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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칼럼] 두 포오즈, 반가사유상과 피에타상

입력 Jul 19, 2014 08:24 AM KST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요즘 한국인들의 생활패턴 특징으로서 바쁜 생활과 타자 무관심을 지적해도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무슨 일엔가 바쁘다는 현상은 그 사람이 그 만큼  활동적이고 쓸모가 있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표징이라고 여기는 풍조다. 타자 무관심도 그 사람 맘이 무정하다기 보다는 자기 일에만 충실하고 다른 사람의 개인사를 침해하지 않겠다는 결심같아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병리현상이 아닐가 생각된다.

영어단어에 포오즈(pause)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옮길만한 우리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단순한 중단이나 중지가 아니라 다음 동작, 이야기, 음악적 운율로 이어지는 것을 전제하는 일시적 중지라는 뜻과 쉰다는 의미가 겹치는 묘한 외국어 단어이다. 그래서 어려운 한자어로 옮겨 휴지(休止) 라고 번역하곤 하는데, 어감도 좋지 않고 종이 휴지(休紙)와 발음이 같아서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인류 동서문화 유산 속에서 가장 대표적인 ‘포오즈’를 들라 한다면 불교문화에서 꽃핀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과 그리스도교문화에서 꽃핀 피에타상 (Pieta)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두 조각상이 보여주는 진정한 ‘포오즈’는 오늘 현대인들이 싫든 좋든 빠져있는 분주함과  주위사람과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소라껍질같은 자아세계에 갇힌 자기를 성찰해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반가사유상과 피에타상은 위대한 보편종교인 불교정신과 그리스도교정신의 유형적 특징이 무엇인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반가사유상이란 깊은 명상과 깨달음의 법열을 은은한 미소로서 나타내는 불상이지만, 왼쪽다리를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그 위에 얹은  ‘반가부좌’(半跏趺坐)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첫째 특징이다. 반(半) 가부좌 형태와 함께 둘째 특징은 손의 위치이다. 왼손이 오른쪽 발목 부위를 가볍게 감싸듯이 잡고, 오른쪽 팔꿈치는 오른쪽 무릎위에 살며시 얹고, 팔끝 손가락을 살짝 뺨에 데는듯 진정한 ‘포오즈’의 자태이다. ‘포오즈’라는 단어 안에는 중지와 쉼이라는 이중의미가 동시에 갖추어진 생명의 상태라고 앞에서 강조했다.
생노병사에 끌려다니며 탐심, 어리석음, 그리고 분노로 구성된 삼독(三毒)에 중독 되었던 실존이 분주함에서 해방되고 깨달은 자의 잔잔한 법열과 무애인의 자비로운 미소를 반가사유상은 가장 완벽하게 보여준다. 종교는 극치에서 예술과 만나서 그 온전한 형태를 이룬다. 미륵반가사유상의 미륵보살 몸통은  한국 사찰마다 대웅전 안에 모신 석가여래 좌불 몸체와는 눈에 띄게 대비된다. 균형잡힌 여성적 몸매는 탐욕으로 물든 중생들의 마음을 맑게 정화시키고 드높이 승화시킨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 반가사유상의 기원은 생노병사의 고해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려는 싯달다 태자가 용맹정진과 해탈 후, 최초 법열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한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사에서  반가사유상이 크게 풍미한 시기는 삼국시대 6세기 중엽 부터인데, 한민족은 어쩐일인지 태자사유상(太子思惟像)이라 부르지 않고 미래에 나타날 부처 곧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像)이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특별 기획전에서 한국인의 위대한 문화적 예술혼과 종교적 영성을 전시했는데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관람한 외국인들을 경탄케 했다.  