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설교] 하나님 나라!

한문덕 목사 (생명사랑교회)

시편 82편 1-8절, 요한계시록 21장 1-7절, 마가복음서 1장 14-15절

[하나님 나라의 바른 이해]

hanmunduk_03
(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마가복음서의 말씀에는 구약성서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말이 나옵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율법서에도, 예언서에도, 시편에도 나오지 않던 하나님 나라가 복음서에 특히 공관복음서에 갑자기 많이 등장하는 것은 왜 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한국의 교인들이 그동안 잘못 알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전파하신 말씀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는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 4:17)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라고 되어 있는 것이 마태복음에서는 "하늘나라"로 바뀌어 있는데, 이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크게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서 저자가 하나님 나라를 하늘나라로 바꾼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마태복음서를 쓴 사람들이 유대의 신앙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의 제3계명인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출 20:7)는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늘 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서를 읽을 때도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주님이라고 바꿔서 읽고, 성경을 베껴 써야 하는 서기관들은 하나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목욕재계하거나 손을 씻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서 저자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라는 전도서의 말씀(전 5:2)을 근거로 하나님 나라를 하늘나라, 즉, 천국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그리스-로마를 거쳐 한국까지 오면서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내세 개념과 겹칩니다. 죽어서 가는 세계를 나타내는 불교의 용어 중에 "천당"이라는 말이 있는데 천국이 바로 이 천당과 뒤섞여 쓰이면서 예수님께서 원래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버렸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그런데 오늘날 길거리나 지하철 등에서 전도하시는 분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회개하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 즉, 천국에 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줄여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말을 만들었지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봅시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과 바다가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긴 후에도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오늘 성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고,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처음 제자들은 "예수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활동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또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한국교인들은 "예수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이 말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틀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돌리며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믿음과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인간은 죄인이다. 그것이 타고날 때부터 가진 원죄이든, 스스로 지은 죄이든 간에 아무튼 죄인이다. 2.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3. 하나님은 천당과 지옥을 만들어 놓았다. 4. 인간은 죽은 후에 또는 세상의 종말에 천당이든 지옥이든 둘 중에 한 곳으로 가게 된다. 5.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6. 그래서 죄를 용서받고 천당으로 가는 길은 오로지 예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가능하다.

보통 평범한 한국 교인들은 아마도 대개 위와 같은 구원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이 예수를 믿어야만 천국에 간다고 하는 기존의 구원 이해는 너무 단편적입니다. 이런 구원이해는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져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당면한 매우 시급한 과제 중에 하나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것인데, 저도 이것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교회 청년들에게 교회나 신앙생활, 기독교에 대해 무엇이든 좋으니 궁금한 것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청년들이 자신들이 궁금한 것이나, 주변 청년들의 이야기들을 제게 전해 주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 보면,

1. 저는 아무래도 진화론이 맞는 거 같습니다. 이걸 어쩌죠?

2. 교회를 꼭 다녀야 하나요?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할까요?

3. 교회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 무신론자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친구들이 자신들은 지옥에 가냐고 물을 때 어떻게 대답해 주는 것이 현명할까요? 실제 믿지 않는 것만으로 지옥에 가는 게 맞는 걸까요?

4. 가끔은 일상생활과 예배시간이 겹쳐 일상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들어 무엇을 위해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의문이 많이 듭니다. 주일이 끼면 친구들과 여행도 못가고 행복을 포기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맞는 건가요? 저는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이었는데 어느 샌가 교회를 위해 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제 일상생활을 포기하며 하는 신앙생활 ... 올바른 거 맞나요?

5. 저는 사후세계, 천국보다는 지금 제가 사는 삶에서 바른 영향력을 주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해석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제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해석하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정해진 진리가 있는 걸까요?

이런 청년들의 질문에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변하시겠습니까? 충분한 설명 없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은 합리적 사유를 하는 현대인들에게 전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합니다. 머리로 이해도 되지 않는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면 실제 삶에서 작동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전도가 멀쩡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죄의 바른 이해와 구원]

앞으로 구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날이 오겠지만, 오늘은 가장 크게 오해하기 쉬운 몇 가지를 중심으로 풀어나갈까 합니다.

