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죄 짓지 않으려면 사소한 일부터 결단해야

맷 무어(Matt 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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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Matt Moore blog )
▲2010년 동성애자에서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변모한 맷 무어. 그는 동성애자들이 자신과 세상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살펴서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해 글을 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불편한 자기부인의 태도를 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예수라는 음료를 크게 한 잔 쭉 들이키면 모든 원하는 세속의 복락을 다 누릴 수 있게 하는 종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죄로부터 돌이키라고 말한다.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은 신앙의 선택적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믿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육신을 부인하는 것은 모든 진실된 기독교인의 삶에서 불가분의 요소이다.

그러나 가끔 나는 그것이 정말로 두려울 때도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부어주신 그분의 능력과 은혜로 인해 한 때 나의 인생을 좀먹었던 "큰"(더 파괴적인) 죄들의 지배를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비록 내가 그 죄의 유혹에 대해 면역체를 갖고 있지 않아서 바로 오늘 오후에라도 그 죄의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질 수 있지만, 적어도 현재는 폭음이나 성적 부도덕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편안하게 여기는 경향을 보이는 무수한 "작은" 죄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그 죄들을 쉽사리 합리화하거나 방조하거나 하나님께는 별 문제가 아닐 거라고 스스로 확신하기도 한다.

나는 16살 때 담배 피기를 시작했고 6년 전에 성령께서 나에게 온전히 임재하실 때까지 철저하게 담배를 즐겼다. 그 즈음에 나의 흡연취미가 죄의 자각이라는 불편함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펄전, 본회퍼, 루이스 등의 신앙의 영웅들이 담배를 아무런 문제없이 즐겼고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도 문제없이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양심상 담배 연기를 평화롭게 품어내지 못했다. 바울사도가 로마서 12장에서 갈파했듯이,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행위(믿음은 결코 양심을 더럽히지 않는다)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흡연은 죄이다. 나는 그것이 죄가 아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담배 피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흡연은 죄이다.

나는 하루에 담배를 한두 갑씩 8년 동안 피다가 2012년에 완전히 끊었다. 1년 뒤에 3개월을 다시 피기는 했지만, 다시 딱 끊었다. 그런 뒤 3년 후 작년 겨울 어느 날 주유소에서 한 갑을 집어들었고 그 이후 담배를 끊으려고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서로 비교할 수 없기는 하지만, 나는 음식과도 마찬가지로 싸운다. 나는 피자, 퀘조(치즈볼), 오레오를 간식으로 즐긴다. 간단히 말해서, 만일 내가 성령과 열심히 동행하지 않는다면, 나의 육체는 모든 세속적인 위안거리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같은 우상이 되어버릴 수 있다. 작년쯤부터 그 진공청소기는 최고로 가동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이 담배 연기 자욱한 칼로리 과잉의 시절을 아무 염려 없이 거쳐 온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 라고 염려가 생기면 그것을 대부분 억누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확신을 매일 경험하게 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담배 한 갑을 사서 한 개비 피우고는 나머지를 버렸던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그 엄청난 낭비라니! 3주간 정도는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지만, 그 기간 동안에는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온갖 맛난 음식들을 흡입했다. 담배를 안 피는 대신에 음식을 먹어 댔으니! 피장파장이다. 대상이 무엇이냐와는 상관없이 우상숭배는 우상숭배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육체적 쾌락이 내가 매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상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들이 예수께서 허락하신 즐거움에 대한 값싼 대체품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이 사실들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죄들을 끊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나는 그것들을 단숨에 기억에서 지워버리질 못했다!

내가 담배를 끊으려고 했을 때 나는 오로지 내게 금지된 품목인 담배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내가 식탐을 없애려고 시도했을 때 나는 내가 즐길 수 없었던 맛난 음식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렇게 그 유혹들에게 자주 졌다. 아주 잠깐 금욕의 시간을 가진 뒤에 나는 곧장 육욕을 다시 붙들어 품속에 단단히 품고는... 결국 다시 더럽혀진 양심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며 성령의 찔림을 받고서야 다시 그만 둘 마음을 갖곤 했다.

