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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타스

[손규태 칼럼] 정의로운 분배만이 경제를 살린다

입력 Aug 20, 2014 07:02 AM KST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현실

경제의 성장정책을 추진하여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공약하고 출범한 이명박과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상황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동안 중산층은 점점 몰락해가고 서민층과 특히 노령층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어떤가? 그렇게도 힘들게 공부하여, 입시지옥을 거치고 많은 빚을 내서 대학을 졸업했어도 취직할 길은 없다. 일자리가 있다 해도 비정규직이 아니면 알바수준의 것들이어서 젊음을 처절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들에게 약속된 미래는 없다.
이명박 정부는 737정책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재벌들에게 법인세를 감면해 주어서 거의 30조원을 부자들에게 안겨 주었다. 그는 또 부자들에게 떼돈을 벌게 하려고 30조원이나 들여서 국민들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사는 부실이어서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대기업들은 담합을 통해서 더 많은 국민의 세금을 빼먹었다. 환경파괴가 심각하고 유지보수를 위해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야 한단다. 이러한 잘못된 정책과 그 집행자인 이명박은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고 또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박근혜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한다고 소위 경제민주화라는 달콤한 공약을 내세워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반년도 되기 전에 그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던지고 오히려 그 전임자 이명박의 길을 따라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오만한 대기업들의 횡포를 막는 규제들은 “암 덩어리”라고 비난하면서 오히려 규제를 풀라고 야단이다. 그 반대로 그는 공권력을 동원해서 노동운동을 탄압한다. 보수정권들은 “노동부”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고 대기업들만 편든다. 그래서 “노동부”를 “고용부”로 바꾸고 싶던지 “고용노동부”로 개칭하면서까지 반 노동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하에 비정규직이나 파견근무 등 값싼 노동력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을 은행에 쌓아놓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의 사내유보 현금은 현재 477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기업들은 경제가 불확실하다는 핑계로 투자를 꺼리고 일자리도 만들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4대재벌들(삼성, 현대, SK, LG) 등에 경제력 집중현상이 거의 70%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한국의 경제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조세정책, 노동정책, 공정거래법 등을 손질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새로 들어선 최경환경제부총리는 경제 살리기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일차적으로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투기)를 통해서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매우 근시안적 정책이나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는 빚을 더 내줄 테니 집을 사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1000조가 넘는 가계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더 많은 빚을 지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빚의 공화국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오면 어떻게 될까? 벌써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다음으로는 40조에 달하는 자금을 시중에 풀어서 내수시장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내수시장 활성화는 사실상 한국경제의 사활의 관건이기도 하다. 수출에만 의지해서 경제를 살려가는 시대는 지났고, 대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쌓아놓기만 하고 있는 처지에서 봐도 그렇다. 수출해서 벌어들인 돈이 서민들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는 한 내수시장의 구매력은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수시장 활성화의 관건은 서민들이 구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것이다.
7월부터 노령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약 400만 명의 노인들이 월 10-20만원의 노령연금을 받게 된다. 그것을 대충 계산하면 1개월에 노인들의 주머니로 약 400내지 450억 원의 돈이 들어간다. 1년이면 약 5000억 원의 돈이 가난한 노인들에게 분배된다. 그렇게 되면 내수시장에서 약 5000억 원의 구매력이 산출되게 되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생산효과와 고용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1년간 4000억 원의 생산 및 고용효과는 대기업들이 쌓아놓고 있는 사내유보금 500조에 비하면 몇 푼 안 되는 돈이다. 따라서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분배정책 즉 이명박정부가 만들어 놓은 대기업의 감세정책 철회와 함께, 보다 많은 세금을 대기업으로부터 걷어 들여야 한다. 서민들의 피를 짜내는 부가가치세의 인상이나 인두세와 같은 주민세를 올릴 생각을 철회하고 정의로운 분배정책에 합당한 세제개편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서민들과 중산층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정책, 즉 공정한 분배정책을 통해서만 그들의 구매력을 키워주어야 내수시장이 살아나고 그래야만 내수시장에 나갈 물건들이 생산되고 그래야만 공장이 돌아가고 공장이 돌아가야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다.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경고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사회개혁자 토머스 뮌처와 달리 오직 종교(교리)개혁 혹은 교회개혁에만 신경 쓰고 사회개혁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었다고 흔히 말한다. 따라서 그는 영주들이나 당시 신흥 부르주아 집단들의 편에 서서 개혁활동을 함으로써 민중들, 즉 서민들의 삶과 관련된 사회개혁운동을 외면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런 비판은 일면 타당하기도 하다. 그는 1525년 남부독일 슈바벤(Schwaben)에서부터 시작된 농민봉기와 그로 인한 농민들과 영주들 사이의 전쟁, 즉 농민전쟁에서 초기에는 봉건 영주들과 농민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여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려고 했었다.(슈바벤 농부들의 12개 요구조건들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위한 권면). 그러나 이 권면이 농부들이나 영주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아가서 영주들의 학정에 시달리던 농부들이 마침내 무력으로 영주들을 공격하는 폭력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일방적으로 농부들을 책망하는 문건, “도적과 살인을 일삼는 농민들의 무리에 반대하여”라는 글로 답한다.
