서 투쟁하러 오셨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가 추구했던 평화와 로마인들 즉 세상이 추구했던 평화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우리가 그 동안 남북문제에서 추구해 온 평화란 것이 어떤 것인가? 그것은 군사력에 의한 국가안보 였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은 국민들의 국가안보의식이 해이해 진 것이 커다란 문제라고 주장한다. 정부도 무슨 문제만 생기면 안보장관회의를 열어서 모든 것을 국가안보라고 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접근해 간다. 안보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감행하고 또 패트리어트 미사일들을 사다가 배치한다. 남한에서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면 북한에서는 훈련이 끝나기까지 전 국민이 경제생활을 중지하고 전투태세에 들어간다. 이것이 북한의 경제생활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이 훈련을 북한경제를 파탄시키기 위해서 실시된다는 설도 있다. 따라서 세상이 주는 평화, 혹은 국가안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것을 예수는 분명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는 다른 것이며 자기가 온 것은 이러한 세상의 평화에 대해서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과 특권층들은 이런 차원에서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하고 나아가서 세상의 평화, 국가안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칼을 휘둘러 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분명해 진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서 예수의 참 평화와 세상의 거짓 평화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보혜사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 말할 수 없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방언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바른 의식을 갖고 참 평화 즉 그리스도의 평화와 거짓 평화 즉 세상의 평화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세상 평화에 대해서 칼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평화, 국가안보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참 평화를 위해서 나서는 것이다. 이러한 참 평화를 위해서 나섰던 분을 우리는 문익환 목사님에게서 본다. 그는 온갖 거짓 평화공세, 온갖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의 공세를 뿌리치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서 나라의 장래를 위해 일했다. 그 다음으로는 지미 카트미국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는 미국의 공화당 사람들의 야유와 비난을 무릅쓰고 분단되어 싸우는 한민족의 평화를 위해서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주사파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고 주장한 서강대학교 박홍 총장은 사제이긴 하지만 가짜 사제인 것이 분명하다. 흔히 예수회 사제들이 제국주의의 앞잡이였듯이 그도 권력과 이권만을 추구하는 추악한 신부다. 그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해야 할 사제이건만 세상의 평화, 국가안보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자기의 제자들을 적으로 돌림으로써 학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사제로서의 사명을 포기한 엉터리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평화는 “마음의 평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의 평안은 그리스도의 평화와는 무관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국가들 안에서의 갈등이 심해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자 세상을 등지고 조용히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그리스적 평화가 중세 수도원에 침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스도의 평화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이러한 정적인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세상의 평화를 폭로하고 그것과 싸워 이기는데서 얻어지는 역동적인 평화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오히려 세상의 평화와 싸우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 예수께서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평화운동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자기의 목숨을 잃는 운동이기도 하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운동은 곧 남북의 통일운동과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통일이 오지 않고는 한반도에서는 언제나 세상의 평화 즉 안보만이 늘 중요한 것으로 남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개해야 할 이 평화운동 즉 통일운동은 우선 세상평화운동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평화운동 즉 원수가지도 사랑하는 평화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여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참 그리스도의 평화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99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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