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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성공 아닌 섬김"을 복음선교의 좌우명으로 삼은 조선인의 어머니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입력 May 04, 2017 07:38 PM KST

머리말

서서평
(Photo : ⓒCGNTV )
▲서서평 선교사의 일대기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의 포스터

서서평(徐舒平) 선교사는 본명이 엘리자베스 요한나 세핑(Els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으로서 독일 비스바덴(Wiesbaden)에서 태어났다. 9세에 미국으로 이민가서 간호학교를 졸업했고, 한국 선교를 지원하여 미국 남장로교선교부의 간호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32세에 조선으로 와서 1912년부터 1934년 54세로 소천하기까지 22년 동안 사역했다. 그녀는 일제점령기당시에 궁핍하여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간호선교사로 활동하였기에 잘 알려지지 못했다.

이번에 CGN TV는 이 선교사의 일대기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를 첫 번째 프로젝트로 제작했다. 4월26일부터 전국적으로 개봉하여 상영되고 있는 이 영화는 '조선의 마더 테레사'로 불린 한 독일계 미국인 선교사의 사역 현장과 출생과 사역 내용을 담고 있다. 일종의 선교사 일대기 다큐멘터리로서 그녀의 진정한 섬김과 헌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필자는 지난 4월27일 기독교학술원 영성수사과정 목사 생도들 20여 명과 함께 <영성실천의 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필자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소감을 피력해본다.

1. 간호 선교사에 대한 최초의 조명

여태까지 한국교회는 주로 부흥전도와 교육선교를 중심으로 하여 선교사들의 업적을 평가하였다. 그리하여 초기선교사들 중 장로교의 언더우드, 감리교의 아펜셀러, 평양 숭실전문의 베어드, 이화전문의 스크랜턴, 평양신학교 창립자 마포삼열 등 말씀 선포자들과 교육선교사들이 주로 연구되고 소개되었다. 이들의 선교 정신과 업적을 더 깊이 연구하는 것은 필요하다. 숭실대학교에서는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그동안 조명되지 못했던 설립자 베어드(배위랑) 선교사의 선교 일대기와 그의 사상과 업적, 선교 일기에 관하여 발굴되지 못한 부분들을 조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 특히 이번 선교사 일대기 영화를 통하여 여성 선교사, 더욱이 간호선교사에 대한 조명이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시도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본다. 서서평 선교사는 일제 강점기인 1912년 한국에 미국 남장로교가 공식적으로 파송한 간호사요 선교사 신분으로 입국하여 한일장신대의 전신인 이일학교, 대한간호협회 전신인 조선간호부회, 여전도연합회 그리고 광주 및 제주 여전도회 등을 창설하는 등 호남 지역의 교육 및 간호선교의 길를 연 선구자였다.

그녀에 대한 최초의 우리 말 자료로는 백춘성 장로가 저술하고 대한간호협회가 1980년에 발간한 그녀의 일대기 『천국에서 만납시다』 (선교사 서서평 일대기)라는 저서(254쪽)가 있다. 이 저서에서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조선 개화기(조선 말엽)에 한국에 와서 서울과 가장 취약한 지역인 군산, 광주 등지에서 간호학교를 설립하고, 육아사업, 윤락여성 구제, 빈민구제 등으로 일생을 바친 그녀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다("천국에서 만납시다," 경향신문 1980.10.17). 이번 서서평 선교사 일대기 영화는 그녀의 출생까지 추적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녀의 섬김의 삶을 고증하고 있어서 그녀의 선교사로서의 섬김의 삶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더욱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2. 한일장신대의 전신 이일학교와 한국간호협회의 전신 조선간호부회 설립

서서평 선교사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열악했던 일제시대에 여성교육과 간호 분야에 헌신하여 오늘날 한일장신대학교의 전신인 이일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선교에도 기여하였다. 최초의 여자 신학교인 이일학교를 세우고 어린 소녀들과 처녀들에게 문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간호사로 사역했으나 성경 교사로서 많은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했다. 1934년 서서평은 별세할 때까지 열심히 봉사하고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오늘날 한일장신대의 전신이다.

