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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회와 개혁의 과제들(III)
김승진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침례교역사신학회 회장)

입력 Dec 12, 2017 10:23 AM KST

편집자 주] 필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한국 개신교회가 겪고 있는 병리현상들을 진단하고, 건강하고 신뢰받는 한국 개신교회의 회복을 위해 나름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은 필자가 최근 출간한 『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서울: 나침반출판사, 2015)에서 제9장의 내용 중 일부를 전재한 것이다. 필자의 허락을 얻어 3부로 나누어 연재한다.

6. 교회성장에 관한 비전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에 관한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교회의 대형화(大型化, megachurch)이다.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염려할 이유는 없다. 교회는 유기체요 생명체이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나의 지역교회가 크게 성장하여 대형교회가 된다면, 그 교회로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사명과 책임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교단 내에서 대형교회가 되어 교단의 얼굴 역할을 한다든지 교회개척과 해외선교와 장학사역을 위해 큰 일을 감당하는 것은 축하하고 권장할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했느냐는 것이고,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가 계속적으로 건강하냐는 것이다.

교회가 대형화하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 개념이 희박해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 것 같다. 익명성 속에 파묻히기를 좋아하고 희생하기를 싫어하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대형교회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있듯이, 수많은 교인들 속에서 홀로 주일예배만 참석하고 성도들의 교제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공동체로서의 교회 개념이 그들에게는 없거나 희박하다. 중대형 교회에서는 구역이나 소그룹이나 셀교회 조직을 통해서 "가족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교회가 대형화하면 자연히 목회가 기업활동처럼 변질될 우려가 없지 않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교인들도 목회자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한다. 목자와 양이라는 친밀한 관계가 사라지고 설교자와 청중이라는 비인격적인 관계가 자리잡게 된다. 목회자는 교인들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데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교회당이 교회 그 자체는 아니지만, 예배와 말씀공부와 기도와 교제 등 교회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구별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교인수가 갑자기 급증하는 경우, 많은 교인들을 한 자리에 수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대형교회당을 건축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건축 프로젝트는 계획단계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전체 교인들이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전체 교인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거하여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교인들 전체의 동참으로 자신들의 희생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을 위해 가치 있는 헌신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담임목회자가 지나치게 의욕이 넘쳐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건축헌금을 강요하기도 한다. 교회가 은행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금액을 융자받았다면 재정적인 핍절과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요즈음 은행으로부터 빌린 융자금에 대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강제압류를 당하는 교회들도 속출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목회자나 교회지도자들의 인간적인 야망이나 탐욕이 빚어낸 재앙이다. 숫자적으로 급성장하는 교회보다도 건강한 교회와 균형잡힌 교회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또한 작지만 튼튼한 강소형(强小型)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도 고심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지역교회의 확대"라는 측면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차원에서 교회성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를 확대성장, 후자를 확장성장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확대성장"(擴大成長, Expansion Growth)은 지역교회가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하여 큰 교회가 되는 것을 말한다.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성장이 균형을 이루고 전도를 통한 영혼구원과 제자양육이 균형을 이루어 알차게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확장성장"(擴張成長, Extension Growth)은 지역교회가 여러 개의 교회들을 개척하여 동역하던 목회자들을 그러한 교회들에 파송하거나, 많은 헌신자들을 신학교에 보내어서 미래의 교회지도자나 선교사로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10,000명 교회가 1개 있는 것과 100명의 교회가 100개 있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더욱 효과적일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다양한 여러 개의 교회들이 전도대상자들과 교인들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켜줄 때, 장기적으로는 1개의 대형교회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담임목회자들이 확대성장을 위해서도 헌신해야 하겠지만, 시야를 보다 크게 넓혀서 확장성장의 비전을 가져야 하겠다. 그리하여 더 많은 교회들을 개척하고 더 많은 차세대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세우는데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야 하겠다. 어떤 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했다면 그 교회를 몇 개 교회들로 분립하여, 각 교회가 독립된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하는 것도 확장성장의 한 방법이다. 한국교회들, 특히 도시의 중대형 교회들은 확대성장에도 애써야 하겠지만,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 확장성장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하겠다.

7. 대형교회 담임목회직의 대물림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혈육 간 담임목회직의 대물림(세습) 문제이다. 이것이 일종의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대형 혹은 초대형교회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같은 단체에서도 "교회세습반대운동"을 가장 중요한 활동목표들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교회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임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교회의 주인이 되어서 담임목사 마음대로 그의 자식이나 인척 가운데에서 후계자를 세우는 것이다. 교회의 사유화 현상이 빚어내는 결과가 담임목회직의 대물림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도 교회세습은 가능한 한 금기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담임목회직의 대물림 문제와 관련해서, 지역교회의 독립성(Independence)과 자치권(Autonomy), 그리고 지역교회의 자치적인 행정을 중요한 교회론 원칙으로 삼고 있는 침례교회에서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지역교회 자치주의" 원칙(Autonomy of the Local Church, 이것은 개교회주의라는 말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개교회주의"라는 말은 다른 교회들이나 기독교기관들과의 상호 협력에 인색한 개교회중심주의 혹은 개교회이기주의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이란 "지역교회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Christocracy, 그리스도에 의한 통치), 성령님의 지도력을 따라(pneumatophoria, 성령님의 인도하심), 어떤 상위의 혹은 외부의 교회기구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회중을 구성하는 회원들 모두가 교회의 일과 교회의 결정에 목소리를 내면서(Democracy, 민주주의), 교회의 전체 회중이 자치적으로 결정(Self-decision)하는 것"(James Leo Garrett, Jr., Systematic Theology: Biblical, Historical, and Evangelical, 2nd ed. [North Richland Hills, TX: Bibal Press, 2001], 2:644)을 의미한다.