구원이란 말 자체가 지시하듯이 구원은 뭔가 잘못된 상태, 또는 고통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그 잘못된 상태가 "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란 뭘까요? 한국 교인들에게 "죄"가 뭐냐고 물으면 아마 상당수가 "주일성수 제대로 안 하는 것"이라고 답하거나 "교인이 술 먹고 담배 피는 것"이라고 대답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목사는 친북좌파 세력은 전부 죄인이고, 타종교인은 전부 죄인이기에 쓰나미를 당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그나마 좀 생각 있는 사람은 아마 죄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율법을 어기는 것," "나쁜 짓 하는 것," "종교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등등. 아마도 한국교인들이 죄를 말할 때 이것을 뛰어넘어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담 때부터 내려오는 "원죄"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본 교인들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열거되는 죄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어떤 도덕적, 종교적 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는 개개인들이 행하는 잘못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죄란 눈에 보이는 안정성, 그리고 몸으로 느껴지는 것만 갈망하고 일시적인 사물에 집착하여 그것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자기중심적 욕망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이 모이면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죄가 생성됩니다. 타인과 모든 생명을 아우르지 못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구성하려는 것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만들어낸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해 고통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교가 깨달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구원은 내세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이루는 것]

따라서 구원이란 우선적으로 개인이든 사회든 자기중심적 욕망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가 함께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죽어서만이 아니라 오늘 현재 여기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기존의 구원 이해는 구원의 문제를 내세 중심적인 것으로 오해하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 삶의 문제를 도외시하게 만듭니다.

제가 자주 말씀 드렸지만 저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모두 하나님께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끝난 다음에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죽은 다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매순간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엊그제 금요일과 토요일에 우리 청소년부가 겨울수련회를 했습니다. 저는 밤 11시쯤 치킨 네 마리를 사들고 방문했는데, 그 때 마침 육성한 전도사님의 인도로 우리 청소년들이 함께 떼제 기도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킥킥 대기도 하였지만 돌아가면서 서로 중보기도하고 함께하는 모습이 매우 좋아보였습니다. 저는 기도회에 방해가 될까봐 밖에서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는데, 심민정 전도사님 차례가 되어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십시오." 청소년부 학생 10명 전도사님 세분, 그리고 올해 교사로 봉사하는 이현재 선생님까지 모두 14명이 작은 방에서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 나누고, 맛있는 것을 나누며 모두가 있는 그대로 존중 받는 그 시간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순간입니다.

2014년 10월에 압구정동의 모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분이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2010년 10월 경남 창원에서도 경비원이 투신자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분신자살을 기도하신 이 분은 6천장이 넘는 피부이식 수술을 했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 분이 분신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아파트의 입주민들에게 수없이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모멸감을 느낄만한 막말을 수시로 들었고, 또 어떤 입주민은 베란다에서 빵을 던져주고 주워 먹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입니다. 이 분에게는 나날의 삶이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정에 나오셔서, 신들을 모아들이시고 재판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읽어 보니, 신들이라고 표현된 이들은 진짜 신이 아닙니다. 7절에 보면 사람처럼 죽을 것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람이지만 신처럼 군림했던 당시의 권력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서도 황제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아들이라고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천자라고 부르게 했듯이, 고대에는 거대한 나라의 왕들은 모두 신의 아들들로 여겨졌고, 또 그렇게 마치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그런 왕들을 전부 불러놓고 심판을 합니다. 심판의 핵심은 이 왕들이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고, 악인들의 편을 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변호하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풀어야 하는데, 공평해야 할 법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했기 때문에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렸다고 시편의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TV를 거의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가끔 뉴스만 봅니다. 엊그제 특검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겠다는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청와대에 갔는데, 결국은 들어가지 못하고 되돌아왔습니다. 최순실 씨 같은 민간인이나, 대통령 주치의가 아닌 비선 의료진들, 정유라 씨의 말을 구입해주는 독일 사람과 무슨 기치료 아줌마는 아무런 보안검색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던 청와대에 정확하게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간 특검 수사팀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적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린 결과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탄핵을 받아 직무정지 상태에 있고, 전 비서실장인 김기춘 씨와 정무수석이었던 조윤선 씨는 구속된 상태고, 전 민정수석이 우병우 씨는 특검의 가장 핵심적 조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인터넷의 누리꾼들은 청와대가 무슨 범죄 집단 같다고 댓글을 답니다. 청와대 직원들이 사용한 대포폰이 확인된 것만 해도 50대가 넘는다고 하니 이런 말들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습니다. 어제도 광화문에는 수십만의 인파가 몰렸고,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재벌들을 규탄하기 위해 강남에서도 촛불을 든 시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공의를 베풀지 않았을 때 피해를 입는 것은 서민들입니다.

