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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화의 길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출애굽기 13:20-22, 레위기 25:8-12, 요한복음 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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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Jesu Juva. 이화동산에 대학교회가 세워진 지 82년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가수 이난영씨의 "목포의 눈물"이 발표되던 1935년에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82년의 긴 세월동안 대학교회를 지켜주시고 언제나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늘의 이 대학교회가 있기까지 사랑과 정성으로 섬기고 봉사하신 모든 분들께도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이화대학 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것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 대학교회도 한국 최초의 대학교회입니다. 옆에 있는 대학박물관도 올해 대학교회와 똑같이 여든 두 살이 되었는데 이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박물관입니다. 대학교회 건너편 이화여대 부속유치원은 올해로 103년이 되었는데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치원입니다. 지금 대학교회 교우들께서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곳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화의 역사 자체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것 같습니다. "한국역사 속에서 이화학당의 설립은 한국여성 근대교육의 서막을 알림과 동시에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조선여성들에게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심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화학당은 한국여성을 위한 근대여성 교육의 전당이었으며, 배움의 열망에 찬 여성들을 키워 나라의 일꾼으로, 민족의 봉사자로, 선각자로 길러낸 요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화의 역사는 단순히 이화만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근대사이며, 교육사이며 또한 한국 여성사를 대변하는 것입니다"(『이화 110년사』 서문 중에서).

이화의 창립자인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 선교사님은 1832년 미국 매사추세츠 한 타운의 감리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53살이 되던 1885년에 미국감리교 해외여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한국최초의 여성선교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시 그 분의 나이 53살은 지금의 나이로 환산하면 75세쯤 됩니다. 혹 어떤 일을 하기에 내 나이가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포기하려는 마음이 드는 분들이 계시다면 스크랜튼 선교사님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분은 그 나이에 한국에 와서 1886년 이화학당을 설립하셨고, 한국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 설립을 주도하셨으며, 매일학교 설립 등을 통해 여성문맹 퇴치활동을 펼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사였던 외아들 윌리엄 스크랜튼과 함께 동대문감리교회, 아현감리교회, 그리고 상동감리교회를 설립하셨고, 선교는 물론, 한국여성을 위한 교육사업과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위한 의료사업을 펼치시다가 1909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한국을 사랑한 메리 스크랜튼』이라는 책의 간행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선생님의 한국사랑은 참으로 유별났습니다. 선생님은 이화학당 건물을 지을 때에도 양옥이 아닌 한옥으로 지었으며 또 교육의 목표도 '한국인을 보다 나은 한국인으로 만들어,' '그들이 스스로 한국인임에 긍지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스크랜튼 선생님의 여성교육 정신과 목표는 소외된 사람, 연약한 민족을 사랑하고 이를 위해 공헌하는 한국여성을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일부 선교사들이 피선교지의 문화나 정서를 도외시하고 고압적인 자세로 서양 문화와 종교를 강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점을 상기해볼 때 스크랜튼 선생님의 선교와 교육 정신은 매우 진취적이며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류를 사랑하기는 쉬워도 이웃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왜 그렇습니까? 인류는 '추상적'이지만 이웃은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화를 세운 스크랜튼 선생님의 기독교 정신은 관념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공허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실천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말씀처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정신이었습니다(요한 12:24).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는 정신이었습니다.

한 칼럼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난 2009년에 한 일간지에 실린 재미작가 이민진 씨의 칼럼입니다. 제목은 "126년 묵은 사랑의 빚 88달러"입니다.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서울에 왔다. 나는 이화여대 동문이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디자인한 현대식 지하캠퍼스와 1930년대 지은 석조 건물이 어우러진 캠퍼스를 걷다 보면 뿌듯하고 기쁜 마음에 사로잡힌다. 이 아름답고 웅혼한 캠퍼스의 여자대학은 출발은 미약했다. 1883년 루신다 볼드윈 여사가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 조선의 여성 교육을 위해 써달라고 미국감리교회에 88달러를 기부했다. 1886년, 미국 최초의 여성 선교사인 스크랜튼 여사는 서울 정동 초가집에서 오갈 데 없는 고아 소녀 한 명을 받아 이화학당을 열었다. 이 보잘 것 없는 출발에서 한국 최초의 여의사, 한국 최초의 여성 박사, 한국 최초의 여성 대학총장,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 한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나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7억 7천만 명의 문맹자가 있다. 이들 중 3분의 2는 여자들이다. 1883년 루신다 볼드윈 여사가 헌금한 88달러는 오늘의 화폐 가치로 약 150만 원 쯤 된다. 데스크톱 컴퓨터 한 대 살 수 있는 돈이다. 126년 전 볼드윈 여사는 스크랜튼 선교사를 후원했고 스크랜튼 선교사는 조선이라는 낯선 나라에 와서 오늘날 수십 만 배의 열매를 거둔 여성 교육의 첫 씨앗을 뿌렸다. 스크랜튼 선교사는 지금 서울 마포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평생을 한국의 여성 교육에 바친 그가 오늘날 한국의 문자 해독률이 98%가 넘는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쁠까. 볼드윈 여사의 투자는 현명했다. 한국여성에 대한 투자는 놀라운 것이었다.... 배움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한국이다. 세계무대의 지도자를 키워내는 데 꼭 알맞은 곳도 한국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야말로 가난한 이웃의 고통스러운 열망을 지원하는 데 꼭 맞는 사람들일 것이다. 오래전 볼드윈 여사의 88달러 빚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한국은 자유와 계몽의 씨앗을 뿌리는 선의의 채권자가 됨으로써 이 빚을 갚을 수 있다." 이화대학의 동문도 아닌 분의 글에서 이화의 뿌리와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이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로마서 13:8)고 했는데, 우리는 모두 '사랑에 빚진 자'인 것 같습니다.

