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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의 영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신명기 10장 12-22절, 요한복음 16장 5-15절

[남신도들의 독서 토론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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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

2남신도들, 즉, 포도나무회가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독서토론모임에서 6월의 책으로 제가 번역한 『교회』를 택하고, 어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미 읽으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이 책의 1장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나오고, 2장에는 여러 가지 난관이 있다 하더라도 교회에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옵니다. 영국 옥스퍼드 교구의 주교였던 저자 존 프리처드 신부님은 10가지 교회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열 가지를 하나씩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나는 주로 무슨 이유로 교회에 다니고 있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삶의 여정을 걸으면서 때로 멈추어 자신을 살피기 위해, 둘째,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틀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셋째, 시시하고 평범한 문화로 가득한 이 시대에 도덕적 진지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넷째, 공동체를 상실한 문화 속에서 참다운 공동체를 정직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기 때문에, 다섯째, 교회는 배우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므로, 여섯째, 교회 공간 그 자체가 주는 거룩한 무엇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에, 일곱째, 목사의 설교를 통해 예상치 못한 깨달음과 희열을 느낄 수 있기에, 여덟째, 어려운 시간이 닥쳤을 때 교회 공동체를 통해 힘을 얻으므로, 아홉째, 교회에는 한 두 명의 성인이 있으며 그들에게서 감동을 받기 때문에, 열 번째, 하나님과 교감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입니다.

남신도 회원들끼리 이 중에 어떤 것이 마음에 드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거기에 함께 했던 이현재 청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친구들에게 만약 이 부분을 가지고 얘기를 한다면, 친구들이 제게 꼭 교회에 가야만 이런 것을 체험할 수 있냐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 현재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꼭 교회를 가야만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을까? 교회가 세상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공동체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곳이며,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힘을 주고, 도덕적으로 진지하며,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틀을 제공하고 있는가?" 프리처드 신부님은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경험을 이어주는 목사의 설교를 통해 삶이 변화하는 일들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저는 가끔 제 설교가 과연 JTBC의 뉴스룸을 진행하는 손석희 앵커의 앵커 브리핑보다 더 나은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때론 반성하고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나마 인간미를 느끼게 해 주는 사람다운 이들이 교회에 더 많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를 보면 정말 그러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또한 교회에서 같은 교인들이나 목회자들에게 상처받고 떠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말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진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계진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시고 새교우 환영식을 할 때 하셨던 말을 혹시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하나님을 안 믿는 것보다 잘못 믿는 것이 더 두렵고 떨리는 일이고,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이 잘못 믿고 있으면서도 그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제대로 잘 믿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목사나 교인이나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잘 믿고 있는 것일까요?

[많은 신들과 참 하나님]

오늘 구약성서의 말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으나, 당신들의 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주님이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신의 이름을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주인 노릇을 하며 우리들을 유혹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뭐니뭐니해도 하나님 노릇하며 가장 센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돈입니다. 돈 때문에 쉽게 유혹에 넘어가고,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상처받고, 돈 때문에 의리를 저버리고, 돈 때문에 사람다움마저 포기합니다. 지난 5월, SK플래닛이라는 곳에서 50세 이상 남녀 890명에게 어버이날 받고 싶은 선물을 하나만 골라달라는 질문에 남녀 모두 현금(남성 38.1%, 여성 48,6%)이라고 답한 비율이 제일 높았습니다. 2위는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싶다는 것이고, 3위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인 남녀 1,848명에게 어버이날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62.4%가 용돈을 챙겨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현금을 말한 것이지요.

저도 이런저런 곳에서 강의를 하고 나서, 강의료를 받을 때 그 액수가 너무 적으면, 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저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강의를 하는 편이지만 강의를 하고 나서 강의료를 조금 더 많이 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돈의 유혹은 그만큼 강합니다. 그래서 오늘 구약성서의 본문에도 하나님은 뇌물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언급이 있을 정도입니다.

두 번째 우리들을 참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도록 하는 것은 자신들의 삶에서 겪은 경험만을 맹신하는 고집스런 마음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음에 할례를 받고, 다시는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했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호렙산에 올라간 사이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고 그것을 섬기려 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은 어떤 모양이든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인데, 이 계명이 나오게 된 것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 자기가 겪은 것만을 믿으려는 강한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라도 그것을 믿게 됩니다. 모르는 채 있는 것보다는 거짓말이라도 믿는 것이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뉴스에 속아 넘어가고, 그래서 거짓말들이 난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남과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잘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쉽게 그 사람을 위험한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자기도 모르게 단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낯선 사람이 자기에게 다가왔을 때, 선한 사람으로 보았다가 자기에게 피해가 오는 일이 생기기보다, 아예 경계 대상으로 삼아 조심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보이지 않아 알 수 없고 경험하지 못해 불확실한 것보다는 보아서 알고 겪어서 해보았던 것에 안주하고 그것만을 확신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신앙인은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은 눈에 보이는 것, 자신이 체험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섭리로 믿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 두 가지, 즉, 돈과 자기 체험에 대한 맹목적 확신이 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왜곡시키는 가장 큰 주범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는 매우 심각한 지경이 됩니다.

