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음악과의 첫만남

김종문의 필그림소나타 1

나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했고 별다른 꿈이 없었다. 그저 아이들과 뛰어 놀았고 만화책에 푹 빠져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한 친구가 내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다. 마침 교회가 인천 주안에 있는 집 근처라 부담없이 따라갔다. 교회는 허름한 동네 상가의 개척교회였고, 교회에 출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흥회가 열렸다.

그 때는 중학교에서부터 배울 수 있었기에, 갓 입학한 내게는 영어가 마냥 신기한 때였다. 부흥강사로 오신 미국인 목사님이 영어로 설교를 하고 우리 전도사님이 옆에서 통역을 했는데, 내 눈앞에서 외국사람이 영어로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 신기해 계속 큭큭거리며 웃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철없이 교회를 다니다가 가을 무렵이 되자 침례교회였던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 보통의 세례식은 물을 살짝 머리에 뿌려주는 것으로 대신하지만 그 때의 세례는 차를 타고 인천 소래에 있는 저수지에 가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중앙침례교회 목사님이라는 미국인 목사님이 오셔서 직접 세례(침례)를 주셨는데, 우리 모두는 물 밖에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면 한 사람씩 물 속에 풍덩 들어가 온몸이 잠기는 그야 말로 성경책에 나오는 대로 세례를 받았다.

금발에 눈이 파란 외국 사람이 나를 물 속에 넣었다가 빼내며 기도하던 그 경험이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하면서도 강렬한 체험이었고 쌀쌀한 가을 날에 침례를 받고 온 몸이 젖어서 오돌오돌 떨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친구 덕분에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집안에서는 어머니의 반대가 너무 심해 부모님 몰래 교회에 다니곤 했었다. 그런 형편이라 매주 50원 정도씩 하던 헌금을 마련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큰 고역이었다. 하루는 교회에서 성경책을 구입하는 신청을 받는다고 하여 주변 분위기에 쓸려서 나도 구입을 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일단 성경책을 받아서 어머니 모르게 집에 숨겨 놓았지만 당시 900원이었던 성경책값을 도저히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 교회 다니는 걸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그 후로 나는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팝송을 듣게 되었고 매일 라디오를 끼고 살다시피 하면서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하시면서 집안 형편도 조금씩 나아져 드디어 중학교 2학년 때에 우리 집에 전축을 들여 놓게 되었다. 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축을 틀어 놓고 최소한 음반 1장은 들어야 학교를 갔다. 틈만 나면 전축이 닳도록 들었던 것 같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음악이야기를 했고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지냈다. 여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옥상에 올라가 모기장을 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밤새도록 음악을 듣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듣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내가 직접 연주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agles의 ‘Hotel california’,  Smoky의 ‘What can I do’,  Santana의 기타연주, 그리고 산울림의 음악 등… 음악을 들으면 마치 내가 그 음악 속의 연주자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연주하는 듯한 흉내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은 음악을 정식으로 배울 기회는 없었고 집안 분위기로는 감히 음악을 배우겠다는 말조차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기를 원하셨고 아들이 대학에 가는 것이 두 분의 소원이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모든 것이 불만이고 반항적이며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공부는 접어두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만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잡고 준비를 하고 있는 5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같은 동네 사는 학교친구가 내게 대뜸 전화를 걸어와 자기는 학교를 그만 두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겠으니 자기가 맡고 있던 학교밴드의 기타자리를 네가 대신 하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왔다. 마음 잡고 공부하기로 준비 중인데 밴드의 기타리스트라니… 귀가 솔깃해지며 순간적이지만 많은 갈등을 했다. 그렇지만 항상 음악 하는 것을 꿈꿔왔던 나는 곧바로 승낙을 하고 말았다. 6월 1일부터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었지만 그 날부터 부모님 몰래 음악학원에 등록하고 기타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대학진학을 포기하면서까지 기타리스트로서의 삶을 택한 나는 음악과 관계된 것이라며 뭐든지 마다하지 않으며 어렵지만 음악의 길을 걸어갔다. 집에서 부모님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대학수능 때만 되면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TV앞에서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학원에서 한 달간 배운 실력이 전부였던 나는 그 후로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며 전전긍긍했지만 그다지 실력은 나아지지 못했다. 배우는 것이 없으니 연습할 것도 별로 없고 알고 있는 것만 매일 반복되자 음악이 지루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항상 부족함을 안고 살며 배움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때였다. 주변의 누군가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기타선생님이 있다고 하기에 그 길로 달려가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라는 걸 내가 우겨서 두 번씩 가겠다고 하고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쯤 되자 항상 연습할 과제가 없어서 빈둥빈둥하던 내게 연습할 것이 너무나 많이 생겨서 하루 종일 연습을 해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음악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진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졸졸 흐르는 개울에서 지내던 내가 드디어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 온 느낌이었다.