나는 성령께서 나에게 반복해서 가르쳤던 것을 그분께서 기억나게 하고 생각나게 할 때까지 계속 이와 같은 불행한 싸이클 속을 돌고 돌았다. 분명히 나는 배우는 데에 느린 사람이다. 나는 아마도 이러한 죄를 중단할 것을 온전히 계속 생각해야만 이런 죄들을 끊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자신에 대해서 발견한 것,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 속성에 해당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내가 주목하는 대상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작년 동안 내가 일상의 위안과 즐거움을 찾아 예수를 바라보는 것을 서서히 멈추었을 때 나는 세속적 쾌락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왜냐구? 그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발견되는 기쁨에 접근하기보다 담배와 음식에서 발견되는 즐거움에 접근하는 데에 노력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빅맥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어 먹을 수 있지만 예수에 대해서는 늘 떠돌아다니는 내 마음의 눈을 적극적으로 고정해야 했다.

그분이 주는 기쁨이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근면한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영적으로 게을렀던 것이다.

내가 수차례 회개하려고 했던 시도들이 수포로 돌아간 이유는 계속 내가 영적으로 게을렀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물리적으로 나의 죄들을 버리기는 했지만 나의 시선을 나의 죄로부터 돌려서 예수께로 주목하게 할 힘겨운 과정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성경을 읽었고 시간을 따로 만들어서 매일 기도를 했다(그러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말보로를 피거나 타코를 과식하는 것보다 더 파괴적인 죄들과 싸우고 있을 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내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몹시 원했으나 얻을 수 없었던 육체적 쾌락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이런 것들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애착이 잔존해 있었고, 한편에서는 예수께 대한 나의 애정이 계속 줄어들게 되었다.

한 달 전쯤에 나는 성령께서 상기시키시는 대로 나의 시선을 내가 결코 떠나지 말았어야 할 그분께 돌리게 되었다. 그 일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쾌락이나 위안(이 자체는 본질적으로 나쁜 것들이 아니다)을 찾기 시작할 때마다 나의 커다란 부분은 나의 세속적 즐거움들을 찾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담배 한 대만 피웠으면 좋겠다..." 나는 혼자서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러한 생각들을 누르고 나의 마음을 예수께로 애써 고정했다. 나는 나의 핸드폰에 성경 앱을 실행시키거나 예수에 관한 책, 혹은, 기사를 읽거나 스스로에게 복음을 설교하기도 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의 눈을 그리스도에게로 고정하게 한다면 무엇이든지!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이렇게 했더니 육체에 대한 나의 모든 싸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물론, 몇 번 실수하기는 했다. 담배 한 대를 무심결에 피기도 하고 피자를 과식하기도 했다. 나의 회개가 완전하지 않았던 것이다(누군들 완전하게 회개할 수 있으랴?). 그러나 나는 내 인생에서 이러한 죄들로부터의 자유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최근에 목격했다.

내가 하루 종일 계속 예수를 찾고 그분이 주시는 기쁨을 점점 많이 경험하게 되자 그분은 말보로 한 갑이나 5달러짜리 파파이스 닭고기 한 박스보다 더 내게 필요한 분이 되어갔다. 이러한 육체적인 악덕은 일시적인 쾌락을 줄 뿐 나의 영혼을 갉아먹고서는 나를 불안하게 하고 영적으로 메마르게 해서 위안을 더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게 주는 기쁨은 얄팍하지 않고 일시적이지 않다. 지속적이며 내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도 만족시켜 준다. 내가 예수 안에서 경험한 기쁨은 죄와 수치의 불쾌감을 동반하지 않으며 더럽혀지지 않은 양심의 평안을 허락한다.

만일 당신이 오늘 크던 작든 죄 짓기를 그만두고자 결심한다면, 이 음식을 탐하고 담배를 좋아하는 인간이 들려주고자 하는 최고의 조언은 당신의 마음이 이런 죄를 끊고자 애쓰면서 지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가 당신의 마음을 앗아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분을 보고 느끼는 일은 우리들 중 누구에게서라도 죄를 온전하고 효과적으로 끊어버리게 할 유일한 길이다. 그분만이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고, 또한, 주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3:1-3).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to-quit-sinning-stop-thinking-about-quitting-sinning-163282/#s2hz0MOWm4XHq55p.99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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