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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칼럼] 그리스도교 사유의 역사(5)

입력 Jan 24, 2015 09:17 AM KST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제5강: 종교개혁의 본질과 서구 근대사회에서 그 빛과 그림자                                            
[1] 서론
①금년(2015)은 종교개혁 498주년을 맞는다. 마틴 루터가 윗템베르그 교회당 게시판에 ‘95개조 토론주제’를 게시한 날(1517년 10월31일)을 종교개혁의 날로 삼는다. 종교개혁 사건은 그리스도교 교회사 안에서 발생한 종교적 사건으로서만 아니라, 근데이후 유럽문명의 사회, 경제,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준 세계 문화사적 사건이 된다. 예들면, 근대시민사회의 출현과 함께 개인양심의 자유권, 직업윤리, 국가권력과 교권의 분리, 성경의 대중보급, 평신도 위상, 인문학 연구등에서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②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1.10-1546.2.18)의 ‘95개조 논제’ 게시의 목적은 로마가톨릭교회를 탈퇴하거나 ‘하나의 교회’로부터 분렬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다만, 당시 로마교회 교황 레오10세(Leo X, 1513-1521)의 칙령으로서 ‘성베드로성당 건축’  완공을 명분으로하여 모금하는 ‘면죄부’의 판매가 성서적이고 신앙에 옳은 일인가를 진지하게 한번 토론하자는 ‘95개조 논제’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본질은 당시 교황권의 타락을 바로잡자는 ‘도덕적 비판’을 넘어서 있다. 성서적 종교가 말하는 ‘궁극적 실재’는 어떤 형태의  ‘역사적 실재’라도 그 것을 대신 할수 없다는 것, 곧 ‘우상타파정신, 인간양심과 영혼의 자유와 존엄성’의 문제였다. 
[2] 종교개혁정신의 본질과 그 사상적 · 신앙적 의미
1)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의 값어치에 대한 ‘성경의 재발견’이며 ‘신앙양심’의 고민의 결과다. 로마서 1:17절에 나오는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하박국 2:4)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말씀에 부딪혔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하나님의 의’라는 말과 ‘믿음으로 살리라’는 단어다. 마틴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란 ‘사람의 의로움’과 대비되는 하나님의 자비, 사랑, 신실, 긍휼히 여기심, 거룩하심, 공의로우심등을 의미한다.  ‘사람의 의로움’은 인간이 행한 도덕적 선행, 종교계율의 준수, 정통교리 지식, 신비체험등을 모두 내포한다.
 루터는 우리 구원의 가능성과 근거가 ‘하나님의 의’ 에 근거하는 것이라야 하며 결코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보장 할수 없다는 진실을 복음이 말한다고 개달은 것이다. 왜냐하면 진솔한 ‘신앙인의 양심’이 예민함은 “이만하면 충분하게 되었다 ”는 도덕적 자기기만에 머물수가 없기 때문이다.
2) ‘믿음으로만, 오직 성서으로만, 오직 은총으로만  이라는 종교개혁정신의 3대모토는 본래의미에서 변질하여 다양한 곡해가 발생했다.
  ① 첫째오해: ‘믿음’을 기독교가 말하는 중요한 ‘중심교리를 승인’하며 선양하는 열심인줄로 오해한다.   ② 둘째오해: ‘믿음’을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선행’으로 착각한다. 전도와 선교에 열정적인 것이 믿음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폐단에 이르고, 오늘의 한국교회는  또다른 ‘공로신앙’에 빠지고 말았다.  ③ 셋째오해: ‘믿음’을 종교적 도덕율 예들면 ‘십계명이나 수도회규정을 엄정하게 준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두가지가 발생한다.   첫째, 이런 이해의 ‘믿음’은 ‘평화와 감사와 신뢰감’ 속에서 숨쉬지 않고 항상 ‘불안 아니면 도덕적 자기위선, 그리고 신뢰감과 평정심 결여’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중세기 1000년동안 일반대중들은 ‘사랑과 은총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연옥의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형국이었다. 현대 유럽 여러도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중세기의 대부분 종교화(宗敎畵)가 그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종교개혁자가 말한 ‘오직 믿음으로만!’ 이라는 모토가 기독교의 신학적 교리를 믿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인격적 전적위탁’(commitment)행위 임을 깨닫고 교권주의와 ‘영광의 신학’을 비판하고 자기희생과 사랑의 결과물인 ‘십자가의 신학’을 제시하였다.
