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담장쳐진 기독교, 담장 허물고 세상 향해 나아가야”

[특집대담] 연세대 ‘종교철학’ 전공 개설 진두지휘한 정재현 교수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은 다음 학기부터 “종교철학” 전공을 개설한다. 신학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며 그 방법과 실제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개설 이유이다. 본지는 인문학의 죽음이 거론되고 있는 현 시점에 철학적 방법론을 신학 연구에 도입하려는 그와 같은 시도가 현재의 학문적 판도를 거스를 만한 타당성을 담보하고 있을 것이라 평가하고 그 타당성을 알아보기로 했다. 본지는 그 전공을 담당하게 될 신과대학의 정재현 교수와 대담함으로써 그 전공의 ‘철학적’ 타당성과 기대효과 등에 대한 정 교수의 견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담의 내용은 질문에 대해 정 교수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분량상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정재현 교수, 세계관의 확장과 포괄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3-1)
 
▲연세대 ‘종교철학’ 전공 신설을 진두지휘한 정재현 연세대 교수(종교철학)를 서울 신촌동에 소재한 연세대 신과대학 내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문: 종교철학 과정을 개설하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어떠한 관심을 갖고 계시고 앞으로 이 과정에 대한 기대가 어떠하신지 우선 먼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한 과정을 말씀드리는 것이 시작하는 이야기로서 편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원에서도 계속 철학, 그때만 하더라도 현상학이나 사회철학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어요. 근데 개인적인 체험의 계기로, 체험의 계기라는 게 급작스럽게 두 살 밑의 동생을 잃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철학적으로 가지고 있던 관심들이 인간의 문제, 죽음의 문제—물론 철학이 기본적으로 다루는 문제지만—를 철학 안에서만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종교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지요. 저는 가정환경상 기독교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 모두 목사님이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교회 환경에서 자랐지요. 그래서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씨름을 해봐야 되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신학으로 가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철학에서 출발해서 신학으로 간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을 때, 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전공을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관심, 즉 그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인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죽음에 대한 체험을 계기로 그 관심에 조금은 더 직접적이며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장르 내지는 영역이 종교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 종교들 중에서는 기독교가 성장배경상 자연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을 하게 된 것이다. 철학, 신학, 이렇게 이름으로만 대하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워낙 내용적으로도 연관이 있는데다가 개인적인 체험 때문에 두 영역이 서로 이어지는 것을 부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되고 확장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철학적 신학을 공부했지요. 개인적인 말씀이지만 처음에 엠디브(MDiv. 목회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그건 안수과정이잖아요. 목회자가 되는 과정인데 저는 제가 제 개인문제, 인간들이 짊어지고 있는 공통의 문제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계기로 시작된 문제를 씨름하려고 그 길로 들어선 거지, 남들 앞에서 서서 인도하고 지도하고 가르치려고 한 게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엠디브를 들어가자마자 설교학 개론에서 설교자 연습을 시킨다면서 여러 가지를 주고서, 아니 아예 가운 입혀놓고 촬영을 하더군요. 촬영을 해서 모니터링하면서 수퍼바이징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때 이건 내가 갈 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다니다가 그만 뒀습니다. 그만 두고 난 뒤 대안을 모색하다가 신학을 학문적으로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석사 과정 분야를 발견했지요. 그래서 아! 하면서 MA, MTS 과정을 찾았고 몇 군데 지원해서 에모리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에모리에서 공부한 분야는 철학적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신학이란 이름은 사실은 형식적 표현입니다. 일종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신학을 할 때 철학적인 접근 분석 비판을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사실 옛날의 중세 스콜라 신학을 말하자면 전체가 다 철학적 신학에 해당합니다. 스콜라 철학이 곧 스콜라 신학이라고 할 만큼. 그것은 당연한 일인데, 요즘에 와서는 학문이 점점 세분화되면서 신학의 한 분과로 자리잡게 되었지요. 원래 학문의 시작은 철학이었으니까 중세에서도 신학은 사실 철학적 신학이지요. 요즘 와서는 그렇게 됐지만.  
철학적 신학은 여전히 형식적인, 방법론적인 분류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결국은 인간학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제가 석사논문에서 틸리히의 『조직신학』이란 책을 중심으로 인간의 유한성과 자유의 관계를 다루었던 것입니다. 결국에 죽음이 화두가 되어서 그 주제를 다루었던 것이지요.  
박사논문에서는 아예 제목에 죽음이란 걸 직접 표명했습니다. 제목이 Being and Freedom이었는데 부제를 A Problem in the Interpretation of Human Death라고 붙였습니다. 인간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가 요지였는데 해석의 관건으로서 존재와 자유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되겠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각양각색의 전통적인 이해를 분석하면서 인간의 문제를 조명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박사과정은 신학대학원이 아니라 인문대학원, 문리과 대학원에서 수업을 한 것이죠. 
게다가 그 대학의 종교학부에서 개설한 종교 철학은 요즘으로 말하면 융복합적인 성격의 과목이어서 지도교수와 논문위원회의 지침에 따라 통합적인 발상을 장려하였습니다. 수학도 신학이다 왜 그걸 못하느냐는 식입니다. 그래서 철학, 사회학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과학과도 신학을 연관시키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저의 논문도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 신학을 공부하게 된 데에는 실존적인 고민이 동기가 되었고, 그러한 실존적인 고민은 사실 철학이나 신학으로 구별하여 연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상호 연장선상에서 연구할 수 있는 종교철학적인 해석 방법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그리고 논문을 통해서도 그것을 구현하려고 노력하셨다는 말씀이시지요?   
 
