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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칼럼] 외눈박이 왕과 국정교과서

입력 Oct 19, 2015 08:00 AM KST
▲김기석 교수(성공회대) ⓒ베리타스 DB
I. 
옛날 어느 나라에 난폭한 왕이 있었다. 전쟁 중에 한쪽 눈을 잃어 외눈박이가 된 왕은 성격이 더욱 포악해졌다. 그는 온 나라 백성이 자신을 숭배할 수 있도록 위엄이 넘치는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 했다. 왕은 대신들에게 명하여 자신을 위대한 왕으로 그릴 수 있는 화가를 찾게 했다. 나라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화가가 초상화를 그려 바쳤다. 초상화를 받아 본 그는 분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짐의 애꾸눈을 그려 이렇게 흉한 얼굴로 만들다니 무엄하도다.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그 불쌍한 화가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새로운 화가가 선발되어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두려움에 떨리는 손으로 초상화를 그려 바쳤다. 왕은 또 다시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아니, 어찌 이것이 나의 진짜 얼굴이란 말이냐?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첫 번째 화가가 왕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그려 화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두 번째 화가는 왕의 얼굴에 없는 눈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세 번째 화가가 또 다시 뽑혀서 목숨을 걸고 초상화를 그렸다. 이 화가의 그림을 받아본 왕은 흡족하여 크게 웃으며 말했다. “오, 매우 훌륭하도다. 저 화공에게 큰 상을 내리도록 하라!” 세 번째 화가는 왕의 옆모습을 그려 사실적이면서도 보기 흉한 외눈박이 눈을 가리는 기지를 발휘했던 것이다.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흔히 세 번째 화가의 번뜩이는 기지를 칭찬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교훈은 이것만은 아니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어떤 사건이나 실재의 한쪽 측면만 보려고 하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아집을 지적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고,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II. 
온 나라가 국정교과서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또 다시 해묵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격화되고 있다. 경제회생을 외치며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고, 나라 빚과 개인부채는 늘어만 가고 국가경쟁력은 떨어져만 가고 있다. 지구화 시대의 급변하는 정치 경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야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민생과 나라살림을 챙겨도 어려울 판에 지긋지긋한 이념논쟁과 남북대결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중국의 패권주의가 부흥하며, 미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 땅의 주인인 우리는 허구한 날 양쪽으로 갈라져 서로 ‘종북 빨갱이’니 ‘친일보수꼴통’이니 삿대질만 하고 있다. 나라를 잃던 구한말의 모습 그대로이다.
원래 교육부나 여당조차도 오늘날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 왜냐하면 교육부도 국정교과서가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진 정책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교육부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을 통해 미국·영국·프랑스·핀란드·호주·일본 등 주요 OECD 8개국의 국사 교과서 실태를 조사해보니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었다(“국정교과서 채택 OECD 국가 ‘전무,’ 세계 주요 8개국의 자국사 교육 실태조사 결과,” 2014년 9월 25일자 경향신문).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 OECD 34개 국가 중에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그리스, 터키, 아이슬란드 세 나라 뿐이다. 그중에서도 터키와 아이슬란드는 민간교과서를 병행하여 사용한다. 그러므로 단일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그리스가 유일하다. 현 교육부 김재춘 차관은 2009년 교수 재직 중 자신의 논문 <교과서 검정체제 개선방안 연구>에서 “국정교과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검·인정 교과서는 이른바 선진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제도”라고 주장한 대표적인 교과서 국정화 반대론자다. 오늘날 국정교과서를 쓰는 대표적인 나라는 북한이다.  
이렇듯 국정교과서가 국제화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임을 잘 알고 있는 교육부 관리들에게 기자들이 왜 무리수를 두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린들 어떡하냐?”며 청와대를 가리켰다. 기자들이 청와대 사무관에게 가서 “청와대가 지시했느냐”고 질문하니, 부인하면서 다만 “대통령께서 바른 역사 교육에 관심이 있다”라고만 우회적으로 답을 했다고 한다.
필자는 청소년들에게 바른 역사관을 가르쳐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라면 찬성한다. 해외 유학 시절, 우리 사회에 대한민국에 대해 지나치게 자학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나라가 비록 부조리한 면이 많은 나라지만 장점도 꽤 많다고 느꼈기에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살리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에 나타나듯이 희망이 없는 대한민국에 대한 젊은 세대의 좌절감이 더욱 깊어졌다. 이는 양극화와 부의 세습이 초래한 문제로서 역사교육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살리는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친일행적과 남로당 가입, 군사정변으로 얼룩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감추거나 역사를 왜곡할 의도가 추호라도 있다면, 그녀는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망각한 것이다.   
박정희가 일왕을 향한 충성의 혈서를 쓰고 일본군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최우등생에게만 허락되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편입하고 졸업 후에 장교로 임관하여 독립군을 소탕하는데 젊은 시절을 바쳤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해방 후에는 일본군 장교 출신인 그가 대한민국 국군 장교가 되었고, 김종필의 장인이자 박정희의 친형 박상희가 좌익 지도자로서 대구 폭동을 주도하여 경찰에게 사살됐으며, 박정희는 여순 반란 후 군대 내에 침투해 있는 남로당 조직원 색출 때 검거되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6.25 발발로 인해 장교로 복권됐다는 것도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희생으로 쟁취한 4.19 혁명에 의해 탄생한 합법적 정부를 출범 단 9개월 만에 사회혼란을 수습한다는 구실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전복시켰고, 유신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물론 경제발전의 업적은 별도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미화할 의도로 국정교과서에 이토록 집착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직책보다 가족의 연을 더 우선시하여 이 나라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로서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 받을 것이다.  
필자는 대학생 때 박정희의 이러한 행적을 선배로부터 듣고서 믿을 수가 없었다.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렸다. 발설하면 잡혀갈 내용들이었기에 두려웠으며, 결코 믿고 싶지 않았고, 거부감마저 들었다. 유신정권이 만들어준 역사 교과서로 배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인명 검색만 하면 손쉽게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수의 국민들은 필자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이와 같은 박정희에 관한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III. 
외눈박이 왕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단 하나의 시각만을 강요했다. 역사 교육이 외눈박이 왕 같은 폭력을 휘둘러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생명으로 하는 인문학을 살해해서는 안 된다. 북한처럼 수령과 지도자에 대한 신화와 충성심을 학습시켜 청소년들을 외골수로 만들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 
2천년의 역사를 지닌 기독교는 정경화 과정을 통해 공인된 성서를 확정하였다. 신구교가 약간의 차이(외경)를 지니고 있지만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정하기까지는 오랜 세월과 많은 회의를 거쳐야 했다. 교회가 인정하는 정경은 하나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책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복음서는 예수의 행적에 대해 기록한 책인데, 단일한 책이 아니라 마태, 마가, 루가, 요한 기자가 기록한 4권의 책을 모두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만일 교회가 단 하나의 복음서만 인정하였더라면 예수가 전한 복음의 메시지는 훨씬 단순했을 것이며 지금과 같은 풍부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불교 역시 다양한 경전을 가지고 있다. 하나된 믿음을 중요시하는 종교에서조차 단일한 경전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물며 저 유명한 역사가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주장한대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와의 대화”인 역사 교육에서, 검정제와 인정제도 믿지 못하고 국가가 정한 단 하나의 교과서로 어린 세대를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독재 사회에서나 가능한 발상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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