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서평] "분열이 아니라 일치의 관점에서 시작하라"

루터교와 로마가톨릭 공동위원회, 『갈등에서 사귐으로』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 2017)

글/ 서광선 박사 (이화여대 명예교수)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

신앙직제
(Photo : ⓒ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
▲『갈등에서 사귐으로』의 표지

지난 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사무실에 들렀다가 한권의 작은 책자를 선물 받았다. 책 이름은 『갈등에서 사귐으로』, 영어책 From Conflict to Communion의 한글 번역본이다. 이 책은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라고 하는 긴 이름의 신학자들의 모임에서 발간한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에 "Faith and Order"(신앙과 직제) 위원회라는 것이 있어서 1970년대부터 한국의 서남동 목사 등 저명한 한국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이 위원회의 모임에 참여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한국에도 그런 협의회가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의 말미에 이 협의회를 설명하는 글은 다음과 같다.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는 한국정교회, 한국천주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그리고 NCCK회원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한국루터교회로 구성된 협의체로, 2002년부터 본격화된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활성화와 성과에 힘입어, 2014년 5월 22일 창립되었습니다." (135쪽)

그리고 이어서, 협의회가 하는 일은 "...가깝게 사귀기, 함께 공부하기, 함께 행동하기, 함께 기도하기를 통해 한국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교파간의 신앙적 친교를 이루고,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복음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신앙의 발걸음을 함께 해 나갈 것입니다"(같은 쪽)라고 협의회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발간사"를 쓴 한국천주교 측 김희중 대주교와 NCCK 측 김영주 목사에 의하면, 이 책은 "... 2013년에 <루터교와 로마가톨릭 공동위원회>가 종교개혁을 함께 기념하면서, 갈라진 상처를 치유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 이 책, 『갈등에서 사귐으로』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문서의 목적은 "... 우리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다름이 갈등과 반목이 아닌, 친교와 사귐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도약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배우게"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5쪽). 이 2013년 문서는 2017년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발표한 루터교세계연맹과 로마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평의회의 공식 공동기념문서라고 한다.

갈라져 나오게 된 이유들

루터교를 비롯하여 500여 년 전 유럽의 교회들이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갈라져 나오게 된 이유들을 이 책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칭의의 문제, 즉, 면죄부를 사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의 행위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성경과 전통의 문제, 그리고 성찬과 세례에 대한 해석과 의식의 문제와 함께 교회 직제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차이점과 공통점들을 낱낱이 밝히면서, 무엇이 다르고 어떤 점에서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는가를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래서 루터교를 비롯한 개신교의 신앙 형태와 교회 생활과 가톨릭의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과 신학들이 500년 전 루터가 "이단"이라는 종교적 판결을 받고 파문당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고, 이제 더 이상 서로 적대시하고 이단시하고 서로 경멸하고 회피할 필요가 없어지고, 이제는 서로 대화하고 친교하고 하나의 그리스도 공동체로서 함께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이 땅의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함께 행동하고 일할 수 있다는 깨달음과 신념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한 책자이다.

이 책이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은 1517년 루터가 자기 대학 교회 문짝에 당시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항의문을 써 붙인 이후, 로마 교황청의 파문 선고를 받은 이후, 그리고 부패한 중세 로마 교회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후,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변해 왔느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다. 가령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1530년)의 의도가 "근본적인 개혁 관심사를 표현한 것일 뿐 아니라 교회 일치를 모색한 것으로 보여 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26쪽 23항). 그리고 트리엔트(Trent) 공의회(1545-1563)는 교파분열의 치유, 교회 개혁, 그리고 오토만 제국을 방어할 수 있는 평화수립을 위하여 모였는데,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칙을 거부하면서 루터의 신조를 거부하고 넘어 갔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62년에서 65년까지의 제2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일치운동에 참여하고 종교개혁 이후 논쟁적 분위기를 떨쳐 버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따라서 교회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55-56쪽 90항).

"교회일치의 다섯 가지 원칙"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제6장에서는 갈라진 가톨릭 신앙인들과 개신교 신앙인들이 모두 함께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속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계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베소 4:3-6).

그리하여 하나되어 가는 노력의 원칙으로 다음의 5가지를 제시한다.

제1원칙: 가톨릭과 루터교 신자들은 비록 서로의 차이를 더 쉽게 확인하고 경험하게 되더라도 공통점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하여 늘 분열이 아니라 일치의 관점에서 시작하여라.

이 원칙을 지키고 대화와 친교에 임하는데 있어서 서로간의 "공통점"을 찾고 그 공통점을 강화하는데 노력하는 것에 찬성과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제2원칙이 필요하게 된다.

제2원칙: 루터교와 가톨릭 신자들은 만남과 서로 신앙의 증인이 되어 줌으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 원칙대로 살기 위해서는 "... 인내와 끈기로,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는 열정으로, 불화와 갈등이 있을 때조차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성령께 대한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청하신 것을 성령께서 성취하실 것이라는 희망으로"(130쪽 241항) 서로 자주 만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제3원칙: 가톨릭과 루터교 신자들은 가시적 일치를 찾고, 구체적인 단계로 그 의미를 발전시키며, 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늘 새롭게 기울여야 한다.

이 원칙은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可視的) 일치를 찾아 나서라는 것이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일치를 위한 일치," "정치적인 타협의 일치"가 아닌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일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시적" 일치란 다음 제4원칙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4원칙: 루터교와 가톨릭 신자들이 함께 우리 시대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힘을 다시 찾아야 한다.

즉, 가시적 일치란 "...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봉사로 세상이 주님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종교 다원화가 심화될수록 교회일치의 정신의 과제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131쪽 243항). 교회를 위한 일치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일치를 강조한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 "하나님의 선교사업"을 위하여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제5원칙: 가톨릭과 루터교 신자들은 함께 복음 선포와 세상에 대한 봉사로 하느님의 자비를 증언해야 한다. (131쪽)

하느님 나라 선교의 동역자로서의 일치

『갈등에서 사귐으로』는 교회 일치와 대화와 협력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갈등을 종식하고 사귐을 통해서 가톨릭 신자들과 루터교를 포함한 개신교 신자들, 즉, 그리스도의 몸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함께 힘을 합해 행동하고 일하는 것이 화해와 일치의 이유이며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이른바 신구교 일치 운동은 교리의 문제를 풀기 위한 데서 출발하지 않았다. 1970년대 군사 독재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농민을 위해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명동성당과 경동교회는 개방되어 있었고, 김수환 추기경과 김재준 목사와 강원용 목사 그리고 NCCK의 총무와 기독교방송은 힘을 합했고 같은 마음으로 포악한 정권에 맞서 저항한 역사와 경험이 있다. 그 역사를 기억하면서 종교개혁 500주년이 다시금 교회가 하나로 되는 역사적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책값은 5천원; 구입연락처: 02-743-4471; 전자우편: laudato.si.1970@gmail.com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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