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대담]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의 교회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일준 박사 편 ③

입력 Aug 17, 2016 07:36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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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를 맞이한 교회의 역할과 실천 방안에 대해 알아봅니다.

'트랜스 휴머니즘' 대담의 연재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일종의 자본과 권력의 장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이번 대담의 마지막 연재에서는 권력과 자본의 장에서의 주체 문제와 실천, 그리고 교회와 신학대학의 문제들에 대한 대화가 다루어집니다.- 편집자주

Q: 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권력 장의 문제는 이미 푸코가 치열하게 연구한 바가 있어서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주제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푸코가 '데카르트의 순간'이라는 용어로 말하고 싶어 했던 근대 '인식주체'의 탄생과 그것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권력 시스템을 80년대 푸코는 플라톤의 '자기인식'의 문제로까지 소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푸코는 이러한 권력 시스템에 구조화 된 주체에 대비하여 인식아가 아닌 자기를 지속적으로 구성해나가는 자기실천적 주체의 문제로 눈을 돌리는데요. 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구조화 된 사회의 주체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 나의 대안이라기보다는 그저 민중은 지혜롭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성북구에 가면 시민운동단체들이 참 많아요. 제 아내도 그런 활동을 하고 있는 대요. 많은 학자들이 최근에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성북구의 여러 시민단체들처럼 많은 시민들이 이미 협동조합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지요. 많은 활동가들이 개념의 문제를 학자들만큼 고민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들은 이미 우리가 자본주의에서 처한 삶의 여러 문제들을 몸소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요.

물론 저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몇 년 전에 서울 신대 출신의 한 목사님께서 운영 중이신 군포시에 아주 아름답게 꾸며진 작은 도서관에서 어린이 철학 강좌를 연 적이 있습니다. 그 곳은 지하에 교회가 있고, 2층에 도서실이 있고 3층에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대요. 저는 지역아동센터에서 강좌를 했었어요. 사실 중학생만 되어도 이미 자본주의의 경쟁체제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생각하는 훈련을 시키기가 쉽지 않아요. 이미 이 시기에는 평등이니 인권이니 하는 이야기를 해도 잘 못 받아드리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아이들의 잘못은 아니고요. 그래서 여러 철학 선생님들이 펀드를 받아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어린이 철학 교육을 했었던 것이지요.

또 다른 시도를 총신대 출신의 최철호 목사님께서 운영하시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진보교단에서는 미래를 보기보다는 정치투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보수교단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미래를 새롭게 창출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이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이렇게 말하죠.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교회가 성장하고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잘 안 떠난다고요. 제가 봐도 그래요. 개척교회를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이 잘 안가죠. 가면 힘들거든요. 할 것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교회도 자본화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쪽에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에 주인 없는 자본이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어지고 있는 것 같은 현시대에 새로운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고 계신데 그러한 대안은 이미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Q: 박사님 말씀을 듣다보니 박사님께서는 강단 철학자가 아니라 삶 속에서 살아내시는 것 같아요. 이러한 모습이 우리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시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 말씀을 들어보니 현시대에 꽉 막힌 문제들 속에서도 시민들은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잘 적응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박사님 말씀을 듣다보니 대다수의 교회, 그리고 그 샘이 될 수 있을 법한 신학대학들은 심하게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대다수의 교회와 신학대학의 도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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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박일준 박사가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의 교회를 말하고 있다.

박: 지금 개신교의 도태와 맞물려 있지요. 듣기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세대의 사람들이 이기적인거지요. 예를 들면, 사람들이 감리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본질적으로 놓고 보면 이기주의예요. 왜냐하면 하나의 조직이 건강하게 서있으려면 지속적으로 다음 세대에 공급을 받으면서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데 연금문제가 이것을 막고 있다고 봐요. 연금의 혜택은 사람이 많아지면 적어질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미자립 교회는 많아지고, 이를 핑계로 목회자 수급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지요. 그래서 목회자 수를 줄여 놓았어요. 그럼 당연히 연금도 줄여야 되잖아요? 돈 내는 사람들이 적어지니까요. 그런데 연금을 안포기해요. 그러니까 이 말인즉슨 지금의 기득권층 목사들이 자기들 은퇴하기 전 까지 자기들만 연금을 받고 말겠다는 의미에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아무런 비판 없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지요. 그리고 이건 하나의 사례일 뿐이지요.