한국 기독교가 한참 성장할 때, 한국경제 또한 성장일로에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매주 하나님 말씀에 힘입어 어려움과 여러 가지 고난들을 잘 견뎌내고,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면, 자연적으로 이전보다는 훨씬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그리스도인들이 간증을 통해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으면 물질적 축복을 받는다는 논리와 신념을 구축하게 됩니다. 여기에 목사의 설교가 불을 지른 것도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을 믿으면 물질적 축복을 받는다는 기복신앙을 뿌리 뽑지 못하게 되었고, 믿음이 부족해서 사업에 실패했다는 식의 설교가 남발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말라기 3장 8-10절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고, 오늘날 교회에 곧바로 적용하여 개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이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복을 부을 것이라는 완전히 잘못된 사고방식이 마치 참된 신앙인양 한국교회에 두루 퍼져 있습니다. 현세에서 물질의 축복을 받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것은 재앙을 없애고 복을 비는(除災招福) 무교(巫敎)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입니다. 또, 현세에서 높은 직책을 얻어 명예를 드높이는 것은 유교(儒敎)를 편협하게 해석한 이들이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는 고매한 기독교적 가치가 아님에도 버젓이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인양 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침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성서의 말씀을 차분히 읽어만 봐도,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며, 참된 주님이신 이유는 하나님이 의로우신 재판관이시자, 약한 자들의 변호인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구약을 통틀어서 면면히 흐르는 하나님의 공의와 약자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면서 물질적 축복과 세상적 성공을 바라고 그것만을 외치는 교회는 엄격한 의미에서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 간판을 내세우고 예배하고 찬양이 울려 퍼진다 해도 거기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고, 우상숭배로 가득한 곳이 됩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오늘 말씀처럼 가장 먼저 나그네, 즉, 어디에 의지할 것 없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며, 그에게만 충성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축복은 덤으로 얻는 것이지 핵심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가난해지자는 말이 아닙니다. 가난은 불편하고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불편하고 힘든 삶을 살기 원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돈을 법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나눕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함께 빈곤을 벗어나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를 돌보려면 우리에게 최소한 그를 돌볼 자산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높은 가치대로 살아서 모든 사람을 더 높은 가치로 이끄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진리의 영]

바로 오늘 예수께서 자신이 떠나시는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을 약속하시는 모습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높은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고, 사도행전에서 보도하는 대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서는 성령의 매우 다양한 활동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수면에 운행하시며 세상을 창조하는 자리에 있었고,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께 내려오셔서 예수의 사역을 이끄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 교회의 탄생도 성령의 임재 가운데 가능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이도 바로 성령입니다.

바로 전에 신앙인들이 많은 신들 사이에서 우상과 하나님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한국의 교인들은 성령에 대해서도 잘못 이해하거나, 치우쳐 이해하거나,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성령충만"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부흥회에서 박수치며 소리 높여 찬양하고,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통성으로 방언을 하는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질병을 고치고, 안수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이 떠오르십니까? 이것 외에 또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만약에 우리가 방언이 터져 나오거나, 신비한 치유의 능력이 있을 때만 성령이 임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진실로 성령에 대해서 매우 일부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한신대학교 류장현 교수의 진단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 속에서 발생한 광신적인 성령운동으로 "성령중독증"에 걸려 있고,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 제대로 된 성령을 잊어버린 "성령 망각증"에 걸려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에 의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고,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그분의 사역에 관련해서만 일러 주시고 알려 주십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인들은 그 종교가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많은 종교체험을 합니다. 병이 낫고, 신적인 음성을 듣기도 하고, 예언도 하고, 심지어 전혀 모르던 언어를 갑자기 하기도 하고, 모르던 것을 갑자기 깨닫기도 합니다. 이 모든 신비체험은 다른 종교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이런 종교체험을 곧바로 성령 체험과 동일시하는 것은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습니다. 첫 이단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고, 많은 광신자들이 이런 신비체험에 매몰되어 상식을 파괴하고,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일삼아 왔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성령 체험이란 오늘 요한복음서가 보여주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하나님의 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분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관련 없는 체험은 아무리 신비스러워도 성령의 체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신앙을 지닌 그리스도교는 성령을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님과 관계 지어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파라클레토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은 법정에서 때로는 변호사로 때로는 검사로 활약하는 조력자를 뜻합니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변호하는 한편, 예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고발하는 분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정확하게 한글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보혜사라는 번역은 보호하고 은혜를 베푼다는 포괄적 의미를 갖습니다. 무엇이라 번역하든 파라클레토스의 역할에는 변호하거나 고발하여 심판하는 증인의 역할,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 위로하고 가르치는 역할이 확실하게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6장의 일부를 읽었지만 오늘 예수님의 설교는 13장부터 16장에 이어지고, 그 전체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의미를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제자들과 관계를 맺으며(14:16-17),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계시하고, 제자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14:25-26), 예수를 증거하고(15:26), 세상을 책망하고(16:8-11),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분입니다.(16:13). 더 풀어 보자면 예수가 계시지 않는 가운데서 보혜사 성령은 홀로 세상 법정에 서서 자신의 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그리스도인들 곁에 서 있는 변호사 역할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가 떠난 빈자리에서 예수의 말을 대신 전해 주는 대변자, 중재자이기도 하고, 예수 없이 홀로 세상의 박해에 맞서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위로해 주는 분이기도 합니다. 즉, 삶의 구석구석 개입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일일이 권면하는 분입니다.