이화대학의 랜드마크는 대강당입니다. 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높이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1956년에, 전쟁의 상흔이 아직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이화가 가장 먼저 지은 '기도의 집'입니다. 당시 이화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통이 컸는지, 먹을 것도 제대로 없던 그 시절에 이 건물을 한국 최대 정도가 아니라 아시아 최대인 4천 석짜리 강당으로 지었습니다. 지금도 이곳은 매일 기도와 채플이 드려지는 곳입니다. 어떤 학생들은 채플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이대 전철역에서부터 뾰족구두를 신고 10분 만에 대강당 앞 계단을 비호처럼 날아올라 채플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1분이라도 늦으면 철문이 닫힙니다. 그러면 그 문을 발로 차면서 '성경에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했는데, 이 문은 왜 발로 차도 안 열립니까?'라고 항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화여대의 상징인 이 대강당 앞에는 몇 개의 계단이 있는지 아십니까? 많은 분들이 45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45계단을 올라 오른쪽 옆길로 가지 않고 곧바로 대강당 정문으로 들어오시면 4개의 계단을 더 밟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대강당 앞 계단 수는 모두 45+ 4 = 49개입니다. 그런데 이 '49'라는 숫자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저는 이화동산을 지을 때 건축자들이 생각 없이 지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안에 자신들의 믿음과 소망과 꿈을 담아 지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서에서 '7'은 거룩한 숫자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간 세상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날마다 안식일이 있고, 일곱 번째 해마다 안식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식년을 일곱 번 세면, 즉, 칠 년이 일곱 번이면 사십 구년이 되고, 이 다음 해인 오십 년이 되는 해를 성서는 '희년'(禧年, Jubilee)으로 선포합니다. 요벨의 나팔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희년은 땅과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기쁨의 해입니다. 은총의 해입니다. 희년이 되면 먼저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해방됩니다. 빚을 지고 있던 사람들의 부채는 다 탕감됩니다. 그리고 땅도 쉽니다. 땅과 땅 위의 사람들에게 대사면의 은총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희년을 상징하는 49계단이 이화여대의 상징인 대강당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오늘 예배 후 바삐 돌아가지 마시고 각 부서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공동의 친교와 식사를 나누신 후 여유 있는 마음으로 대강당 앞 49계단을 천천히 밟아 올라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길을 '희년길'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바쁘게 뛰어 오르지 마시고, 한 계단 한 계단씩 천천히 걸어 올라보십시오. 한 계단씩 오르며 내 안에서 비워야 할, 내려놓아야 할 상처와 분노와 염려를 하나씩 버려보시기 바랍니다. 49개까지 버려보시기 바랍니다. 혼자 오르기 지루하시면 친구나 가족과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한 계단씩 올라보셔도 좋습니다. 대강당 앞 희년길은 거룩한 길입니다. 그 계단을 다 오르시면 기도의 집 대강당 한 의자에 조용히 앉아 기도해보십시오. 거기서 우리 영혼의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대강당에서 희년의 은총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중강당 앞을 지나 본관 앞 ECC 계단 위에 서보십시오. 미국의 그랜드 캐넌이 연상될 정도로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몇 대학이 지하캠퍼스를 지었지만 이화의 ECC만한 건물이 없습니다. ECC는 세계적으로도 명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서시면 무엇이 보이십니까? 웅혼한 계단길 아래로 무엇이 보이십니까? '모세길'입니다. 목사인 제 눈에는 ECC의 하얀 알루미늄 기둥이 홍해바다의 물기둥처럼 보입니다. 그 기둥에 박혀있는 볼트와 너트들은 물안개처럼 보입니다.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모세는 바다를 갈랐지만, 이화는 땅을 갈랐습니다. 그렇게 길이 없던 곳에 길을 냈습니다. 131년 전 이 땅의 여성들 앞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이름도 없었고, 미래도 없었고, 소망도 없었습니다. 뒤 따라갈 모범의 대상(role model)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용기 있게 걸어간 길이 이 땅 모든 여성들에게 새 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ECC는 이 나라 여성들의 '출애굽'을 상징하는 길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강고한 가부장제와 신분사회로부터의 출애굽을 상징하는 혁명의 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녁에 ECC의 풍경은 더더욱 출애굽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얀 알루미늄 기둥에 비치는 불빛은 마치 제 눈에 '불기둥'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나아갈 때, 오늘 읽은 성경말씀처럼,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 하니라"(출애굽기 13:21-22)고 했습니다. 바로 이 ECC 모세길을 한 계단씩 씩씩하게 걸어 내려가 보십시오. 자유와 해방과 존엄을 향한 한국여성의 길을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걷는 이 길이 또 다른 새 길이 될 것입니다.

