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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말말말] 할랄단지 조성반대 메시지 단상
종교 다원 시대 "거룩의 뜰" 지켜야

입력 Jan 15, 2016 09:28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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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출처=구글 서명운동 화면 갈무리)
▲온라인과 단문 메시지 서비스를 통해 할랄식품 반대 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주장들이 사실이 아니어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 단문 메시지 서비스 카카오톡을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할랄단지 조성반대 메시지"가 무서운 속도로 유포되고 있어 논란이다. 심지어 '허위사실'까지 적시한 해당 메시지의 요점은 지난번 본지 보도에서 확인한 바 있다.

채널은 카카오톡에만 한정되지 않고 있다. 해당 문자 메시지는 SNS라는 정보유통망을 타고 흘러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해당 정보의 유통 매개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 중에는 당당히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소개하며 해당 메시지 유포 목적을 "이슬람 경계"에 둔다는 명분까지 만들고 있다. 소위 "이슬람 대응"의 방법으로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카카오톡 유포 행위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이슬람 대응"을 묻지마 식으로 전개하는 심리는 뭘까? 먼저는 이슬람 혐오 심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보수파 개신교인들은 코란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의 폭력성을 질타해왔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이런 폭력성이 동지 의식을 갖는 중동의 크리스천들을 상대로 표출될 때마다 이들은 이슬람 혐오를 넘어 증오 심리마저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뿌리 깊은 종교적 배타성도 짚고 넘어가 볼 일이다. 우리사회는 이미 다문화, 다종교 사회로 넘어간 지 오래다. 그러나 다종교 상황에서 교회는 빗장을 걸어 잠궜다. 때문에 다른 종교와 교류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타자의 얼굴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자기 얼굴만을 가꿨다. 피아식별을 하듯이 "타종교"에는 개종의 대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놓고, 대화가 아닌 강요 혹은 설득의 화법을 택했다.

금번 "할랄단지 조성반대 메시지" 유포 사태를 이렇듯 일부 기독교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혐오적 시선과 종교적 배타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낸 결과라고 진단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대목에서 크리스천의 삶의 표본이 되는 예수의 타종교인을 대하는 태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설교 강단에서 자주 접하는 성서의 이야기들 중 백부장의 믿음 이야기가 있다. 그는 분명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었던 고로 타종교인이었다. 예수는 그러나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며 감탄을 했다.

무엇이 예수를 감탄하게 만들었는가? 로마의 백부장인 그는 유대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회당을 짓게 하고 그들의 신앙생활을 배려하고, 존중했다. 그의 배려가 돋보이는 장면은 자신의 벗들을 보내어 예수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인 예수는 기꺼이 이방인 처소에 들 채비를 갖추고 집 앞 뜰에 다다랐다. 그러나 백부장은 되려 예수의 처소 방문을 만류했다. 당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정서를 잘 알았던 백부장은 예수가 이방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그분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하여 이방인 백부장은 예수의 '거룩한 뜰'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거룩성이 담보된 그 공간에서 "하인을 낫게 하는" 구원 사건을 일으키신다.

종교 다원화 사회에서 타종교, 즉 이슬람과의 관계 방식을 고려하는 것이 현실이자 당위로 다가오는 시점에서 자신과 다른 상대에게 "거룩한 뜰"을 지켜주는 백부장의 믿음은 종교 간에 배려와 존중을 기초로 한 관계 방식을 맺는 데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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