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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유토피아적 이상주의 필멸 증명
존 스톤스트릿(John Stonestreet)

입력 Dec 07, 2016 08:18 AM KST
castro
(Photo : ⓒpixabay)
▲쿠바 전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의 모습.

한 잔인한 공산독재자가 보응을 받으러 떠났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델 카스트로의 유산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금요일(11월25일)에 피델 카스트로는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많은 적수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다. 만일 당신이 언론에 보도되는 아첨 섞인 조사들을 마주치게 될라치면, 이것을 기억하라: 정확한 수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카스트로 정권에 의해 살해된 쿠바인들의 수자가 최소한 수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1998년에 나는 카스트로로부터 100미터 근처에 서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에 나는 자메이카에서 1년을 지내고 있었고, 내가 거기 있는 동안 카스트로가 그곳을 방문했었다. 돌아보니까, 지금 내가 카스트로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를 고려할 때 그가 누렸던 존경은 놀라웠다. 그는 정부 관료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서도 영웅처럼 환대받았다. 수십 년 동안 절망에 빠져 있던 가로와 보도가 정비되었고 하수구들도 깨끗이 청소되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분명한 의문이 들었다: 왜? 내가 질문을 했을 때 자메이카 친구들이 들려줄 수 있었던 최선의 대답은 카스트로가 수십 년간 미국에 "대항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대답 속에는 카스트로가 자신들에게도 대항했다는 암시가 들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쿠바 국민들의 최선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수상인 저스틴 트루도가 카스트로를 "거의 반 세기 동안 자기 국민을 위해 봉사한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불렀을 때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이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카스트로는 분명히 전설적이며, 내가 그날 알게 된 사실로는 놀라운 대중연설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웅변 기술로는 악한 생각의 결과까지 누그러뜨릴 수는 없다. 실제로 카스트로의 통치 아래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국민을 대했던 방식을 "봉사"라고 일컬을 것이다. <쿠바 아카이브>(쿠바 혁명 이래 사망 및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 보관소)에 따르면, 최소한 1만5천명의 쿠바인들이 총살, 교수형, 폭사를 당하거나 악명 높은 카스트로의 감옥에서 사망했다.

카스트로는 레닌이 한 때 "쓸모 있는 천치들"이라고 엉겁결에 불렀던 사람들의 현대판이 찬양하고 있는 인간이다.

게다가 그가 행한 "봉사"의 개념에는 쿠바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소련이 핵미사일을 쿠바에 설치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자국민을 아마겟돈의 잠재적 전위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쿠바의 끔직한 인권 보고서가 있다. <인권감시>에 따르면, "카스트로의 통치 기간 동안 수천 명의 쿠바인들이 끔직한 감옥에 투옥되었고, 그보다 수천 명 더 많은 사람들이 겁박과 박해를 당했으며, 전 세대가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마저 박탈당했다."

만일 이것이 "봉사"라면 나는 그러한 "사악함"을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카스트로의 쿠바에서 벌어진 일이 공산주의나 인공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한 모든 다른 시도들에 대한 기록들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유토피아라는 말이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든 유토피아적 목표는 국가 수준의 강제력을 동원하여 인간을 개조하고 이데올로기적 노선을 따라 인간을 재형성하려고 시도하다. 그런데 그것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인간 본성이 그렇게 가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2001년에 나온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포위 작전을 다루고 있는데, 내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가장 명쾌하고 간결한 공산주의 비판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새로운 소비에트 인간"을 창조하는 직임을 맡은 장관 다니로프가 죽어가면서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실리, 나는 너무나 어리석었어. 인간은 언제나 인간일 뿐인데 말이야. 새로운 인간이란 없어. 우리는 매우 애를 써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지. 거기는 이웃을 부러워할 것이 없는 곳이야. 하지만 부러운 것은 언제나 있지. 미소, 우정, 이런 것은 당신이 갖지 못해서 당신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잖아."

다니로프는 한 가지 점에 있어서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새로운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 것. 그러나 인간은 카스트로가 평생 통치하면서 파괴하려고 애를 썼던 수단에 의해서만 새롭게 될 뿐이다: 기독교의 그리스도. 나는 이 교훈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fidel-castro-reminds-us-why-utopianism-always-fails-171788/#5CZpj0dPrkmCGqvy.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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