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서광선 서보명 대담] 『미국의 묵시록』과 미국의 종말

입력 Dec 08, 2017 11:39 AM KST
미국의묵시록
(Photo : ⓒ 아카넷)
▲시카고신학대학의 서보명 교수가 최근 출간한 『미국의 묵시록』(아카넷, 2017) 표지

편집자 주] 시카고 신학대학의 서보명 교수가 최근 『미국의 묵시록』(아카넷, 2017)을 출간했다. 서 교수는 미국의 역사와 문화 저변에 종말론적인 정서가 있음을 간파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성향과 자유주의적인 제도를 종말론적인 이해로 설명하고자 했다. 본지의 서광선 회장(이화여대 명예교수)이 서보명 교수와 그의 근간 저서에 관해 지면 대담을 나누었다.

서광선: 존경하는 서보명 교수님, 서울의 출판사 아카넷을 통해서 보내주신 서 교수님의 근간 『미국의 묵시록』, 감사합니다. 한마디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우리 대화를 기독교 온라인 신문인 <베리타스>에 게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 지면 대담을 허락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서 교수님은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면서 감리교 대학으로 유명한 드류 대학에서 철학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학위, 그리고 시카고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 그 학교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5세 한국 이민자로서 미국의 학계와 교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나는 이 책이 미국의 오늘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내일에 대해서 심히 염려하는 미국 비판서로 읽었습니다. 옛날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신에 대한 반역을 고발하며 이스라엘의 신인 야훼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그 종말을 예언한 것과 다르지 않은, 미국을 향한 예언자의 외침으로 읽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읽었는지요? 제대로 읽었는지 말씀해 주시고, 한 가지 질문은 이런 책을 미국 사람들이 읽도록 영어로 쓰지 않고 한국말로 썼는지부터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보명: 한국 신학계의 원로이신 서광선 교수님께서 제 책을 읽으셨다는 것만으로도 제겐 영광입니다. 『미국의 묵시록』은 미국에 대한 비판서로 읽혀질 요소가 충분히 있는 걸 저도 잘 압니다. 제 의도는 한국에서 흔히 알려져 있는 미국이 아니라, 제가 미국에서 오래 시간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부분을 쓰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논문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기행문 같은 걸 상상하면서 쓴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냈습니다. 미국의 역사와 문화 저변에 흐르는 종말론적인 정서가 있다는 게 책의 주제이고, 이를 여러 인물들과 개념들을 제 나름대로 읽으면서 서술하고자 했습니다. 흔히 미국을 생각할 때 제국주의나 패권주의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자유나 평등의 민주주의가 바로 미국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의 모습에 좀 더 명확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다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를 신학의 관점에서 묵시록적인 종말론으로 설명했습니다. 종말론적인 이해로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성향과 자유주의적인 제도를 설명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역사에서 종말론이나 묵시를 읽어내는 책들은 많고, 이는 미국의 대중문화 연구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종말론은 서구사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고, 유일신 사상의 한계를 종말론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양의 기독교 정신이 깊이 박혀 있는 미국에서 종말론을 읽는 건 어렵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책에서 종말론이 미국 정신의 본질적인 요소이고 이를 배제하고서는 미국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종말론이 현재도 진행 중이고,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핵무기 문제도 그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의 정서 저변에 종말론은 미국이 부여받은 사명으로 존재하고 미국은 종말이라는 끝을 위해 있는 나라라 파악했습니다. '종말론적'이란 말은 분명히 해석이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종말론적인 사명은 최소한 '종말'의 사건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예컨대 트럼프가 보이는 막가파식 발상은 트럼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더 깊은 역사적인 인식 속에서 이해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서보명
(Photo : ⓒ www.gyosu.net)
▲서보명 시카고신학대 교수

왜 이런 책을 한국에서 내게 됐느냐 물으셨는데, 사실 미국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오래 전부터 막연히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부터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었고, 사람들이 미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에 대해서도 늘 관심이 있었고요. 사실 미국에 대한 관심은 미국 밖에서 더 많습니다. 많은 탁월한 '미국론'의 진원지가 미국 밖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이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한국만큼 미국에 대한 인식이 둘로 나눠져 첨예하게 대립하는 나라도 없을 거란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갈등과도 연관이 있겠지요. 제 책에 담긴 관찰로 인해 한국의 독자들이 미국에 대한 좀 더 다르고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내게 됐습니다.

