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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청년이 떠나고 있다』: 청년들의 교회/종교에 대한 의식(I)

입력 Nov 02, 2017 09:26 AM KST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청년위원회와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가 11월 3일(금) 발간한 '청년의 교회/종교에 대한 의식 설문조사'의 백서 『한국교회, 청년이 떠나고 있다』의 내용을 2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 배경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교회/종교의 개혁을 위한 많은 움직임들이 있으며, 우리는 이 시점에서 종교개혁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500년 전 종교개혁이 내 걸었던 슬로건인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성서로만, 오직 은혜로만"을 반복하는 과거지향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그것이 가졌던 핵심정신인 "기존의 체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현실과 삶을 바라보는 미래지향적 태도를 가져야할 것이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거시적 차원뿐만 아니라 미시적 차원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하므로 교회/종교의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와 개인의 삶에 영역에까지 그 범위를 넓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종교개혁 정신이 다양한 영역에서 작동하도록 하고자 한다.

2. 목차

• 머리말 / 김영주 총무

• 책을 펴내며 / 허원배 위원장

1부 청년이 떠나는 이유

• 청년 신자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 전세훈

• 2017년의 한국 교회, 청년? 여성의 시각에서 묻다. / 백소영

• "교회에서 안식 얻고 싶다"는 청년들 / 최승현

• 솔라 에페부스(Sola Ephebus: 오직 청년으로만) / 남기평

2부 "청년의 교회/종교에 대한 의식 조사"와 분석

• 청년의 교회/종교에 대한 의식 조사 분석 -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 정재영

• 한 몸된 공동체에서 개신교 청년들이 세워진다. - <설문조사> 분석을 중심으로 / 정인곤

• 청년의 교회/종교에 대한 의식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

3. 저자소개

▪남기평: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총무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외래교수, 대학교회 대학부 담당교수

▪전세훈: 청년단체 배움품앗이 대표, 고려대학교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

▪정인곤: 기독청년아카데미 사무국장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21세기교회연구소 소장

▪최승현: 뉴스앤조이 기자

4. 책 내용 요약

4-1. 청년 신자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 전세훈

⓵ 성공지상주의: 하나님께 실망하다

청년부에서는 간증을 많이 한다. 시험합격, 취업 등을 하면 간증대에 올라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해서' 간증한다. 기도 응답의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실패와 성공'이다. 교회에서는 '순종이라는 이름의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 교회에서 하는 선교, 봉사, 교육 등에 참여하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이루어주시리라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은 '램프의 요정'이 되어 버린다.

신앙의 본질은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데 있지 않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세속적 성공을 이루고,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신앙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게 될 것이다.

⓶ 개인화된 신앙: 공동체는 필요 없다

교회에서는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월호, 비정규직 문제 등의 사회적 이슈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꺼냈다가는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일쑤다. 교회에서는 심심치 않게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의 질서만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교회에서 집중한 '신앙의 개인화'는 교회에 다닐 이유를 없애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고도성장시대의 성공이 교회를 다닌다고 이루어질 리도 없고, 신앙의 이유가 단순히 개인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라면 교회를 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예수의 가치관으로 연대하는 공동체가 되지 못했기에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그 가치를 잃어버렸다. 신앙의 개인화가 아니라, 연대를 추구해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⓷ 폐쇄성: 고립된 교회, 떠나는 청년

교회는 '세상의 것'과 '교회의 것'을 구분해 가르친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살아갈 곳이다. 청년들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사는 사람이다. 그런 청년들을 '교회 안'에만 묶어두려고 한다면, 청년들은 교회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현재의 한국 교회는 토론이나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강한 폐쇄성을 가진 조직이다. 폐쇄성은 교회를 세상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되도록 만들어버린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과 활발하게 소통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 대한 정확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신학적 검증과정을 거치며 발전한다. 이 주체가 청년이 된다면 청년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의 문제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을 교회 안으로 붙잡아 두려는 무리한 폐쇄성은 오히려 신학 발전의 저해와 청년들의 이탈현상을 만들어낸다.