[3] 종교개혁운동에서 죤 칼빈의 자리매김
① 죤 칼빈(John Calvin,1509-1564)은 프랑스인이며 마틴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운동에서  탁월한 공헌을 한 두 기둥이다. 그러나 본래 칼빈은 첨부터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요 법학자였다. 인문학공부를 한 파리의 ‘꼴레쥬 드 몬테규’대학에서 칼빈은 훗날 네델란드의 인문주의자가 된 에라스무스, 그리고 가톨릭 교회안에서 예수회 수도회를 세운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와 동문수학했다. 문학사, 문학석사를 받은뒤 오를레안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② 16세기 유럽사회는 근세사회의 출현진통과 종교개혁 운동으로 말미암아 혼란의l 격동기였다. 칼빈은 고대문헌과 사상에 해박한 학자였고 스토아철학자였던 세네카의 <관용론>에대한 연구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칼빈은 프랑스에서 종교개혁사상에 접했고, 개신교에로 전환했다(1930년대 초반). 성서연구, 초기교부 연구, 중세신학 특히 롬바르드의 <신학명제집>과 그라티아누스의 <교령집>을 통해 카톨릭 신학을 파악했다.  마틴루터의 논문들도 읽었다. 이러한 종합적 연구 끝에 칼빈은  <그리스도적 경건의 핵심요강> 일명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를 집필 간행하였다(초판1536). 이 책은 16세기 종교개혁 사상을 드러낸 모든 저술물들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지닌 최고명저가 되었다. 이 책으로 인해 칼빈은 당시 프로테스탄트 신앙과 신학을 대변하는 학자와 목회자로 평가받는다. <기독교강요>는 글자그대로 새롭게 등장한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믿고, 믿는 바대로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 핵심적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하여  만천하에 천명한  ‘개신교 신앙과 신학의 메니페스토’였다.
③ 칼빈의 활동 공간은 파리, 스트라스부르그, 바젤, 제네바등지였는데, 특히 생애 후기엔 주로 제네바 (공화국)에  정착하여, 제네바도시정부를  개신교신앙의 빛에 따라 정치사회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근대판 ‘신정정치’의 모델을 세웠다. 칼빈의 종교개혁신앙과 사상은 마틴 루터의 색깔과 비교할 때, 훨씬 더 사회윤리적 책임과 참여, 정치와 종교의 유기체적 관계성, 시민정치의 공공성에 대하여 예민하게 관심을 가지게된다. 이러한 칼빈의 개혁신앙 사상은 스위스, 네델란드, 스코트란드, 영국, 북아메리카등으로 퍼저나가 근대사회의 정치, 경제, 교육, 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개신교파중 장로교 교파는 칼빈의 신앙과 사상에 뿌리를 둔 셈이다. 
[4] 죤 칼빈 신앙과 사상의 특징들 
① 하나님의 절대초월성과 주권, 거룩, 영광을 강조하는 신앙
 칼빈신앙과 사상의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이나 감성으로 접근해서 파악하거나 종교의식을 통해 불러내 올수 있는 그런 신이 아니다. 칼빈은 모든 종교속에 깃들기 쉬운 우상화 요소를 엄중하게 경계하였다. 인간의 영성과 자기초월적 정신능력은 스스로 절대적인 것을 만들고 신적인 것이라고  스스로 착각하는 ‘우상제작을 일삼는 항구적 우상제작소’로서 범죄하기 쉽다. 우상은 눈에 보이는 ‘우상’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우상, 이념, 종교체계, 권력체계, 제국과 문명, 신학체계, 성직질서도 우상이 될 수 있다. 