신학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새로운 세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만 하지요. 다음 세대가 제도권에 정착하는 확률이 너무 낮아요. 이것은 감신대의 문제만 아니고, 한신대, 연세대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연령대가 모두 깔때기 형이에요. 젊은 학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한 마디로 젊은 학자들이 배출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학들은 자구책으로 박사과정을 개설해 놓았잖아요? 그런데 박사 과정 학생들을 책임지지 않아요. 그러니 학생들은 자생해야만 하고, 또 열심히 학문에 집중할 수가 없지요. 그러니 다시 경쟁력은 떨어지고 유능한 젊은 학자들이 배출되기는 어려운 것이고요. 이렇게 되면 사실 Ph.D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실정이다 보니 가르치는 선생들도 새로운 것들이 업데이트가 잘 안되겠지요. 이전에 저보고 포스트 휴머니즘에 관련하여 유명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그 작업의 시작이 제가 아니거든요. 저는 그저 저쪽에 있는 담론을 이쪽에 소개한 것인데 그것으로 제가 유명하다는 것은 이전에는 그러한 시도가 없었다, 혹은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니 우물 안 개구리를 학교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수들 스스로가 업데이트가 안 되니 제자들에게 낡은 담론, 낡은 패러다임밖에는 전해줄 수가 없고, 그러니 경쟁이 안 되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대학의 문제나 교회의 문제는 기득권의 이기심이라는 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됩니다.

바울 프로젝트가 있어요. 우리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 직업이 하나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목회자는 전업이어야만 할까요? 많은 목회자들은 목회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면 목회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고들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참 한심한 이야기예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이 제도가 안정적이니깐 전혀 다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깐 그것이 신학교 침체의 가장 핵심 원인이 되어버렸죠. 감리교신학대학교를 보면 이미 안수 받는 인원을 반으로 줄여놓아 버리니깐 시험에 한 번 떨어진 졸업자들이 다음에 다시 응시를 하니깐 수련목회자 시험 경쟁률이 2대1이 되고 다음에는 4대1이 되고, 그런 식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것이 불과 2년 사이 발생한 사태에요. 그런데 사실 엄밀히 말해서 이 수련목회자 시험이라는 것이 시험의 성격조차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목사 안수를 받아야 하는지 젊은 세대들은 생각할 수밖에 없겠죠.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목사가 되어도 자비량으로 목회를 해야만 하는 미자립 교회가 더 많은데 굳이 목사가 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니 학부생들이 대학원에 진학을 하지 않죠. 원래 신학대학이라는 것이 모두가 서울대 갈 실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소수가 그런 실력이 있어서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인데, 전체적인 학교의 질이 떨어지니깐 학부에서도 그런 학생이 잘 나오지 않고, 설사 나오더라도 그런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스개 소리이지만 학부생들은 원서를 보는데 대학원생들은 원서를 못 본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참 어렵죠. 목회자의 질적 저하가 성경 시험 때문이 아니고, 목사 안수 제도 자체와 병행되어 이루어지고 있어요. 우리 시대는 위기죠. 어떻게 출구를 찾아내야할지 어렵습니다.

Q: 그래도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요?

박: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고요. 그래도 이러한 말씀은 드릴 수 있겠네요. 화이트헤드는 이미 오래 전에 대학 교육의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 비판을 가한 적이 있어요. 화이트헤드는 참 곱씹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이트헤드의 비판이라는 것은 대학이 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착할수록 새로운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즉 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집단은 새로운 문제들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헛발지만 해댈 것이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이 이런 문제를 앓고 있잖아요.

