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사설] 촛불 시민 혁명에 응답하는 정치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논설주간

입력 May 12, 2017 07:11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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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촛불의 대열이 거대한 형상을 이루며 부패한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6차 범국민대회의 촛불 집회 모습.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 예수를 믿고 교회와 성당에 다니는 신앙인들 다수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룩한 표를 던졌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인 투표자의 39.3%와 천주교인 46.6%가 문재인 후보에게 손을 들어 주었다. 기독인들의 투표를 합치면 85.9%이다. 한때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시장 광장과 헌법재판소 앞에 몰려 나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소리 높여 반대하던 기독교인들은 어느 누구에게 한 표를 던졌을까 싶게, 그들도 민주주의의 힘 앞에 굴복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한 기독교인들은 왜 후보 1호에게 선거 도장을 찍었을까? 우리는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물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은 무엇을 원했던가?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시민 혁명에 응답해야 한다. 촛불 시민들의 광장의 함성을 잊어도 안 되고, 한국 기독교 신앙인들의 한 표 한 표가 말하는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촛불 민심에 응답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 시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믿음이었고, 지금도 믿음이고 내일도 믿음이다. 그동안 10년 동안이나, 아니 그 이상, 오랫동안, 우리 국민은 정부가 하는 말, 대통령이 하는 말을 믿지 않고 살았다.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하고, 국민들을 속이고, 국민들 앞에 서서 솔직 담백하게 정부의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노력해 보는 정부와 대통령을 보기 힘들었다. 제발 박근혜 대통령처럼 국민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국민들의 바램이다. "믿음직한 대통령"이 "든든한 대통령"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국민의 믿음을 얻으려면 국민들 앞에 자주 나타나야한다."대통령과 대면보고가 필요하세요?"하고 질문하는 대통령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숨겨둔 친구라는 사람이 손 보고 고쳐 준 연설문을 겨우 읽어 내려가는 대통령의 연설에 믿음은커녕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의사소통은 되지를 않았다. 소통이 되어야, 대통령의 얼굴을,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신문에서 보고 들을 수 있어야, 소통이 가능하고, 믿음이 가고, 겁도 없이 대통령에게 말도 걸어 보고, 편지도 쓰고, 호소도 해 보고, 잘못한다고 야단도 치고 잘하면 칭찬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소통의 지도력, 말이 통하는 대통령을 촛불은 원했던 것이다.

촛불 시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우리의 희망은 과연 무엇이었나? 우리는 이전 대통령들이 하는 일에 절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대통령들이 저지른 실책과 실수들을 되돌려 놓고 시정해야 한다. 제일 먼저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헬 조선"을 "희망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가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시험공부나 하고 대학 입시 준비나 하고 입시 전쟁터로 만들어 온 것을 고쳐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건강하게 고민하고 꿈을 키워 가는 밝고 맑은 학교를 마들어야 한다. 더욱이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 권력자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역사책들과 국어 사회 책들을 폐기해야 한다. "국민 교육" 에 앞서 인간 교육을 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학교의 교과서에서 정부는 손을 떼야 한다. 학교 선생들에게 교육을 맡겨야 한다. 교육부는 학교 선생들과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무엇을 주입시킬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학교와 선생들과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해고 그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행정을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글 쓰는 문인들과 작가들, 노래하는 젊은이들, 춤추는 무용인들, 과학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는 과학자들, 인문 사회과학자들, 공학도들,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추고 연극하고 공부하고 글 쓰고 가르치는 자유로운 세상을 원한다. 말 한마디 노래 한 구절이 혹시나 종북 좌파로 몰리지 않을까 벌벌 떨면서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시대는 가야 한다. 노동조합을 했다고, 비정규직 문제를 거론 했다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유신시대처럼 노동자 "불랙 리스트"를 만드는 세상은 다시는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정신세계는 다시 살아 날 수 있다.

우리 광장의 촛불이 횃불이 되어 온 세상을 밝히면서 광명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은 한국 언론의 힘이었다. 정부는 언론을 길들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언론을 매수할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 언론이 빛을 내지 못하면, 바른 말을 못하게 되면, 정부는 신뢰와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아가서 정부는 헌법을 위반하게 되고, 권력이 비리에 빠지고 무능과 부패로 썩어 간다. 정부는 언론에 귀를 기우리고 언론이 국민의 소리라고 믿고 들어야 한다. 그래야 언론이 바르게 국민의 소리를 전하고 정부와 소통이 가능해 진다.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노래 소리가 사라진지 오래 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잊을 수 없는 희망은 평화이며 통일이다. 이 노래를 다시 살려야 한다. 남 북 직통전화를 다시 개통해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을 다시 열어야 한다. 이산가족들이 모두 다 죽기 전에 만나게 해야 한다. 금강산에 등산하도록 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곧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를 논하고 인도적 지원을 계획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현실화하고 그러면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수순을 밟아 나가야 한다. 그래야 중국의 관광객들이 마음 놓고 금수강산을 찾아 올 수 있다. 그래야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회개하고 평화 헌법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사드를 스스로 가져 갈 것이다. "평화는 우리의 소원, 통일은 우리의 희망...." 힘 찬 노래 소리가 들려오게 해야 한다. 휴전선을 넘어 가고 오는 기차의 힘찬 기적 소리를 듣고 싶다.

새롭게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출범하는 문재인 정권은 "사랑의 정권"을 원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사랑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촛불 시민들의 바램이고, 대다수 기독교 신앙인들의 희망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의 사랑,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사랑에 굶주려 왔다. "사랑의 정치"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치" 하늘나라에서나 통하는 정치라고 비웃지 말자. 세월호 참사를 당한 부모들에게 대통령은 사랑의 손길을 거부해 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사랑의 외교를 펴지 않았다. 폭정과 굶주림을 피해서 대한민국을 찾아 온 "탈북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지 않았다. 우리는 사회적 사랑, 정치적 사랑에 굶주린 백성들이 되었다. 이제 우리 정치에서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가 교회가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신앙을, 종교를 가지고 "축복"을 팔고 사고하는 장사를 버리고, 참된 사랑과 자비의 종교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사랑의 정치," 하나님 나라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이 제일이라고 한 바울 사도의 "사랑의 편지 구절"을 새로 출발하는 문제인 정부와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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