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신앙의 경주

장윤재 목사(이화대학교회)

- 이사야 43:18-20, 빌립보서 3:12-14, 마태복음 6:3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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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2018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교우님들의 가정과 일터 위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새 출발의 각오가 아직 새로운 이 때, 오늘 아침은 빌립보서 3장 12-14절의 말씀을 가지고, "신앙의 경주"라는 제목으로 잠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빌립보서 3장은 사도 바울이 누구였으며 그가 어떻게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단절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됐는지 자세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한 때 율법적으로는 아무 흠 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직 그 목표에 다다른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새 출발 선언에서 세 가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앞만 바라보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며, 셋째는 목표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첫째,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요즘 많은 분들이 운전하시는데, 자동차에는 주차 브레이크 혹은 핸드 브레이크라는 게 있습니다. 주차할 때 안전을 기하기 위해 뒷바퀴만 잠그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것을 풀지 않고 운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차가 앞으로 가기는 가는데 뒤에서 자꾸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어디 고장 났나 싶어 계기판을 바라보면, 핸드 브레이크 장치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교우 여러분, 새해 새 출발 시작을 했는데, 마치 주차 브레이크 푸는 것은 깜박 잊고 가속기만 힘차게 밟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풀어야 할 것들을 풀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려는 분들은 없습니까?

언젠가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전북 익산에서 행상을 하시는 한 할머니가 예금통장을 만들 줄 몰라 6백53만원이나 되는 현찰을 항상 머리에 이고 다녔다고 합니다. 당시 70대이던 강복순 할머니는 2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어렵게 행상을 하며 그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돈을 누가 훔쳐 갈까봐 보따리에 싸서 항상 껴안고 다녔다고 합니다. 밥 먹을 때도 깔고 먹고, 잠잘 때도 베고 잤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느 경찰관의 도움으로 이 돈을 은행에 예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행상에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혹시 우리 가운데도 이 할머니 같은 분은 없으십니까? 새해가 밝았는데, 하나님이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안전한 은행을 눈앞에 놔두고, 자나 깨나 무거운 근심걱정을 껴안고 사는 분들은 없습니까?

이사야서를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난날의 괴로운 일들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않고, 지나간 과거를 내가 다시 되돌아보지 않겠다"(이사야 65:16).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이사야 43:18-19a). 여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의 영어번역은 "do not dwell on the past"입니다. 즉 '과거에 머물며 꾸물거리지 말아라'입니다. 과거의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새 창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머물며 거기서 꾸물거리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앞만 바라보고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이라는 단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바울은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땅만 바라보며 땅의 것만 생각하며 삽니다. 하지만 바울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래전 미국의 어느 소년이 길에서 5달러짜리 지폐를 줍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든지 행여 또 이런 행운이 오지 않을까 이후 땅만 쳐다보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게 습관이 되고 취미가 되고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 소년이 인생의 황혼기가 되어 일생동안 길에서 주워모은 것들을 세어보았습니다. 단추가 2만 9천 519개, 머리핀이 5만 4천 172개, 그리고 수천 개의 페니, 그 외 수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을 줍느라 그는 평생 땅만 보고 살았습니다. 푸른 하늘과 예쁜 꽃들과 새들의 날갯짓을 볼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일생은 결국 넝마주이의 인생으로 끝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쳐다보고 사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땅을 보고 사는 자는 땅의 것으로 살 것이요,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자는 하늘의 것으로 살 것입니다. 미래를 쳐다보고 사는 자는 미래의 꿈과 소망으로 기쁨을 누릴 것이요, 과거를 쳐다보고 사는 자는 과거의 아픔과 분노와 아쉬움에 발이 묶여 주저앉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수없이 "너희 눈을 들라"고 말합니다. 시편 121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서이다"(1-2절)라고 노래합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는 것은 우리의 시야의 지평선을 넓힌다는 의미입니다. '지평선' 혹은 '수평선'은 영어로 Horizo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호로스'(horos)입니다. 호로스란 '한계' 혹은 '경계'라는 뜻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수평선 혹은 지평선을 인간이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어떤 한계선 혹은 경계선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주를 체험한 우주비행사들은 이 세상에 두 개의 Horizon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sensible horizon," 즉 '감각의 지평선'이고 다른 하나는 "celestial horizon," 즉 '천체의 지평선'입니다. 지구를 떠나 우주 속에 들어가면 감각적 지평선은 사라집니다. 대신 거대한 우주 속에 새로운 지평선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지평선을 경제적 부나 정치적 권력이나 사회적 명예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감각적 지평선'입니다. 땅의 수평선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의식하고 하늘을 보며 사는 사람은 땅의 것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3:18-19에서 바울은 멸망하는 자들은 "땅의 것만을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여기 "땅의 것만을 생각한다"는 구절은 영어성서에서 "This world is the limit of their horizon"(그들의 지평선은 이 세계로 제한되어 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새해 우리의 영적 눈을 '하늘의 지평선'에 맞추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에만 집중해 달려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것들 중에서 오직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에만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맹수 조련사들이 사자나 호랑이를 훈련시킬 때 사용하는 특별한 도구가 있다고 합니다. 채찍이요?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아주 평범한 물건입니다. 간이식당 같은데 가면 볼 수 있는 '등받이가 없는 네 개의 다리로만 된 의자'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어떤 난폭한 맹수도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처럼 유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의자를 들고 다리 쪽을 사자나 호랑이 얼굴 앞에 들이대고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맹수들은 이 의자의 다리 네 개가 각각 자신을 공격하려는 서로 다른 적인 줄 알고 극도로 긴장해서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동시에 여러 곳에 신경을 집중하다보면 정신이 나른해져서 일종의 마취효과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난폭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맹수를 길들이는 방법입니다.

