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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을 닦아라!

한문덕 목사 (생명사랑교회)

이사야 40장 1-11절, 마가복음서 1장 1-8절

[내 백성을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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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김진한 기자)
▲한문덕 생명사랑교회 목사

2017년 새해가 밝고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새벽기도회를 통해 올 한해를 열었습니다. 기도하는 이에게 절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입에서 탄식과 슬픔 가득한 말이 나온다 하더라도, 기도는 언제나 희망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이 우리에게 어떤 해가 될지 우리는 아직 모르지만, 새해가 되어도 토요일 광화문 광장은 뜨겁습니다. 어제는 6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이 해가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내는 희망의 한해가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중요한 변화의 기점에 서 있습니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본격적인 민주화의 길을 걸었고, 1997년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렸습니다. 지금 한국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한데, 과연 2017년은 우리에게 어떤 해가 될까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온갖 역경을 겪은 뒤에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약속받았던 땅, 가나안에 정착합니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삼아 자신들의 국가를 일구어 나가고, 다윗 왕과 솔로몬 왕 때에는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을 지을 정도로 번성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인해 남은 남유다마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예언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하나님의 뜻이 담긴 예언이라 생각합니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쳐들어와 당시 유대의 왕이었던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처형하고 시드기야 왕의 눈을 뽑아 바빌론으로 끌고 가고,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을 불태우고, 성전을 지키던 제사장들을 잡아다가 처형하고, 모든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이 사건을 두고,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린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여겼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예루살렘 주민의 대부분은 수십 년 전부터 낯선 땅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와 있습니다(왕하 25:8-21 참조).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지난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역사 첫머리에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기적을 어떻게 이루셨는지(출 1-15장)에 대해 떠올려 봅니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린다고 해서 그리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편 137편이 보여 주듯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유다 백성들을 종으로 부리면서 자기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를 불러 보라고 모욕을 주는 일상들이 계속 됩니다. 과연 희망이 있는가?

그 때 한 무명의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 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았다고. 이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함께 그것을 볼 것이다.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오신다. 그가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릴 것이다."

2017년 새해! 이 땅 대한민국에도, 우리 생명사랑교회에도, 여러분 각자의 가정에도, 그리고 우리들 마음에도 이런 희망의 메시지가 울려 퍼질 수 있을까요?

[2017년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

2015년 8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진행한 '청년의식조사'에서 청년들이 이 사회에 보인 반응은 바로 "헬조선"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즉, 한국에서의 청년의 삶은 지옥과 같다는 것입니다. 2016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 청년들의 삶은 좀 나아졌을까요? 2016년 말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한국의 청년들의 63%는 자신의 삶이 불안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청년들의 52.5%가 그렇게 느꼈는데 불안감을 느끼는 청년이 더 늘어났습니다. 1년 4개월 동안 대한민국 청년들의 절망은 더 깊어졌습니다.

스무살 한 청년은 시급 5580원을 받으며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주말마다 하루 7-8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열달 동안 빠짐없이 일하던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빵집으로 찾아왔습니다. "할머니가 위독하셔." 엄마의 말을 듣고 사장님께 전화를 합니다. "사장님, 제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상냥하기만 했던 사장님의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안 돼. 너밖에 일할 사람이 없는데, 나는 어떡하니." 결국 이 청년은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뵙지 못했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서야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면서 생각합니다. '3시간 더 일해서 만오천원 더 벌자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거지?' 한 달 뒤 이 청년은 빵집을 그만 둡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자신과 동갑내기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했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다른 거 한들 성공하겠니."

취업과 주거비 문제, 불안정한 시국, 연애와 결혼, 빚에 대한 부담, 출산 및 육아, 건강, 친구 및 동료와의 인간관계 등 다양한 걱정거리들을 매일 지고 사는 청년들에게 금수저들에 대한 이 사회의 특혜, 정부와 재벌의 비호는 수십만의 청년들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이 청년들에게 물었습니다. 다음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할 해결 과제는 무엇인가? 다양한 대답들이 나옵니다. "불평등 완화를 위한 복지제도 확충"(22.6%), "검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혁"(24.4%), "정경유착 근절 등 경제개혁"(28.9%), "경기 부양 등 경제활성화"(30.4%), "청년 일자리 등 미래해법 제시"(31.6%) .... 그런데 가장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정치개혁"(60.1%)이었습니다. 지금 청년들 10명 중 6명은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복음과 예수의 복음]

