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하다
2018년 1월 1일 청파감리교회 송구영신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입력 Jan 09, 2018 11:37 PM KST

성경본문

시편 145:1-21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나의 임금님이신 하나님, 내가 주님을 높이며, 주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송축하렵니다. 내가 날마다 주님을 송축하며,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렵니다. 주님은 위대하시니, 그지없이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 위대하심은 측량할 길이 없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대대로 칭송하고, 주님의 위대한 행적을 세세에 선포하렵니다. 주님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내가 가슴 깊이 새기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두려운 권능을 말하며, 나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렵니다. 사람들은 한량없는 주님의 은혜를 기념하면서, 주님의 의를 노래할 것입니다. 주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다. 주님은 모든 만물을 은혜로 맞아 주시며,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주님, 주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주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며, 주님의 성도들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님의 위대하신 행적을 말하는 것은, 주님의 위대하신 위엄과, 주님의 나라의 찬란한 영광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함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합니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모두 다 진실하고 그 모든 업적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주님은 넘어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붙들어 주시며, 짓눌린 사람은 누구든지 일으켜 세우신다. 만물이 모두 주님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니, 주님께서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거리를 주신다. 주님께서는 손을 펴시어서, 살아 있는 피조물의 온갖 소원을 만족스럽게 이루어 주십니다. 주님이 하시는 그 모든 일은 의롭다. 주님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신다. 주님은, 주님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진심으로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신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구원해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지켜 주시며, 악한 사람은 누구든지 다 멸하신다. 나는 내 입으로 주님을 찬양하련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원히 찬송하여라.]

설교문

* 제야의 기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산 자의 땅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연초부터 연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역사의 격변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거나, 참여하면서 지내왔습니다. 많은 것을 이뤘고, 또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회한도 있지만 감사의 마음이 더 큽니다. 김교신 선생이 1941년 세밑에 드린 '除夜의 祈禱'를 찾아 읽으며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는 "始終 如一하게 不敏하고 게으르고 진실치 못한 이 罪人에게 대해서도 主 예수여, 당신은 始終 一貫으로 恩惠로서 입히셨고 忠誠으로써 대접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한 해 동안 성취된 소원을 하나하나 생각할수록 "아, 分에 넘쳤도다", "나의 잔이 넘쳤나이다" 하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감사의 렌즈로 우리 삶을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서 제 마음에 가장 깊이 와 닿은 대목은 그 다음입니다.

"그러나 主 예수여, 내가 드려야 할 今年度의 最大의 感謝는 이미 성취된 祈願을 위해서라기보다 不成就된 祈願 却下된 기도를 위해서인 것을 당신은 잘 살피실 줄 믿습니다. 성취된 祈願을 위한 感謝도 아시아 大陸보다 적지 않습니다마는 不成就된 祈願을 위한 것은 실로 太平洋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김교신전집1, <신앙과 인생 상>, 노평구 편, 제일출판사, 1991년 10월 1일, p.176-7)

응답되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과 다릅니다. 그걸 깨닫는 게 은혜입니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 속에 깃든 은혜에 눈을 떴기에 그는 새해를 내다보며 또 이런 기도를 바칩니다.

"오는 一年도 기도의 應不應을 논치 말게 하옵소서. 응답치 않는 듯이 보이는 祈願이 最善으로 응답된 것을 보았기 때문이올시다. 그러나 人間이 무엇이어서 이렇게까지 關心하시나이까? 너무 큰 사랑......."(앞의 책, p.177)