그 후로 나는 나름대로 연습을 착실히 하며 열심히 음악생활을 하게 되었다. 무명의 기타리스트로 생활해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결혼도 하고 예쁜 두 딸도 얻으며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녹음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사업을 하려니 어려운 점이 여러 가지로 많게 되었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집에 늦게 들어 가게 되고 아내와 아이들을 볼 시간이 적어지자 왠지 나만 소외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또한 부모님의 집을 저당 잡히고 대출을 받아 녹음실을 시작했기에 상환금을 제 때에 내지 못하고 부모님을 뵐 때면 죄송하고 볼 면목도 없었다. 가만히 내 스스로를 생각해보아도 앞날에 대한 비전이 별로 보이지 않고 가정에서도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자 어느덧 나는 어정쩡한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업에 골몰하다 보니 대인관계가 너무 비즈니스 쪽으로만 집중되어 갔다.

어느 날에는 친한 지인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다 크게 다투게 되었는데 끝내는 두 번 다시 안볼 것처럼 돌아서고 말았다. 그 일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아직도 내게 많은 사람이 남아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애써 침착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또 다른 사람과도 문제가 생기자 살짝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내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마치 열손가락 중에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돌이켜 보게 되었고 그 원인이 너무 편향적인 대인관계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해결책을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 누구든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서로인사를 건넬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것이겠다 라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어디를 가면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 많고 또 그들과 쉽게 접촉 할 수 있을까 찾게 되었는데 문득 교회가 떠 올랐다.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몇 해전부터 교회를 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교회에까지 차를 태워줄 망정 절대로 교회에는 들어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회가 생각이 나길래 하루는 아내에게 부탁하기를 이번 주 일요일에 내가 교회에 가려고 하니 예배 드리러 갈 때 나를 데리고 가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약 내가 마음이 바뀌어 안 간다고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꼭 좀 데리고 가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일요일이 되었고 나는 원래 마음 먹었던 대로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나갔다. 왠지 쑥스럽고 창피한 마음에 교회 가장 뒤쪽의 구석진 스피커 밑에 자리를 잡고 예배를 드렸는데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다 보니 구구절절이 모두 옳은 말씀만 하신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몇 주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가자 교회에서 새 신자 등록을 하라고 하였다. 나는 혹시라도 교회에 얽매일까봐 등록은 안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등록카드를 작성해 내고 말았다. 그러자 예배 때 새 신자라며 일어서라고 하고 누군가 와서 가슴에 꽃도 달아 주고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고 하자 나는 너무도 낯설고 당황하여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러면서 또 몇 주가 지나자 또 예배 때 내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교회에 등록을 한 뒤 4주 동안 잘 나왔으므로 선물을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나갔는데 그 때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 가장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경우로 기억된다. 괜히 교회에 온 거 아닌가 하고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아마도 죄인인 내가 깨끗한 곳에 서기가 두려워서 그랬나 보다.

아무튼 그 때의 경험 때문에 나는 지금도 항상 새 신자인 느낌이며 새로 등록하고 일어서서 꽃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고마운 생각이 든다. 중학교 1학년 때 세례를 받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교회로 돌아온 내 모습을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그 동안 하나님을 너무 기다리시게 한 것 같아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은혜’라는 단어나 ‘할렐루야’라는 단어처럼 교회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들을 들으면 난 옴 몸에 두드러기라도 나는 것처럼 근질거리고 듣기가 거북하였다. 그런 내가 설교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내가 싫어하던 단어. 바로 ‘은혜’를 받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 나는 매주 주일 아침마다 많은 지인들에게 문자로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 항상 시작되는 단어가 바로 ‘할렐루야’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이렇듯 나를 변화시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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