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누가 교회를 무너뜨리는가?

사리분별 못하는 목회자·성도들이 교회 무너뜨리는 주범

[편집자 주] 예장합동 총회가 전병욱 목사 면직 상소를 반려한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백남선 총회장이 한 교계 언론과의 접촉에서 “전 목사 사건이 계속 논란이 되는 건 한국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여론은 들끓었다. 
삼일교회 내에서 전 목사의 성범죄를 알려왔고, 『숨바꼭질』 공동 편집자로 참여한 권대원 집사는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권 집사는 먼저 백 총회장의 발언에 개탄하면서, 사리분별 하지 못하는 목사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라고 꼬집었다. 
교회에 덕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 빨리 덮고 넘어가자?
나는 지난 4년간 전병욱 목사 면직운동에 참여해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일에 뛰어들어서 평생 먹을 욕과 비난과 험담을 그리도 많이도 먹게 되었는지 후회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오래 살겠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하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러나 ‘날마다 새로운’ 기독교인들의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한 발언들과 행동들을 접하면서 뒷목을 잡을 때가 많았으니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전 목사 면직운동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궤변과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며칠 전 기사에서 본 ‘예장합동교단’ 백남선 총회장의 발언은 가히 압권이라 할만하다. 전병욱 목사의 면직재판에 대한 삼일교회의 상소가 총회에서 반려된 상황에서 교단의 총회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총회의 수장인 백남선 총회장은 삼일교회의 상소장을 살펴보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전 목사 사건이 계속 논란이 되는 건 한국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 좋은 일이면 몰라도 안 좋은 일은 빨리빨리 덮고 지나가야 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많다.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데 전도가 되겠느냐? 믿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겠느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교회를 세워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말씀만 세우는 것이고, 부끄러운 일은 그것을 가지고 반성을 하면 된다.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고 했다.”   
난 저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모습이란 무엇일까? 성경적으로 교회에 덕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향기를 드러내며 이웃을 기쁘게 하고, 유익을 끼쳐 교인들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다는 뜻이 아니던가?   
▲지난 3월10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삼일교회C관에서 <전병욱 목사 측 고발에 대한 입장과 평양노회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던 모습. 삼일교회 권대원 집사도 연대했다. ⓒ베리타스 DB

“우리는 이웃을 기쁘게 하여 서로 유익하게 하고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로마서 15:2)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기는커녕, 교회 안에 수 십 명의 피해자가 명백하게 있고, 어렵사리 재판에 나와서 눈물로 통곡하며 증언한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하면서까지 성범죄 목사 한 명을 덮고 비호해서 교인들 뿐 아니라 비신자들에게까지 비난을 받는 행태가 어떻게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저 발언의 맥락상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많다”라는 뜻은 마치 이런 정당한 권징과 치리를 요구하는 이들을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으로 매도하려는 의도까지 느껴진다. 아니면 전 목사 사건을 빌미로 교회를 욕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던가. 사람들이 교회를 욕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실제로 예장합동교단은 지금껏 한결 같이 욕먹을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지나가는 비신자들과 거리의 사람들을 무작정 붙잡아 물어보라고 하고 싶다. 교회 내에서 헌금횡령, 성범죄, 교회세습 등 숱하게 많은 문제가 터지더라도 그것을 드러내어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징계하고, 자정하려는 교회의 모습이 신뢰가 가는지, 아니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조건 모든 문제와 범죄들을 덮고 거룩한 척하는 교회가 더 신뢰가 가는지 물어보라고 말이다.  
내 주변의 많은 비신자 친구와 직장동료들이 수치스러운 일이 드러나더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교회의 자정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그런 교회의 모습이 더욱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속은 썩을 대로 썩었는데 마치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전도에 방해가 되고, 교회성장에 방해가 되니까 빨리 빨리 덮고 넘어가자고 말하는 교회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표현 그대로 ‘회칠한 무덤’이 아니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마태복음 23:27~28)   
진짜 교회를 무너뜨리는 세력과 교회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바로 저렇게 사리분별 못하는 목사들이다.  
사리분별 못하는 값싼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또 한 가지 면직운동을 하면서 답답했던 기독교인들의 반응 중 하나가 전병욱 목사가 회개하고 면직을 당해야하는 건 맞지만 면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공격적이고 분노에 차서 일하는 것을 보니 그들은 사랑이 없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판단과 정죄의 죄를 범하고 있으므로 그들도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논리로 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라”고 훈계한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기독교인들의 ‘사랑’에 대한 피상적이고 얄팍한 이해가 대개 그러하다. 그들은 사랑은 긍정적인 감정으로만 점철되어 있고, 무조건 덮어주고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관한 가장 아름답고 구체적인 성경구절로 기독교인들이 ‘사랑장’으로 인용하기 좋아하는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라는 말씀만 기록돼 있지 않다. 바로 그 앞에 기록된 말씀을 보라.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도전서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의’이고 ‘불의’인지 구분 할 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무엇이 공정하고 불공정한 것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분별력은 사리분별을 정확히 할 줄 아는 ‘논리’에서 나온다. 만일 그런 분별력을 무시하는 ‘감정적인 기준’에서만 ‘사랑’을 행한다면 자기 자신의 감정적 만족도는 높을지 몰라도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도 있고, 옳고 그른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악인을 의롭다하고 의인을 악하다”하는 왜곡된 판단을 내릴 위험이 있다.   
그런 분별력 없는 사람이 ‘사랑’한답시고 행하는 모든 행동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힌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선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가 속한 가정, 조직, 교회에서 “불의와 악이 의와 진리로 포장되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파국을 불러올 것이다.   
그래서 스캇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단호한 어조로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랑에 있어 ‘지각과 분별력’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말했다.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안 주는 것이다. 그것은 지각 있게 칭찬하고, 지각 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 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 맞서며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스캇펙, 『아직도 가야할 길』 중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생각하려하지 않는 게으름을 얄팍한 감상으로 포장한 자기만족적인 감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다.   
그런 이들의 ‘사랑’이 사랑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그저 자기감정의 배설을 통한 ‘자기만족’이 가장 중요하므로 그 얄팍한 사랑의 자리에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일수록 ‘은혜, 사랑, 자비, 용서, 평안, 위로’ 등등 종교적이고 감상적인 어휘들을 마음껏 사용하며 자신이 얼마나 사랑이 많고 거룩한 교인인지 드러내려 한다. 그러나 정작 전병욱 목사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듯이 ‘타인의 아픔’에는 이상하리만치 공감을 못하며 냉담하다.    
올바른 ‘사리분별’은 사람을 차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같이 아파할 줄 아는 공감능력과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분노와 용기 있게 나설 수 있는 행동의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한마디로 진정한 사랑을 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사리분별의 능력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랑과 불의와 진리의 관계’를 엮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도전서 13:6)  
한국 기독교의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사리분별의 능력을 잃어버려,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할 줄 모르고,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할 줄 모르고,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모르게 되었다. 마치 예수께서 당대 사람들을 보고 한탄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이 시대 사람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은 무엇과 같을까? 이들은 마치 장터에 앉아서 자기 친구들에게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상여 노래를 불러도 너희가 울지 않았다’하고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누가복음 7:31~32)   
사리분별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한국 교회와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있다. 기독교인들이여! 제발 우리 ‘사리분별’ 좀 하고 ‘지각 있게’ 사랑하자.

글/ 권대원·삼일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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