생명사랑 가족 여러분! 이런 요한복음서의 성령이해가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여러분 마음에 와 닿습니까? 아니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합니까? 그동안 한국교회가 "성령충만"이라고 말한 것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 요한복음서가 말하는 성령은 육체의 몸을 지닌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오직 믿음으로 감당했던 제자들이 겪는 일들과 관련 있습니다. 돈과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할 때만 어쩌면 우리는 참다운 의미에서 성령을 체험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성령은 세상을 심판합니다. 성령은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8절). 즉, 세상은 예수가 죄인이었으므로 그가 십자가 처형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세상은 자신이 의롭다고 여겨 예수를 심판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박해합니다. 세상의 이러한 그릇된 개념들은 성령에 의해 교정되어야 하는데 예수를 배척한 것이 오히려 죄이며, 예수님만이 의로운 분이셨고, 이제 심판을 받는 이는 예수가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의 통치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세상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1:10) 성령을 알지 못하기에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을 통해 부름 받은 제자들을 통해 세상은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오늘날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세상 이전에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합니다. 성령의 이름을 남발하며 성령을 왜곡한 것이 도리어 그리스도인들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몰트만이 말하는 종교개혁의 정신]

20세기의 최고의 조직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 중 한 분인 몰트만 교수가 한국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연세대에서는 "신학의 미래"에 대하여, 한신대 신대원에 오셔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완의 종교개혁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에 관련한 강연을 하였습니다.

한신대의 강연에서 제가 흥미롭게 들은 것은, 천주교회와 개신교회가 배척하였던 재세례파에 대한 몰트만 교수의 새로운 평가였습니다. 재세례파는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때 스위스의 취리히의 젊은 지성인 집단에서 처음 비롯되었는데, 재세례파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인세례만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와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성인 세례를 받는 것만이 유일한 세례라고 보았고, 재세례파들은 교회는 국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재세례파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이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로운 전쟁을 행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으며, 시민 선서를 하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재세례파들은 초대 교회의 제도와 정신을 복원하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이런 재세례파 교인들을 '광신자'(Schwärmer)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91세의 노(老)신학자 몰트만 교수는 이들이야말로 유일하게 '오직 믿음으로만' 종교개혁운동을 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몰트만 교수가 이렇게 평가한 이유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국가종교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고 독일 제후들을 시켜 '기독교적인 칼'을 들게 하여 10만 명이나 되는 농민을 학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루터파들은 기득권자들인 영주의 종교, 제국의 종교가 되었는데, 진정으로 칼을 들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재세례파였다는 것입니다.

신학과 휴머니즘을 배운 미샤엘 자틀러 성 베드로 수도원 원장은 "만일 터어키가 침략해 오더라도 우리는 저항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하지 말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서 군중들에게 처참하게 공개적으로 처형당했습니다. 이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늘 아버지께 온전히 내어맡기며 그분을 신뢰한다. 세상에 속한 그 어느 것으로도 결코 무장하지 않는다." 많은 재세례파들은 종교개혁운동 시기에 평화를 위해 결코 칼을 들지 않고 보습만을 소유한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무기 쓰는 폭력을 금지시켰기에 이들은 병역의무를 거부하였고, 예수님이 맹세하지 말라고 해서 맹세도 거부하고, 세상적인 고위직을 맡지도 않았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으로 가득한 사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높은 신분을 얻고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는 것인가요? 우리는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잘못 배워왔고, 그래서 나쁜 습관이 많이 들었습니다. 성령충만하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단 한 분 하나님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 가득 찬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사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려는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진리의 영에 힘입어 참을 참이라고 말하고, 거짓을 거짓이라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전에 자신의 무지를 타파하고 세상에 물든 때를 씻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많지 않아 보입니다. 진정 진리의 영을 찾으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 교회가 암스테르담에 모여서 인간이 벌이는 무질서에 대해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드린 기도문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아니오'와 진정한 '예'를 말할 수 있게 가르쳐 주시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거슬리는 모든 것을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부합되는 모든 것을 향해, 법을 제대로 세우려는 모든 사람을 향해, 평화를 이룩하려는 모든 사람을 향해, 정의가 깃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나가려는 모든 사람을 향해 '예'라고 말하기를."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진지하게 실천하도록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 진리의 영으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거짓 앞에서 "아니오"라고 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의 공의를 펼치는 사람들에게만 "예"라고 말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에 우리의 생명을 의지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이신 당신께 우리를 맡기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 여기에 들어가시면 설교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SoulLoveCommunity/UkVO/313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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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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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