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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칼럼] 마르크스와 예수

입력 Aug 04, 2015 01:58 PM KST
▲김기석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 ‘어른’이 없다고 한탄하는 이 시대에 또 한분의 어른이 세상을 떠나셨다. 소천하신 김수행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완역한 경제학자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셨다. 분단의 현실 때문에 우리 사회는 사람들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데 익숙하다. 물론 이러한 자유(?)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북한 보다야 백배, 천배는 낫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는다. 점잖게 말해서 보수와 진보이지, 그냥 속되게 말하면 ‘수구꼴통’과 ‘좌빨’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하면 아마도 보수 쪽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김수행 교수를 그저 ‘좌빨의 대두’ 정도로 분류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그를 석좌교수로 모신 성공회대는 기독교 정신을 교육이념으로 하여 설립한 대학교이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따라온다. “왜 성공회대는 좌빨 학자를 초빙했는가?” 이는 곧 “어떻게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기독교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하여 “그것은 성공회대가 좌빨 대학이기 때문이지.”라고 빈정대는 것은 좋은 대답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대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예수와 마르크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영국의 버밍엄에 가면 산업혁명 박물관이 있다. 버밍엄은 맨체스터와 더불어 영국 산업혁명의 심장이었던 도시였다. 이 박물관에는 당시의 증기기관을 비롯한 산업혁명의 유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재연해 놓은 코너이다. 여기서 우리는 6살짜리 어린이 노동자들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기계 앞에 매달려 하루 14시간씩 노동하던 생활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 어린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제공된 것은 아침에는 밀기울 죽이, 점심과 저녁식사로 두 덩어리의 빵과 감자 몇 알이 거의 전부였다. 이 끔찍한 현실은 바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과도 같은 사회이다. 필자는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마르크스 사상의 주요한 동기에는 이러한 괴물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어떻게 해방시킬 것인가라는 인간적인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사상이 이론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문이 짧은 필자의 단견이겠지만, 공산주의 제도를 인류 역사의 궁극적 단계로 규정한 것이라든지, 역사발전의 수단으로 폭력을 정당화한 점 등은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그리고 소련을 비롯하여 20세기에 등장한 공산주의 국가의 전제주의와 관료들의 특권과 부패의 문제 등은 인류의 해방이 결코 사회과학적 이론과 실천으로만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김수행 교수는 이러한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결코 마르크스주의의 올바른 구현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한 결과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로 생겨난 종교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다가 로마제국의 권력과 질시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의 공모에 의하여 처형 당하셨다. 그는 하느님이 언제나 이 사회에서 가난한 자와 약자와 소외된 자들 편이라고 설파하였다.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자들에게 잘 대해준 것이 곧 나(하느님)에게 해준 것이라는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보라!) 성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게 되는 것은, 예수께서 제시한 하느님의 환대를 받는 조건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 경제적 처지에 따라 선택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하나의 상상을 해본다. 1800년의 시차를 둔 예수와 마르크스가 만일 동시대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다. 예수께서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들을 보았다면,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지 머리를 싸매고 분투하는 마르크스를 만났다면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어떤 점에서는 서로 배포가 통하고 어떤 점에서는 갈라졌겠지만, 그 시대의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는 하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것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고 김수행 교수가 기독교 학교인 성공회대에서 강의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선생께서 남기신 연구 업적과 혼신을 다해 후학을 가르치신 그 열정의 원천은 다름 아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 열정에 감화 받은 후학들이 이 사회 곳곳에서 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더욱이 선생께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인을 따라 교회에도 열심히 다녀 집사라는 직분까지 받은 신자이셨다. 그리하여 고 김수행 선생은 예수의 정신에 따라 열림 나눔 섬김을 교훈으로 삼는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너무도 잘 어울리시는 학자이셨다. 그리하여 성공회대는 우리 사회에서 고인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그 영혼을 추도하기 위해 이번 주 내내 분향소를 마련하기로 결정하였다.
분단 70년! 한반도 허리를 가른 경계선은 무너질 줄 모르고, 남쪽 사회 안에서도 항상 좌우로 나뉘어 사사건건 서로 삿대질하기 바쁘다. 너무 쉽게 좌우로 가르지 말자. 자꾸 갈라서 분단의 역사는 대체 언제 극복할 것인가?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많지만 정상에서는 하나로 통한다. 물리학에서도 에너지가 낮은 단계에서는 모든 힘이 분리되지만 높은 단계가 되면 우주의 근본적인 힘이 모두 통일된다. 서로 다른 겉모습 보다는 하나인 속마음을 보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 하나의 마음이란 바로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사람과 생명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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