서광선: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서 교수님의 책을 읽고 나올만한 즉각적인 반응은 "배은망덕"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데, 미군이 아니었으면, 6.25 때 남한은 적화통일이 되었을 테고, 한반도가 공산당의 마수에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을 살린 나라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게 말이 안 된다고 소리지를 것입니다. 우리를 살린 미국을 이렇게 비판하는 것을 보면, 서 교수는 확실히 "종북"아니면 "좌파"일 것이다라는 비난을 받을지 모를 일입니다. 뉴스에서 보셔서 아시겠지만, 작년 가을부터 광화문 광장에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규탄하며 촛불을 들고 "이게 나라냐?"하며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은 "촛불 부대"에 반대해서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엉뚱하게도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나와 박근혜를 지지하고 미국을 찬양하는 주로 기독교인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무슨 말로 응답하시겠습니까?

서보명: 저도 태극기 집회의 실상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미국에 대해 너무 일방적인 이해를 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당시 뉴스에서 태극기와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 보수 기독교의 관점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등장시킨다는 건 묵시록의 '제스처' 혹은 '퍼포먼스'입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 있을 아마겟돈 전쟁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다는 그들의 믿음을 재확인하는 행위인 것이지요. 며칠 전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묵시록의 전쟁을 떠올렸을 겁니다. 한국의 태극기와 미국의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를 함께 등장시킨 의미가 트럼프에게 북한을 상대로 묵시록의 전쟁을 일으켜 모든 걸 끝내버리란 요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 책엔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이 싫어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자유나 민주주의가 다른 나라를 돕자는 이념이 아니란 지적도 했고, 특히 청교도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부각시키면서 비판적인 언급도 많이 한 셈입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평등하고 상호적인 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서 미국에 대한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하겠지요. 태극기 집회에서 성조기를 들고 미국을 찬양하는 분들은 아마 제가 종말론으로 읽은 부분을 하나님의 은혜란 섭리로 이해한 것 같은데, 미국을 신학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에서는 같은 해석이라 생각하는데, 묵시록의 종말론과 은혜의 섭리라는 해석의 차이겠지요. 저는 책에서 미국 '성조기'가 별 의미 없이 흔들 깃발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서광선: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서는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루터와 그 이전의 서구 개혁자들의 업적을 논하면서 개혁자들이 부르짖은 양심의 자유, 가톨릭교회의 교권을 향해서 비판하고 저항하는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신앙의 자유, 종교 이념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성서해석의 자유, 나아가서 학문의 자유를 부르짖게 되었고, 급기야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서구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을 기억하고 찬양했습니다.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 학문의 자유, 개인의 신체적 자유는 종교개혁의 과실이며, 민주주의 정신과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 되었다고 설파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서 교수님이 밝힌 대로, 플리머스 배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험난한 대서양을 항해하여 거칠고 낯선 땅에 붙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미국이 이제 그 자유, 그 종교적인 자유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한반도에서는 8.15해방 이래 북에서나 남에서 이 자유라는 가치를 몸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 이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지성인들이 희생당했는지 모릅니다. 미국은 6.25 때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잘 알지도 못한 나라에 와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이 그 "자유"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미국은 이 자유 때문에 종말을 고하게 되는 건가요?

서보명: 저도 미국에서 말하는 자유라는 개념이 실제 역사와는 큰 연관이 없는,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면, 미국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알려진 '자유' 역시도 같은 관점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교수님의 말씀과 같이 자유를 인류의 소중한 가치라 생각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해 자유를 찾고자 했던 수많은 숭고한 노력들이 인류 역사에 있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적인 자유는 개념화되고 이데올로기화된 자유와는 많이 다르지 않나 먼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자유라는 개념은 근대 역사를 읽는 - 요즘 한국에서 많이 쓰는 표현을 쓰자면 - '프레임'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곧 근대의 역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고, 자유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지요. 저는 '자유'가 그런 중심적인 가치가 된 배경에는 미국의 노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유럽의 역사는 자유를 추구해 왔고, 그 결정체가 바로 미국이고, 그 이후 미국은 자유의 화신이 되어 인류를 자유로 인도해 역사를 완성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미국의 정서에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 원리로 역사를 읽다 보니 루터의 종교개혁은 자유를 향한 근대사의 원조가 되고, 청교도들은 자유라는 신앙의 선조가 되고, 미국의 독립전쟁은 싸워서라도 자유를 찾고자 하는 행위가 되고, 그 이후 많은 전쟁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전쟁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 역사에서 미국은 바로 자유의 나라, 자유라는 초월적 가치를 구현한 나라입니다.

