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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통일]16 북한의 기독교 실태는 어떠한가?
정지웅(ACTS대 교수)

입력 May 09, 2016 01:44 PM KST
jungjiwoong
(Photo : 베리타스 DB)
정지웅 교수(ACTS대)

해방 전 북한지역에는 기독교가 남한보다 먼저 전파되었기에 주민들의 의식과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공산주의 세력이 집권하면서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공산정권 수립에 기여하는 한에 있어서 기독교가 일시적으로 공존상태를 유지하였으나, 6․25전쟁 중에 대부분의 기독교도들이 월남한데다 전쟁 이후 혹독한 종교탄압정책으로 인해 북한의 기독교는 사실상 거의 소멸하고 말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기독교 활동은 대외적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1970년대 초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대외선전 및 대남 통일전선 차원에서 그 존재를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북한의 기독교 조직이 체제영합적인, 위장된 정치조직이며, 아직은 체제의 속성상 당과 국가의 철저한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남북 종교교류의 여파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도 일부 감지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개신교 인구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 위원장이 2000년 12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7차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남북 기독자회의>에 참석, 목사 30명과 교직자 300명이 있으며, 기독교 신자는 12,043명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연합뉴스』, 2000년 12월 22일자),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경우, 현재로서는 당시의 목사, 교직자, 신도 수에 비해 각각 조금씩 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1) 조선그리스도교연맹

현재 북한의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속해 있다. 이 연맹은 불교도연맹, 카톨릭협회, 천도교중앙위원회와 더불어 종교인협의회를 구성하고 있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북한은 교회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해방 직후인 1946년 11월 28일에 '북조선기독교도연맹'을 창설했다. 이 일을 위해 앞세운 사람은 김일성의 외조부 강돈욱의 사촌인 강양욱 목사이며 그는 평양신학교 출신이다. 이 단체는 위장된 종교단체로서 사실상 노동당의 하부기관이며, 활동의 주된 목적은 개신교 신도들의 단합과 연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교회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연맹은 1959년까지 존속하였으나, 북한에서 기독교가 말살된 이후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 북한 당국은 대남선전 및 통일전선 구축 활동의 전위기구로 활용하기 위해 재등장시켰으며, 1974년부터는 조선기독교도연맹으로 명칭을 변경시켰다. 이후 이 단체는 대남 선전활동을 위한 전위기구로서의 역할과 함께 해외 거주 반한 교포 및 단체 포섭, 그리고 국제 기독교단체와의 유대강화에 주력해 왔다. 특히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 기독교인들 간의 회담을 제의하거나 국내 종교인들의 반정부․반미투쟁을 부추기는 데 적극 이용해 왔다.

조선기독교도연맹은 1999년 2월에 현재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으로 개칭되었다. 북한당국은 이 연맹이 '초교파적'이고 '민주전선의 일원으로서 기독자들의 권익 옹호와 새 조국 건설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노동당의 대남사업부에 속해 있으며 당의 지침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하부 통일전선조직에 불과하다. 이러한 속성에 따라 연맹은 남한의 교회 및 기독교단체, 그리고 해외 한인교회 및 기독교단체와의 유대 강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지지 확보뿐만 아니라, 심각한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이들 교회 및 단체들의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연맹은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조직으로는 총회, 중앙위원회, 서기 등이 있으며, 연맹의 실질적인 사무는 선전부, 국제부, 조직부, 경리부 등 네 개의 부서로 이루어진 사무국이 담당하고 서기장이 사무를 총괄한다. 산하에는 1972년부터 재개된 평양신학원(평양신학교 후신)이 운영되고 있는데, 처음에는 3년제였으나 2000년 9월에 5년 학제로 개편되었다. 평양신학원을 졸업한 신학도는 대체로 가정예배소에서 전도사(책임지도원)로 일정 기간 봉사해야 하며, 목사 안수를 받으면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소속 교직자로서 연맹 사무부서나 봉수교회 및 칠골교회, 그리고 가정예배소 등지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북한에는 1972년부터 3년제의 조선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3년마다 학생들을 일괄적으로 모집하여 교육시킨 다음 이들이 졸업한 후에 다시 학생들을 모집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2) 공식교회

