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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16 "그리스도교의 부조화, 긴장, 모순"

정재현의 신앙성찰

jungjaehyun
(Photo : ⓒ베리타스 DB)
▲정재현 연세대 교수(종교철학)

2.1. 포괄주의 (2): 슈바이처의 '그리스도교와 세계종교'

앞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들과 비교하여 공통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지만 요소들 사이의 관계나 우선성, 그리고 결국 지향점과 목표에서 다르며, 다를 뿐 아니라 우월하다는 주장을 슈바이처는 매우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주장합니다:

예수가 인간의 윤리적 행위와 하느님 나라의 실현 사이의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결합을 실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어떤 목적을 실현할 수 있기 위한 기대 속에서 윤리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영의 자녀들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이 세계에서 그의 의지에 들어가기 위한 내적 필연성으로부터 윤리적이 되어야 한다는 데서 나타난다. (36)

'윤리적 행위'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서로 연관되기는 하지만 어느 것이 다른 것의 토대나 전제가 되는가에 따라 종교의 특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신의 회복을 말하는 동양종교들은 윤리적 행위를 강조하더라도 그 자체가 목표라면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과 하느님의 자녀 되기가 핵심적인 관건이고 이를 위해서 윤리적 행위가 수단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월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구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동양문화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평가를 제시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는 슈바이처의 주장에서 그가 말하는 윤리의 뜻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슈바이처가 말하는 윤리는 "하느님의 영적 자녀가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현실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기 위한 행동이 아니며,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서의 윤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합목적성'은 무엇을 뜻합니까? 아래 문장을 보십시오.

현대인으로서 우리는 완전한 인간 사회의 상태를 합법적인 조직과 사랑의 활동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정의와 사랑을 결코 서로 조화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영 안에 머물려거든, 너는 사랑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리라." (36)

합목적성은 정의와 사랑의 '조화'입니다. 정의와 사랑의 관계는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문제시되곤 합니다. 정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말입니다. 슈바이처는 이 둘의 조화가 아닌 한 쪽을 말합니다. 그가 보기에 다른 종교들이 윤리를 표방할 때는 저 둘의 조화를 말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윤리라는 범주를 공통적으로 적용시킨다 하더라도 정의와 사랑의 조화로서의 합목적적 윤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의 윤리는 하나님의 영의 자녀가 되는 윤리, 이를 목적으로 하는 윤리며 정의와 사랑을 조화시키기는 윤리보다는 사랑을 위한 정의를 향하는 의지 행위로서의 윤리를 말합니다. 여기서 '조화'와 '의지'가 대비됩니다. 물론 정신의 통일을 위해서는 조화가 멋진 그림입니다. 하나 안에서는 통일이 됩니다. 여기서 정신, 조화, 통일이 모두 다 같은 맥락에 있음을 염두에 둡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부조화, 긴장, 모순입니다. 이를 엮어내는 동인이면서 동시에 그 내용적인 표현이 바로 '의지'입니다. 사랑을 향한, 사랑을 위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의지적 행위로서의 윤리입니다. 슈바이처가 보기에 균형적 조화는 멋진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에 만족합니다. 이에 견주자면 그리스도교는 쌍방적 균형이나 조화가 아니라 하나를 택하고 이것을 밀어붙입니다. 물론 그 하나는 다른 것을 포함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슈바이처는 세계의 다른 종교들과의 비교에서 그리스도교의 질적인 우수성을 주장합니다. 이런 구별을 제시한 후 슈바이처는 각 종교들을 나눕니다. 세계 종교를 논하기 위해서 동양 종교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종교들-인도종교, 중국종교, 중동종교-을 다룹니다. 이를테면 중국종교들은 낙관주의적이고 인도종교는 염세주의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눈 후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자리 매김하고 있을까요? 그리스도교는 둘 모두를 다 지니고 있다는 식입니다. 낙관주의와 염세주의라는 준거로 봤을 때 어느 종교든 한 쪽에 위치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이런저런 요소를 다 지니고 있습니다. 대조적인 양대 요소들이 있는데, 그리스도교는 그 사이에 있거나, 그 모두를 싸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대립적인 요소들은 그리스도교 체계 내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요?

