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촛불혁명, 민족적 집단영성의 발로"

[특별대담] 서광선 회장, 이정배·이은선 교수 내외 ⑤

이은선
(Photo : ⓒ 지유석 기자)
▲촛불혁명에 대해 대담하고 있는 서광선 박사와 이정배·이은선 교수 내외

[편집자 주] 서광선 회장과 이정배·이은선 교수 내외는 촛불혁명으로 대담을 이어갔다.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토대가 된 촛불혁명은 우리 민족의 사회적 영성이 결집되어 표출되었기에 폭력사태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영성은 '진짜 유교'의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대담자들은 이 정신이 교회현장에서도 발휘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담 내용의 마지막 편을 전재한다.

서광선: 그러면, 이제 주제를 바꾸어서 촛불혁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무군시대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간 우리 시민들, 민중들은 결국 "내가 군이다. 무군의 시대에 내가 주인이고 내가 군자고 내가 왕이다"라는 주권의식을 표출했습니다. 저는 이 주권의식이 촛불의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왕만이 다스릴 수 있다'가 아니라 민주주의 의식이 그 혁명을 일으킨 것이지요. 이 혁명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면 알려주시겠습니까?

이은선: 제가 성의 평범성에 대해서 말씀드렸었는데, 저는 인간이면 누구든지 다 직접적으로 하늘과 관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거룩함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거룩함이 억눌렸을 때 우리 민족은 참지 못하고 그 주체의식을 표출했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삼일운동도 그랬고, 광주도 그랬고, 이번에 촛불도 그러했습니다. 사실 촛불이 있기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월호 사건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적 영역, 즉, 정부가 제 역할을 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고도 점점 더 뻔뻔하게 대처하는 걸 보고 촛불들이 폭발한 것이지요.

서광선: 정말 물리적으로도 무군의 상태였습니다.

이은선: 그런데 세월호의 저항을 이렇게 이끌어 온 사람들은 큰 교회가 아니었잖아요? 그 촛불은 안산이라는 변방에서, 그것도 거기서 정말 힘들지만 아이 하나 잘 키우며 기대를 품고 살았던 어머니들 때문에 타오를 수 있었습니다. 자기 아이가 억울하게 죽었는데 자기가 열심히 다녔던 교회도 도와주지 않고, 정부도 도와주지도 않을 때, 어머니들은 내 아이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3년을 버텼고 그것이 촛불로 이어진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로마라는 그 거대한 힘에 맞서서 결국은 죽음으로써 부활의 계기를 만드셨던 것처럼 세월호의 아이들과 세월호의 엄마들은 한국사회에서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이런 힘이 결국은 무군시대에 경고를 발령한 것이지요. 저는 이런 엄마의 힘이 오랜 농경 생활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영위해온 가족생활과 그 생활 속에서 형성된 유교정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의 엄마들에게서 '진짜 유교'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엄마들의 의식은 '내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내가 죽겠다'는 태도의 발로입니다.

이정배: 그런데 촛불'혁명'이라는 평가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고 같은 아시아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중국에서도 불가능한 일이고, 일본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이건 오로지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서광선: 맞습니다. 내 홍콩 친구들도 그러더군요. 얼마 전에 그들이 시도했던 엄브렐라 '혁명'이 실패했잖아요? 그런데 촛불이 성공한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겁니다.

이정배: 정부는 이제 그만 됐으니 잊으라 했고, 교회는 천국 갔으니 그만하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들이 '엄마를 이길 자가 누구냐!'라는 자세로 대처한 것인데, 만약 그때 세월호 엄마 아버지들을 뒤로 빼고 시민단체가 앞장섰으면 세월호 사건이 촛불로 나아가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엄마 아버지들이 '우리가 한다'는 결의로 죽기를 각오했기 때문에, 비록 국가와 교회가 아주 조직적으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가 촛불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서광선: 유동식 선생님과 현영학 선생님께 한 말씀을 부탁하면, 그분들은 탈춤, 무당굿을 거론하시는데, 그분들은 바로 그 무속전통 속에 촛불혁명이 폭력으로 비화하지 않고 축제로 승화되는 힘이 있다고 말씀하셨을 겁니다. 그 무속종교의 심정이 우리에게 DNA처럼 유전되어 집단 종교성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것을 사회적 영성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데, 그러한 집단 영성이 촛불혁명의 현장에서 폭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talk
(Photo : Ⓒ 지유석 기자 )
▲이은선 세종대 교수

이은선: 함석헌 선생님은 그것을 우리 민족 속에 있는 깊은 선함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쓰는 이름이 '순,' '선,' '덕,' '성' 등의 단어를 갖고 있잖아요? 이게 모두 선을 함께 이루고자 하는 생각의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을 유교적인 개념으로 선여인동(善與人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순임금의 성품을 일컫는 말이기도 한데,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선을 행하려는 심성이 있습니다. 그 심성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촛불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광장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서로 자리를 양보하고 쓰레기도 서로 치우고 ...

이정배: 비가 내리면 자기 돈으로 비옷을 10개씩이나 사서 나눠주기도 하고, 커피도 무료로 나눠주고 ...

이은선: 네, 맞습니다. 광장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위대성입니다. 그리고 다들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다른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서 혁명의 기운을 이어갔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광장의 정보가 순식간에 전달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모습들은 우리 민족이 학문을 좋아하는 호학전통에다 세계 어느 나라도 달성하지 못한 수준의 문해력을 갖추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유교 정신에 토대를 두고 있지요.