④ 권위주의: 교회개혁을 가로막다

기독교를 향한 '목사교'라는 비아냥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에 순종하라는 압박을 겪는다. 목회자의 위치가 하나님의 위치까지 올라온 것이다. 교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들이 '목회자에 대한 도전'이 되어버리는 권위적인 교회 분위기에서 교회개혁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교회의 문제로 '일방향 의사결정구조'를 꼽았다. 사회적으로 민주화와 수평적 요구가 제시되는 시대에 청년들이 교회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회는 예수의 삶을 신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예수를 신념으로 따르도록 돕는 교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존경받는 교회가 된다면 청년들은 돌아올 것이다. 이 땅에는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좌절한 청년들이 희망을 얻는 곳이 한국교회가 됐으면 하는 소망이다.

4-2. 2017년의 한국 교회, 청년? 여성의 시각에서 묻다 / 백소영

기독교 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2017년, 한국 교회는 과연 신앙을 새롭게 하고 있는가? 5월에 열렸던 청어람 <청년사역 컨퍼런스 2017년>의 주제는 "청년사역과 페미니즘"이었다. 청년 여성들에 의해 그간 교회 내에서 '남성'인 목회자, 사역자들이 보인 여성혐오에 대한 수많은 고발이 이어졌다. 외모나 복장·나이에 대한 언급("여자들이 화장 안 하면 교회 분위기가 칙칙하다"), 성에 따른 역할 제한(교리 수업 중에 결혼 후 남편에 대한 내조 강조), 설교시간의 성차별적 언사("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집에서 아내가 스스로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등, 이 모든 문제는 하나의 같은 기원에서 비롯된다.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응시이다. 여성들이 인식 주체로서 '가부장제의 종말'을 논하고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여성 응시'는 타파해야 할 구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적 이유와 역사적 이유로 교회는 '뒤처진 집단'의 대표가 되어 버렸다. '신앙적'이란, 정확하게는 성서 본문 해석의 문제이다. 성서는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씌어졌다. 하나님의 보편 계시가 담긴 책이나 그 계시를 담아낸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고 '전(前)근대인'이었다. 이런 문화적 한계를 구별해내지 못하고 성서의 여성 응시를 그대로 21세기에 적용하고자 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역사적 이유란 개신교 가정 담론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이다. 근현대 초기,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가정의 안주인'으로서의 '전업주부' 역할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개신교의 '소명,' 특히 엄마와 아내로서의 여성의 소명은 신자들에게 '신적 질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붙잡아야하는 것은 시대적 한계를 가지는 문화적 제한성이 아니다. 전근대든, 근대든, 후기근대든, 시대를 초월한 계시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전근대 사회를 살면서도 '가부장제'를 끝내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셨다. 선생, 아버지, 지도자가 권위를 독점하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여전히 '남자'가, '성직자'가 권위를 독점하는 것이 신적 질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시대적일 뿐만 아니라 성서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잡아야 하는 것은 경전의 '경(經)'줄이다. 지나간 문화적 전제가 반영된 '위'줄을 잡고 특권의식과 율법주의적 태도에 젖어 있다가는 바리새인들과 중세 말기의 타락한 가톨릭교회가 밟았던 몰락의 수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화장실의 여성 살해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한 선교단체 여자 간사들을 주축으로 2017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맞춰 <갓페미> 모임이 시작되었다. 처음 모임을 가진 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교단체와 교회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이들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자의 혹은 타의로 공동체 밖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내부적인 문화와 분위기가 일면 개선되려는 시도를 반가워했고, 응원해 주었다."

교회 안에 여성의 목소리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제 그녀들의 신앙고백과 주체로서의 자기해석을 들어야 한다. 새로운 기독교 개혁의 바람이 젊은이, 여성들에게서 시작되고 있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에게 "그녀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셨던 하나님, 말씀을 사모한 마리아에게 "그녀가 좋은 것을 선택하였다"고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청년 여성들의 든든한 뒷배이시다.

