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무신론 시대 여전히 신을 말한다…"화이트헤드의 신"

감신대 종교철학 장왕식 교수와의 대담 2부

요즘 철학에서는 사변적 실재론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사변적 실재론은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들뢰즈의 철학이 만나면서 들풀처럼 번지기 시작했는데 사변적 실재론에 있어서 신은 무의미한 존재로 다루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러나 화이트헤드 연구가 장왕식 교수(감신대 종교철학)는 사변적 실재론의 꽃을 피운 화이트헤드 철학은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장왕식 교수와의 두 번째 대담에서는 "화이트헤드의 신"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현대 신학계에서 과정신학으로 응용되어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Q: 말씀하신대로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들뢰즈 철학이 만나면서 사변적 실재론이나 신유물론 등의 사조가 등장하게 되었다면 사변적 실재론이나 신유물론에서 신은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화이트헤드에게 신은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들뢰즈에게는 다소 부정적으로 그려지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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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무신성의 시대 우리가 여전히 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장왕식 교수는 요즘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사변적 실재론이 화이트헤드 철학에 접근하는 한 신의 존재에 대해 그저 무시만 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장왕식 교수: 대부분의 사변적 실재론자들은 신을 무의미한 존재로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씀한대로 여기에는 들뢰즈도 해당됩니다. 그들은 다만 인간의 사변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화이트헤드는 하나의 철학적 체계가 정립되려면 그 과정에서 신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신이 있어야만 체계의 정합성, 합리성이 보장된다고 보았던 거지요. 신학적으로 표현해 보면, 이는 신이 있어야 우리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도덕적으로 보다 세계문제에 참여하도록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사변적 실재론자들 자신도 유신론자이건 무신론자이건 간에 화이트헤드 철학에 접근하는 순간 신의 문제를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Q: 그럼에도 들뢰즈는 철저하게 경험주의 입장에서 자기 이론을 전개하고 있고, 신을 세계의 구성인자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들뢰즈의 눈으로 보면 화이트헤드가 철저하게 경험주의 입장에서 자신의 철학을 구축하다가 어떻게 보면 경험 밖의 신을 갑자기 자신의 체계에 편입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장왕식 교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많은 토론을 요하는 문제이지만 거칠고 짧게 대답을 드리는 것으로 하지요.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계의 사물, 사건을 느끼고 향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의 경험만으로도 세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순간, 그리고 윤리적 문제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순간 경험 이외의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하게 됩니다. 칸트는 그러한 요소를 선험적이라고 말합니다. 들뢰즈는 초월론적이라 표현하고 화이트헤드는 사변적, 혹은 형이상학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그러한 요소들이 동원되어야만 우리는 우리의 경험들을 더욱 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선험적 요소로서의 신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가 문명을 발전시키는 측면에서 보아도 경험주의가 말하는 것들만 가지고 그 발전의 추동력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추동력으로서 신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에 대해 실용적으로 요청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지요.

크게 보면 이렇게 합리적, 실용적 이유들에 의해서 신은 요청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변적 실재론자는 여전히 경험론에 입각해서 설명을 해내려고 하고 있지요. 저 같은 경우는 신을 요청하는 것과 경험 내에서 설명을 하는 것 사이에 승패를 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간의 경험을 해명하는데 있어서 이런 두 가지 다른 접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군요.

Q: 경험을 합리적이고 실용적 측면에서 설명하는 선험적 요소로서 무인격적 신이면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화이트헤드는 인격적인 신을 말하고 있지요.

장왕식 교수: 인격이라는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격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속성을 신도 가지고 있는지 하는 질문에 해당되는 개념이거든요. 하지만 그런 질문은 조금은 낡은 사고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쥐는 쥐인 한에서 사물을 본다면 인간도 역시 인간적인 한계 안에서 모든 것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 역시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론 철학에서는 신의 인격성에 대한 접근이 조금은 다릅니다. 질문자의 의도도 당연히 그렇겠지만요.

신의 인격성이라는 주제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신이 인간이 느낄 수 있을 만큼 호소력 있는 영향력을 우리에게 미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의 영향력이 반드시 인간이 가진 속성과 같은 것으로 이해될 필요는 없습니다. 철학에서 신의 인격성을 말할 때도 당연히 신이 인간과 똑같다는 전제 하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신학적이건 철학적이건 신의 인격성과 관련된 진정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우리가 기도를 할 때, 혹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그때 신이 단지 이념이나 말장난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physical 하고 mental 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화이트헤드는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의 개념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화이트헤드 체계의 복잡성으로 인해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화이트헤드에게 신은 단순히 개념적인 것만이 아닌 현실적인 존재이고, 우리의 삶에 여러 측면에서 구체적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러한 면에서 신은 인격적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장효진 씨가 말한 신의 인격성을 그렇게 이해한다면 저는 신의 인격성을 이야기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화이트헤드의 인격적인 신에게는 무신론자나 유물론자들이 주로 주장하는 무인격적인 궁극적 실재로서의 신과는 다른 측면이 있는 것이지요.