이정배: 사실 저는 2010년대에 2020년까지를 하나님께서 이 땅을 위해서 기독교에 정말 마지막으로 주시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2013년 아시아에서 뉴델리 다음으로 WCC 총회가 열렸지요,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고, 2019년은 기미독립선언 100주년이 됩니다. 이 세 가지 중요한 사건 속에서 기독교가 처신을 지금과 달리하게 되면 미래가 있고,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이걸로 기독교는 끝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2013년은 허무하게 끝났고, 17년도 지금 허무하게 끝날 공산이 큽니다.

제가 최근에 『서기관들의 반란』(Revolt of the Scribes)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리처드 호슬리가 쓴 책인데, 구약성서 시대에 제사장들이 타락하니까 서기관들,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자들이 제사장들을 물리치고 묵시문학적인 글들을 많이 쓰면서 이 세상의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는 종교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비록 성경에 서기관들은 거의 율법과 연결되어 있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지만, 제사장들이 타락할 때 그들의 역할은 매우 컸습니다. 우리 한국사회에 박사학위를 가진 신학자들이 2,000명이 넘는데, 2,000명이 넘는 서기관들이 있으니 제사장들의 타락을 경계하는 역할을 할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종교개혁500주년기념 선언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 박사님께서 이제껏 어려운 시절 마다 그런 역할을 해주셨으니까 이번에도 앞장서주시면 제가 젊은 학자들을 규합해서 그 선언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에 있으면서 대형교회에 빌붙어 온갖 '용비어천가'나 읊어대고 죽도 밥도 아닌 글을 써서 밥만 먹고사는 그런 신학자 2,000명 있어봤자 세상은 하나도 안 변하는데, 성경 안에서는 이미 그런 서기관들이 제사장들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종교운동을 일으켰지요. 우리도 그런 선언을 하면서 교회와 신학을 갱신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광선: 올해 10월 31일이 가기 전에 해봅시다. 종교개혁 운동이 당시에 대학에서 출발했다는 점, 그리고 위클리프, 얀 후스, 마틴 루터 등 모두가 신학자로서 신학운동을 주도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우리 신학자들도 한국교회개혁의 전선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 몇 백 명이라도 참여하면 파급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정배: 현재 한국교회의 존재양식이나 의식구조는 철저하게 자본주의화됐고, 종교개혁의 3대 원리인 Sola 교리도 이 타락된 자본주의를 확대, 재생산시키고 계속 용납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3대 원리는 중세의 면죄부보다도 더 타락해버렸습니다. 이 종교개혁의 3대 원리를 만인제사장직과 합해서 통전적 비판을 시행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한국교회가 갱신할 기회를 소실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루터에게로 돌아가는 게 능사가 아니고 어떻게 루터를 넘어서야 되겠는가라는 고민을 함께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몇 백만 원씩 들여서 10박 11일로 종교개혁지 탐방한다고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여전히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을 종교개혁지 관광이나 기념집회 정도로만 접근하고 있어요. 지금 비텐베르크 지역의 여관이나 대학들은 한국교회가 다 점령해놨어요. 10월 달에 뭐 하려고 그러는지....

이제 우리는 종교개혁의 3대 원리를 통전적으로 재평가해서 아시아적인 시각으로 종교개혁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性), 성(聖), 성(誠)의 개념을 가지고 '진짜 유교,' '진짜 기독교'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새롭게 추진 중인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생명평화마당'이라 불리는 작은교회운동이 있는데, 이 운동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이 운동은 탈성장, 탈성직, 탈성별을 기치로 삼고 있습니다. 이은선 교수가 현재 이 세 가지 개념을 가지고 한국적 작은교회론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신학적 담론과 운동들이 타락한 제사장들에 대한 서기관들의 반란으로서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은선: 이정배 교수가 한 말을 받아서 얘기를 하면, 제가 해온 신학에서 서기관들의 역할은 바로 유교 문명이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사장 중심의 서구 기독교 문명이 아니라 서기관, 즉, 호학하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그 제사장 문명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교 문명에 의해서 서구 기독교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서기관도 탈성별의 원리 아래 더 이상 남성 신학자들만이 아니라 여성 신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말로만 여성신학자라고 칭하지 실제로 신학대학에 자리를 갖고 있는 사례가 너무 드뭅니다. 저 같은 경우도 조직신학 분야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곧 대학을 떠나서 고유한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변하려면 여성학자들을 많이 키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교회가 여성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분명히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가정과 같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큰 가족과 같은 곳이 되어 서로 보듬어주고 나누며 은혜를 소통하는 곳이 되어야지요. 그런 환경은 여성을 배제해서는 조성되기가 어렵습니다. 페스탈로치가 정의한 은혜의 개념이 여기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 인간이 죽을 때까지 느끼며 기억하는 은혜가 가정으로부터 온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오는 편안함, 부모가 주는 따뜻한 밥과 난로, 그 곳에서 밥을 함께 나누며 살았던 기억! 이것이 은혜라는 거지요. 이 은혜는 여성의 참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교회가 이런 은혜를 나누는 곳으로 변하지 못하면 고작 200년 남짓한 역사로 이같이 부패한 기독교가 얼마나 더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서광선: 네, 맞습니다. 남성들끼리 권력을 부식하는 체제가 지속되어서는 안 되지요. 신학대학에서는 여자 교수들의 채용비율도 늘리고 작은 교회들도 늘어나고 가정도 따뜻한 은혜의 기억을 나누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남성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남성은 권력의 자가증식으로부터 물러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진보 계열의 인사가 대통령이 됐다고 NCC 운동하시던 분들이 자리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담입니다만, 올해 노벨평화상은 '촛불'이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세월호 어머니들이 받아야 할 겁니다. 두 분께서는 세월호와 촛불이 평화에 공헌한 바에 대해서 영어로 글을 써서 노벨위원회에 보내시고, 수상을 위한 운동도 전개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는 한국적십자의 신임 총재인 박경서 박사를 통해서 운동하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진지하고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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