그리고 현 대한간호협회 전신인 조선간호부회도 창립했다. 그녀는 한국어를 무척 잘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를 탁월하게 이해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전주와 군산, 광주 등에서 성경과 실과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군산구암 예수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뛰어난 기획력과 사업수완을 발휘해 인근 타병원보다 한국인 조수, 입원자수, 진료횟수 등에 있어서 월등히 높은 성과를 보였다(임희모, "서서평은 영혼과 육체·관계가 있는 인간으로 이해한 통전적 선교사," 서서평연구회, 제10차 서서평 학술대회 개최, <국민일보> 2017.04.28). 그녀는 소천할 때까지 22년 동안 한국 땅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기면서 간호학계의 선구자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작은 예수' 또는 '조선의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3.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아픔을 신앙적으로 승화

서서평 선교사는 미혼모인 생모 안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날 때 버림받았고, 청소년 시절 미국에 가서 이민간 어머니를 만나려 하였으나 배척당했다. 이후, 선교사로 지내다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귀국하여 다시 어머니를 만나려 하였으나 수척한 데다 한복을 입어 초라한 그녀를 어머니는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독일 천주교 신자였는데,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동방의 미개한 나라에 선교사가 되어 자기에게 인사하러온 딸이 그녀의 세상적 눈에는 거지로 보였을 것이다.

생모로부터 버려지고 상처투성이였던 청소년 시절에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간호학교에 입학하여 간호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졸업 후 변변한 치료시설이 없이 가난과 전염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미개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병든 자들이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는 선교부 포사이스(Forsythe) 선교사의 소식을 접하고서 한국 선교를 지망하였다.

그녀는 조선에 와서 당시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한센병 아이들 등 고아 14명을 자녀로 삼고, 오갈 데 없는 과부 38명과 한 집에 살면서 이들을 돌보았다. 그녀는 나환자와 걸인, 무지하고 힘없는 여성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신의 아픔을 조선에 와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고아들을 입양하고 돌보는 신앙적 승화를 실천했다. 여기에 그녀의 인간적인 삶의 위대성이 있다. 출생의 비천함과 소외성을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완전히 변화시킨 것이다. 가난하고 비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것을 내어준 섬김의 삶은 많은 조선인들을 변화시켜 새 삶을 살도록 했다.

4. 미혼모 출신자들에게 긍지를 심어주는 인권 조명: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

미혼모의 아이들이 받는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멸시와 냉대를 그녀는 신앙 안에서 섬김의 삶을 통하여 극복하였다. 영화 제작진은 독일에서 그녀가 태어난 동 사무소를 방문하여 그녀의 출생 신고를 확인하면서 그녀의 아버지 이름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사실, 독일 남부 휴양도시인 비스바덴이라는 당시 휴양지의 숙박업소에서 청소부로 일했던 그녀의 어머니 안나가 독일인 남성들과의 일탈 속에서 원치 않았던 아이로 태어난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 아기를 친정어머니(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이민한다. 서서평은 세상적으로는 축복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호적에 없는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난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미혼모의 자식이요, 어미로부터 버림받는 유년 시절의 절망과 존재감 상실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을 방황으로 내 몬다. 그러나 그녀는 이 유년시절의 아픔을 십자가 신앙으로 승화시키고 자신의 삶을 선교사의 삶으로 전환시킨다. 여기에 그녀의 인간 승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 부분은 서서평 선교사를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더욱 복음적인 인물로 조명되는 순간이요 역사적으로 불우하게 태어난 사생아들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귀한 삶의 이야기다.

이러한 서서평 선교사의 출생 사연은 비록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출생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지와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가 1970년대 독일에 유학했을 때 당시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Billy Brandt)가 사생아였음을 독일인들은 알고 있었으나 그의 정치적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수상으로 뽑았다고 말한 것을 지도교수 부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서양인들은 개인의 출생이나 신분이 중요하지 않고 그의 인간됨을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바르며 성경적 관점에도 일치한다.

그녀의 출생사연과 관련하여 예수의 족보를 살펴볼 때, 그 족보에도 흠이 있는 다말, 라합, 롯, 바세바 등 여인들이 등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인간 혈통의 전통을 넘어서 예수의 선조가 된 구속사적 은총의 증인들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 아들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새로운 인간 삶의 지평을 열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에 따라 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난 자들이라"(요 1:13). 마찬가지로 아무리 성직자의 가문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패륜아적인 삶을 살면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에서 제거됨(삼상 2:22, 34)을 받으나, 기생 라합이라도 하나님의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삶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다.

