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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의 사제: '한의 소리'에 응답하신 서남동 목사"
서남동 목사님 추모예배에서 서광선 목사/ 최영실 목사 대화설교

입력 Jul 13, 2016 07:02 AM KST
서남동 32주기
(Photo : ⓒ 이인기 기자)
▲서남동 목사 32주기 추모예배에서 서광선 목사와 최영실 목사가 대화설교를 진행하고 있다.

성서 본문:

서광선 목사: 마태복음 25:42-46 // 최영실 목사: 마태복음 12:1-8

1. '대화설교'를 시작하면서

: 오늘 서남동 선생님 추모예배 2부 순서에 단원고 유예은 양의 어머니가 세월호와 관련하여 '시대의 증언'을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남동 선생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오늘의 설교는 서광선 교수님이나 저 같은 '신학자'가 아니라, 유예은 양의 어머니가 맡으셨어야 했을 것입니다. 서남동 선생님이 그러셨지요. "시대의 말씀은 고난받는 '민중의 입'에서 나와야 한다"고.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오늘의 '대화 설교'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서남동 선생님의 신학의 뿌리

: 우선 서남동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할까요? 저는 직접적으로는 서남동 선생님을 딱 한 번 뵈었습니다. 서남동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바로 얼마 전에 소년같이 하얀 얼굴에 홍조를 띄우시고, 우리나라의 민담을 가지고 민중신학을 이야기하셨지요. 저는,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한 참이 지난 후에 『민중신학의 탐구』에 들어있는 교수님의 글들을 읽으며, 민중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고 있는 성서주의와 서구 전통의 교리와 맞서서, 성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야말로 텍스트임을 주장하고, 민중과 민담을 통해 고난 받는 여성 민중의 한과, 그 '한의 소리'를 통해 새 역사를 이루어가는 민중 여성의 힘, 구원사적인 메시아 사건을 증언하는 서남동 교수님을 다시 '뜨겁게'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서남동 교수님을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 제가 기억하는 서남동 교수님의 모습은 첫째, 제가 1964년 미국의 신학생 인턴으로 이화대학에 왔을 때, 서남동 교수님이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이었습니다. 그 때 서남동 교수님의 인상은 세계의 모든 첨단 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열정이 눈에 보이는 학구파 학자 교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를 마치고 1969년 이화로 다시 돌아 왔을 때, 현영학 선생님 소개로 서울 YMCA 호텔 방을 빌려서 안병무, 강용옥, 유동식, 서남동, 현영학 등 신학자들의 모임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 11월 13일 모임에 갔는데 서남동 목사님이 헐레벌떡 모임장소에 뛰어 들어오면서 "전태일이 죽었다, 분신자살했어요!"라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게 우리 민중신학의 시작이었다고 해도 됩니다.

: 그러니까 노동자인 전태일이 한국의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것이네요. 그런데 전태일의 일기를 보면, 그가 분신자살을 하면서까지 청계천 피복 공장의 현실을 고발하게 된 것은 그가 피복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의 노예와 같은 현실을 보고 며칠 밤을 고민하다가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한국의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뿌리는 바로 여성 민중의 고통, 슬픔, 분노,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한의 외침과 아우성, 몸부림과 투쟁에 있다고 보아도 될까요?

: 1976년엔가, 무더운 여름 날, 여기 선교교육원 아래 지하실에서 당시 노동운동한다고 공장에서 추방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다른 공장에 취직도 못하게 된 어린 여공들과 민중신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은 적이 있습니다. 서남동, 현영학, 안병무 그리고 나, 이렇게 한쪽 자리에 앉고 어리디 어린 실직 여공 5명이 반대쪽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기보다, 우리 어른 신학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듣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여공들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공장 사장이 교회 장로라고 해서 좀 다를 줄 알았는데, 토요일 밤새 잠도 못자고 철야로 일한 여공들을 주일날 계속 일을 시키면서, 자기는 교회 가서 우리를 위해서, 공장 잘되기를 위해 기도한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통곡하는 이 여공의 말에 우리는 함께 흐느껴 울었습니다.

: 1984년, 서남동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민중, 여성들의 현실은 어떨까요?

3. '텍스트' 읽기

: 우리는 오늘 대화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성서에서 두 본문을 찾아서 오늘의 '텍스트'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서남동 선생님에 의하면 '텍스트'는 성서 본문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우리의 '컨텍스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오늘의 '텍스트'를 읽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광선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우리 사회의 민중 현실은 젊은이들이 말하는 "헬 조선"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선교하시던 시대 역시 민중현실은 "헬 이스라엘"이었습니다. Pax Romana의 이름으로 로마 제국의 군사 정권이 지배하던 유대나라는 오늘 Pax Americana의 이름으로 미국의 군사적 이익과 패권주의로 인해 "헬 조선"에 살고 있는 한국 민중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헬 조선은 남북 분단의 문제와 이념적인 남남 갈등으로 인해서 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 주 우리 국방부는 미국의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핵 문제와 더불어 한반도에서 언제 다시 전쟁이 발생할지 모르는 공포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남과 북의 온 민중이 전쟁의 공포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은 민중을 파산 상태, 그리고 빈곤 상태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민생"이라는 말 하나로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문제를 호도하면서 민중의 문제를 근본적이며 구조적으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말로만 떠들고 있는 실정이 아닙니까? 그런데 민중신학과 민중교회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이젠 "민중"이란 말만 해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지난 주말, 교육부의 한 고위공직자가 민중을 개돼지로 무시하는 망언을 했습니다.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 서광선 선생님께서 민족 분단의 상황에서 비롯된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민중의 현실을 말하려면 '민중 중의 민중'인 여성 민중의 현실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대국들의 침탈의 역사뿐 아니라 소위 21세기 글로벌화된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서 아시아의 가난한 여성들이 청계천 피복공장의 여자 노동자의 자리에서 더욱 극심한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분단을 빌미로 한국에 주둔한 미군의 성 매매 대상이 된 기지촌 여성들, 탈북여성들, 가난한 어린 여자아이들이 남성들의 성적 도구와 성 노예로 팔려가고 성폭행의 위협 속에서 죽임당하고 있는 오늘의 여성민중의 현실을 주목하고, 민중신학자들도 여성신학자들과 함께 민중여성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의 '텍스트'에서 제가 가장 문제 삼으려고 하는 것은 1970년대 유신 시대의 망령들이 다시 살아나 반공논리를 부활시키면서 법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매도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얼마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의 담합을 비판하는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의 사람들에게 '빨갱이'라는 렛델을 붙이고, 정부기관이 세무조사를 벌이면서 위협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며 정의를 수립해야 할 정치, 법, 언론, 종교 지도자들의 불의한 행태입니다. 특히 서남동 선생님의 말씀처럼, '한 맺힌 자들의 소리'를 듣고 응답해야 할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도리어 지배와 경쟁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한의 소리'들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친미반공의 노선에 서서 북의 동족을 원수시하며, 사상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 성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며, 죄인으로 정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무서운 오늘의 현실입니다.