요즘 누가 미국이 자유의 나라이고, 미국 자체가 바로 그 자유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나라입니다. 옛날에 미국이 자유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변한 게 아니란 말이지요. 그렇다면 미국이 만든 자유의 이념사나 미국이 자유의 나라란 생각도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선 피상적으로밖에 다루지 못했지만, 미국의 종말론이란 관점에서 이 자유를 종말론의 현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광선: 서 교수님의 책이 나오기 전에 10월 마지막 주간에 서 교수의 대학 모교인 드류대학교의 신과대학 교수 두 분이 서울의 신학대학에 강연 차 내한했습니다. 내가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하고 잠시 드류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할 때 만나 친분이 있는 Catherine Keller 교수의 논문 발표회에 참석했습니다. 강연회의 주제는 "Alternative Thought to Global Capitalism in the Posthuman Age"였고, Keller 교수의 논문은 "A Political Theology of Now: Human Exception or Planetary Entanglement?" ("지금[now]의 정치신학: 인간의 예외성인가, 행성적 얽힘인가?")였습니다. Keller 교수가 그의 정치신학에서 강조한 것은 "예외주의"(exceptionalism)이었습니다. 나는 이 "예외주의"라는 것이 정치신학의 화제가 되는 것에 놀랐습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스스로 예외가 되려고 악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른 사람," "특출한 사람," "빼어난 미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갖은 짓을 다하는 "경쟁사회"가 되었습니다. 권력이 있는 자들은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 법 위의 존재"로 자처하고 온갖 비리와 불법을 자행하여 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란 사람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박근혜와 그의 참모들, 최순실과 그의 딸마저도 자기들은 특별한 사람으로서 법 위에 군림하고 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자 이제 서 교수님의 비판에 미국이란 나라는 선택되었다는 선민의식과 함께 다른 민족들과 인종들과는 다른, 예외적인 백인국가라고 오판하고, 다른 나라들을 향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판단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총포를 소유해도 되고, 나라가 지구 온난화를 걱정 안 해도 되고, 다른 나라는 핵무기를 소유해서는 안 되지만 자기 나라만은 소유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최근 대한민국의 국빈으로 내한해서 국회에서 연설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힘이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이 말은 미국에게만 해당되고, 북한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그러니까 미국은 핵무기를 대량 소유해도 되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만, 북한은 안 된다는 말이 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북한이 기어코 핵보유국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미국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지해야겠다는 거 아닌가요? 서 교수님은 미국 사람들의 선민사상과 이 예외주의가 어떻게, 그리고 왜 문제가 되는지 부연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보명: 켈러 교수의 강연 내용을 접하지는 못했지만,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나 인간을 예외적인 동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한 정치신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환경이나 생태계를 초월하는 예외주의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세상을 망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저는 책에서 자본주의 종말론이란 관점으로 그 부분을 다루었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미국의 선민사상과 예외주의는 아직도 미국에서는 흔한 자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민'이라는 말은 너무 종교적이고 배타적인 색채가 강해 잘 쓰이지 않고 최근에는 예외주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주로 미국을 비판하는 용어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예외주의가 청교도에서부터 트럼프까지의 미국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 문제에 대해선 교수님이 다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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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본지 회장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예외적이란 말은 단순히 다르고 특별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유일하다는 뜻까지 포함합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가 미국과 같이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의 예외성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이 예외적인 나라로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청교도 시절부터 미국이 부여받았다고 믿는 선택받은 자의 '사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낡은 역사에 종언을 고하고 하나님 나라로 이어지는 마지막 시대를 연다는 종말론적인 것이라 봅니다. 미국은 그 사명을 위해 선택받았기 때문에, 역사가 완성되기 전까지 그 사명을 다른 나라들과 나눌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미국이 자신을 심판자로 인식하고, 다른 나라의 패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유일한 슈퍼파워로 남겠다는 의지도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제 얘기는 '종말론의 나라, 미국'이라는 가설을 이용해 미국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런 종말론의 비전을 갖고 있거나 그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보수 기독교인들은 다릅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근본주의의 후예들이고,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대주의 전천년설이라는 종말론의 후예들입니다.