루터가 영주들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난 농민들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자가 보기에는 매우 현실적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종교개혁을 이끌면서 루터를 반대하는 가톨릭 영주동맹(Dessauer Bund)과 루터를 지지하던 개신교 영주동맹(Torgauer Bund) 사이의 군사적 대립이 날로 심각해져서 지역에 따라서는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처지에서 마르틴 루터는 개신교를 지지하던 영주들의 영역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영주들을 반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신교영주들의 지원 없이는 종교개혁운동을 반대하던 상당수의 가톨릭 영주들의 공세에서 그의 개혁운동을 지속하거나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이해관계가 루터로 하여금 농민과 영주들 사이의 전쟁에서 영주들 편에 서게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루터는 1525년 농민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당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던 부자들, 특히 고리대금업자들의 횡포에 대해 심각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종교적 문제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특히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초기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1519년 11월에 쓴 “고리대금업에 관한 짧은 설교”와 1520년 초에 이것을 확대하여 쓴 “고리대금업에 관한 긴 설교”를 통하여 당시 부유한 상인들에 의하여 착취당하던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에 비판을 가한다. 즉 그는 당시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에서 점차 초기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의 새로운 관행에 대해서 어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중세기 스콜라주의 신학을 통해서 물려받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즉 “돈은 돈을 생산할 수 없다”는 명제와 함께 신구약성서에 나타나 있는 사회적 율법과 예언자들 그리고 복음의 권면과 경고의 말씀 즉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지 말 것과 함께 부자들은 그들에게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줄 것을 권하고 있다.
“너희는 그를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지 말라. 그 가난한 친족에게 베풀지 않으려고 너희의 손을 움켜쥐지 말라. 반드시 너희의 손을 그에게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라. 그가 너희를 걸어 주께 호소하면, 너희가 죄인이 될 것이다. 너희는 반드시 그에게 꾸어 주고, 줄 때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신명기 15:7-11)
“너희가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너희는 가장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누가 6:34-35).
그리고 루터는 당시 성행하기 시작한 부유한 사람들의 이자놀이를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타락한 인간들의 왜곡된 삶의 행태로 이해했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그는 은행이나 무역회사들이 고리대금업을 하는데 대해서 매우 엄하게 책망하고 있다.
“독일은 영주들이나 지배자들뿐만 아니라 고리대금업자들이 서민들과 농민들 모두를 노예로 만들 것이다. 고리대금업자는 지난 20년 아니 10년 동안 우리 가운데서 막대한 이익을 취해서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고리대금업자는 거침없이 물가를 올리고 아무 것도 남김없이 삼키고 먹어치운다.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지금 라이프치히에서 1백 굴덴을 가진 자는 매년 40 굴덴을 먹어치워 사실상 농부 한 사람 혹은 시민 한 사람을 파멸시킨다. 만일 그가 1천 굴덴을 가졌다면 그는 매년 4백 굴덴을 취하며 그것은 매년 기사나 귀족 한 사람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그가 1만 굴덴을 가졌다면 그는 매년 4천 굴덴을 남기는데 그것은 1년에 부유한 백작 한 명을 삼키는 것과 같다. 만일 고리대금업자가 거대상인처럼 10만 굴덴을 가졌다면 그것은 1년에 부유한 영주 한 사람을 삼킬 것이다. 만일 그가 1백만 굴덴을 가졌다면 그는 매년 40만 굴덴을 취하고 그것은 1년에 왕 한 사람을 삼킬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신체나 상품 그 어디서도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노동하지 않고 벽난로 앞에 앉아서 사과를 벗긴다. 그리고 고리대금업자는 편안히 집에 앉아서 10년이면 전 세계를 삼키게 될 것이다."(G. Fabiunke, Martin Luther als Nationalökonom, 1963, Berlin, S. 306).