4-3. "교회에서 안식 얻고 싶다"는 청년들 / 최승현

<뉴스앤조이>는 8월 23일 "나의 헌신은 당연하지 않다"라는 주제로 독자 모임을 주최했다. 그곳에서 한 청년은 "목회자들이 기도하다가 네 생각이 났다는 식으로 봉사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영상·디자인 같은 전문기술이 필요한 분야도 "교회를 위해 봉사하라"며 시간과 재능을 너무나 당연하게 요구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헌신하고 있다는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가 청년을 소모품처럼 여긴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뉴스앤조이>가 만난 많은 청년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헌신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헌신하는 게 아니라 '헌신당한다'는 것 같다는 얘기다.

청년들은 그들이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고 투표로 세상을 바꿔보자며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도 교회는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의 문제점' 응답 1-3위 모두 교회의 시대착오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예배(설교·분위기)가 문제라는 응답과 비민주적인 의사 구조(19.6%)가 공동 1위였고, 목회자가 발전적이지 않다(18.5%)가 뒤를 이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청년들은 교회가 심적 안정과 위로를 주기 원했으나, 실제 삶에서 종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했다. '청년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사항'(복수 선택)에서 돈(30%)이 단연 1위를 차지했고, 친구(20.8%), 모임(12%), 부모(9.9%), 유명인·연예인(9%)이 뒤를 이었다. 종교는 4.4%로 게임보다도 못했다.

청년들의 목소리에 대처하는 교단들의 모습은 미흡하다. 청년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다시 보자. 이들은 교회 대형화, 불투명한 재정구조, 지나친 전도활동, 과도한 교회건축, 세습, 교회 내 계급화, 목사 자격이 '골고루'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회는 감각이 없다. 세습 방지법을 가장 먼저 만든 기독교대한감리회도 제정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마저 한국 최대 교단이라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은 아직도 관련법이 없다. 교단마다 다르지만 목사가 되려면 최소한 30세가 넘어야 하고 그마저 여성에게는 기회를 주지도 않는 교단이 부지기수다. 여성 장로도 마찬가지다.

청년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뉴스앤조이>도 매년 주요 교단 총회를 참석하지만, 청년층 감소에 대한 논의는 늘 관심사 밖이다. 교회가 정말 청년 문제에 관심이 있고 청년들을 교회의 주역으로 인식한다면, 왜 교단 총회에서 청년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까.

청년을 존중하지 않고 봉사도구로만 여기면, 이들은 계속해서 교회를 떠날 것이다. 청년이 없는 교회에 미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제 청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하는 청년들이 설문 마지막에 적은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한마디'이다.

△지나친 헌신과 봉사를 강조하는 게 없어져야 한다 △교회 안에 피로도가 너무 높다: 안식이 있어야 한다 △봉사를 신앙의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 △청년에게 헌신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청년의 실제 고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헌금 봉투에 이름 적는 게 없어졌으면 좋겠다 △교인이 목사의 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인을 돈이 아닌 사랑으로 봐야 한다.

4-4. 솔라 에페부스(Sola Ephebus: 오직 청년으로만) / 남기평

21세기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단어 중 단연 눈에 띄는 단어는, 바로 '헬조선'이다. 극심한 경쟁 일변도의 사회에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을 지옥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 헬조선과 같은 잣대로 교회청년들을 평가하고 있다.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를 개인의 나태와 게으름에서 찾는 것이다. 이번 NCCK 청년위원회와 EYCK에서 설문조사한 문답 결과를 살펴보면, 청년들은 '종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내재적 평안'(44.7%)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인 교회 어른들이 자신들의 관점으로 교회청년들을 재단한다면, 청년들은 더 이상 교회에서 위로조차 받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청년들은 속속들이 교회에서 이탈해 가나안교인이나 무교로 변모하고 있다.