바빌로니아로 끌려가서 노예와 종의 생활을 하던 유다 백성들에게 근본적 변화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오시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계곡은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해지고, 험한 곳은 평지가 될 것입니다. 이런 비유와 상징의 언어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대사회의 불평등을 없애버리는 것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오시려면 길을 닦아야 하는데, 큰 길을 곧게 내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사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서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이 구절을 원문으로 보면 마치 책 제목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 첫 구절에서 마가복음서 저자는 나사렛 출신의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과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는 두 가지 명칭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라는 것이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 이 구절을 읽고 있지만, 새로운 책을 내면서 이 책 제목을 이렇게 붙인 사람들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이 책을 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서가 나오던 시기는 로마가 유대 땅을 다스리던 시기였고, 로마는 황제를 신격화시키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제국을 유지하였습니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가 종신총통(終身總統)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자 에페소 시민들은 그를 두고 "인간의 생명을 위해 오신 구세주"로 치켜세웠으며, 그가 죽은 후에 원로원에서는 카이사르에게 공식적으로 거룩한 신성을 부여합니다(디부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는 '황제 숭배'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유명한데, 국가적인 행사에서 자신을 신에 버금가는 존칭인 '지존자' 즉 아우구스투스로 부르도록 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은 언제나 신화적인 언어로 미화되었으며, 인간을 위해 보내진 전능자이자 구원자로 불렸을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투스가 죽자 그가 신들의 세계로 들리어졌다는 믿음과 더불어 그의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후대의 황제들도 아우구스투스를 이어받아 신의 아들(디비 필루스)로 추앙받았으며, 특히 칼리굴라와 네로는 각각 태양신 헬리오스, 음악의 신인 아폴로로 자처했습니다. 1세기 말경에 로마를 통치한 도미티아누스는 모든 공문서의 서두에 "우리의 주님이시며 신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라는 문구를 쓰도록 합니다. 도미티아누스는 제국 어디에나 황제의 상과 웅장한 신전을 세우도록 했으며, 이런 사실은 요한계시록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세력권을 점점 넓혀가면서 '황제 숭배'도 제 몫을 톡톡히 담당했고, 그래서 황제에게는 언제나 '주님,' '구원자,' '전능자'라는 호칭이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황제와 관련된 좋은 정보들은 모두 '복음,' 즉, 기쁜 소식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서의 첫 구절에 나오는 복음이라는 말의 원어는 "유앙겔리온"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주로 로마 황제와 관련해서만 쓰였습니다. 황제 임명식을 할 때 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유앙겔리온"이라고 선포합니다. 제국의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궁전으로 입성할 때면 나팔을 크게 불며, 옆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유앙겔리온"하고 외쳤지요. 또 황제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손에 들고 "유앙겔리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황제에게만 붙일 수 있는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을 마가복음서 저자는 나사렛 예수에게 붙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가복음이 쓰이던 당시 로마는 네로 황제가 죽고, 장군들의 각축전 속에서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황제가 되었고, 당시 로마세계는 이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온갖 신성한 명칭을 가져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가복음서 저자는 이 신성한 명칭들을 전부 예수님에게 붙이고 있습니다. 목숨 걸고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인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가져다주는 자 누구인가? 로마 황제인가? 아니면 갈릴리 청년 예수인가? 로마의 입장에서 두 명의 황제가 있을 수는 없기에 예수님께 이런 명칭들을 붙이는 사람들이 등장하자마자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서를 만들어 냈던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예수를 세상에 전했습니다. 왜일까요?

황제의 "유앙겔리온"은 바로 폭력과 억압과 권력의 승리를 뜻하는 "유앙겔리온"이었고, 예수의 "유앙겔리온"은 사랑으로 섬기기에 모두가 평등한 "유앙겔리온"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1년 6월 18일 힐라리온이라는 이집트의 한 노동자가 자기 아내 알리스에게 쓴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힐라리온이 알리스에게 진심으로 안부를 전하오. 또 나의 존경하는 장모님 베로우스와 나의 아들 아폴로나리온도 잘 있는지요. 우리는 아직 알렉산드리아에 있다오. 나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돌아갔는데, 나만 알렉산드리아에 남은 것을 걱정하지는 마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간절히 부탁하는데 내 아이를 잘 돌보아 주오. 이제 곧 내가 받은 품삯을 당신에게 보내리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이면 그대로 두고 여자 아이라면 내어버리시오. 이하 생략"