▲정재현 교수는 "(철학과 신학이)사실은 모두 맥이 통하기 때문에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 같은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 신학대학원에서 철학적 신학을 공부하고 문리과 대학원에 가서는 종교철학을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신학과 철학을 왔다 갔다 했지요. 하지만 사실은 모두 맥이 통하기 때문에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 같은 분야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요. 
한국에서는 종교철학이 아시는 대로 철학과에서도 우선순위 분야가 아니고, 우선순위가 아닌 것 이상으로, 사실은 철학을 제대로 하려면 종교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식의 협의적 접근법이 근대 이후로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접근법이 유달리 통용되는 곳이 기독교 분야입니다. 동양철학은 사실 전부 다 종교철학이잖아요. 불교 철학. 모두가 종교철학인데, 거긴 종교와 철학을 구별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서양 문명적 가치관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한편은 기독교의 책임도 없지 않아 있다고 봅니다.
하여튼 그런 점에서 거리를 두다 보니까 철학 분야, 한국에서 철학 분야에서는 종교철학이 조금 미비하지요. 제가 공부를 막 하고 들어왔을 때 우리 지도 교수님을 만나니까 “연구이력을 보니 철학과에서는 신학과에 가라고 할 것이고 신학과에서는 철학과로 가라고 할 것 같구먼. 언제 취직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영식 총장님께서 그런 걱정을 해주셨지요.
신학과에서는 종교철학을 조직신학의 한 분류로 보았습니다.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신학 분야 안에서 학자들마다 분류 체제가 다르지만 제 1분과에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기초신학이라고도 부르고 철학적 신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분야가 있고, 두 번째 분야로 내용을 말하자면 교의학이 있을 수 있겠고, 세 번째로 방법과 내용을 가지고 현실에 적용하는 주제적인 신학, 즉, 정치신학, 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이 있습니다. 이 전체를 아울러서 조직신학이라고 한다면 제일 앞에 형식적인 분야로서 철학적 신학이 자리 잡고 있으니까 그 근거로 신학대학원의 체제 안에서는 조직신학으로 분류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그런데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그랬어요. 80년대만 해도 그랬었는데 90년대 넘어가니까 점점 분위기가 달라지는 겁니다. 왜 그런가? 미국 대학에서 보니까 특히 선도적인 대학에서 보니까 90년대부터 theology라는 이름보다 religion이라는 이름이 점점 더 부상하기 시작해요. 심지어 신학대학원 안에서도. 왜 그렇게 되는가 봤더니 기독교만 가지고는 기독교 자체를 이해하거나 그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도 기독교에 대한 연구, 이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번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필수적이지만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종교라는 범위로까지 확장되어 간 것입니다. 
옛날의 기독교 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봤을 때는 뼈아픈 일일 수도 있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시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새롭게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고 자리 매김하려면, 기독교는 그런 방향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종교라는 일반 범주로 편입되면서 religion이라는 표현들이 신학대학 안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종래에 철학적 신학이라고 불렸던 것도 아예 종교철학으로 부각되면서 옛날에는 조직신학의 한 과목이었던 것이 이제는 조직신학과 맞먹는 분야의 이름으로 부상되기 시작했지요. 1990년대부터. 
시대 분위기가 그런 변화를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가 그런 유행을 따르는 데는 발이 빠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조직신학이라는 이름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5,60년 전에 미국에서 가지고 온 기존의 신학 체계, 요즘엔 조직신학이라는 이름도 잘 안 써요. 시스티메틱이라고 하는 게 벌써 이미 한 방법론이잖아요? 교의학 다음에 나온 방법론인데, 수정 제안들이 계속 나왔는데, 우연한 한 사조의 이름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분야의 이름이 된 것뿐인데, 선도적인 연구 환경에서는 계속 방법론적인 전환을 커리큘럼에서 반영하고 수용하는데, 우리는 한 번 가지고 온 이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름인 것처럼 계속 그걸 붙들고 있단 말입니다. 
한국 기독교 공동 학회의 분과 체제도 여전히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고, 그러니까 학생들도 제가 종교철학을 이번에 개설한다고 말하니까 내용적으로는 진짜 환상적이고 전공하고 싶은데 이름이 종교철학이니 교회 현장에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누가 불러주겠습니까? 이런 걱정을 해요. 그러니까 명칭 때문에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이지요. 명칭 때문에 수월한 면이 있는 반면에 명칭 때문에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은 이제 학문의 세계에서는 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혼자만 그런 생각 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죠.
그래서 결국은 정의를 잘 해야 되는데, 종교철학이라는 분야가 종교철학 자체만을 놓고 보면 철학적인 접근, 종교학적인 접근, 플러스 신학적인 접근이 있을 수 있죠. 실제로 『종교철학 개론』 1장 1절에 나오는 대로 분류하게 되면, 철학적 종교철학, 종교학적 종교철학, 신학적 종교철학 등으로 분류를 하죠. 그랬을 때 저희는 당연히 기독교 신학이 기본 근간이고 그것과 관련해서 또 그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당연히 그 정체성은 신학적 종교철학인 것입니다. 종교철학이라고 명명된다고 신학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신학연구의 영역 확장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문: 지금 현실적으로는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철학적 방법론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킨다는 자체가 학문의 조류라든지 학문적 방법론의 차원에서 부담을 느끼게 만들지는 않습니까?  
 