신학교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고요. 즉 신학자와 목회전문가들은 늘어나는데 복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전문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요. 그래서 이러한 프로페셔널 시대에 팀 목회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팔방미인으로 모든 전문분야에 능통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것은 제가 학부 다닐 때부터 해오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안 이루어졌지만요. 물론 팀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긴 하지요. 심지어 대교회들도 팀 목회를 하고 있잖아요. 그 팀이라는 것이 수평적 구조가 아닌 철저히 담임목사 중심의 위계적 구조라서 문제이지만요.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팀 목회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상담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청년 사역을 잘 하겠지요. 그럼 한 사람이 팔방미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목회협동조합 같은 것이 있다면 여럿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하나의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 문제의 출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물론 이러한 대안에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대요. 그것은 이러한 팀 목회 자체가 감리교회법에 의하면 모두 불법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더 어렵죠. 그런데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들은 지혜로워서 이미 새로운 대안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독립교단들이 그 예이지요. 물론 모든 독립교단들이 새로운 대안들을 내놓고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여하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해법 1은 지금 잘되고 있는 힘 있는 기득권을 절대로 따르면 안 된다는 것이고, 그 원칙하에 팀을 만드는 것이 해법 2 정도가 될 듯 합니다.

Q: 이제 우리 대담을 정리해보면 박사님께서 처음 말씀하셨던 단순정위 되는 실체, 혹은 휴머니즘의 패러다임에 대비된 새로운 사물철학의 패러다임이 교회 문제에서는 담임목사 중심의 단독목회의 패러다임과 대비되어 팀 목회 패러다임의 모습을 띠는 것 같네요. 또한 우리를 구조화하는 자본, 권력, 이데올로기들의 틈에서도 묵묵히 자기를 구축하며 삶으로 새로운 대안들을 실천하는 모습들을 박사님께서는 강조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에 박사님의 모든 이론과 주장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 시간을 통해 박사님께서 주장하시고자 하는 바의 핵심을 주의 깊은 독자라면 충분히 이해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마지막으로 더 정리하시고 싶으신 말씀과 학문적, 실천적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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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박일준 박사가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간 주체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박: 마지막 정리는 선생님께서 이미 잘 해주신 것 같고요. 저는 참 운이 좋아서 9년 동안 연구재단에서 프로젝트 사업을 맡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학문적 활동의 단점은 제자를 키울 수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는 있겠지만 한계는 있지요. 그래서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역시 기존의 방식으로 제자를 키워내는 것보다는 새로운 개념의 후속세대를 키워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즉 앵무새처럼 전 세대의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대하고 대화하면서 학문적 동지로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텍스트를 읽어주며 비판하고 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후속 세대를 키워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진짜 스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교수가 있으면 논문 쓰는 많은 제자들이 있고, 학교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구름 같은 제자들을 이끌면서 으스대잖아요? 이런 것은 더 이상 스쿨이 아니죠. 그 제자들 중에 수년 후 선생의 책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텍스트로 만들고 또 학문적 성과로 만들어 내는 제자들을 본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아요. 한국 사회에는 그것이 없는 거지요. 그러니 우리는 스쿨이 없는 것이지요. 이제 그런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또 학문적 주제로 토착화는 이제 낡은 것이 되어버렸는데 그 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민족은 허상입니다. 그것은 가상의 개념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 가상의 개념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정체성을 자꾸 구성해보는 것입니다. 정의라는 개념도 허상일 뿐이지만 그것이 유효하지 않은 것은 아니 듯이 말이에요. 허상 개념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새로운 민족의 과제에 대해 고민해보아야만 합니다. 더불어 우리 학자들도 더 이상 외국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담론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이 토착화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회적인 면에서도 후속 세대들에게 무언가 대안이 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게 정말 어렵더군요. 너무 바쁘기도 하구요. 그런데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교회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사실 기존의 교인들이 교회에서 많이 힘들고 지치잖아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아무 것도 안하려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진짜 아무 것도 안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뭘 해야 하나 싶기도 하구요. 여하튼 목회 부분이 가장 어렵고 진척이 되지 않는 것 같네요.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후속 세대를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실험해보고 싶은데 그점이 아직까지는 잘 안된 것 같아요. 이것을 더 고민하고 노력해보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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