평범한 이주 노동자의 편지에서도 나오듯이 아이를 출산하는 기쁜 소식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소식이 될 수 있던 것입니다. "사내 아이면 그대로 두고, 여자 아이거든 <죽도록> 내어버리시오." 황제의 경우 대리모가 아들을 낳으면 유앙겔리온이라고 외쳤지만, 여자아이라면 그 아이를 낳은 대리모와 함께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쟁과 살상을 통해 제국을 넓히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평화라고 포장했던 로마황제에게 복음이라는 좋은 단어를 쓸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마가복음서를 쓴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길을 닦는 사람들]

마가복음서는 예수님의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기쁜 소식임을 선포하면서,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세례요한은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의 말을 선포하면서 세상에 나타납니다.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요한! 메뚜기와 들꿀을 먹던 사람! 그가 입은 옷과 먹은 음식은 바알과 아세라를 물리쳤던 불멸의 예언자 엘리야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는 한편으로 심판의 소식을 전하며, 또 한편으로 그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마가복음서가 예수님의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예언자 전통에 있었던 사람, 세례요한을 등장시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재야에 머물렀던 제사장 가문의 사람으로 당대 최고 권력인 헤롯을 비판하여 감옥에 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사람입니다. 그가 베풀었던 세례는 죄를 용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죄를 용서하는 독점적 기관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을 무력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전에 갈 필요가 없었고, 그것은 제사장들의 생계와 권력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습니다. 즉,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에 앞서서 당대 종교정치 기득권자들을 모두 비판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온 몸으로 외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요한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하나님이 오시기 전, 구원자가 오시기 전 미리 길을 닦고 준비했던 요한은 예언자였고, 그의 예언 행동은 모두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과 관련되었습니다. 누구나 와서 쉽게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예식을 집전하는 직분을 빌미삼아 권력을 누리던 당시 성전 제사장들과는 달랐습니다. 남의 여자를 자기의 아내로 삼은 헤롯을 비판합니다. 당시 결혼이란 정치적 이익을 누리기 위한 것이었고, 그런 정략결혼을 통해 지배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오늘 이 나라의 부패와 부정의에 온갖 기득권 세력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바로 세례요한은 그런 부패한 권력들에게 비판의 돌직구를 날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집에 손님이 오시면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듯이, 거룩한 하나님이 오신다면 온갖 더럽고 추하고 부패한 것들은 말끔히 없애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이 나라 이 사회의 추잡한 것들도 청소해야 합니다. 계곡은 메꾸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려야 합니다. 즉,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부서와 신도회, 구역 등 모든 조직이 골고루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대청소 작업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례요한에게 배워야 할 두 번째는 자신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는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심판의 메시지를 통하여 사람들을 각성시켰다면 뒤에 오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고야마는 위대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올 한해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우리 안에 진정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에 길을 내어야 합니다. 사무관리부에서 지난주에 주방을 깨끗하게 정비하였습니다. 또 뒤에 보시면 주보함도 비치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가대원을 임명했고, 신임집사의 직분도 허락했습니다. 우리 교회 전체를 보면서 각부서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먼저하고 나중 할 일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때론 다른 이가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서, 남들이 회피하는 궂을 일을 몸소 감당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그 길을 잘 닦았습니다.

아직까지 2017년 교회활동 지원을 하지 않으신 교우들이 계십니다. 시간이 없고 실제적으로 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 해도 일단은 지원해 주시고 그 부서를 위해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사무관리부, 예배부, 친교부, 선교부, 교육부, 애찬부, 재정부의 7개 부서가 있습니다. 다섯 개의 신도회가 있고, 또 다섯 개의 구역이 있습니다. 예배뿐만 아니라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 성서배움마당(젊은이를 위한 청년 예수의 삶과 가르침), 수요기도회 등 다양한 활동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교회의 여기저기에서 꼭 자신의 역할을 한 가지씩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동시에 우리나라가 중대한 변화의 기점에 서 있고, 또 우리가 상계동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2월부터 노원지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해보려고 합니다(함께 <논어> 읽기[2월 6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노원역 5번 출구, 복합문화공간 더숲). 우리는 우리의 삶과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도 전해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통해 올해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한걸음 성큼 더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뚜벅뚜벅 가는 길에 여러분 모두가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구경꾼이 아니라, 시키는 일만 하는 종이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 생명사랑교회의 활동가들이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만드신 그 길로, 여러분이 준비하신 그 넓은 길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새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새해를 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올해 우리에게 주신 그 시간들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매순간을 헤아리는 지혜의 마음을 주옵소서. 세례요한이 주님의 길을 준비했듯이, 우리 또한 이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심령, 정직한 영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사랑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또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저희가 올 한해 준비된 일꾼으로 성장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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