▲"현실적으로는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철학적 방법론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갖는 부담이 있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정 교수는 "오히려 그 반대"라며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부담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정반대라고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현재 조직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신학대학에서 행해지는 교과내용을 보게 되면 상당 부분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조직신학 1, 2, 3에서 1에서 출발해서 2를 거치고 3으로 가거든요. 예를 들어서 민중신학, 해방신학, 생명생태신학, 여성신학, 정치신학, 문화신학, 이런 것들 모두가 철학이 결국 담당해야 하는 방법론적인 성찰 없이는 불가능한 과정들입니다. 결국은 교의적인 토대라고 하는 것이 기본 근간으로 깔려져 있고 그것을 현실의 특정 영역에 적용한 실례들이 그러한 과정들 아니겠습니까? 사실 명칭만 신학이지 어떻게 보면 모두가 철학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철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생소하게 느끼고 있진 않고, 종교철학이라는 것이 왜 갑자기 뚱딴지같이 얼렁뚱땅 어색하게 등장했냐고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름의 부담이지 실제 내용의 부담은 아닌데, 이름의 부담이라고 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 교회, 또는 편협한 신학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지요. 만일 현재 기독교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면 그 방법론상의 문제를 지적한다고 해도 공감되기도 어렵고 호응을 받기도 어렵겠지만, 지금 다 잘 아시다시피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가 어려운 상황에 있잖아요?