사실 신약성서에는 지역교회 위에 군림하는 연합회, 즉 노회나 지방회나 총회나 연회 같은 상위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역교회는 상호독립적이었고 자치적이었다. 10,000명이 모이는 교회나 10명이 모이는 교회나 본질에 있어서 각각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동등한 하나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Spiritual Body of Christ)이었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Christ-centered democratic congregationalism, 신적인 민주주의 Theo-democraticism)를 교회행정의 기본원리로 삼고 있는 침례교회에서는 지역교회 내의 인사문제, 예산과 결산 등 재정문제, 교회건물과 토지의 관리 및 처분, 교회의 목회나 선교정책의 수립, 교회 내부의 갈등이나 도덕적인 문제 등 교회생활의 모든 양상들에 대해서, 각 지역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방회나 총회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기관들은 지역교회의 일에 개입하거나 간섭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지역교회들 간에 상호교제와 협력을 도모하고, 그리고 지역교회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지방회나 총회는 지역교회들 위에 군림해서 지역교회 내부의 문제에 참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침례교회에서는 후임목회자를 결정하거나 현 담임목사의 은퇴 후 새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것도 교회회원들(church members)이 "지역교회 자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지역교회에서 "담임목사청빙위원회"가 구성되어 새 담임목사를 물색할 때에, 필자는 현 담임목사의 자녀나 인척도 "그가 충분한 인격과 영적인 자격을 갖춘 목회자라면" 여타 다른 후보자들처럼 한 사람의 후보자로서 지원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본다. 현 담임목사의 자녀나 인척은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한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체 교회회원들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대다수가 투표하여 새 담임목사를 결정했다면, 그가 현 담임목사의 자녀이든 인척이든 상관없이 그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담임목사가 자신의 자녀나 인척을 새 담임목사로 세우기 위해서, 선출의 과정에 "비상식적으로 혹은 불법적으로" 개입하여 평신도지도자들을 돈으로 매수한다든지, 담임목사의 영향력을 동원하여 강압적으로 교인들의 여론을 조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대다수의 교인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새 담임목사를 선출하고 청빙하여 자신들의 새로운 영적인 지도자로 세우는 것을 그 지역교회의 밖에 있는 어느 누가 비판하고 비난할 수 있다는 말인가?

8. 북녘 동포들의 복음화

한국교회는 북녘 동포들의 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준비하여야 하겠다. 사실 한반도에 복음이 처음 증거되기 시작했던 지역은 북녘 땅이었다. 최초의 해외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한글을 배우며 선교를 준비했던 곳도 그 지역이었다. 일제의 식민통치 시대에 평양은 1907년에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곳이고, 최초의 신학교가 세워졌던 곳이고,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독교가 융성했던 곳이다. 그런데 해방 후 남북이 나뉘어져서 북쪽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피난을 와서 정착하였고, 남아 있던 북녘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공산치하에서 엄청난 핍박을 당하거나 순교하였다. 그 후 지금까지 북녘 땅은 양심과 신앙의 자유가 없는 영적인 암흑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한에 세워진 교회들을 축복하셔서 세계선교역사 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부흥과 성장을 선물로 주셨다. 이제 남한에 있는 개신교회들은 북녘 땅에 진 영적인 빚을 갚아야 한다. 한국의 개신교회가 해외선교를 위해서 크게 헌신하고 있지만, 앞으로 북한선교를 위해서도 크게 쓰임받을 날이 곧 올 것이다. 요즈음도 북한선교를 위해 은밀하게 희생적으로 힘쓰고 있는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이 많이 있고, 이들은 이미 통일의 때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북녘 땅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고 있는 "남은 자들"(Remnants)과 "그루터기들"(Stumps)이 핍박의 공포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이라는 종교에 물들어 있는 많은 북녘 동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남한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남과 북의 장벽이 허물어질 때를 대비하여 깨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하겠다.

10여년 전에 연변 과학기술대학교의 김진경 총장님이 침례신학대학교 목회대학원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 주신 적이 있었다. 그 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분은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중국이나 북한에서 거주하고 활동하시는데 별 제약이 없었다. 그 당시에 김 총장님은 한 달 중에 두 주 정도는 중국 연변 땅에 거하시며 학교 일을 돌보시고, 한 주는 북한 땅에 들어가셔서 시골마을 깊숙한 곳까지 찾아가 은밀히 지하교회의 성도들을 만나시고, 다른 한 주는 남한 땅에 내려 오셔서 초교파적으로 교회들을 방문하며 모금활동과 함께 신앙간증과 설교를 한다고 하셨다.

한 번은 김 총장님이 남한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증거하셨는데, 예배 후 이어서 제2부 순서로 북한선교를 위한 기도회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사회자가 "무너진 북한교회를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라고 말했을 때, 김 총장님은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지셨다고 한다. "무너진 북한교회? 북한교회가 무너져?" 자신이 볼 때에는 진정 무너진 교회는 오히려 남한의 교회같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북한에는 교회당 건물도 없고 외양도 없어서 겉으로는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의 지하교회는 무너지기는커녕 생명을 무릅쓰는 헌신적인 신앙으로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남한의 교회가 대형 교회당과 편리한 현대적인 시설들을 자랑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물질만능의 자본주의와 세속주의 사조의 침입으로 인해 비참하게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는 교회로 보이더라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북한의 동포들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다.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은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서 희생한 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8·15 해방이 인간적인 노력을 초월해서 갑자기 찾아왔듯이, 조국의 통일 역시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한반도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역사하심은 마치 도적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일어날 것이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남북통일과 통일 후의 북한동포 복음화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며 준비하여야 하겠다. 남과 북이 통일되어 북한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자유롭게 증거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한반도에서 종교개혁은 여전히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고, 북한 땅에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남북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기도드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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