한국인이 삼성전자제품과 현대자동차 만드는 기술보다 더 귀중한 예술적 종교 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준 셈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비교할만한 종교예술적 작품으로서는 ‘피에타상’이 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벽면 앞에 진열되고 있는데, 가장 많은 순례객과 여행객들이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며 발을 멈추게 하는 미켈란젤로의  명작품(1499)이다. ‘피에타’(Pieta)라는 단어는 라틴어나 이탈리어 에서도 몇가지 복합적 인간 감정을 표시하는 어휘이다. 사전적 단어 의미는 경건(敬虔), 자애(慈愛), 신심(信心), 신의 자비(慈悲)등을 의미한다. 예술적 작품으로서 ‘피에타’는 십자가 처형이후, 숨을 거둔 예수의 축 처진 주검을  그 어머니 마리아가 가슴과 무릎으로 떠안고서 비탄에 젖은 모습을 기본형태로 하는 조각상과 그림을 통칭하여 미술사에서 ‘피에타’라고 부른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외에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에서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에 의해 걸작품으로서  피에타상이 제작되곤 했다. 
‘반가사유상’의 주인공이 실제로 그 누구를 표현하든지 여성적 미를 기본자태에서  풍기는 예술적 상징성 처럼, ‘피에타상’ 작품 구성에서 주인공은 십자가에서 막 내려진 숨거둔 예수이면서도 더 중한 포인트를 성모 마리아에게 집중시키고 있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피에타상’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데는 작품의 예술성 못지않게 그 무언가 통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가능성은 여성성과 모성이 상징하는 ‘큰 자애와 큰 슬픔’(大慈大悲)의 능력에 있는 것이지, 억세고 강력한 힘 곧 통일을 빙자한 남성들의 ‘칼과 전쟁 수행능력’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앙망하는 것이리라. 그 시대와 현대가 그러한 가치에 목말라 함을 의미한다. 그 점은 두 위대한 작품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이다. 
다시 우리들의 처음 화두 ‘포오즈’의 양가적 의미에로 돌아가 보자. ‘포오즈’는 중단, 머뭄, 쉼을 의미하지만 그 다음에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와 활동과 역동성이 뒤따르는 것이라야 한다.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보살행이 손바닥과 손등관계라고 강조한다. 보살행이 동반하지 않는 깨달음은 가짜이거나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믿음과 사랑이 그러한 관계가 그렇기에 사랑의 실천적 삶이 동반되지 않는 믿음은 헛것이라는 것이다. 
반가사유상의 장점은 그 해탈한자의 무애인(无涯人)으로서 ‘자유’에 있으나 관념적 교설로서만 ‘색즉시공’을 말하면서 현실의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지 아니하는 위험을 줄 수 있다. 피에타상의 장점은 찢긴 살과 피에 젖은 예수의 희생과 어머니의 저 깊은 연민의 애통에 접하여 인간영혼을 경건하게 정화시키고 승화시키는 기능면에서 반가사유상의 기능과 유사하다. 그러나,  피에타상이 ‘사랑의 감상주의’에 머물고 만다면  ‘불의와 죽임세력’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 
1970-80년대 우리사회가 민주화와 인권운동 과정에서 오월의 신록같던  아들의 주검을  끌어안고 오열했던 이 땅의 어머니들이 비통한 슬픔을 극복하고 ‘불의와 죽임세력’의 정체를 밝히려 일어서서 맞섰던 위대한 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다. 줄여 말하자면, 반가사유상은 무명의 불길을 개인의 맘 속에서만 꺼버리는 니르바나에 멈출 위험이 있고, 피에타상은 정의와 진실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루려는 예수 운동의 영구혁명성을 거세해 버리고 감상적 사랑종교에 안주케 할 위험이 있다. 세월호 침몰의 비극이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되어야 한다. 
기독교 예수의 궁극적 지향성은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입맞추는 하나님나라 실현에 있었다.‘포오즈’를 잊고 너무나 분주해진 현대인들과 나르시즘적인 자기애(自己愛)에 푹 빠져 옆 사람과 다른 이들의 고통이나 기쁨을 외면하는 고독한 현대인에게 반가사유상과 피에타상은 시대와 문화와 종교를 초월하여 인간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항구적 능력을 지닌다. 
 
※본 글은 성서와문화 2014 여름호에 실린 본지 자문위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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