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믿을 수 없이 깊은 두 마디: "예수께서 우셨다"

존 블룸(Jon Bloom)

anglicanchurch_02
(Photo : ⓒ베리타스 DB)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다. 부활할 것을 아셨는데 왜 우셨을까? 사진은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사제관 앞 기도처에 서 있는 고난 받는 예수상.

성경에서 제일 짧은 구절은 요한복음 11장 35절이다: "예수께서 우셨다." 그러나 이런 문법적인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이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의미가 들어 있다.

예수께서는 슬퍼하는 나사로의 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 주위의 모든 문상객들을 둘러보고서는 우셨다. 충분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도 대부분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기 위해 베다니로 오셨다. 그분은 몇 분만 있으면 이 모든 울음이 놀라운 기쁨으로 변하고 눈물어린 웃음으로 변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분은 문상객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최고의 소식을 갖고서 베다니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예수께서 그 폭풍 같은 슬픔 가운데서 확실하고 즐거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분은 "비통히 여기시고"(요11:33) 우셨다. 왜 우셨는가?

한 가지 이유는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해 예수께서 느끼신 깊은 공감 때문이다. 그분은 백부장의 종을 고친 것처럼(마8:13) 멀리서 치유의 말씀을 하지도 않으시고 베다니로 오실 때 지체하심(요11:6)으로써 나사로가 죽게 내버려 두셨다. 그분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선하고 자비로우며 영광스러운 이유가 충분히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분께서 그 일로 인한 고통을 가볍게 여기신 것은 아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비록 예수께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최고의 영광을 돌릴 일을 선택하기는 하셨지만(요11:4) 나사로의 경우처럼 그 때문에 고통과 슬픔이 초래되기는 해도 그분께서 고통과 슬픔 자체를 즐기시지는 않는다. 그렇다. 그분은 우리의 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다(히4:15). 그리고 그분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골1:15)으로서 나사로의 무덤가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느끼시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셨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예수께서는 죄의 참혹성 때문에 우셨다. 마귀의 일을 멸하러 이 세상에 오신(요일3:8)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은 죽음에 치명타를 날리고자 하셨다(고전15:26). 그러나 죄는 하나님을 심각하게 괴롭히고 죄의 삯인 사망(롬6:23)도 그러하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래로 그분은 죄의 무서운 파괴력을 견뎌오셨다. 죽음은 그분이 창조한 거의 모든 인간을 소멸시켰다(에녹과 엘리야는 유일한 예외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 죽음이 나사로를 덮쳤고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더 죽음이 그를 덮치게 될 것이다. 분노와 소망의 눈물들이 슬퍼하는 예수의 눈물과 섞여 있었다.

세 번째 이유는 예수께서 나사로의 부활뿐만 아니라 그의 영생을 위해서 지불하셔야 할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가 수난이 앞으로 며칠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어느 누구도 그 내면의 아픔(눅12:50)을 알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나사로가 부활한 것은 대가 없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고 나사로나 다른 모든 이들이 은혜의 선물로 경험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공짜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끔찍한 죽음을 당하셔야 했다. 가장 끔찍한 일은 십자가 수난(이 자체만으로도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끔찍하지만)이 아니었다. 그분은 아버지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죄를 몰랐지만 나사로의 죄와 그분을 믿거나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움을 베풀고자(고후5:21) 하셨다. 그분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았다(히12:2).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네 번째 이유는 나사로를 부활시키는 것이 종교지도자들을 자극해서 마침내 그들이 자기를 죽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요11:45-53). 이 설명에서 우리 대부분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예수께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뢰하고 계셨다는 사실에 경악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음이 적다. 만일 예수께서 고민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지의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지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불러낸 것은 우리가 상상했을 법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결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나사로에게 생명을 돌려준 것이 예수 자신의 죽음을 초래한 것이다.

위에 제시된 대로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셨던 이유들을 살펴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를 알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를 그와 같은 일들로부터 구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의롭고도 영광스럽다. 하지만, 그 일들 가운데 그분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시103:13), 죄가 불러온 참혹한 결과를 싫어하시며, 우리의 영원한 부활을 위한 대가를 완전히 지불하기 위해 우리가 알게 될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감당하셨다.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ible-study/topical-studies/jesus-wept.html

이인기 ihnklee@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