②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와 예정(predestination)을 고백하는 신앙
절대주권의 하나님은  영국의 합리주의 철학자과 초월적 이신론자(Deism)들이 설명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만물을 초월하지만, 만물에 임재하고, 만물을 새롭게 형성하고 이끌어가신다(엡14;6). 인간의 생각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고난, 악의 창궐, 비극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삶 속에 가시처럼 ,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칼빈은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삶속의 비극적 요소들마저도 신의 전지전능하심과 경륜섭리 속에서 ‘신의 영광’을 보여주는 도구, 계기, 기회로 작동함을 강조한다. 칼빈신앙과 신학안에는 <신의 사랑>은 <신의 영광>보다 덜 강조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칼빈주의 속에 정서적-감성적 요소보다는 지성적-정언적 특성을 지니게 하며,  극단으로 나가면 휴매니즘의 좋은 점을 희생시키고 만다. 칼빈이 ‘섭리와 예정’신앙을 강조 하게된 이유는 3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신의 예지를 인정함 때문이요, 둘째는 16세기 당시 사회인들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을 믿음안에서 극복하고저 함이며, 셋째는  상식에 맞지않아도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신비하고도 심원한  성경구절들이 엄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③ 구원받은 신자 ‘새 피조물’은 실천적인 경건한 삶, 성화의 삶, 수행훈련(discipline) 강조
  칼빈의 신앙과 신학사상의 특징은 ‘의롭다함 얻는 칭의 신앙’에 머물지 않고 ‘거룩하게 삶을 살아가는 성화 신앙’을 힘써 강조한다는데 있다.   칼빈의 영성에는 “기쁨, 감사, 환희, 충만, 사랑”등의 체험이 있을지라도 소리없이 끓는 냄비속의 물처럼 조용한 내적 경건으로서 간직할 일이라고 보면서, 삶은 끊임없이 ‘세계 내적 금욕과 경건’(inner-worldly asceticism & piety)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정직, 정결, 절제, 금욕, 교육적 경건훈련을 통해서, 좋은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크리스챤의 삶의  생활 속에서 결실을 강조했다. 
④ 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적 책임과 국가 정치윤리에 공공성 요청과 교회정치의 장로제도
 칼빈은 땅위에서 이뤄지는 정치적 이상왕국이 곧바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급진적 종말론자들의 예수재림론과 열광적 성령주의자들의 종교적 유토피아니즘을 비판하고 경계하였다.  칼빈의 제네바시 전체가 복음의 정신과 빛에 의해 재구성되고 행정적으로 다스려져야한다고 본 것은, 복음은 개인의 타계지향적 영혼구원만이  아니라 삶의 전영역을 일터로 하여 ‘밀가루반죽속의  효모’처럼 복음이 세계를 정의 사랑 평화로 변혁해야 한다고 본 때문이다. 
⑤ 하나님 말씀으로서 성경과 성령의 ‘내적 조명’의 원리 를 강조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계시를 받은 성경기자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성령의 ‘내적조명’이 없이는 구원은 객관적 지식이나 교리가 되고만다. 신자의 심령을 그리스도와 연합하게하는 이는 성령이다.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성화시켜가는 이도 성령이다. 종말적 새로운 생명의 창조적 가능성도 성령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프로테스탄트 500년 역사속에서 특히 장로교회가 ‘교리중심주의 교파’로 변질하여 칼빈이 강조하는바 ‘성령의 내적 조명과 성화능력’을 소홀히 함으로 말미암아 교파분열의 비극을 심화시키는 비극을 노정하고 있다.
[5] 종교개혁운동의 제3의 길로서 경건주의 운동의 ‘삶의 성화’와 의 ‘내면의 빛’
 루터나 칼빈보다 100-150년 뒤, 17-18세기에 일어난 개신교의 제3유형으로서 경건주의 운동(Pietism)의 흐름이 있다. 대표적 3인은 독일경건주의 운동가 진젠도르프 백작(1700-1760), 감리교 운동의 창립자 죤 웨슬리(J.Wesley,1703-1791), 퀘이커운동의 시발자 죠지 폭스(G.Fox, 1624-1691)가 있다. 
 이들 종교운동의 공동점들은 종교의 본질을 외적 종교의례, 교리, 교권조직, 경전의 권위등에서보다 인간 심령 안에서의 ‘직접적 종교 체험’에 강조점을 둔다. 회심, 중생체험, 성령의 감화, 내면의 빛, 조용한 인격혁명과 사회혁명을 강조한다. 이들은 크게 로마카톨릭이나 영국 국교회(성공회) 로선이 아니라 개신교에 속하지만, 제도적 루터교파와 개혁파 장로교파의 교리신학과 형식적 종교의례에 만족 할  수 없었다. W. 제임스에 의하면 기독교 신비체험의 4가지 특징은  언표불가능성(ineffability), 이해되는 특성(noetic quality), 찰나적 일시성(transiency), 수동성(passivity)이라고 말했다. 개신교안에 흐르는 ‘경거주의’ 운동은 제임스가 말하는 인간종교체험의 신비적요소들과 깊은 관련이있다.
