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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칼럼] 그리스도교 사유의 역사(2)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입력 Dec 29, 2014 11:48 PM KST
주제: 묵시문학적 종말론과 헬라철학적 사유와의 투쟁, 그 의미와 영향 
[1] 시대적 정황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1.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후 직계 사도들의 증언활동기(AD. 35-120)를 원기 기독교공동체 시기 혹은 사도시대라고 일컫는다. 사도시대 이후 그리스도교는 그 사상적 기틀을 놓는 ‘창조적 혼동기’에 들어섰는데 이 시기를 敎父시대(AD. 120-400)라고 부른다.
2. 초기 예수 공동체와 로마제국과의 충돌로 인한 박해시기(카타콤베 시대)는 AD. 120-300년 사이에 간헐적으로 발생했다(가리큘라, 네로, 도미티안,M. 오렐리우스 황제기간). 성례전과 성령집회를 오해하여 당시 로마사회 풍조의 다신론과 정령숭배 입장에서 보면 무신론 혹은 혹세무민하는 종교집단, 로마제국의 사회계급질서와 노예제도를 부정하는 위험집단, 강한 로마를 약화시키는 비폭력적 절대평화주의, 정치적 권위의 최종 상징인 ‘황제숭배’거부하는 반체제집단으로 매도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다.
3. 초기 그리스도교 집단 자체 안에는 두가지 갈등이 있었다. 첫째 갈등은 유대적 그리스도인(Judaic Christians)과 헬라적 그리스도인(Hellenistic Christian)사이에 ‘종교전통 유산의 처리문제’ 때문에 갈등이 있었다. 둘째갈등은 더 본질적인 것인데 원시 기독교 공동체를 발생시켰던 ‘성령체험 강조의 묵시문학적 종말대망의 신앙기류’와 ‘헬라 철학적 로고스사상에 기초한 신앙의 보편적 지성화 기류’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다.
4. 신앙의 규범과 표준이 되는 정경 형성의 과정에서(AD.50-120년 신약경전내용 완결), 그리고 신앙공동체의 질서와 교육을 위한 교회권위 질서확립의 요청 속에서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점차로 발생 초기의 역동적 모습을 잃고 점점 제도화, 철학적 교리 제정으로 기울어져 갔고, 마침내 로마제국의 통치자의 호의(?)와 정치와 종교의 휴전(?)으로 인해 막을 내렸다. 역사적 사건은 콘스탄틴 황제와 리키니우스 황제에 의한 밀라노칙령(313)발표와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소집된 니케야공의회(AD.325)였다. 그리스도교는 ‘영적 예수운동체’에서 ‘제국의 종교’에로 변해갔다.  
[2] 몬타누스의 종말론적 은사운동과 정통 교부신학자들의 반박: 그 의미와 영향   
(1) 몬타누스(Montanus, AD. 157- ?) 운동의 특징과 그 발흥과 단죄의 의미
① 몬타누스은 제2세기 후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 나름대로 경전의 권위와 규칙, 제도와 질서, 이론교리 신학화 작업, 신앙의 헬라적 철학화 기류에 저항하는 초대 원시 그리스도교의 정당한 저항이요 반발이었다. 그의 사상과 신앙의 특징은 두 가지로 압축되는데 한가지는 영(Spirit)의 역동적 활동에 근거한 은사운동(병치유, 신비체험, 예언과 환상 등)과 은사 받은자들의 사회적 계급과 성차별 철폐 주장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묵시적 종말에 대한 대망신앙이다. 후자는 현세계 질서에 대한 부정이며, 새로운 세계질서를 꿈꾸는 유토피아니즘이다.   
② 유대묵시적 종말신앙의 뿌리는 불의와 악한 세력이 지배하는 반생명적, 반평등적 세상에 대한 저항과 비판정신이다. 그들의 신념이 비록 신화적 당시 세계관에 기초하여 신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 본질은 <왜곡된 현세상 역사 질서에 대한 저항과 혁명정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악한세상지배세력에 대한 신의 초자연적 응징을 기대하면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기대했던 ‘임박한 종말의 지연’이 지속되어감에 따라, ‘영적 종교’였던 초대 기독교의 역동성이 현실에 적응하는 ‘도덕적, 교권적, 종교철학적 종교’에로 변질해 가게되었다(몬타니즘 반발 원인) 
③ 초대 사도적 기독교 시대에는 “왜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었는가?”의 이해에서 두 흐름이 있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하는 유대적 크리스챤 공동체는 사도 베드로의 ‘처음 설교/ 오순절 설교’(사도행전 2: 14-24)에서 보이는대로  ‘영 기독론’(pneuma christology)이 주류를 이루었다. 복음이 헬라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로고스 기독론’(logos christology)이 전자를 앞도하게 되었다. 