북한에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교회가 2,850여 개에 달했으나, 현재 북한의 공식교회는 평양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2개뿐이다. [2007년 2월 25일, 3월 4일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탈북 새터민 30명 가운데 절반인 15명만이 북한에 있을 때 공식교회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설문지 3 참조.] 봉수교회는 1988년 9월에 평양시 만경대 구역 건국동(옛 봉수동) 보통강변에 세워졌는데, 평소 출석인원은 300여 명이며 그 중 60%가 여성신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칠골교회는 김일성이 1989년에 평양시 만경대 구역에 어머니 강반석의 신앙을 기념하여 만경대 구역 칠골동의 옛 하리교회터에 세운 교회인데, 예배 수용 규모는 150석으로 출석 교인 수는 1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2003년 11월에는 남북의 합의하에 남측 교회의 지원으로 민간교회인 평양제일교회의 건립이 추진되었고 2005년에 200평 규모의 예배처소를 준공했다. [2003년 11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통합 측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가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평양시 청류동 대동강변구역에 교회를 짓기로 합의하고, 가칭 '평양제일교회' 기공식을 가졌으며, 2005년에 설립하여 예배처소로 활용되고 있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는 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가 있으며, 성가대와 부인전도회 등을 갖추고 있다. 예배과정은 남측과 유사하나, 목사의 설교 중간 중간에 수령에 대한 은혜와 배려를 강조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상 이들 두 공식 교회는 남한이나 외국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른 대외선전용 시설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두 교회에서의 예배 실행은 당국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며, 평소에 인근주민들의 출입이나 접근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3) 가정교회

북한에는 봉수교회, 칠골교회라는 공식교회 이외에도 10~15명 단위로 모여 한국의 구역예배처럼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정교회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으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 가정교회는 지하교회와는 엄연히 다르다. 북측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현재 북한 전역에 걸쳐 800여 곳이 산재하고 있으며, 이 중 33곳이 평양에 소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2007년 탈북 새터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0명 가운데 3명만이 북한에 있을 당시 가정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고 답했다. 이들 3명 가운데 2명은 평양 출신이었고, 1명은 함흥 출신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볼 때, 가정교회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전국 각지의 가정교회는 북한체제의 속성상 당과 국가의 엄격한 규제 하에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신자들은 당연히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 가정교회에서 자유롭고 공개적인 예배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4) 지하교회

지하교회란 당국에 의해 통제되는 공식교회와 가정교회와는 달리 들판, 다락, 산속, 토굴, 기타 집안의 은밀한 장소 등지에서 몰래 숨어서 예배드리는 신앙공동체를 말한다. 한 모임의 최대 숫자는 8명을 넘기가 어렵다. 성경과 찬송의 보급률은 극히 미미하다. 성경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서로 기억난 것을 돌려가면서 적는다. 찬송가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보관하고 보급한다. 기도는 소리 내어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김정철, "북한선교현장 이야기," 『북한 한 걸음 다가서기』, 제2회 북한선교학교 자료집 [2007년 5월], 24).

월드워치리스트(WWL)는 이미 1996년 7월에 북한에는 14만 명의 지하교회 신자들이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 이후에 극심한 식량난으로 탈북했던 북한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 가운데 일부가 순교자의 사명을 가지고 북한으로 되돌아가 지하교회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1996년에 비해 지하교회 신자 수가 상당히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하교회가 일단 당국에 의해 발각되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거나 최고 사형에 이르기까지 가혹한 처벌이 따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지하교회 신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남한의 선교단체들은 적어도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까지 북한의 지하교회가 당국의 눈을 피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지하교회 종교 활동은 북한당국으로부터 통제받고 있으며, 1997년부터 정보요원들의 침투공작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1998년부터 최근까지 수백 명의 기독교인들이 선교활동과 관련하여 처형을 당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병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 (평화한국 발기인대회 발표논문, 2006.12.13.), 34].

새터민을 대상으로 한 200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30명의 응답자 가운데 6명만이 북한지역에 지하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3명은 지하교회 교인 수가 수천 명 정도, 1명은 50명 정도, 2명은 모르겠다는 응답을 했다(정지웅·오일환·신효숙, "주체사상, 김일성․김정일 어록, 북한의 학교문화 및 교과서 분석," 기독교 북한선교회 제9회 학술세미나 [2007년 6월 15일], 10-11 참조). 이 같은 응답결과는 북한당국에 의한 기독교 탄압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입증해주고 있다. 북한 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 기독교의 확산을 막는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던 선교사나 목사들의 사망 사건 등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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