희년길, 모세길... 하지만 아직 이화동산의 믿음의 순례길이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희년길을 올라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시는 주의 은혜를 체험하신 후, 모세길을 따라 담대한 마음으로 세상으로 나아갈 때에 이제 신촌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대륙길'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200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화대학의 정문 앞에는 정문과 학교를 잇는 '이화교'가 존재했었습니다. 이 다리 아래로 지나는 기찻길이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 보이지는 않지만 그 철길이 무슨 선인지 아십니까? '경의선'입니다. 서울에서 의주를 잇는 철길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면 일산까지만 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계의 지평을 넓혀보십시오. 공간의 사유를 확장해보십시오. 그 길은 북한의 압록강에 있는 의주까지 이어지는 철길입니다. 지금은 남북이 분단되어 끊겼지만 통일이 되면 그 철길을 따라 개성을 지나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 철길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거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거쳐, 저 광활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달려 모스크바에 다다릅니다. 하지만 거기도 아직 끝이 아닙니다. 거기서 독일의 베를린을 거쳐 프랑스의 파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 길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대륙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분단된 나라에 살다보니 마치 우리는 대륙에서 섬처럼 단절되어 고립된 반도 안에 살고 있다 생각하지만, 실제로 한반도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부산 앞바다의 오륙도는 이 유라시아 대륙판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대학 중에 이렇게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길을 캠퍼스 안에 품고 있는 대학은 이화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대학교회 바로 옆에 있는 신촌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건물을 보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저 광활한 대륙으로 나아가보십시오. 공간과 장소가 가지는 깊은 의미를 성찰해보십시오. 우리 대학교회는 이렇게 특별합니다. 교우 여러분, 이제 교회에 오시면 예배만 드리고 바삐 돌아가지 마시고 이화의 길, 이화 안에 있는 믿음의 순례길, 이화가 믿음으로 걸어왔고 또 믿음으로 걸어갈 이 길을 꼭 한번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희년길을 오르고 모세길을 내려가 대륙길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1885년 11월 9일의 일입니다. 갑신정변으로 조선에 들어오는 것이 늦어진 스크랜튼 선교사님은 우선 지금의 정동에 자리를 잡고 선교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함께 입국해 옆집에 살고 있던 아펜젤러 목사의 부인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 아기가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외국인인 앨리스 아펜젤러(Alice R. Appenzeller)입니다. 그 분은 나중에 이화학당의 제6대 당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기가 태어나던 날은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날씨가 어찌나 춥던지 스크랜튼 선생님은 그 갓난아기를 바닥에 누이지 못하고 밤새도록 품에 안아서 재웠다고 합니다.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갓 태어난 생명을 품에 안고 있던 바로 그 날 밤, 스크랜튼 선교사님의 머릿속에는 불현 듯 그 시간 자신과 똑같이 어린 자녀들을 품에 안고 추위와 싸우고 있을 조선의 수많은 어머니들과 그 어머니들의 어린 자녀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계시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스크랜튼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이 바로 이화학당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이화의 뿌리는 바로 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긍휼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라함'입니다. 이 말의 어원을 찾아보니 '어머니의 모태'입니다. 생명을 품어 아픔으로 낳았기에 모든 생명을 불쌍히 여기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구약성서가 말하는 긍휼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바로 그 마음입니다. 이것이 이화의 뿌리이고 이화의 정신입니다. 바로 이 뿌리에서 우리 대학교회가 탄생했고, 오늘도 우리는 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원래 중국속담인데 영어로 번역된 것을 익혔습니다. "I hear and I forget; I see and I remember; I do and I understand." '나는 귀로 듣고 잊어버립니다. 눈으로 보면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몸으로 실천해보니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이화의 정신, 사랑의 빚 88달러로 전달된 이화의 기독교 정신, 갓 태어난 생명을 밤 새워 가슴에 품은 그 긍휼의 정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의 정신,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는 그리스도의 섬김의 정신, 바로 이런 정신은 그저 듣거나 보고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서 살고 매일 실천해야 비로소 이해되는 정신입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이화'의 대학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여든 두 살의 교회 생일을 맞이하며 다시 한 번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이화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무엇인지 늘 기억하며 늘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을 다시 힘차게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이화가 걸어온 길이 아닌 곳에 길이 되었듯이, 오늘도 우리가 믿음으로 걷는 이 길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은총을 선포하는 사랑과 구원의 큰 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Soli Deo Gloria (2017.9.24.)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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