5. 서서평 선교사의 좌우명: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서서평 선교사의 책상에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이라는 좌우명이 붙여져 있었다. 그는 입국하여 22년간 조선인으로 살면서 '간호사'란 이름보다 '어머니'가 더 잘 어울린 푸른 눈의 선한 이웃으로 살았다. 한센병자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는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내어주고 정작 자신은 영양실조로 풍토병에 걸려 삶을 마감하였다. 그녀가 떠난 남루한 방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남에게 나눠주고 남은 담요 반 쪽, 동전 7전, 그리고 강냉이 2홉뿐이었다고 전한다. 그녀는 당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절망 속에 살았던 조선인들을 돌보았던 진정한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신까지 의학해부용으로 기증한 철저히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따른 섬김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한국의 가난한 영혼들 가까이에서 삶을 살았다. 선교부에서 오는 선교비의 절반을 당시 궁핍한 조선교회 운영 헌금으로 바치고 나머지 절반으로 구제하고 그 나머지 절반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였던 관계로 그 당시 열악한 경제적 여건의 한국에서 서양 선교사로서는 드물게 영양실조에 걸리고 풍토병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참석한 1천여 명이 "어머니"라고 목 놓아 우는 가운데 광주 최초로 사회장으로 치루어졌다고 전한다.

6. 행복이란 소유가 아니라 가난한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

서서평 선교사의 삶은 오늘날 세계경제 10위권의 대한민국이 누리는 경제적 번영시대에 행복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다. 1912년-1934년이라는 암울한 일제 식민시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생활여건이 나아졌지만,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녀는 출생이 불행했고 친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처지였으나 그것을 신앙적 섬김으로 승화시켰다. 당시 일제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대에서도 우리 한국인들은 그날의 충실함으로써 행복하게 살았다. 전도서가 말하는 바 같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삶의 행복이란 세속적 번영과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에 있다.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삶, 이웃을 위하여 주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에 일제의 암울한 식민지 시대에서는 자살이 많지 않았으나 오늘날 가장 풍족한 시대에 자살공화국이 된 것은 남과 비교하여 시기질투하고 욕심이 많은 한국인의 심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행복이란 물질적 풍요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가난함과 오늘 처지에 대한 감사와 만족이라는 겸허한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임을 교훈해준다. 특히 서서평 선교사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 삶의 행복에 이르는 것임을 알고 실천했던 것이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의 행복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7. 서서평 일대기 영화는 초기 선교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

서서평 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선교사 7인 중 유일한 한국 파견선교사였다. 그녀는 당시 한국인을 미개한 종족으로 취급한 일반 서구 선교사와는 달리 자신의 이름까지 한국명으로 개명하고 조선인으로 살면서 간호사란 이름보다 '어머니'가 더 잘 어울린 삶을 살았던 푸른 눈의 선한 이웃이었다. 그녀는 예수님이 누가복음 10장30절-37절에서 가르치신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영화는 아픔과 고통을 가진 한 여성(서서평)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고 아픔을 승화시키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수많은 업적에 비해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 독일 비스바덴과 뉴욕, 전라도 일대와 제주도까지 전 세계를 돌며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여 서서평의 삶의 흔적을 밝혀낸 점은 영화의 공헌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맺음말

출생시부터 상처 많았던 그녀가 낯선 땅에 와서 조선의 작은 밀알이 되어 상한 영혼들을 치유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다. 자신의 한(恨)을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생소한 한국인에 대한 사랑의 섬김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서서평 선교사의 일대기는 오늘날 부와 명예와 교회의 높은 자리를 추구하는 성공과 번영 신앙에 물든 일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큰 도전으로 평가된다. 그녀는 지극히 작은 소자들과 일치된 삶을 실천한 작은 예수요 하나님의 여종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교회지도자들, 그 가운데서도 주로 일부 대형교회 지도자들과 연합기관들의 지도자들의 욕심과 권력 싸움과 분열로 인하여 사회로부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오늘날 한국교회가 2016년 12월 통계청 발표에 불교를 제치고 한국사회 제일의 종교가 된 데에는 이들 초창기 선교사들의 헌신의 씨가 뿌려져 열매를 맺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녀는 종교를 뛰어넘는 사랑과 헌신으로 가장 낮은 자들을 섬기며 진정한 예수의 사랑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녀의 삶은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표현이었으며, 신앙이 종교와 인종의 벽에 갇히지 않고 그 벽을 넘어서 이웃인 인류를 섬기는 보편주의로 나아가는 것임을 보여주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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