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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타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다이앤 카스트로(Diane Castro)

입력 Oct 19, 2016 01:39 PM KST
church
(Photo : ⓒpixabay)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최근에 나는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회교도와 기독교도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성경을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주저 없이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즉각 답을 한다는 것은 이 질문이 갖고 있는 무수한 뉘앙스와 복잡한 양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것은 심사숙고할 만한 중요한 신학적 문제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바늘 꼭대기에서 춤을 출 수 있느냐라는 수준의 가상적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가 회교도들을 어떻게 보며 대할지,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에 대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해 사려 깊은 대화를 자극하고 싶기 때문에, 이 질문이 촉발할 수 있는 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해볼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들이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려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당신들의 견해는 얼마나 유사해야 하는가?

예배를 함께 드리려면, 그들은 얼마나 닮아야 하는가?

당신들이 참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려면, 하나님에 대한 당신들의 이해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딱히 회교도들 및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료 기독교인들과도 교류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나는 칼빈주의자들이 우리와는 다른 신을 섬긴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꽤나 다른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교제하며 예배드리는 행위에 함축된 의미는 무엇인가?

아마도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지점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관점일 것이다. A.W. 핑크와 같은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직설적으로 주장한다: "하나님은 그분이 선택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 존 맥아더 같은 칼빈주의자들은 핑크가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그분이 사랑하기로 결정하셔서 사랑한다는 성경적 진리를 확인해줌으로써 그러한 실수를 교정하고자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 은총을 부여하시며("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5:45),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그분의 자비는 "자애로운 하나님의 심정을 진실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은 선택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외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맥아더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한다거나 그분이 일종의 공평성 규칙에 따라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다.... 중대한 구별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하신다. 선택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영원한 구원의 사랑이다.... 그런 사랑은 모든 인류에게 무차별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독특하고 개별적으로 임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칼빈주의자들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다. 나는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나머지 인간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그분의 본성이며 그것은 대상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그분은 누군가에게 "무한하며 영원한 구원의 사랑"을 베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낮은 사랑을 베풀지 (혹은, 싫어하지) 않으신다. 일전에 나는 같은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항상 사랑 가운데 일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실 것이다.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모든 인류 전체를 의미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가장 좋은 인간적 사랑보다 무한히 더 높고 순수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사랑으로 인지할 수 없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언제나'라는 말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나, 우리가 그분께 반역할 때나, 우리가 죽을 때도 그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핵심적 속성에 대해서 두 가지의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인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예배 대상이 주요한 관점에서 매우 다를 때 함께 그분을 예배할 수 없는가? 우리 모두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불완전하고 적확하지 않은 견해들을 갖고 있다. 그러니 어떤 견해가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간주될 만큼 충분히 진리에 가까운지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겠는가?

나로서는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인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칼빈주의자들이 인식하는 대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 그분의 "무한하고 영원한 구원의 사랑"을 대다수 인간들에게 차단하는 하나님을 묵상한다는 것은 내 속에 경모의 마음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의 섭리를 베풀지만 모두를 구원할 만큼 충분히 베풀지 않는 수준에서 인류를 "사랑하신다"면, 그런 "사랑"은 그 자체의 개념에도 함량미달이다. 무한히 거룩하고 무한히 자애로운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칼빈주의자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 우리는 공통점이 충분히 많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리스도의 인성, 그리고 십자가의 능력을 같이 믿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그분께 찬양을 드릴 수 있다. 비록 각자의 관점으로 그분을 상상하기는 하겠지만.

그러면, 이런 견해들은 기독교도와 회교도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상황은 분명히 상응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내가 여기서 제기한 질문들과 같은 질문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질문들과 여타의 질문들을 묻고 사려 깊게 답함으로써 대화를 수행할 과제를 독자들에게 남겨주려고 한다. 나는 단순히 당신들의 목표가 어떤 관점을 입증하거나 이론적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얼마나 최선으로 확장시킬 것인지를 숙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http://blogs.christianpost.com/ambassador-of-reconciliation/do-we-worship-the-same-god-2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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