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16세기 종교개혁운동과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의 한계(III)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입력 Nov 07, 2017 09:39 AM KST

편집자주] 기독교한국침례회역사신학회(침례교역사신학회)와 침례신학대학교 침례교신학연구소가 10월 16일(월), 30일(월) 종교개혁 500주년기념 논문발표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주제는 "자유교회 전통의 관점에서 본 종교개혁"이다. 이 발표회에서 김승진 교수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과 관료후원적 종교개혁의 한계"를 발제했다. 전 편에 이어 발제문을 전재한다.

3. 주의 만찬에 대한 성례전주의적 이해

김승진
(Photo : ⓒ 침례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위임하신 두 의식들에 대해서 로마가톨릭교회의 성례전주의 전통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였다. "성례전주의"(Sacramentalism)란 성례 그 자체에 신비하고 마력적인 능력이 있어서 원죄나 자범죄를 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참예자에게 전달된다는 주장이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을 믿었고 그에 따라 미사를 드렸다. 이 교리는 예배 시에 사용하는 떡과 포도주가 성직자의 기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실제로" 변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떡은 십자가 상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살로 실제로 변하고 포도주는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실제로 변해서, 그것들을 먹고 마시면 영의 양식을 공급받게 되고 죄사함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교리는 성직계급제도와 함께 성직자들의 권위를 드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로마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을 비판하며 화체설에 입각한 교회의 미사를 개혁하였다. 그러나 그 비판과 그 개혁은 미진하였다. 마르틴 루터는 화체설을 비판하면서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주장하였다. 성직자의 기도를 통해서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이 그 속에 "실제로" 임재(Real Presence)하시고 "육체적으로" 임재(Physical Presence)하신다고 믿었다. 이에 비해 쟝 깔뱅은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spiritually) 임재해 계시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취리히의 개혁가 쯔빙글리는 "상징설"(symbolism)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Hoc est corpus meum, This is my body)에서 "이니라"(est, is)는 은유적인 비유의 표현으로서 "significat"(signify, 의미하다)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였다(김승진, 「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 89-90). 휴머니스트로서 희랍어 성경에 능통했던 쯔빙글리의 해석은 탁월하였고 무척 신약성서적이었다.

루터나 깔뱅의 경우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해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실제에 있어서는 로마가톨릭교회의 화체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님이 임재해 있는 떡과 포도주에는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마술적인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떡과 포도주 그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이된다(transfer of God's grace)고 보았다는 점에서, 루터와 깔뱅의 주장은 화체설과 마찬가지로 성례전주의인 것이다(Estep, Renaissance and Reformation, 150).

인격체이신 성령님께서 인격체가 아닌 무생물인 떡과 포도주에 역사하시고 임재하시는가? 성령님께서는 인격을 가진 신자들의 마음(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순간 신자의 마음에 성령이 내주하시고 그 마음은 성령의 전이 된다-필자 주)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닌가? 떡과 포도주에 화학적인 혹은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동일한 떡과 동일한 포도주이지만, 성령님으로부터 감동을 입은 신자(참예자)가 그 떡과 포도주를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위해서 찢기시고 흘리신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신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으로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로 "간주"(regard)하는 것이다. 그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2,000년 전에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회상하고 기념하는 것이며,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그 시점과 그 현장에서 그 분을 영적으로 체험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단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 상에서 찢기시고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할(symbolize)뿐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례란 단지 상징이고 기념이고 형식일 뿐이라고 믿는 "성례형식주의"(Sacramentarianism)의 입장이 진정 신령한 것이고, 그것이 또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인 것이다. 무생물인 떡과 포도주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이든 영적이든 임재해 있다고 믿는 것은 신앙을 가장한 일종의 미신(superstition)이다. 성만찬 이전의 떡과 포도주와 성만찬 이후의 떡과 포도주가 그 본질이 달라지는가? 성직자가 축사나 기도를 한다고 해서 떡과 포도주에 화학적이든 물리적이든 영적이든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떡과 포도주 자체가 성직자의 기도로 거룩(聖)해지는가?