교회에 남는다고 한들, 청년들이 교회 내 결정구조나 중앙회의구조에 참석할 수 없다. 소위 교회의 잡일꾼일 뿐이다. '현재 교회에서 하고 있는 활동'을 볼 때,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활동, 찬양팀, 청년임원, 성가대' 순이다. 청년임원(제약이 따르지만, 청년회 안에서만이라도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구성원의 일원으로 참석하고, 수동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행사에 참석할 뿐이다.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에 깊숙이 참여할 통로도 없으며 그러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각 교단 총회나 연회 그리고 노회의 청년총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기독청년들은 예수를 믿고 따를 용의가 있지만 이 사회 속에서 교회의 존재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설문에서 청년들이 주로 불만을 표시한 '예배·설교 분위기, 발전적이지 않는 목회자와 비민주적인 의사구조'에 주목한다면, 청년들이 교회에 갖는 냉소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현재 교계의 지도자들이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은 청년부를 교육부로 분류하는 데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청년에 대한 무지로 인해 교회는 청년부를 고등학교 4-5학년쯤으로 취급하며, 고등부와 별반 다르지 않는 콘텐츠로 접근한다. 청년들은 청소년과는 엄연히 다르며, 다른 접근이 필요함에도 제대로 된 프로그램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왜 청년이어야만 하는지, 교회 내에서 청년이 중요한지, 어떠한 질문을 가지며,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만 하는지를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하나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사회를 몸소 경험한 청년들에게 정체성의 확립과 자존감의 회복은 인생일대의 큰 과제이다. 세상에서 이를 버티고 버텨온 청년들이 교회의 품으로 돌아와, 교회조차도 사회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하는 순간, 기독청년이라는 자존감은 땅에 떨어진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하며, 정체성, 즉, 자기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교회의 재산은 사람이다. 한 사람을 어떻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워나갈지를 고민하고 종국에는 이들이 한국교회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오직 청년으로만! 오직 청년들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반드시 한국교회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이 둘이 같이 병행되어 한다. 그래야지만 10년 이후를 바라볼 수 있다. 오직 청년만을 위한 프로그램과 정책제안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공든 탑은 없다. 오로지 이탈만 있을 뿐이다. 청년은 한국교회의 미래이다. '솔라 에페부스!'(오직 청년으로만!)는 교회의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예언자적 외침이기도 하다.

4-5. 청년의 교회/종교에 대한 의식 조사 분석 -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정재영

한국기독청년협의회와 NCCK 청년위원회에서 조사한 청년의 교회/종교에 대한 의식 조사에서, 청년들은 종교가 삶, 특히 고민 해결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의식(긍정 응답 30.3%, 부정 응답 38.8%)을 드러냈다.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도 "해결은 되지 않지만 마음의 위로를 준다"(56.0%)는 응답이 절반을 웃돌았고 "물질적, 인적 도움을 준다"(3.6%)는 응답은 매우 낮게 나와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종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로 "개인에 대한 위로를 한다"(27.4%)보다 "사회구조 개혁을 위한 참여를 유도한다"(42.1%)를 가장 많이 꼽아 종교가 현실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는 교회도 이러한 청년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현실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 현실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교회 안에서는 신앙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독교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신앙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시민으로서의 직분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신앙과 삶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신앙이 삶의 영역에서도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공간은 그 자체의 논리와 기제에 따라 작동하고 있으며, 여기에 기독교 신앙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교회는 교회대로 교인들이 예배에 잘 참석하고 헌금을 잘 하기만 하면 이른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여긴다. 개개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의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의 개신교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교회는 선, 세상은 악이라는 이원론식 사고방식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이 사회는 똑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구현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모든 기독교인들의 사회생활에도 확대하여 적용해야만 한다. 교회에서는 세속 사회의 모든 활동에 대하여 기독교의 가치를 부여하고 기독교인들이 따라야 하는 윤리적인 지침을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교회는 교회 구성원들에게 양심 있는 시민이 되도록, 사회에 대한 프로그램을 세우고 운영하기 위해 주도권을 쥐도록, 정치 문제들에 대해 잘 알도록 그리고 그들의 양심에 따라 지지하거나 반대하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기독교인들은 개인으로서 그들이 관심 갖거나 선택한 정당, 노동조합, 또는 사업협회 그리고 유사한 운동 단체에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도록 격려 받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기독교인이 아니라 기독시민이 되어야 한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참 이웃, 참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교회는 어려움 속에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사회 청년들의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 땅의 기독 청년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문제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 한 알의 밀알처럼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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