새 해가 되면 사람들은 으레 몇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올 해는 이것을 해야지, 저것을 해야지... 하지만 여러 계획과 소망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인지 무엇인지 분명합니까? 토마스 케플러(Thomas Kepler)는 그의 명저 『성자와의 여행』(A Journey with the Saints)이라는 책에서 성서와 역사에 나타난 훌륭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은 시간의 중심을 언제나 하나님께 두었던 사람입니다. 그들은 결코 서둘거나 바쁘게 살지 않았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도 하나님과 연결시켜 생각했습니다." 구약성서의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 사람아... 주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3)고 하셨습니다. 새해 우리의 삶에 무엇이 가장 우선순위인지가 분명해야 하겠습니다.

셋째,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기. 사도 바울은 자신을 달리기 운동선수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살았던 시대에는 육상경기가 주축이 된 '이스트미안'이라는 경기가 실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서신 곳곳에서 신앙을 달리기 경주에 비유하곤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고린도전서 9:24).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신앙도 경쟁이라는 사실입니다. 교인들은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살다가 교회에서 잠시 안식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성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신앙의 길은 구름 떼와 같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의 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경주대회와 같다고 말입니다.

올해가 '황금 개띠의 해'라고 하지요. 개면 그냥 개지, 황금 개는 무언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쩐지 이 시대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해인사로 '부자 되세요' 한다고 합니다. 올해만이 아닙니다. 언젠가 여자 탤런트가 TV 광고에 나와, '부자 되세요'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말이 굉장히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어느 목사님은 '진정한 부자'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10가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 분의 칼럼 내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혹시 자신에게 몇 개나 해당되는지 한 번 세어 보십시오.

(1) 친구의 일과 사업이 성공적일 때 마음이 흐뭇하고, 또 나보다 아름다운 친구의 용모에 샘이 안 나면 그는 부자이다. (2) 남을 위해 돈을 쓸 때 아까운 생각이 안 나면 그는 부자이다. (3) 아들이나 딸들이 보통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생각이 들면 그는 부자이다. (4) 식사 기도를 드릴 때마다 진심으로 그 음식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면 그는 부자이다. (5)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고 새의 노랫소리가 귀에 크게 들리면 그는 부자이다. (6) '모자라다, 더 있어야 된다'는 생각보다 '이만한 것도 얼마나 감사한가'라는 생각이 들면 그는 부자이다. (7) 남을 비판하는 횟수보다 축복하는 횟수가 더 많으면 그는 부자이다. (8) 현재나 과거를 후회하는 마음보다 그 마음이 내일이라는 집에 살고 있으면 그는 부자이다. (9) 바쁠 때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으면 그는 부자이다. (10) 죽음에 대해 자신이 있으면 그는 부자이다. 신앙의 길이란 바로 이런 부자가 되기 위한 경쟁의 길입니다. 신앙의 경쟁은 약육강식의 법칙과 정반대의 법칙이 지배하는 경쟁입니다.

사람들은 악착같이 벌고 가져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시카고대학의 한 연구팀에 의하면, 생존투쟁의 단계를 넘어선 사람들이 가장 큰 만족과 기쁨을 얻는 것은 비싼 돈이 드는 여행이나 상품구입이 아니라 돈이 별로 많이 들지 않는 여가 활동, 특히 종교적 봉사활동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서 돈 없이도 누릴 수 있는 은총이 많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기, 저녁노을 바라보기, 산책하기,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차 마시기, 맑은 하늘 바라보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듣기, 옆 사람에게 상냥한 미소 보내기 등... 이런 것들은 우리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면서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무엇을 가져서, 무엇을 손에 쥐어서, 무엇이 되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내려주신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감사하고 풍성하게 여기는 그 소박한 마음, 그것이 우리를 진정한 부자로 만드는 마음입니다. 새해에는 이런 부자 되어보시기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위의 10가지 물음 중에 특히 마지막 질문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죽음에 대해 자신 있으면 그 사람은 진정한 부자다.' 로마 제국의 무시무시한 박해 시절, 초대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은밀히 건네지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습니다. '메멘토 모리.'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시오"라는 뜻입니다. 시제가 조금 이상합니다. 죽음이란 미래에 닥쳐 올 일인데, 그것을 마치 과거의 일처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어떤 숙명으로 알고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정반대로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여 참다운 삶을 살자는 뜻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죽음을 통해 새 생명을 보고, 종말을 통해 새 시작을 보며,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주신 엄숙한 생명을 가장 값지고 보람되게 살자는 힘찬 격려와 다짐이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철저히 '종말적인 신앙'을 실천하며 살았는지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런 종말의 종교입니다. 죽음에 대해 자신 있으면 그가 진짜 부자입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부자가 되기 위한 달리기 경주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교우 여러분, 새 출발을 다짐하는 이 소중한 시간에, 먼저 주차 브레이크를 풀고, 머리에 이고 다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땅만 보며 살지 말고 하늘을 보며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주시는 그 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뛰었으면 좋겠습니다. 뛰다가 넘어져도 낙심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 달려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2018년 한 해도 우리 모두 각자의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려 다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이사야 43:17b-9). 아멘. (2018.1.7.)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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