많은 교회들의 문제, 목사님들의 문제, 이러다보니까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사회적인 인지도나 신망도 등에 있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보니까 타개책을 어떤 식으로든 찾아야 되죠. 교회는 교회대로, 또 종교 단위로도요. 그랬을 때 이것을 떠받쳐주는 학문의 영역도 자기 정체성을 다시 재구성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때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가 결국 뭐냐, 등등 이런 저런 여러 현상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목회자들의 비윤리적인 파행 등은 어떤 의미에서 일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 이상으로 그 작은 일시적인 현상들까지 포함해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와 따로 돌아가는 교회, 일반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교회, 담장이 쳐져 있는 기독교입니다. 결국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게토화되어버리는 현상 때문에 점점 더 울타리를 치게 되고 안에서만 천국잔치를 벌이는 형국이 전개되는 것이지요.

그 울타리가 점점 높아지는 현실에서 이 현상을 정확하게 정직하게 인정한다면 이제 이 울타리를 우리 스스로가 무너뜨려야 되고 결국 세상을 향해서 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소통의 언어, 소통의 사고방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대로의 노력의 방향이 있겠고, 그것과 다르지 않겠지만 장르상 차이가 있다면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학문의 장에서 소통을 하기 위하여 당연히 가장 일차적으로 인문학, 인문학 중에서도 가장 일차적으로는 전통적으로 그래왔고 학문의 구조상 그렇고 방법론적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가장 일차적으로는 철학을 소통의 통로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희가 구성하는 연세 종교철학은 철학만 하는 게 아닙니다. 종교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전공 분야를 지금 개설하지만 저뿐 아니라 교목실에 계신 종래 조직신학 교수님들도 참여하십니다. 사실은 모두 철학적 신학, 종교철학을 하신 분들이에요. 과정철학, 폴 리퀘르, 하이데거 등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신 분들이 저희 종교철학 전공 과정에 다 들어오십니다.
이렇게 대학원 종교철학 과정을 구성하고, 문과대학에 가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문서학적 과목들, 사회과학대학에 가서 사회학 과목들, 최근에는 정치학 교수들과 접촉해서 그 분들도 참여하게 할 계획입니다. 정치학을 예를 들면, 정치사상이라는 분야가 있어요. 정치학에 네 개 분야가 있는데 한국정치, 국제정치, 지역정치, 정치사상, 이렇게 있는데 정치사상이 정치철학의 분야이지요. 정치철학 분야까지도 여기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가 종합대학인데, 다른 과에서도 이와 같은 기획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실제적으로 그렇게 가이드를 안 하니까, 자기 전공하기가 바빠서 그런 시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상황입니다. 물론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이 전문성이 바로 옆 동네하고도 소통되지 못하는 전문성이라면 게토화되고 말지요. 신학이 인접분야와 소통이 안 되고, 더 나아가서 신학 안에서도 구약신학과 조직신학이 소통을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학은 신학 자체로서는 굉장히 넓은 영역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바깥에서 보면 그냥 한 분야인데 그 속의 분과끼리도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아요. 바깥에서 그렇게 관심 갖지 않는데다 몰라서 그렇지, 우리 안에서 사실 그것은 비극이거든요.

예를 들어 철학전공만 하더라도 동양철학 전공자가 서양철학을 거의 꿰뚫고 있어요. 그렇게 해야만 돼요 종합시험 볼 때. 그런데 신학은 너무 쪼개져 있어요. 왜 그런가 설명을 들어보니까 신학의 각 분야들은 관련된 학문들을 가지고 와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조직 신학은 철학과 관련된 거고 성서학은 문학과 관련된 거고 교회사는 역사와 관련된 거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죠. 윤리는 사회학과 관련된 거고 상담학은 심리학과 관련된 거고. 각각 이미 있는 기존의 학문 체계로부터 세분화를 하다보니까 뿌리가 오히려 그 쪽이에요. 그러다보니까 이쪽의 연결은 없는 파생상품이라는 거죠. 신학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것입니다. 계속.

[대담= 이인기 편집국장, 정리= 이가람·백결·최웅재 객원기자(연세대 신과대 재학), 사진= 지유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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