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인터뷰] “지라르는 당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국내를 대표하는 지라르 연구자 정일권 박사 인터뷰 – 3부

※ 2부에서 이어집니다. 3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순서로 지라르와 니체의 관계, 그리고 지라르의 사상이 한국 지성사회에 던지는 함의를 논하고자 합니다.

Q : 지라르와 니체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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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정일권 박사

니체는 자신을 ‘철학적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자신을 규정했다. 지라르는 이런 니체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전복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자'를 다시금 변호하는 학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니체-지라르의 관계를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새물결플러스)에서 해명하고자 했다. 신학적으로는 지라르의 사유는 ‘십자가의 인류학'으로 요약된다. 2010년 저명한 ‘기포드 강좌(Gifford Lectures)'에서도 현대 선교적 무신론에 맞서서 시급하게 지라르의 이론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라르의 사유를 니체 철학의 역전으로 파악한 강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디오니소스 대(對) 십자가에 달리신 자'(Dionysos gegen den Gekreuzigten)
니체 철학에서 ‘디오니소스 대(對) 십자가에 달리신 자'(Dionysos gegen den Gekreuzigten)는 중요한 화두다. 지라르는 자신의 논문 「디오니소스 대(對) 십자가에 달리신 자」(Dionysus versus the Crucified)에서 니체가 설파한 이 두 유형의 대조를 연구했다. 니체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책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였다. 이 책은 니체의 자서전과도 같은데 니체는 이 책 완성 후 두 달 만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저서의 마지막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대(對) 십자가에 못 박힌 자"

지라르에 의하면 니체의 광기는 점차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자에서 디오니소스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니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항해서' 디오니소스를 택했다. 그 결과 점차적으로 광기에 빠지게 된다. 니체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힌 자에 대항해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규정했다.

미학적 전환과 윤리적 전환

니체가 남긴 100년의 유산 중에는 현대사상의 미학적 전환이 있다. 하지만 지라르는 이 현대사상의 미학적 전환 이후의 또 다른 윤리적 전환, 혹은 신학적 전환을 일으키고 있다. 후기의 데리다, 후기의 아감벤, 후기의 바티모는 모두 그들 사상에서 윤리적 전환이 있었다. 지라르와 레비나스 사상에서도 윤리적 요소는 중요한 축을 이룬다.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인 전환은 미학적 전환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니체가 점차적으로 전통적인 유럽도덕의 기원인 십자가에 달리신 자로부터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전환한 이후 다시금 현대사상이 십자가에 달리신 자에게로 전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디오니소스적인 축제성은 때로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향락주의가 되기도 했다. 지라르는 향락주의, 그리고 향락주의적 기독교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이탈리아 포스트모던 철학자 바티모는 지라르를 만나면서 다시금 유대-기독교적 전통으로 복귀하고 있지만, 지라르는 바티모가 여전히 ‘향락주의적 기독교'를 대변하고 있다며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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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정일권 박사 제공 )
2006년 르네 지라르는 독일 튀빙엔 대학 개신교 신학부로부터 ‘영예로운 상(Dr. Leopold-Lucas-Preis)’을 수상했다.

지라르는 거대한 짐승(전체주의적 집단) 아래 신음하는 희생양들(약자, 타자, 소수자)을 변호한다는 점에서 프랑스 계몽주의와 좌파 전통과 연대한다. 그래서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은 민중신학, 해방신학, 페미니즘 등의 약자와 희생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뜻을 같이 한다. 유대-기독교 전통은 정의를 언제나 중요시 여긴다. 하지만 과도한 희생양들의 전체주의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 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디오니소스적 향락주의와 무윤리주의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희생당한 자의 억눌려진 목소리를 변호하는 윤리적 선택을 한다.

지라르의 이론은 디오니소스적 니체철학의 백년의 유산과 니체·하이데거의 계보에 서 있는 프랑스 포스트모던 철학 이후의 새로운 전환, 곧 윤리적·종교적·신학적 전환을 일으키는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당대 가장 설득력 있게 유대-기독교적 텍스트와 전통, 그리고 가치들을 변증하는 학자다. 지라르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따라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했다. 이후 그의 이론에서 십자가의 승리와 기독교의 유일성을 학문적으로 논증하는 당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자리매김했다. 즉, 서구 인문학계를 유대-기독교적 전통으로 회귀시키는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말이다.

Q : 마지막 질문이다. 아무래도 뛰어난 사상가의 사상이라도 한국적 현실과 맞지 않으면 지적유희로 끝날 것이다. 지라르의 사상이 한국 기독교, 더 나아가 지식사회에 던져주는 시사점이라면?

지라르의 이론이 한국인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가장 많이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2010년 프랑스 <인문학지> 에서 어떤 책과 작가가 독자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가장 많이 바꾸었는지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사회학자 에드가 모렝, 르네 지라르, 그리고 신경생물학자 앙리 라보리 세 사람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특히 지라르의 <희생양>, <세상설립이래 감추어져 온 것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지라르의 이론은 다른 프랑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언어구조주의나 기호학 등이 빠질 수 있는 지적이면서도 허무주의적 언어유희와는 다르다. 그의 이론은 어렵지 않게 이해되면서도 갈등이론, 평화이론, 관계이론, 욕망이론 그리고 영성이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의 이론은 또한 매우 실천적이고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지평에서 우리의 깊은 지하실의 심리학에 자리잡고 있는 모방적 욕망과 경쟁, 질투와 르상티망, 스노비즘과 허영의식 등을 고발한다. 그의 욕망이론은 우리의 폭력성과 죄성을 직시하게 해준다. 그의 저술은 한국 교육계에서 수능필독서로도 꼽힌다. 바로 우리 한국사회의 과도한 경쟁의식, 욕망의 과잉, 왕따·이지메 현상, 학교폭력 문제 등을 매우 쉽게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이유에서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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