 영국의 종교사는 국왕의 세속권과 로마교황청의 종교권과의 긴장 속에서 영향이 컸다. 영국국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분립독립을 선언한 헨리8세(1534) 이후, 영국 종교사는 개신교 특히 개혁파 장로교회의 영향으로 청교도 혁명시대를 거쳐,  영국 국교회(성공회)로부터 웨슬리 형제를 지도자로 하는 영국 국교회내의  감리교 운동이 정식으로 분립된 것은 1795년이다. 청교도 정신, 퀘이커 평화운동, 감리교 심령부흥운동등 소위 ‘경건주의 운동’은 17-18세기동인 북미주 동부지역으로 건너가서 미국 독립운동의 큰 정신젇ㄱ 바타잉 되었고, 후대 19-20세기 ‘미대륙에서 복음주의 성령운동과 대부흥운동의 씨앗들’이 되었다. 
[6] ‘개신교 시대흐름’( Protestant Era)의 종교사적 의미와 한계 평가
  ① 종교개혁은 근대시민사회 출현, 근대국가의 형성,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발전과 맞물린 시대적 ‘삶의자리’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었다. 주체적 개인의 인간으로서 존엄, 각성, 주체성이 강조된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유럽 중산층’의 종교로서 기능하였다. 사회의 기층민에 대한 배려가 약했다. 그 결과 ‘프로레타리아트 혁명’을 무신론적 세계관(마르크스. 레닌)이 지배하도록 방기하게 되었다. 
  ② 종교개혁자들도 시대의 아들로서 자연/초자연이 이원론적 세계관 안에서 살았고, 그리스도론에 있어서도 소위 ‘케류그마적 기독론’에 경도되어 있었으며 소위 ‘역사적 예수’ 탐구에 진지함을 보이지 못했다. 자연/초자연의 이원론적 구도에서 ‘녹색별 지구생명 실재 자체’가  지나갈 ‘여관’정도의 가치를 지니게 되어있다(* 죤 번영의 <천로역정>의 영성 참조). 
  ③ 종교개혁자들은 유럽세계에 갇혀있었다. 유럽세계 밖에 엄존하는 중국, 인도, 한국, 일본등에서 꽃피우고 있었던 위대한 세계종교들(힌두교, 불교, 유교, 노장사상, 천도교등)을 알지 못했다. 그것들을 모두 ‘이교도’로 규정하였다.
  ④ 그러나, 종교개혁의 항구적 의미는 “우상타파 정신”에 있으며,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 자신’ 이외 그 어떤 위대한 것들도 ‘절대성’을 주장해서는 않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우상들에게 저항했다. 종교우상(역사적 그리스도교 종교를 절대화 하는 우상), 교권우상(성직질서,교황무오설, 교리절대화), 정치권력 우상(국가주의, 정치이념), 특정 가치의 절대화 우상(성경신성화, 과학지상주의등)에 프로테스탄티즘은 ‘항거, 저항’ 한다: “ Let God be God! ”   
  ⑤ 그리스도교 종파의 세가지 큰 흐름( 서방 로마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프로테스탄트교회) 중에서, 프로테스탄트교회는 출발부터 ‘성서의 권위와 그 해석’문제를 중요시 했기 때문에, 인간적 욕망을 논외로 하더라도 ‘성서해석학의 다양성’이라는 근본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다양한 교파의 분열은 ‘교파의 다양성이 갖는 장점’보다는 ‘교파적 분쟁과 분열’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갖는 그리스도교의 한 종파적 흐름이 되었다. 20-21세기 지구촌의 실현 시대에서 ‘종파의 다양성’이 아닌 ‘그리스도교 안에서 교파의 다양성’은 그리스도교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극복되어야 할 분파주의로 보인다. 1948년 암스텔담에서 형성된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세계교회협의회) 미래는 아직 실험대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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