Lord's Supper의 성서적인 용어는 "주의 만찬"인데,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는 "성찬, 성만찬, 성찬식" 등의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개혁교회 전통에서 영적 임재설의 입장을 취하다 보니,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에 영적으로 임해 있기 때문에 그 떡과 포도주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거룩할 성(聖)" 자를 덧붙인 것 같다. 그래서 성만찬이 끝난 후에 남아 있는 떡과 포도주를 땅에 파묻는다고 한다. 성도들의 교제 시에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을 유다서에서는 "애찬"(유 1:12, Agape Feast)이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에서는 "자기의 만찬"(고전 11:21)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성만찬에 해당하는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주의 만찬"(고전 11:20), "주의 잔"과 "주의 식탁"(고전 10:21), "주의 떡이나 잔"(고전 11:27), "주의 몸과 피"(고전 11:27)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주님이 차리시고 주님이 베푸시는 식사이고 주님이 주인이신 저녁식사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는 "죽음과 장사와 부활"의 의미를 가지는 침례(Baptism)는 그 의미를 축소시켜서 죄씻음의 의미를 가지는 "세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주의 만찬(Lord's Supper)은 원래의 신약성서적인 의미보다 더 많이 확대시켜서 거룩(성, 聖)이라는 의미를 추가하여 "성찬, 성만찬, 성찬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위임하신 두 가지 의식(two ordinances, 침례와 주의 만찬)에 대하여 "신학적인 용어"가 아니라 "성서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연속성에 치중한 구약과 신약의 관계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오직 성경!"을 부르짖었지만,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discontinuity) 혹은 차별성(difference)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양자 간의 연속성(continuity)을 강조하였다.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 약속이다. 인간사회에서도 옛 약속과 새 약속 간에는 권위에 차이가 있다. 10년 전에 했던 약속과 1년 전에 한 약속이 있다면, 어느 약속이 더 우선적인 권위를 가지겠는가? 당연히 1년 전에 한 약속이다.

물론 구신약 성경(Old Testament and New Testament)에는 연속성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구신약 성경 66권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계시이다. 구신약 전체 계시의 주제는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agape) 혹은 구속(redemption)이다. 구약과 신약의 저자는 공히 하나님이시고, 그 주인공은 공히 예수 그리스도시다. 구약은 오실 예수에 대하여, 신약은 오신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에 대하여 증거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지상에 존재하게 될 교회를 염두에 두시고, 그 교회를 이스라엘 민족공동체를 통해 암시적으로, 모형적으로, 상징적으로 계시하셨다.

그렇지만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불연속성과 차별성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은 너무나 엄청나고 획기적이어서, 인류의 역사는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와 AD(Anno Domini, "주님 이후")로 구분되었다.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는 "공의로운 해"(Sun of Righteousness, 말 4:2)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출 것이 예언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해와 같은 존재라면, 구약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밤의 어두움을 밝히는 외등과 같은 존재다. 둥글고 밝은 해가 떠올라 어두움을 몰아내면, 외등은 비록 켜져 있어도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신약은 구약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불연속성과 차별성을 가진다. 따라서 성경해석자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힘입어 신약적인 관점에서 구약을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창을 통해서 기독론적인 구원사적 관점에서 구약을 보아야 구약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이단사설들과 성경해석의 오류가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Jan J. Kiwiet, Pilgram Marpeck [Kassel, Germany: J. G. Pncken Verlag, 1957], 121; Estep, The Anabaptist Story, 126).

무엇보다도 교회는 신약의 산물이다. 구약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개역개정 한글성경에 "광야교회"라는 말이 사도행전 7장 38절에 나오는데, 이는 광야총회(광야회집, Assembly in the Wilderness)로 번역되어야 옳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이 땅 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다. 교회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적인 권위를 갖는 책은 신약성경이다(김승진, 「근원적 종교개혁: 16세기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의 역사와 신앙과 삶」, 355). 성경은 결코 "평평한 책"(flat book)이 아니다. 필자는 성경에는 수많은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최고의 봉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의 산물인 교회에 관한 이론(교회론, ecclesiology)을 전개해감에 있어서, 구약에 일차적인 비중을 두어서도 안 되고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에 지나치게 집착을 해서도 안 된다.