4. 울부짖는 민중, 여성들의 신음 소리에 답하기

: 오늘의 텍스트와 관련하여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며, '한의 소리'에 응답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설교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광선 선생님이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서남동 목사님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저희들의 심정은 솔직히 말해서 암담하기만 하고 무기력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30년 전 민중신학을 한다고 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고 기억해 봅니다. 우리는 그 당시, 유신정권하에서 민중의 현실을 보면서 함께 모였습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 시위하다 잡혀 가는 학생들의 이야기, 우리 동지들 가운에 1976년 3.1 시국선언을 명동성당에서 하고는 감옥가는 일을 되풀이하는 동지들의 이야기 등등,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자리를 자주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자리가 없습니다. 민중신학회가 한 달에 한번 모이지만, 현학적이 되어 가는 것 같고, 열정과 열기, 헌신적인 시대적 고민이 없는 것 같아 맥이 빠진 느낌이고, 한때 서남동 기념 사업회 주관으로 매달 한 번씩 모여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지만, 이젠 겨우 1년에 한번 만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민중신학자들과 민중교회 목사님들, 사회운동을 하시는 목회자들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우리 민중신학을 하고 민중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대화와 행동을 재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지성인들입니다. 지성인들이 오늘날 민중의 현실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집단지성을 발동하는데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늙은이라 옛날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민중 현실에서 새로운 대응, 새로운 사회학적, 정치 경제적 분석과 해석이 요청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봉독한 마태복음 25장을 생각하면, 서남동 목사님은 최후의 심판 날에 틀림없이 예수님의 칭찬을 들으셨다고 생각합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가난하고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 우리 민중 편에서 일하고 민중을 예수님 모시듯이 대해야겠다는 말씀과 글을 쓰시고 행동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민중이었으면, 민중을 예수님처럼 대하라는 가르침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 저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서남동 선생님의 신학을 주목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것으로 변질된 지배 신학과 서구 전통의 교리들에 맞서서 주창한 반신학과 탈신학의 신학을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서가 어떻게 지배자들의 성서로 변질되었는지, 더 나아가서 가부장적 유산과 증언들로 민중 여성들을 억압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는지를 고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서 전통을 넘어선 우리의 텍스트, 민담과 이야기들을 통해 나타난 민중 여성의 억압과 한, 그 민중들의 신음 소리를 타고 오는 구원사적 사건과 메시아 사건을 증언하고, 무엇보다 불의한 지배 체제 하에서 '죄인'의 '렛델'을 달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일에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가 봉독한 마태복음 12장 1-8절에서 예수는 지배적인 구조와 법 체제 속에서 가난 때문에 안식일 법을 어기고 밀 이삭을 따먹은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며, 죄가 없는 '무죄한 자'입니다. 반면에 마태복음 5장과 18장에서 예수는 법과 제도와 교리를 이용하여 힘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걸려 넘어지게 만든 사람들,' 곧, '죄를 짓도록 만든' 지배 권력자들과 율법학자들이야말로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동족인 형제자매를 멸시하고 욕한 자들이 먼저 돌이켜 회개하고, 착취한 것들을 모두 되돌려 주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며 정죄하는 교회들을 향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그 사람들이 받는 고통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 준 적이 있는가?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이 왜,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게 된 것인지를 물어 본 적은 있는가? 그리고 또 친미반공을 하느님의 법처럼 신봉하며 동족을 억압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은 왜 강대국의 물질과 군마를 의지하지 말고 동족을 해치지 말라는 예언자들의 선포를 외면하고 있는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그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성서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서의 몇 구절을 근거로 힘없는 민중과 여성을 멸시하고 동족을 정죄하는 신학은 결코 예수의 사랑을 따르는 신학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민족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구원으로 가는 길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한 맺힌 자들의 '한의 소리'를 듣고, 함께 소리 지르며 정의를 세움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이 바로 '한 맺힌 자들'의 연대에 의해서, 바로 그들의 '한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오늘의 절망스러운 역사 속에서도 구원의 희망을 봅니다. 30여 년 전에 성서를 넘어서, 기독교를 넘어서 '탈기독교 시대' 속에서 우리의 신학이 나아갈 길, 생명의 그 길을 알려주신 서남동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대화설교를 마칩니다.

: 마무리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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