루터는 이미 500여 년 전에 오늘날 금융자본이라고 불리는 고리대금업이 가져올 사회적 국가적 재앙을 내다보고 있다. 물건을 만들어서 팔아서 돈을 버는 산업자본이 성행하던 지난 세기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의 생산 공장에서 싼 노임을 받으면서 노예처럼 살았지만 그들이 선진국에서는 노동운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 권리를 되찾고 처참한 환경을 벗어났지만 아직도 한국과 같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노동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전형적 기업국가 한국
오늘날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5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사정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당시 독일이나 영국의 거대 고리대금업자들은 1년에 한명의 부유한 백작이나, 영주 혹은 왕을 파멸시켰으나 오늘날의 사정은 어떤가? 16세기부터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부유한 왕이나 상인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남미에서의 식민주의, 19세기 영미국가들에 의해서 시작된 식민주의와 군국주의가 결합해서 만들어 낸 산업자본주의는 21세기에 들어와서 미국과 유럽에 의해서 금융자본주의로 변신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1%의 부유한 고리대금업자들(은행과 금융회사 소유자들)이 99%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채무자로 만들어서 그들로부터 고혈을 짜내고 수많은 가난한 자들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의 가계부채가 이미 1000조를 넘어서고 있고, 그 가난뱅이들의 주머니에서 매년 약 70조원 이상의 피와 같은 돈이 이자라는 이름으로 부자들의 주머니로 빨려 들어간다. 사채업자들은 아직도 1년에 30%이상의 고액이자를 받고 제일 가난한 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그들을 파멸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로 구성된 정부나 국회는 이러한 불의를 법의 이름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방송이나 신문지상에 이런 고리대금업자들의 광고가 넘쳐난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자유의 나라 평등의 나라, 즉 인권과 민주주의의 국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부자들 즉 기업가들이나 고리대금업자들의 국가”가 되었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의 친기업적 보수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외교,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부자들 즉 대기업들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방향이 설정되었다. 특히 대기업들은 막강한 경제력 즉 돈으로 국가의 주요 기관들 행정부의 공무원들, 국회의원들 그리고 사법부의 고위에 있는 자들을 매수하여 자기의 기업이익을 지키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 대표적 예는 몇 년 전 삼성의 이학수부회장과 중앙일보사장 홍석현사장이 모여서 비밀리에 고위공직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나누어줄 선(뇌)물 액수를 놓고 의논하는 과정을 당시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인 노희찬의원이 폭로한바 있다. 그러나 노의원은 그런 불법을 폭로한 일이 칭찬을 받기는커녕 기업의 재력에 눌린 법정에서 오히려 유죄판결을 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렇게 공석이 된 그의 지역구 노원구의 보궐선거에 새 정치를 한다던 안철수가 밀고 들어가 노희찬 대신 출마한 그의 아내를 누르고 국회의원 자리를 가로챘다. 사람들은 새 정치를 한다는 부산출신의 안철수가 당시 같은 시기에 부산에 내려가 여당의 거물정치가인 현재 새누리당 대표인 김무성과 한판 붙기를 바랐었지만 비겁한 안출수는 강자 대신 약자의 밥그릇을 가로챈 셈이다.
한국이 기업국가인 것은 박근혜대통령이 외국순방을 할 때는 으레 대기업 총수들을 동반하는 이른바 “세일즈(기업) 외교”를 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는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실제로는 대기업의 상행위를 노골적으로 지원해 주는 행태다. 물론 자칭 진보적 정권이라고 했던 김대중대통령 시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김우중이 분식회계를 통해서 막대한 부채를 걸머지고 파산했을 때 김대중은 20조에 달하는 국민의 세금을 공적 자금이란 명복으로 그의 빚을 갚아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소기업이 망하면 쳐다보지도 않는 정부가 대기업이 망하면 공적 자금으로 그들의 빚을 갚아주고,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빚을 탕감해 주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세월호사건의 주역인 유병언도 오대양사건 때 문제가 되었으나 당시 그는 정부로부터 수천억의 빚을 탕감 받고 재기했다. 도피중인 그가 잡히지 않는 것은 그를 법정에 세우면 당시 여기에 개입했던 공직자들의 비리가 폭로될 것을 두려워하여 정부가 일부러 체포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리고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도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는 마침내 죽음으로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저 세상으로 갔다.