[참고 비교]
* 영기독론 : 역동성, 자유로움과 자발성, 창조적 새로움의 계기, 민중지향성, 정치적 급진성  
* 로고스기독론: 우주질서, 합리성강조, 안정과 보편성 강조,이론/실제는 평등/귀족, 보수성. 
** H.Cox의 『Fire from Heaven』에서 20세기 전통서구 교회의 쇠퇴현상과 대조하여 제3세계교회들의 ‘오순절 성령운동’에 주목. 그러나, 한국의 성령-오순절 운동은 정치저항적 혁명성과 역사시대의식의 부재를 노정하는 기현상. 보수정권과 야합현상으로 한국 기독교와 정치권력의 보수세력을 형성.
[3] 고대 가톨릭(catholic) 교회 안에 흐르는 세 가지 사유 형태 비교
(i) 알렉산드리아 중심의 오리게네스(Origenus. AD. 254.d) : 알렉산드리아 학파 헬라교부 “철학자들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다”
①알렉산드리아 지혜교사 암모니우스 삭카스(Ammonius Saccas) 제자. 플로티누스와 함께 당대 최고 헬라적 기독교 학자. 구약성경과 신약서신들의 신화적 문장들을 알레고리칼해석(allegorical method/ 영적비유로 해석하는 방법)을 도입함. 이스라엘의 신앙과 그리스사람들의 철학적 사유방법을 화해, 대화, 통전시키려고 노력한 학자. 
② 로고스는 ‘신적 이성, 신적 불꽃, 신적 원리’로서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영원한 실재이다. 로고스는 ‘신적 무한자의 자기현현의 원리’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 정신 속에서 진리의 빛으로 조명하고 활동한다. 로고스는 태양이 빛을 방사 하듯이 영원히 로고스를 낳는다. 오리겐은 신플라톤 사상에 영향받아 擬人論的신관을 배제하고 순수존재, 존재자체.
③ 오리겐은 유대묵시적 종말론을 헬라화, 정신화 했다. 초대교회의 구름타고 오시는 재림예수 대망을 신화로 규정하고 경건한 신자들의 마음에, 영혼에 ‘진리와 생명의 능력’으로 현현한다. 오리겐은 20세기 불트만의 ‘실존론적 종말해석’의 선구자가 되고 존재론적 철학신학이 되었다. “성부 아버지는 성자 아들 로고스를 영원히 항상 낳는다(genesis)”  
(ii)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 AD.150-225) : 라틴교부의 대표자. 북아프리카 초기학파
“예루살렘과 아네네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①터툴리안은 라틴어로 저술했다. 개종전 법률가였던 그의 성격은 ‘실천적 정신의 소유자’로서 기독교신앙을 ‘철학적 지식체계’와 사변적 영지주의 ‘지혜’로 전환하는 것에 반대. 
②터툴리안의 사유방식은 건전한 실재론(Realism)에 기초해 있다. 심지어 신이나 인간 영혼은 물질적 실체와는 전혀다르지만 단순한 정신적 실재가 아니라 ‘차원을 달리하는 실체로서 형체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실재적 활동과 존재를 확신하는 터툴리안은 교부들 중에서 드물게 몬타누스 성령운동을 지지하는 교부가 되었다.
③터툴리안은 서방기독교의 창시자가 된다. 후일 발전하는 삼위일체(Trinity), 한 실체(Substantia), 세 위격(hyupostasis)등 용어를 만들어 냈다. 그는 교회와 교부의 권위를 강조하여 서방기독교 교권주의 효시가 된다. 
(iii) 이레네우스(Irenaeus, AD.200.d.): 안디옥 중심의 소아시아 교부대표. 
 “예루살렘이나 아테네가 중요하지 않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랑의 종교가 기독교다”
①이레네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오리겐학파의 ‘철학적 기독교’와 북아프리카 터툴리안의 격정적이고도 소박한 감각주의적 실재론을 극복하고, 바울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남”과 요한사도 전통에서 강조하는 ‘사랑 안에 있는자는 하나님 안에 있다’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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