이 마음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일일이 손실과 이익을 따지지 말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몸과 마음을 맡긴 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왕이신 하나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내다보면서 시편145편을 우리의 고백 혹은 길잡이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는 각 절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자음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영문인지 22개의 알파벳 가운데 14번째 알파벳인 '눈'이 빠져 있어 21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감격에 찬 고백과 아울러 세상을 공의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 시에서 하나님은 대개 주님 곧 '야훼'라고 표현되고 있지만, 1절에는 유독 '나의 임금님이신 하나님'으로 지칭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엘로힘'의 번역어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로도 엘로힘으로도 고백되지만, 이 둘은 나눌 수 없는 한 분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경험에 의지하여 다르게 부를 뿐입니다. 엘로힘이란 호칭은 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된 세상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을 고백할 때 등장합니다. 야훼는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구하시고, 악한 자들을 징치하시는 분으로 고백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두 호칭이 조화롭게 등장하여 시의 내용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인은 1절에서 하나님을 임금님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기 위한 일종의 은유인 셈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강력한 제왕이 아니라,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시고, 창조된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돌보기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는 처음부터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내가 가슴 깊이 새기렵니다."(5)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결국 이루어집니다. 이 근원적 진실을 마음에 명심할 때 우리는 시대적 우울을 넘어설 수 있고, 개인적인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날로 포악해져가는 세상을 보면서 낙심될 때마다 저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한 말을 되새기곤 합니다. "우주의 윤리적 포물선은 길지만, 그 방향은 정의 쪽으로 굽어 있습니다."(게리 하우겐, <정의를 위한 용기>, 이지혜 옮김, Ivp, 2011년 1월 17일, p.60에서 재인용) 우리를 영적으로 위축시키는 일이 많고, 역사가 퇴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통치만이 영원합니다. 우리는 가끔 패배하지만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가끔 낙심하지만 하나님은 낙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새해에는 이 근원적 진실을 길잡이 삼아 살 수 있기를 빕니다.

* 근원적 신뢰

하나님을 임금으로 모신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된 신학적 확언을 반복합니다. "주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다"(8). 이 고백 속에는 당신의 창조물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유롭고, 열정적이고, 무한한 사랑이 다 담겨 있습니다.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유지되는 법입니다. 또 다른 히브리의 시인은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19:3-4)는 말로 하나님의 장엄한 세계 섭리를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끊임없는 은총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이런 은총의 신비에 크게 눈을 뜰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물을 은혜로 맞아 주시며,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긍휼을 베푸시는"(9) 하나님에 대한 근원적 신뢰(basic trust)가 있다면, 세상 일이 제 아무리 우리를 옥죄어도 우리는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독일 태생의 미국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 1902-1994)은, 사람은 엄마와 아기 사이의 원초적 관계를 통해 '근원적 신뢰'를 배운다고 말했습니다.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기본적인 욕구가 지속적으로 충족되는 경험을 한 아이는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해 신뢰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에게 세상은 환대의 공간이고,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신비의 공간입니다. 반면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부정적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는 아이들은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세상은 적대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고, 따라서 자기와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죄를 꾸짖기도 하시지만, 허물 많은 우리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도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고후4:8-9)

이런 사람을 누가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는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유력한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세상은 그를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옛말에 '勝人者有力, 自勝者强'(노자33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과 겨뤄 이기는 사람은 권력, 재력 등을 확보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이기는 못한다면 그는 불행합니다.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라야 진짜 강한 사람입니다. 부드럽고 온유하지만 세상은 그를 뒤흔들어 놓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 정신을 등뼈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품이 되어 주고, 누군가의 기댈 언덕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 자기 생을 한껏 살아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바로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 약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측량할 길 없는 위엄과 권능을 보이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에게 가장 깊은 관심을 보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넘어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붙들어 주시며, 짓눌린 사람은 누구든지 일으켜 세우신다."(14)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눈길이 세상의 약자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큰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넘어지는 사람을 붙들어 주십니다. 짓눌린 사람의 살 권리를 되찾아 주십니다. 살기 위해 모욕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짓밟는 이들에 맞서십니다. 잠언의 지혜자는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잠17:5)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의로우심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지켜 주시며, 악한 사람은 누구든지 다 멸하신다"(20).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인의 확신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 산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넘어지는 사람을 붙들어 주고, 짓눌린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세상 통치에 초대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붙들어주신 하나님이 새해에도 우리와 동행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미래는 밝습니다. 새해에도 우리 교우들 모두 주어진 생을 감사함으로 살아내고, 시련의 풍랑이 닥쳐온다 해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 엎드려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 사랑의 범주가 자신과 자기 가족의 경계를 넘어 세상의 약자들에게까지 넓혀질 수 있기를 빕니다.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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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시론] ‘크리스찬’(?) 고위 공직자의 비리

고위공직자들 중에 개신교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꽤 많다. 이명박 '장로' 대통령 집권 당시엔 아예 소망교회 인맥들이 정부요직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부디 이 분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