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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칼럼] 날씨 분별에서 시대표적 분별로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

kimkyungjae
(Photo : ⓒ베리타스 DB)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오늘의 기독교가 사회치유 능력이 있다고 국민은 보지 않는다. 말로써 하는 예수 전도는 소음으로 들리게 되었으니, 예수닮기와 예수살기를 보이라고 한다. 흙 속의 씨앗처럼, 한번 죽고 다시 '정의로운 사랑의 종교'로서 움터 나와 신뢰받는 기독교가 되어주기를 한민족은 기다린다. 시련과 격동기를 달려왔던 우리 현대사에서, 사회와 문화 변동에 뚜렷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던져주었던 한국 기독교가 올해로 선교 130주년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 기독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비판적 시각이 국민들 중에 적지 않다. 일부 단체들의 배타적 전도 방식과 사이비 종교단체들의 난립과 그 폐해 때문에, 건전한 교회들과 성실한 신도들마저 그 존재감을 평가절하받는 억울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종단의 공동책임을 묻는다. 사회는 개신교를 하나의 강 흐름으로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맑은 물 수량이 많으면 전체가 맑게 보이는 것이고 절반 정도라면 강물 전체가 탁하게 보이는 법이다.

복음서를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시대변화에 둔감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예수님께서 꾸짖는 말씀이 나온다.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날씨 분별'과 '시대표적 분별'은 은유적 비교 어법이다. 날씨 분별은 고대나 현대나 제한된 기상정보와 과거 경험의 축적에 기초하여, 예보기간도 사나흘 아니면 일주일 예보가 가능하다. 여하튼 날씨 분별을 하려는 목적은 여행, 농사, 장사, 야외행사 등 눈앞에 닥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려는 일상의 '손익 관심'에서 작동한다.

다른 한편, 시대표적 분별은 적어도 10년 이상 지난 뒤에 일어날 일들과 관련된다. 예를 들면 왕조의 몰락, 전쟁이나 역병 창궐, 기상이변, 1 대 99의 양극화 반란, 휴대전화 발명이나 유전자 디엔에이(DNA) 발견이 문명에 끼칠 예언 같은 것이다. 예언자들은 현재 속에 이미 잉태한 조짐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간파하고, 거기에 더하여 영감이나 계시를 받는 것이다. 예레미아, 이사야, 마호메트(무함마드)만 예언자가 아니라 니체,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도 현대판 예언자란 말이다. 시대의 표적 분별은 다가오는 시대를 준비하면서 사람다움을 잃지 말자는 삶의 '의미 추구'에서 발동한다. 요즘 기독교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국민들에게 지난 130년 한국 기독교의 발자취를 왜 소개하는가? 일탈 청소년들의 성장 배경을 이해하면 미움, 연민, 그리고 철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지듯이, 아직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 했던가?

첫 단계는 발아착근기(1884~1920)이다. 조선왕조 말기에 전래되어 1919년 3·1 독립만세 사건의 한 축을 감당하면서 민족과 숨결을 함께하던 시기다. 천도교와 불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승적 협력이 거사를 가능하게 했다. 순수했고 대범했던 제1세대 선교사들은 헐벗고 천대받던 민초들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먼저 성서를 번역 보급하여 민중의 까막눈과 영안을 동시에 뜨게 했고, 오랜 세월 한문 장벽에 막혀 배고팠던 영적 허기증을 극복하게 도왔다. 교회와 병원과 학교를 세워 질병과 무지, 신분과 남녀 차별을 없애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벽안(碧眼)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질병 앓는 가난한 민초들에게 인술(仁術)을 펴며 동고동락했다. 마더 테레사의 인도 콜카타 빈민구제 활동보다 앞서, 더 치열하게 전라도 광주엔 한센병과 결핵 환자들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셰핑(서서평)의 활동이 있었다. 자기희생적 아가페 사랑을 처음 받아본 이 땅의 민초들은 조상제사 폐지라는 문화충격을 맘속에 품은 채 야소교를 환영하고 받아들였다.둘째 단계는 시련성장기(1920~1960)이다. 일본의 식민지배 기간과 해방 후 냉전 시기다. 간신히 착근한 어린 묘목이 병충해와 가뭄과 들짐승과 전쟁 포탄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듯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시기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안창호, 조만식, 이승훈, 김약연, 이상재, 김마리아 등 선각자들이 민족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던 시기다. 그러나 대범했던 첫 세대 선교사들의 숭고한 헌신적 불꽃시대가 지난 뒤, 교체된 다음 세대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 후견인 노릇을 하며 교파 분열의 씨앗을 뿌렸다. 냉전시대 해방공간에서 교조적 공산주의 집단의 교회 박해와 6·25 전쟁 경험으로 인해 철저한 반공집단이 되는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맹목적 친미주의 기독교가 되었다. 제1공화국 시대는 마치 기독교 국가나 된 듯이 착각했다. 4·19 학생혁명과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날 때도 깊은 역사의 잠에 빠져 시대 징조를 읽어낼 능력이 없었다. <사상계>를 통한 함석헌 등 몇명 들사람들의 외로운 외침도 교회 울타리 밖에서 메아리쳤다.