한국의 이러한 부자 중심의 경제정책이 앞서도 말한 것처럼 기업들이 특혜로 성장하게 만들고 탈법적으로 운영하게 만들어서 나라의 경제전반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 대표적 예들을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는 대기업들의 비정상적 선단식 경영이다.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온 낡은 레퍼토리지만 여기에 모든 모순과 불법의 뿌리가 도사리고 있다. 한 개 기업, 예를 들면 현대나 삼성같은 기업은 삼성전자 외에도 건설, 가전제품, 호텔, 백화점과 대형마트, 조선업, 해운업 등 인간의 제반 삶의 영역과 관련된 것들에 손을 뻗고 있으며 심지어는 구멍가게들이 하던 빵집까지도 그들의 딸들을 동원해서 독점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의 기업들을 보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한 개 내지 두 세 개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 회사인 벤츠 나 BMW 같은 회사들은 여러 개의 기업을 선단식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비해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80-120여개의 기업을 하나의 가문이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서 운영하는 빵집 같은 구멍가게에 마저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대기업이 이런 선단식 경영이라는 비정상적 기업운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업들을 쪼개서 자손들에게 승계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법에서 미비되어 있거나 아니면 교묘한 방법으로 법망을 피해서 상속세를 적게 내거나 아니면 탈세하는 방법으로 계열기업들을 승계한다. 그래서 이러한 승계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생기거나 탈세로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다. 선진국에서는 대기업들이 전문경영인들에 의해서 운영되지 경험도 적고 또 그런 능력도 부족한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는다. 미국의 성공한 부자인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은 공공연히 자기의 기업은 공적 성격을 가진 것이므로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셋째 이렇게 상속된 대기업들은 자손들에게 계열사들을 물려줄 뿐만 아니라 순환출자 등을 통해서 소수의 지분으로 한 가족이 기업군 전체를 장악하고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매우 모순된 기업행태를 한국의 보수정부는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넷째 대기업은 자식들이나 친인척에게 물려준 계열사들에게 일감까지 몰아주기를 통해서 부를 항속적이고 독점적으로 물려주려고 함으로써 기업 간의 공정한 상거래 관행을 깨고 부의 집중을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로 한국에서 대기업들은 그것들이 정부와 국민들의 희생과 지원 하에 성장한 공적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적 내지는 가족적으로 독점하고 운영함으로써 과도한 부의 편중을 가져오고 있다. 이들에게로의 부의 집중은 점차 심화되고 오늘날에 와서는 정부마저도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러한 대기업들의 부의 독점적 소유와 지배는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을 하청화하고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어 가진 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의 경제적 빈부격차가 오늘날에 와서는 가히 위험수위에까지 도달했다.
선진 자본국가의 예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재벌들의 부의 집중과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약탈적 행태는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 원리의 관점에서 보아도 심히 위태로운 지경에 도달했다. 미국과 같은 나라가 경제력의 집중을 허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라고 하는데 그 나라에서도 한국처럼 재벌들의 횡포나 가족의 독점적 지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재벌들, 혹은 대기업들의 과도한 부의 독점을 허용하여 그 결과로서 빈부의 격차가 심한 오늘날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재벌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자본주의 아니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그 미래가 대단히 불투명하다.
성서의 말씀이나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보더라도 이러한 통제받지 않는 탐욕적 부의 축적은 한 국가나 사회가 멸망으로 가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친 것은 인접한강대국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왕들과 관리들의 횡포와 함께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수탈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등극한 로마가톨릭 교황도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독재”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1987년 오랫동안의 독재정치에서 벗어났으나 이 독재정권이 길러낸 통제받지 않는 경제세력의 독재에서 신음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점차 직장에서 인간다운 삶의 조건들을 박탈당하고 값싼 노임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하청화 과정에서 갑의 횡포에 시달리고, 소상공인들은 골목시장까지 파고드는 대기업의 시장장악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을 지켜주어야 할 정부는 오히려 대기업들을 편들고 있고 국민의 대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은 대기업의 로비에 굴복당해서 제대로 된 법률을 만들지 않고 있다. 사법부도 대기업 편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금권에 포로가 된 고위법관들은 왜곡된 판결을 내리기를 밥 먹듯이 한다.
이렇게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진 한국 사회를 향해서 예언자 아모스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그래야 살리라.”(아모스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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