2016년 통계에 의하면 10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이 550조나 된다고 합니다. 서민들은 가계 빚에 쪼들려 매년 부채가 10% 안팎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재벌들의 곳간은 점점 차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 통계자료는 살펴보지 못했는데, 이명박 정권 시절을 살펴보면 5년간 10대 재벌가의 재산은 자기 재산의 53.4%가 증가했고, 그 총합만도 1,244조에 이릅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의 임금은 얼마나 늘었을까요? 1.28% 증가했습니다. 물가 상승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증가율입니다. 부자들은 점점 더 잘 살고, 일반 서민들은 더욱 비참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이 돈 없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갑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횡포가 만연하게 됩니다. 왜 청년들이 지금 이 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르는지, "갑질한다"는 말이 하나의 일상용어가 되어버렸는지, 거리에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이제는 새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지 우리도 곰곰이 생각하고 따져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다스린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면 누구나 살맛이 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구원,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바로 오늘 지금 이 시점에서 "참으로 살맛난다" 하는 그 질적인 삶을 누리는 그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서에는 뭔가 잘못되어 고통당하는 상태를 표현해주는 여러 가지 은유와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눈이 멀었다,' '남의 밑에서 종살이 하고 있다,' '묶여 있다,' '마음이 닫혀 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길을 잃었다,' '병들었다,'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 '소외당하고 있다,' '상처를 입었다' 등등입니다. 이런 인간의 여러 조건들을 폭넓게 바라보고 그 각각에 대해서 왜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 살피고 그것을 극복하도록 해야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바로 구원이 일어난 것이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을 이뤄 나갈 수 있습니다.

눈이 멀었다면 보이게 해 주면 됩니다. 그건 의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이 어리석음에 대한 은유라면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 주어 배움의 기회를 주면 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것을 나눠주고, 또 왕따였다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을 예수님께서 구원이라고 부른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삭개오는 그의 직업 때문에 소외당하고 있었고, 예수를 만난 날 그 소외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구원이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것, 눈 먼 사람이 시력을 회복하는 것, 깨달음, 포로 된 사람들이 해방되는 것, 질병이 치유되는 것, 소외의 상태를 벗어나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죽음의 세력을 극복하고 부활하는 것, 다시 태어나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스도"안에서 살게 되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통틀어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내세의 삶을 부인하지 않고 심지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도 열어 놓는 종교입니다만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구원은 현세적이고 현재 인간의 모든 잘못된 상황을 고치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과 행적은 모두 구원사건이었고 이것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사람들]

<꼴지 없는 운동회>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용인 제일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 한 장을 보여 드리지요. 제 마음에 남아 있는 사진입니다. 그냥 보면 다섯 명의 아이들이 나란히 손잡고 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 그 중 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냐는 것인데 이 모습은 장애물 달리기 중이고 결승선을 코앞에 둔 상황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뛰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나란히 손잡고 결승선까지 함께 걸어갑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 사진은 용인 제일초등학교의 가을운동회에서 6학년 아이들이 일궈낸 꼴찌 없는 장애물 달리기입니다. 제일초등학교 6학년 2반에는 연골무형성증이라는 신체적 장애를 안고 있는 김기국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 친구를 위해 반친구들이 준비한 선물이라고 합니다. 기국이는 지금까지 운동회 달리기에서 매번 꼴찌를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회가 되면 달리기에 나가기 싫어했다고 합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꼴찌로 주목받기가 얼마나 싫었겠습니까? 그런데 더 이상 그 친구에게 운동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아닙니다. 친구들과 함께 손잡고 달린 잊지 못할 날이고 행복한 날입니다. 이 놀라운 생각들을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하고 그 생각을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몸으로 실천하여 이뤄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정희옥 선생님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이 선생님은 이 학생들이 5학년 때도 담임선생님이셨는데, 그 때의 운동회에서도 기국이가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뒤처지자 옆에서 함께 뛰어주시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시고, 늘 장애를 겪고 있는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 것이 이런 아름다운 운동회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바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자신의 배만을 채우기 위해 사는 어부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전히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그물을 버려두고, 여러분의 욕심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가까이에 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는 사람은 바로 저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불어 넣으신 하나님! 우리는 당신의 섭리로 이 세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들, 우리의 욕심들 때문에 세상이 망가지는 경우를 봅니다. 고통스런 일들이 생기고, 감당치 못할 죄악들이 만연합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은 다음에 가는 하늘나라도 좋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하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불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그대로 살아내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일구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인기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