Q: 제가 투박한 질문을 드렸는데 매우 세련된 답변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신의 문제가 종교에서는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인 만큼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신의 세상에 대한 구체적인 개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화이트헤드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조금 더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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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화이트헤드는 인격적인 신을 말하고 있을까? 무인격적인 신을 말하고 있을까? 이 같은 질문에 장왕식 교수는 인격이란 말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서 이러한 질문이 낡은 사고의 산물일 수 있다고 오히려 반박하고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장왕식 교수: 그 문제는 사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공헌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또 그 철학을 설명하기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자연주의는 모든 자연의 과정을 신 없이 자연 그대로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이러한 이론이 현대 지성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화이트헤드도 이러한 자연주의적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 일단 인정을 합니다. 자연의 우선성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내 자연주의자들과는 갈라집니다.

자연주의자들은 그들의 포인트가 자연을 구성하는 입자들, 존재들의 자기 구성력에 있고, 화이트헤드도 역시 이러한 자기 향유와 자기 생산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같아요. 하지만 이후의 설명이 달라집니다. 즉 자연주의자들은 자기 구성 이후에 무목적적인 탈주, 탈영토화를 이야기하는 반면에, 화이트헤드는 새로운 창조에 목적이라는 방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문 용어로 세계에는 목적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화이트헤드는 결코 유목적(nomad)이고, 탈영토화하는 새로운 창조의 과정을 부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적극 주장하지요. 다만 무목적적인 새로움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들이 목적이라는 방향성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 목적이 되는 지향점을 개별 존재자들 스스로도 찾아내지만 신은 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목적을 상정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신은 더 큰 목적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소위 유기체 철학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즉 모든 사물을 무기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담지하고 있는 사물들로 바라봅니다. 물론 컵과 같은 일반적 물체에는 목적이 잠자는 상태로 잠재되어 있기에 그 중요성이 크지 않을지라도 인간 레벨을 보면 목적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인간이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인간이 자기 창조 후에 무목적적으로 자기를 탈주하는 들뢰즈 철학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또 그와는 다르게 목적의식을 가지고 나아가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본인 스스로도 목적을 상정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목적의 상정자, 유혹자인 신을 끌어들여 설명한다면 이 세계를 훨씬 더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입장입니다.

Q: 그럼 화이트헤드의 신에 대해 조금 더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교수님께서는 전부터 미학을 매우 강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이트헤드의 신이 가진 미학적 측면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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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화이트헤드의 신이 갖고 있는 미학적 측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장왕식 교수는 화이트헤드에서의 미학의 위상에 대해 섬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장왕식 교수: 미학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감성적 느낌의 발생과정 절차와 그것이 만족을 유발할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감성학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경험자들이 최종적 미를 위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갈 것인지를 다룹니다. 이 둘 모두 매우 철학적인 주제이지요. 그런데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이러한 미학적 두 주제와 모두 충분히 연관시켜볼 수 있습니다. 즉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모든 존재자들은 감성적 조건 하에 있는 것이지요. 즉 그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감성학입니다. 이를 조금 더 화이트헤드의 용어로 살펴보자면 화이트헤드는 모든 존재들이 느낌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모든 존재자들은 각자의 단계들을 이루는데 모든 단계들의 경험의 기초가 바로 감성적인 느낌인 것이지요. 그래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첫 번째 의미에서 미학적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느낌은 더 상위의 경험들로 통합되고 이 통합이 최종적인 미, 조화를 지향하게 됩니다. 이때 신은 그 최종적인 목적인들로 각 존재들을 유혹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번째 의미의 미학적 주제를 화이트헤드 철학은 담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주가 미를 향한 목적을 담지하고 있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나 신이나 모두 화이트헤드의 우주가 지향하는 목적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면, 이러한 측면에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신과 최종적으로 관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또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신은 미학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교수님의 말씀을 정리해보면 미학의 주제 중 하나는 감성적인 느낌들이고, 다른 하나는 최종적인 미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은 특히 후자인 최종적 미적 느낌, 혹은 만족에 관련된 인자로 화이트헤드 철학에서는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윤리학도 역시 모든 존재자들이 최상의 만족을 향유할 것을 고민합니다. 그래서 미학과 윤리학의 주제가 얼핏 보면 별반 다른 것이 없다고도 보이고, 따라서 조화와 미의 세계를 도모하는 신의 미학적 기능이 선한 세계를 도모하는 윤리적 기능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장왕식 교수: 화이트헤드는 형이상학자입니다. 즉 모든 주제들이 정합적으로 잘 어울리는 체계를 세우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중심으로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전 우주의 존재들 모두가 최상의 만족을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합니다. 따라서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은 단지 인간에게 국한된 윤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주의 다른 피조물의 경험 세계도 다룹니다. 그래서 미학적 접근이 중요한 것이지요. 여타 피조물들의 경험은 인간의 경험과 달리 단지 느낌 혹은 감성적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니까요. 이런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루는 것이 미적인 신의 기능이라고 우리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장효진 씨가 잘 지적한대로 이것은 다시 윤리적인 문제로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학의 중심적인 문제가, 인간 주체는 어떻게 타자와 조화를 이루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윤리적 문제로 확장되는 것이지요. 분명 미학과 윤리학은 서로 다른 분과지만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에서는 통합됩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종합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의 체계는 세계에 대한 미적 설명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설명의 좋은 툴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Q: 화이트헤드의 체계에서 신이 미학적 측면과 윤리적 측면이 얼핏 잘 구분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잘 종합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장왕식 교수: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장효진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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