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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여] 초기 기독교는 북한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입력 Nov 28, 2015 07:08 AM KST
▲정지웅 교수 ACTS 대 교수. ⓒ베리타스 DB

한반도에서 선교의 문의 열린 것은 1884년부터이다. 이 이후로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조선 후기에 한반도에는 낙후된 의료환경 때문에 가벼운 병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또한 당시 교육 시설이 전무하여 개명된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선교사들이 시작한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은 조선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양영창 전 자유시민대학 기획처장과의 대담에서 양 처장은 1885년 4월에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 설립된 이후로 기독교가 북한에서 펼친 사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평양에서는 1892년 8월 북감리회의 홀 의사가 진료를 개시한 뒤로 1895년 10월에 선교사 홀이 진료를 시작했으며 1897년 2월에 병원을 개원했다. 1899년에는 한국 최초의 맹인학교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웰즈 의사가 1895년 6월에 평양에서 진료를 시작했고 운산 금광과 은산 금광에서의 의료사업에 관여했다. 이어 1901년에는 샤록스, 1903년에는 파이팅이 각각 의료사업을 전개했다.   
선천에서는 북장로회의 샤록스가 1901년 11월에 진료소를 개설하고 장티푸스 환자 및 아편중독자를 치료했다.  
개성에서는 남감리회의 하디가 진료소를 개설하였고 1909년에는 리드 의사가 남성병원을 열고 아편중독자 및 환자를 치료했다.  
원산에서는 1892년 북감리회의 맥길 의사가 진료를 시작하여 원산구세병원을 세웠으며 1915년에는 원산연합기독병원을 세우고 의료 및 선교 사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캐나다 장로회의 그리어슨은 1898년 2월에 원산에 도착한 후 중환자와 응급환자에게도 진료를 하였고 후에는 맥밀란이 1907년에 진료소를 개원하여 많은 환자를 치료했다.   
성진에는 1901년 캐나다 장로회의 그리어슨이 부임하여 의료선교를 하였고 1907년에는 제동병원을 설립하여 환자를 치료했다.   
함흥에는 1903년 맥밀란 의사가 맥렉 목사 부부와 함께 선교부 및 진료소를 개설하였으며 이후 제혜병원을 설립했다.  
영변에서는 1906년에 북감리회에 의해 의료사업이 시작되었고 1908년에 노튼 의사가 정식으로 의료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10년에는 밀러 의사 부부가 승계했다.  
재령에는 북장로회가 1906년 파이팅 의사를 파송하여 의료사업을 시작했고 1908년에 재령병원을 개원했다.
 
강계에는 1908년 북장로회 선교부가 설치된 후 밀즈 의사가 부임하여 진료를 시작했으며 1911년 케네디병원을 개원했다.   
순안에서는 1905년 스미스 목사 부부가 선교활동을 하면서 4년간 2만 명이나 되는 환자를 진료했다.   
해주에서는 1909년 북감리회에서 해주구세병원을 건립했고 1910년에 노튼 의사가 부임하여 의료활동을 했다.   
선교사들은 의료사업뿐만 아니라 교육사업도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기독교계 사립학교가 계속 세워졌다. 1910년 2월까지 북한에 설립된 종교계통 학교의 통계를 보면, 장로교가 501학교, 감리교가 158학교, 성공회가 4학교를 세웠다.  
평양에서는 1897년 예수교학교가 설립되었고, 1901년에는 평양 신양리에 새 교사를 지으면서 숭실학교로 개칭했다. 1908년에는 대학과정을 만들어 숭실대학으로 정식 인가를 받기도 했다. 여자학교로는 1903년 상수구리에 숭의여학교를 설립했고, 1894년에는 숭인상업학교를 설립하여 상업교육을 시작했다. 1894년에는 북감리회가 광성학교를 건립했고, 1899년에는 정의여학교가 설립되었다.  
재령에서는 1898년에 교육사업이 시작되어 명신학교로 발전했다.   
선천에서는 1906년에 신성학교가 설립되어 초대 교장으로 휘트모어 선교사가 선임됐다. 이 학교는 평북지역 유수의 사학으로 성장했다.   
평북 강계의 기독교 학교도 역시 북장로회에 의해 시작됐다. 1908년에 영실학교가 설립되었고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  
함경도와 간도에서는 캐나다 장로회의 맥레 부인이 1903년에 영생여학교를 시작했고 1907년 영생남학교로 개교하였다. 이외에도 성진에는 보신 남녀학교가, 원산에는 보광학교, 간도에는 은진중학교와 명신여자중학교가 각각 설립되어 운영됐다.   
개성에서는 1904년에 남감리회가 개성여학교를 설립했다. 1909년에는 중학과를 설치하고 호수돈여학교라 했으며 소학교는 호수돈지여숙이라 칭했다. 1918년에는 교육령에 따라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와 호수돈여자보통학교로 개편했다. 개성에는 또한 미리흠여학교가 1906년에 여성들을 위하여 설립됐다. 한영서원은 남감리회가 한국선교를 시작한 뒤 1906년 10월에 설립됐다. 1917년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한편,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 지도자들도 학교를 설립했는데, 대표적으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1899년에 점진학교를 세우고 1907년에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웠다. 이승훈은 평북 정주에 초등학교인 강명의숙을 설립했고, 12월에는 오산학교를 설립했다. 오산학교는 1926년에 오산고등보통학교로 승격됐다. 김일성이 다닌 창덕학교도 기독교 학교이며 외할아버지 강돈욱이 여기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이처럼 기독교는 북한지역에서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치료와 의식개혁에 크게 기여했다. 평양이 제2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크게 부흥이 일어난 것도 이러한 봉사 활동이 바탕이 됐던 것이다. 이후 공산 정권이 들어서고 박해를 받게 된 북한지역의 기독인들은 남한으로 이주하여 현 대한민국의 기독교 부흥에 밑거름이 됐다. 한국 기독교는 북한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탈주민 돕기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남한의 기독인들이 당연히 해야 할 빚 갚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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