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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국정교과서에서 기독교 비중 늘었나?
보수 기독교계 지지 무색하게 관련 언급 오히려 줄어

입력 Dec 01, 2016 03:38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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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교육부 현장검토본 화면 갈무리 )
교육부가 내놓은 국정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에서 기독교 관련 언급은 기존 검인정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1919년 만세운동시 학살사건이 벌어졌던 제암리 교회를 제암리로만 적은 오류도 발견됐다.

지난 달 28일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다. 교육부는 국정역사교과서를 내면서 "학계에서 인정받는 권위자로 집필진을 구성해 집필했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편찬심의회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심의·보완을 했다. 또한, 다양한 역사 연구 기관과 국립국어원의 검토를 통해 교과서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전국역사교사모임·한국역사교육학회·한국역사연구회 등이 꾸린 역사교육연대회의는 검토본 공개 직후인 30일 긴급 분석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연대회의는 무엇보다 "검토본이긴 하지만, 일정에 쫓겨 황급히 매듭된 곳이 적지 않으"며 "기초적인 사실 오류를 보여주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비판했다.

국정역사교과서는 추진단계에서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기독교계, 특히 보수 기독교계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보수 기독교계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는 지난 해 10월 논평을 통해 "현재 한국사 교과서는 한국의 근대사를 좌파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며 " 정부는 국가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을 정확히 설명하는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몇몇 신학교 교수도 지지를 표시했다.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국내 최대 교세를 지닌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 교단은 보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찬성입장을 보였다. 지난 해 12월 예장합동 교단은 당시 총회장인 박무용 목사 이름으로 낸 성명에서 1) 현행 검정 교과서는 배타적 민족주의에 경도돼 개항 이후 우리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다 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무시된 것은 물론, 민족주의 계열의 노선은 미성숙한 사회개량이나 친일로 매도됐다 3) 해방 이후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노력은 폄하되고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하는 세력은 높게 평가됐다 4) 6.25전쟁은 북한이 자유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일으킨 침략전쟁임에도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5) 산업화와 민주화가 균형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이 가운데 기독교와 관련된 1), 2) 항목에 주목해 보자. 이 대목은 보수 기독교계가 국정화를 찬성하는 주된 논거다. 보수교단의 입장을 대변해 온 한국교회언론회(아래 언론회)도 현장검토본 발표 직전인 26일 논평을 내고 "대한민국 건국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기존 검정교과서가) 이를 기술하지 않는 것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생략하려는 의도"라며 국정교과서를 ‘끝까지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학교 교과서 1 차례, 고교 교과서 4차례 언급이 전부

28일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은 보수 기독교계의 희망사항이 담겨 있을까? 기자는 현장 검토본 중에 기독교 관련 부분을 찾아 보기로 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기독교 관련 언급은 117페이지에 한 번 언급돼 있다.

"일제의 탄압에 맞서 종교계도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는 3.1 운동에도 앞장섰다. (중략) 특히 개신교는 일제 말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불교는 일제의 통제 속에서도 불교의 전통을 지키고자 불교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고, 원불교는 저축과 근로를 중시하며 자립정신을 고취하였다."

고등학교 교과서의 경우 기독교 관련 언급은 207쪽, 218쪽, 230쪽에 나온다.

"국내에서는 1919년 1월 고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독살설이 퍼지면서 한국인들의 울분이 고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도교계와 기독교계가 서로 연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고, 여기에 학생들과 불교계가 참여하면서 전국적인 대규모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1920년대 전반 여성들은 남녀 차별 해소와 가부장적 관습 철폐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들은 각종 강연회를 열어 여성 계몽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중반에 들어 민족주의 계열은 조선 여자 기독교 청년회(YWCA) 등을 중심으로 여성의 교육과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족주의 세력은 신간회를 계승할 새로운 민족 단체를 결성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천도교와 기독교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농촌 사회의 희생을 위해 협동조합 중심의 농촌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밖에 국정교과서는 1919년 만세운동을 서술하면서 ‘경기도 화성 제암리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고해 학살이 일어난 장소인 ‘제암리 교회'를 명시하지 않았다.

보수 기독교계는 내심 기독교 관련 비중이 늘어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에서 기독교 관련 언급은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검정교과서에 비해 분량이 줄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상명대 역사학과 주진오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주 교수의 양해를 얻어 일부를 인용한다.

"농민운동에 조선기독교청년회(217쪽)와 여성운동에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218쪽)가 언급되고 있다. 특히 ‘종교계의 민족운동'에서 신사참배 강요와 반대운동이 제시된다. 하지만 이는 검정교과서에도 다 있던 내용이고, 차이가 있다면 ‘주기철 등이'(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절했다 투옥돼 옥사했다 - 글쓴이)라고 실명이 들어간 것이다. 분량은 (검인정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요약하면 국정교과서는 보수 기독교계의 희망과는 어긋나는 결과물이다. 이제 현장검토본이 공개되기도 전에 ‘국정교과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보수 기독교계가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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