세계와 윤리적 인격신 사이의 대립 속에 그리고 이와 함께 주어진 염세주의와 낙관주의 사이의 본질적인 긴장 속에 예수 종교의 본질적인 특성이 있다. 이 불일치성 속에 예수 종교의 크기와 진리와 깊이, 그리고 능력이 있다.... 예수의 종교는 통일적이고 일관된 염세주의가 아니라, 염세주의와 낙천주의의 한 가운데 위치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종교적 세계관은 통일적인 것이 아니다. (35)

'통일'이 아닙니다. 대립적 요소들 가운데 있거나 이들이 함께 있지만 앞서 말한 대로 그것들은 '통일'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부조화'로 있으며, '긴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이를 '모순'이라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미숙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헌데 이 '모순'이나 '미숙함'은 논리적인 어설픔이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논의를 개진하는 데는 당연히, 또 다른 의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자기가 논리적으로 폐쇄적인 인식이 되는 것을 단념하는 것이 논리에 맞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교가 몸담고 있는 모순들과 미숙함이 논리적 오류가 아니라 사물의 깊이로 들어가기 위한 사유의 불가피한 불완전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78)

무슨 말입니까? 궁극의 경지에 대해 인간의 사유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그리스도교는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선언합니다: "심오한 진리는 거만하게 나타나지 않는다"(78). 거만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우월성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 단 한 번도 명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지만, 결국 슈바이처는 그리스도교가 그러한 방식으로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지닌 '미숙함,' '모순'은 '사물의 깊이,' 즉, '있음' 앞에서 '앎'이 지닌 한계를 보여줄 뿐이며, '있음'과 '앎'이 생겨먹은 구조가 그렇기에 이런 깨달음에 이른 그리스도교의 '미숙함'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이후 슈바이처는 내내 이런 식으로 논의를 전개합니다. 낙관주의 대 염세주의, 일원론 대 이원론이 나온 후 또 다른 비교기준은 무엇인가요? 윤리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슈바이처는 그리스도교가 '윤리적인 종교'인데 반해 다른 종교들은 이런저런 배경과 동기를 지닌 '논리적인 종교'라고 말합니다. 낙관주의든, 염세주의적이든 다른 종교들은 말만 하나, 그리스도교는 행위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표현을 달리해 '정신의 종교'와 '활동의 종교'로 나누기도 합니다. 다른 종교들은 '정신의 종교'이며, 그리스도교는 '활동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윤리적인 종교로서 그리스도교는 낙천과 염세 사이에 있으면서 그 양항을 긴장관계로 싸안는 종교이고, 일원론과 이원론의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실 속에서 세계를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내내합니다. 슈바이처는 그리스도교를 그렇게 이해하며, 그러한 식으로 '우월성'을 강조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오늘날 세계 3대 종교라고 하면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교이지만 인구로 보면 이슬람교가 불교에게 밀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슬람교에 대한 슈바이처의 견해입니다. 슈바이처는 이슬람교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내비치고 있을까요?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교와도 정신적으로 논쟁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교는 AD 7세기경 부분적으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념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 이슬람교는 어떠한 정신적 독창성도 갖고 있지 않으며 신과 세계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는 종교가 아니다. (39)

사유가 깊거나 독창성이 없으니 논의 대상에서 애초에 제외시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갈등이 길고 깊은 역사를 지니지만 지금도 심각한 대립으로 전쟁과 테러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자세도 한 가닥 연유가 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우월성 주장도 이만저만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고서는 바라문교, 조로아스터교, 중국종교들, 불교, 도교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먼저 놓고, 여러 종교들 중 하나를 끌고 와서 대비시키고, 또 다시 다른 종교를 놓고 그리스도교와 대비시키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시키고 있을까요?

고등종교들 안에는 종교의 본질이라 규정될 수 있는 세 가지 구별들이 나타난다. 그 하나는 낙관주의와 염세주의의 차이이며, 다른 하나는 일원론과 이원론의 차이이다. 세 번째는 윤리적인 동기들이 현존하고 있는 강도에 근거하고 있다. (42)

앞서 말씀드린 내용들을 간략히 형식적으로 추린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일단 기본구도를 짜는 서론입니다. 그러고서는 "세계종교들이란 어떤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본격적인 비교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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