구약의 할례가 신약에 와서 유아세례가 되었다는 신학(Theology of Infant Baptism)도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과 차별성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것이다. 또한 구약에서는 신정정치(Theocracy)에 의한 통치와 행정이 이루어졌었다. 이스라엘 민족공동체는 정치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종교공동체였다. 구약시대에는 정치와 종교가 두루뭉술 혼재해 있었다. 국교회(state church)나 시교회(city church)는 정치와 종교가 혼재해 있었던 구약의 신정정치 사상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영적인 공동체"(Spiritual Community of Believers)였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초창기 교회들은 세상과 세상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교회와 국가는 상호 무관하였고, 유아세례를 행하는 국교회나 시교회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오직 성경!"을 주창하였지만, 그들은 구약적인 사고에 치중해 있었고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과 차별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5. 취약했던 세계선교 의식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마 28:18-20), 즉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세계선교의 명령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실천이 부족했다. 그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로마가톨릭교회가 1,000여년 이상 지배하고 있던 유럽 내의 지역(Land, territory)과 주민들(Volk, people)을 자신들의 개혁사상을 따르는 지역과 주민들로 훈육하여 바꾸는 일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확보한 지역과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주창한 개혁적인 신앙을 주입시키고 그것에 입각한 사회체제를 이루어서 견고하게 지키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의 선교신학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요 그것은 사도시대에 이미 성취된 것으로 이해하였다(J. Herbert Kane, A Concise History of the Christian World Mission: A Panoramic View of Missions from Pentecost to the Present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78], 73). 사도 바울이 그 당시 땅끝으로 간주되던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유럽 밖에 살고 있던 잃어버려진 영혼들(lost souls)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였다. 특히 루터와 깔뱅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 및 선택과 이중예정의 교리에 의하면, 영혼구원과 선교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부질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구원받을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미 다 예정을 해 놓으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운동으로 인해 유럽 땅에서 잃어버린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 해외를 향해 선교의 눈을 떴다. 16세기 중반 로마가톨릭교회와 교황청은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의 일환으로 해외선교에 박차를 가하였다. 전통적인 로마가톨릭 선교단체였던 프란시스칸 수도회(Franciscan Order)와 도미니칸 수도회(Dominican Order), 그리고 종교개혁기에 새로 생긴 예수회(Jesuits, Society of Jesus) 등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교황청에 충성하였다. 그들은 무장을 한 정복자들(Conquistadores)과 함께 수도사 선교사들(Missionaries)을 파송하여 식민지 확보를 도모했을 뿐 아니라 유럽 밖의 세계를 로마가톨릭화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16세기 중반부터 교황청의 후원을 힘입어서 로마가톨릭 국가들에 의한 제국주의적 선교(imperialistic mission)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에,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유럽 내에서의 영향력 확보에 집중하였고, 그리고 각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은 자신들의 개혁적인 신앙과 교리들을 체계화하고 신학화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그래서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까지를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ism)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Cairns, 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 349-53). 16세기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의 활발했던 해외선교 활동과 비교해볼 때,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상대적으로 유럽 밖의 잃어버려진 영혼들을 위한 선교에는 별로 적극적이지 못했다. 근대적인 프로테스탄트 세계선교는 1792년에 가서야 영국 특수침례교회 목사였던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 근대선교운동의 아버지)에 의해 침례교선교협회(BMS, Baptist Missionary Society)가 창단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태동하게 되었다.

V. 결론

이상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를 많은 부분에서 개혁을 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여전히 그 교회의 잔재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루터, 쯔빙글리, 깔뱅 등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이 개혁하여 이루어 냈던 교회는 교회와 국가가 결탁하기 이전의 초대교회 모습으로 온전히 돌아가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은 "반혁명적"(半革命的, half-revolutionized)이며 "과도기적인"(過渡期的, transitional) 성격을 띠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의 교회는 16세기의 로마가톨릭교회와 1세기의 신약성서적 교회 사이에서 어정쩡한 타협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이 땅 위에 세운 교회는 "충분히 신약성서에 계시된 초대교회로 돌아가지 못한 교회"였으며 "충분히 신약성서적이지 못한 교회"였다고 진단할 수 있다. 그들의 교회론 속에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앙적인 잔재와 구약성서적인 정교일치의 신정정치 이념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사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 가운데 "애드 폰테스"(ad fontes)라는 말이 있다. "원천 혹은 분수령을 향하여 돌아가자"(back toward the fountain)는 의미다. 교회의 원천 혹은 분수령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을 때 그 분이 지상에 세우고자 의도하셨던 교회이다. 이 교회는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에 근거한 교회였으며, 세속적인 국가권력이나 시권력과는 무관한 교회였고,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영적인 몸으로서의 공동체"(Community as Spiritual Body of Believers)였다. 분명한 신앙고백이 불가능한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들에게 뱁티즘을 베푸는 전통(유아세례 전통)을 견지했고 세속권력가들의 후원을 입어 시교회 혹은 국가교회 체제의 교회를 이루었던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이런 점에서 충분히 "애드 폰테스"를 이루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이 지상에 세우고자 하셨던 교회의 모습, 신약성서가 말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들이 교회당(church building)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 교회(church)는 아닌 것이다. 개혁교회 진영에서는 교회를 "택함 받은 자들"(The Elect)로 정의하는데, 이렇게 정의하면 교회의 개념이 모호해져 버린다. 누가 택함 받은 자인지는 하나님만 아실뿐 인간들은 분명히 알 수가 없다. 교회를 택함 받은 자들로 정의하면 "장차 택함 받을 자들," "장차 믿게 될 자들"까지도 교회로 간주하게 되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들까지도 교회에 포함하게 될 위험이 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자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자임을 고백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는 자에게만 뱁티즘을 베풀고 그렇게 뱁티즘을 받은 신자들로 이루어진 교회, 세상이나 세속권력과 결탁하지 않은 순수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Church as Bride of Christ)가 신약성서가 말하고 있는 교회이며 자유교회 전통 속에 있는 교회인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신약성서적인 "참 교회"(True Church, Rechte Kirche)를 회복하여야 한다. (끝)

발표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vN99tPerEw&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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