서광선: 마지막 질문입니다. 서 교수님 생각에는 미국은 희망이 없습니까? 나는 교수님의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미국이 선택해야 할 대안, 미국이 망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미국이 옳고 바르게 설 수 있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절망적인가요? 결국, 미국과 일본이 무력으로 중국을 억누르고, 핵폭탄으로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고 나서 미국의 백인들끼리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기독교성경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독차지하게 되는 것인가요? 지금 헤겔이 살아 있고, 니체가 살아 있다면 서 교수님의 "미국의 묵시록"을 어떻게 읽고 평가할지 몹시 궁금합니다. 나는 미국의 미래가 세계의 미래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마 제국이 Pax Romana를 부르짖고 영원한 왕국으로 영생할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미국도 Pax Americana를 부르짖으며 영생할 것인가요? 로마 제국이 망했지만, 유럽은 살아남았던 것처럼, 미국은 망할 거지만 세계는 계속될 것이 아닌가요? 그 때, 그 카이로스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미국의 묵시록』 속편으로 『세계의 묵시록』을 집필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서보명: 저는 미국이 쉽게 몰락할 것이란 생각은 안 하지만,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상태에서 세상의 운명이 미국의 운명과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미국이 망하고 세상은 번성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저는 미국이 좀 더 건전한 세상의 한 축이 되려면 종말론과 예외주의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인식을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뒷받침할 수 있을 때 일어납니다. 월등한 군사적 힘이 예외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세계관에 더해졌을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현재 미국의 모습을 그런 관점에서 읽을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예외적인 나라가 되고 싶다면, 일례로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는 전통을 되살려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제2의 기회를 세상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미국은 그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독특한 예외주의가 과거 히로시마의 핵폭탄이나 냉전시대 쿠바의 미사일 사태 때, 또 최근 북한의 핵무기 사태를 통해 보는 것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말론의 자신감으로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저는 책에서 트럼프를 묵시록의 영웅이라고 불렀는데, 실제 트럼프 그 자신은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 주변에 종말론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특히 그의 지지자들 중에 예수의 재림과 종말을 소망하고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으로 시작했고, 그 비전을 초기엔 종교적으로 키웠지만 어느 순간 이후엔 세속화된 상태에서 그 비전을 발전시켜 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묵시록』은 미국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종말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새로운 나라'라는 인식으로 시작했지만, 그 새로움 속에는 '마지막'이란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 그 마지막은 세상의 끝 또는 완성이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세상에 대해 갖는 자신감은 세상의 운명이 미국과 함께 결정된다는 자신감이라 생각하고, 그 자신감은 미국은 정의롭기 때문에 패배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식이 미국이 세상의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정책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도 보고요. 현대의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을 종말론의 나라라고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겠고 그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제가 파악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서적 밑바닥에 그런 인식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교수님과 같이 저도 미국의 미래가 세상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예외주의와 종말론의 사상이 군사력과 합쳐져 만들어진 현대의 미국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는 제 한계를 넘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저는 서구의 사상가들 중에서 특히 교수님이 언급하신 헤겔과 니체가 각기 다른 입장에서 제 책을 잘 이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헤겔은 제가 책에서도 다뤘는데,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처럼 미국의 종말론적 정체성을 고민한 면이 있고, 실제 그의 유명한 역사철학의 이론으로 미국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니체는 반대로 미국의 종말론을 무척 비판했을 걸로 생각을 합니다. 니체는 미국의 에머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에머슨의 미국론이나 인간이해는 청교도들의 종말론의 세계관에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머슨은 동양의 순환적인 시간 이해를 좋아했고, 니체는 이를 영원회귀(Eternal Recurrence)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키기도 했고요.

『미국의 묵시록』의 속편을 말씀하셨는데, 이런 책을 한 권 냈다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제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미국에 대해 이전과는 색다른 이해를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광선: 서 교수님,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지면 대담을 읽고 『미국의 묵시록』을 정독하면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한반도,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기도의 제목과 우리의 행동과 정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기 바라겠습니다. 교수님의 연구와 활동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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