셋째 단계는 분지개화기(1960~2000)이다. 제법 자란 과수나무가 큰 가지로 분지(分枝)해 뻗어나가듯이 한국 기독교는 보수교단과 진보교단이라는 두 개의 가지로 분지해 뻗어나갔다. 그리고 각각의 가지엔 과일의 때깔과 맛이 다른 열매가 맺히는 기현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1970년을 분기점으로 남북한 정치·경제·사회는 크게 요동치며 변곡점을 넘는다. 사회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사이에 대립갈등이 심했다. 진보적 '기독교교회협의회'(NCC)는 민주화에 혼신의 힘을 쏟으며 군부권력의 폭력에 저항했다. 1970~80년대 통계자료를 보면 옥살이한 성직자와 교수와 문인, 제적당한 학생, 정보부에 끌려가 죽거나 고문당한 사람, 노동·농민운동가 등 고난당한 자 과반수가 기독교계 사람들이었다. 다른 한편, 보수적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교단들은 교회의 양적 성장에 힘을 쏟았다. 산업화 과정의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소시민들에게 심령 위안처 '노아방주'를 제공했고, '성공과 번영'의 메시지로 선민의식을 고취하였다. 덩치가 커진 '한기총'은 정치 보수세력의 든든한 지지집단이 되었고, 어떤 경우 극우적 편향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넷째 단계는 전지응축기(2000~2015)이다. 지금 진행중이며 앞으로 기대해보는 기독교의 모습이다. 전지(剪枝)란 제멋대로 자란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일이요, 응축(凝縮)이란 확산의 반대 개념이다. 요즘은 교회성장 지상주의, 대형 체육관 집회, 큰 교회당 신축 등이 갑자기 비난과 의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교회가 자정능력을 상실하여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형국이다. 교회 내분이 발생하여 법원 소환장이 발부되고, 압류집행 명령이 내려지고, 헌금 사용의 불투명성으로 구설에 오르내린다.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중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지역 영주들처럼 권력욕과 명예욕에 도취되어 교회의 공공성과 신성성을 유린하고 사유화한다. 다원사회 안에서 관용, 대화, 평화가 아니라 독선, 배타, 공격의 논조로 신도들을 세뇌시킨다. 시대표적 분별능력을 상실한 상징적 사건이 서울지하철 '봉은사역' 명칭에 반대하는 목회자들의 집단행동이었다. 우리 사회의 통절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목회자들 할 일이 고작 그런 일이란 말인가?

시대표적 분별의 일이란 무엇인가? 가치 혼란 시기에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세속 한복판에서 초월 경험'이 무엇인지 증언하는 일이다. 찰나를 사는 티끌 같은 인간 생명이 왜 존엄하고, 사랑은 왜 죽음보다 강한지 삶의 언어로 새롭게 들려주는 일이다. 공생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공유하여 더불어 사람답게 살고 싶어하는 착한 마음을 지녔지만, 무력감에 주눅 든 수많은 우리 사회의 고독한 개인들을 격려하고 연대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가 사회를 치유할 능력이 있다고 국민은 보지 않는다. 돈의 위력이 우상이 된 시대에 "탐심은 우상숭배이다"라고 갈파한 초대교회의 청빈의 영성 되찾기를 바란다. 말로써 하는 예수 전도는 소음으로 들리게 되었으니, 예수닮기와 예수살기를 보이라고 한다. 흙 속의 씨앗처럼, 한번 죽고 다시 '정의로운 사랑의 종교'로서 움터 나와 신뢰받는 기독교가 되어주기를 한민족은 기다린다. 지금은 밤이다.

* 본 글은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의 아카이브 숨밭 칼럼에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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