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갑질하는 교회, 바리새인과 암 하아레츠

[크리스찬북뉴스 칼럼] 이성호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포항을사랑하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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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인간이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부르짖음이 촛불의 함성이었다고 본다면, 갑질이 폭로되는 현실은 촛불을 든 을의 혁명의 연장선이다.

1. 히브리어 '암 하아레츠'의 문자적 의미는 '땅의 백성(the people of the land)'입니다. '암 하아레츠'는 히브리어 성경에 75회 등장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 용어는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경멸의 말로 사용되었지만, 원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 특히 랍비 전통에 관해 알지 못하거나 그 세세한 사항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이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49절에서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고 한 것처럼, 조롱하는 태도를 대신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발전됐습니다. 보통 서민을 가리키던 본래의 이 호칭은 예수님 시대에는 '죄인'을 대신하는 말로까지 통용되기에 이릅니다.

유대 문서에서도 전통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돼, "성경과 <미슈나>를 배웠더라도 지혜자의 제자들을 섬기지 않았다면 그는 암 하아레츠이다", "무지한 암 하아레츠는 결코 신앙심도 깊지 않다"와 같이 쓰여졌습니다. 또 "글을 모르는 사람은 부활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악용돼, 대부분의 가난하고 무지한 이스라엘 서민들은 죄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암 하아레츠의 의미가 일반적인 존중심이 담겨 있는 말에서 종교적 경멸을 나타내는 말로 변질된 겁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내던져진 이 사람들에게 애정을 나타내시며 저들과 맞섰습니다.

2. 이와 흡사한 예로 '이교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pagan'이 있습니다. 원래는 단순히 '시골 지역에 사는 주민'을 의미했지만, 이 사람들이 개종할 가능성이 아주 낮았다는 이유로 이 단어를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은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교도'에 해당되는 또 다른 영어 단어 heathen도 처음에는 단순히 '황야(heath)' 또는 '들에 사는 사람'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암 하아레츠→죄인'이라는 등식은 성경에 능통하지 못하고 랍비들이 강조한 성결, 세칙, 십일조 등의 규율을 지키지 못하는 다수의 서민들과, 수입이 없어 성전세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비속어로 변했습니다. 이렇게 죄인으로 비하하는 심리에는 성전을 중심으로 재물을 모은 잘난 체하는 거만 의식이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같은 통념을 통렬히 깨시고, 오히려 저들을 위해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전포고와 같은 주장을 갖고 복음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는 제거되어 마땅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구속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적 엘리트 의식을 깨뜨리시고, 서민의 권리를 지키시며, 새로운 세계를 여셨습니다. "이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들이 말하는 죄인, 그 죄인을 부르러 내가 왔노라." 예수님께 신뢰를 보내거나 따르거나 예수님 가까이서 함께했던 이들이 주로 '암 하아레츠'였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들은 소박한 어부, 농민, 또는 여성들과 하위의 세리, 하위의 관리, 하층의 노동자들이었지요.

3. 우리는 은연중에 자신을 드러내길 즐겨합니다. 나와 통하는 사람을 우선하고, 맘에 드는 사람을 더 가까이하는 게 일반적 속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은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는 반대쪽 사람들과 어울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구분하고, 헌금 액수와 사회적 위상을 따라 편을 가르는 곳이 있다면, 이미 그 맛을 잃은 교회입니다. 내가 좀 배웠느니 뭘 좀 안다느니 자기를 내세우며 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 가장 멀리 있는 '목이 뻣뻣한 이스라엘'입니다. 신앙의 증거는 겸손이고 온유함의 능력입니다.

2017 종교개혁 500주년의 표어는 요란하고, 루터와 관련된 서적만 수백 권이 출판되지만, 요즘처럼 개혁교회에 쏟아지는 비난과 경멸이 사실에 근거하는 때가 없었습니다. '조국 복음화' 구호를 앞세운 장군 내외의 갑질은 해명보다 뉘우친다는 한 마디만 들렸어도 수긍하겠습니다. 신앙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주일마다 교회를 채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전히 사회와 문화, 정치와는 무관하게 '잘 먹고 잘사는 교회', 교회 덩치를 키우면 부흥이라는 프레임은 요지부동입니다. 벽이 무너져야 교회가 삽니다. 교회 안에 지역의 벽, 관계의 벽, 학력의 벽, 재산의 벽, 지위의 벽이 허물어져야 그 교회는 생명의 숨을 내쉽니다.

장차 통곡의 벽으로 남기 전에 말입니다.

출처: http://www.cbooknews.com/?c=59&uid=10036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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