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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칼럼] 국가 기관에 대한 불신과 저항의 기억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입력 Jan 21, 2013 06:45 PM KST

국가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 국민의 대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국민의 마음을 모을 중심과 바탕이 없어진다. 국가 기관들 가운데 가장 신뢰를 받아야할 기관이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다른 국가기관들의 신뢰성과 정직성을 평가하고 확인하는 기관이다. 국민이 감사원을 신뢰할 수 없다면 다른 국기 기관들은 더욱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두 차례 감사 결과가 정반대로 나와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2011년에는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감사원이 최근에는 총체적 부실이라고 평가했다. 감사원 스스로 믿을 수 없는 기관임을 입증한 것이다. 이번 감사원의 발표는 국가기관들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대강 사업을 총체적 부실로 평가함으로써 감사원은 그 동안 4대강 사업을 선전하고 홍보한 청와대와 정부를 못 믿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국토해양부와 환경부는 감사원 감사결과를 반박하며 감사원의 감사가 잘못 되었다고 주장했다. 행정부가 감사원을 무능하고 못 믿을 기관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감사원과 행정부와 청와대가 서로를 불신의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국가의 공공기관들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영역이 혼란과 무질서, 비능률과 갈등, 대립과 투쟁 속으로 빠져든다. 정당과 국회가 소모적 논쟁과 다툼,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공공기관, 감사원, 국정원, 선거관리위원회, 검찰, 법원, 경찰, 군대, 학교 등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공공기관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고하다면 혼란과 비능률, 갈등과 다툼에서 벗어나 힘과 지혜를 모아 역사와 사회의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깊다. 조선왕조 말엽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기관들이 가혹하고 잔인하게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했기 때문에 국가기관들에 대한 불신이 민중의 마음속에 뿌리 깊이 박혔다. 일제의 식민통치기간에 한국민족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식민지 정부 기관들에 대한 한민족의 저항과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의 정부와 남의 정부 기관들이 서로 불신과 미움을 조장하고 전쟁을 벌여 수 백 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기관들과 공적 질서에 대한 민중의 저항감과 불신, 분노와 미움이 사무쳤다. 이승만 독재정부와 군사독재가 오래 이어지면서 국가의 공공기관들과 공적 체제와 질서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가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게 되었다.

내가 8살쯤 되었던 1957년경 대전서 살았는데 어린 나에게도 정부기관과 공공질서에 대한 불신과 경멸, 저항의식과 미움이 사무쳐 있었다. 왜 내게 그런 감정과 의식이 생겼는지 모른다. 당시 우리 집안이 반골기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당시에는 군인들과 경찰들이 시가행진을 자주 했고 학생들도 단체로 이동할 때는 줄을 맞추어 행진했다. 집 가까이에 대전 여자 중학교가 있었는데 학생들 수 백 명이 행진을 했다. 누님이 대전 여중 학생이었으니까 내게 대전여중 학생들에게 나쁜 감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단체로 열을 지어 행진하는 여중생들을 향해 깨진 항아리 조각들과 연탄재를 던지기 시작했다. 깨진 항아리 조각들 가운데 하나가 내 손을 벗어나면서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에 상처를 냈다. 지금도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 끝에는 그 상처가 남아 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무슨 의식이나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분위기가 아이들을 통해서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교통 경찰관이 번쩍거리는 복장을 하고 길거리를 순시했다. 경찰에 대해서도 이유 없는 불신과 미움이 있었던 것 같다. 제복을 입은 풍채 좋은 경찰관에게 어린 내가 가까이 가서 “똥팔아, 똥팔아”하고 욕을 하면 경찰관은 어이가 없는지 그저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어릴 적 기억을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에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가 되고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하고 선진화된 사회가 되려면 공공기관이 신뢰받는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나온 역사의 나쁜 점을 극복하고 좋은 점을 계승하면서 공공기관들이 신뢰받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기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먼저 신뢰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국민도 기관들이 신뢰받는 기관이 되도록 이끌어 주고 기관들을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기관들이 식민지 시대의 권위의식과 독재정권 시절의 권력의식을 버리고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받들어 섬기는 민주시대의 봉사정신과 사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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