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침례교인들은 무엇을 강조하며 믿고 있는가?(I)

김승진 목사(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편집자 주] 이 글은 침례신학대학교 교수논문집인 『복음과 실천』 제59집(2017년 봄)에 실린 논문 "침례교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필자가 대폭 수정하고 보완하여 기고한 것이다. 자유교회 전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침례교회에서는 무엇을 특별히 강조해서 믿고 있는지를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며 5부로 나누어 연재한다.

I. 들어가면서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기독교 내에는 다양한 교파들(denominations)이 존재한다. 각 교파는 태동의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강조해서 믿고 있는 신앙의 내용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다른 것"은 단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각 교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속한 교파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자긍심이 지나쳐서 다른 교파나 교단에 속한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거나 적대시하거나 이단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독교 신앙에는 통일성(unity)과 다양성(diversity)이 동시에 존재한다. 성서에 근거한 건전한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파나 교단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우리 모두는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르고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그 분 안에서 형제요 자매며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런데 동시에 기독교는 다양성을 가진다. 다른 교파나 교단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하게 강조해서 믿는 것이 내가 믿고 있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그 다른 것이 성서에 비추어 볼 때 전적으로 틀린 것이 아니라면, 다름을 다르다고 바라볼 수 있는 "관용"(toleration)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신앙적인 태도를 다음과 같은 문구로 표현해 왔다: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통일을,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자유를,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사랑을!"("In Essentials, Unity, In No-essentials, Liberty, In All Things, Charity!,"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4], VII, 650-2. 이 표현은 루터교회 신학자요 교육가였던 루퍼투스 멜데니우스[Rupertus Meldenius, 1582-1651]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라틴어 원문은 "In necessariis unitas, in dubiis libertas, in omnibus caritas!"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다른 교파나 교단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적 배경과 그들이 강조하거나 독특하게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부 침례교인들은 소위 말하는 "침례교회 전승설"(Successionism of the Baptist Church)의 역사관에 입각해서 침례교 신앙의 정체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가 바로 침례교회이며, 바로 그 교회가 로마가톨릭교회나 정교회(Orthodox Church)의 역사 밖에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되고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H. Leon McBeth, The Baptist Heritage: Four Centuries of Baptist Witness [Nashville: TN: Broadman Press, 1987], 58-60 참조). 그래서 이 학설은 제이제이제이 설(JJJ Theory)라고도 불린다. 예수님(Jesus)께서 요단강(Jordan River)에서 침례 요한(John the Baptist)에게서 침례를 받았을 때 침례교회는 지상에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학설을 주창했던 사람들은 "침례"가 예수님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는 점("침례의 전승," Succession of Immersion)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침례교회만이 "참 교회"(true church)이고, 침례교회 이외의 모든 교회들은 인간적인 사교단체들(human societies)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유언으로 명령하신 "침례"(Immersion Baptism, 마28:19)도 행하지 않는 교회는 기독교회가 아니라 단지 종교단체일 뿐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William L. Lumpkin, Baptist Confessions of Faith [Valley Forge, PA: Judson Press, 1983], 167, 182). 일부의 침례교인들이 침례교회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애착으로 인해 매우 독선적이고 배타적이고 유아독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침례교회는 영국국교회(Anglican Church, 성공회)를 뛰쳐나온 분리주의자들(Separatists, 게인즈보로교회 교인들과 담임목사 존 스마이드[John Smythe, c.1570-1612])에 의해, 1609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최초로 태동하였다. 종교개혁기(1517-1648)를 일반적으로 루터가 95개조를 게시했던 1517년으로부터 "30년 전쟁" 후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이 체결된 1648년까지로 잡고 있는데, 그렇다면 침례교회도 역시 종교개혁의 산물이며 프로테스탄트교회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존 스마이드가 최초로 침례교회를 세울 때 베풀었던 뱁티즘은 침수례가 아니라 물을 머리 위에 부어주는 관수례(Affusion)였다. 존 스마이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먼저 자신의 머리 위에 물을 부었고(Se-baptism 자기 뱁티즘), 자신을 따르던 추종자들의 머리 위에 물을 부어 뱁티즘을 베풀었다. 그들은 뱁티즘의 방식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는 신자에게 뱁티즘을 베푸는 것을 중시하였고, 이와 동시에 교회는 "신자의 뱁티즘을 받은 신자들의 공동체"(Believers' Church by Believer's Baptism)이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 당시에는 뱁티즘의 내용, 즉 유아나 불신자에게 뱁티즘을 베푸는 것을 반대하고 오직 신자에게만 뱁티즘을 베푸는 것을 일차적으로 중요시하였고, 뱁티즘의 방식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들은 일반속죄설(general atonement, 무제한속죄설)을 믿었기 때문에 일반침례교회라고 불렸다.

최초로 침수례(Immersion)에 의한 뱁티즘은 특수속죄설(particular atonement, 제한속죄설)을 채택했던 특수침례교회에서 1641년에 베풀어졌는데, 이 사실은 문헌적 증거(Kiffin's Manuscript, "키핀의 원고")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화란어를 알고 있었던 리차드 블런트 씨(Mr. Richard Blunt)를 화란으로 파송하여 메노나이트들(Mennonites)의 신자의 뱁티즘(Believer's Baptism)과 침수례(Immersion)를 견학토록 하였다. 그가 화란에서 침수례를 받고 돌아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641년에 블런트 씨(Mr. Blunt)는 블랙록 씨(Mr. Blalock)에게 침수례를 베풀었고, 이 두 사람이 53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침수례를 베풀었다. (McBeth, 45에서 재인용)

런던에 소재한 7개의 특수침례교회들이 1644년에 채택했던 신앙고백인 "제1차 런던신앙고백"(The First London Confession)의 제40조항에서는 "전신을 물속으로 빠뜨리거나 잠근다"(dipping or plunging the whole body under water)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 후 영국 일반침례교회에서는 미들랜드 지역의 침례교회들에 의해 1651년에 채택된 신앙고백인 "30개 회중들의 신앙과 실천"(The Faith and Practice of the Thirty Congregations)에서 침수례를 암시하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제48조항에서 뱁티즘의 방식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언급하였고, "물속으로 들어가 뱁티즘을 받아야 한다"(was to go into the water, and to be baptised)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본고에서는 오늘날의 미국 남침례교(SBC, Southern Baptist Convention) 총회의 신앙고백인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Baptist Faith and Message, 2000)를 중심으로, 침례교회가 대부분의 교회들이 믿고 있는 신앙의 내용,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주류 종교개혁가들(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 Magisterial Reformers)이 주장했던 신앙의 내용과 공유하고 있는 신앙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동시에 침례교인의 신앙적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침례교인들만이 특별히 강조하여 믿고 있는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845년에 노예제도 철폐문제로 인해서 당시 미국침례교총회인 "일반선교총회"(General Missionary Convention)로부터 분립하여 창립된 남침례교총회(SBC)에서는 1925년에 Baptist Faith and Message(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라는 신앙고백을 최초로 공표하였고, 1963년과 2000년에 그 내용을 두 차례 수정하였다. Douglas K. Blount and Joseph D. Wooddell, ed., Baptist Faith and Message 2000 (Lanham, UK: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Inc., 2007).] 그래서 한국의 침례교인들이 침례교 신앙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다른 신앙전통을 가지고 있는 건전한 교단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II. 침례교인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앙

침례교인들은 그들만이 강조해서 믿고 있는 독특한 신앙이 있기도 하지만, 전 세계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신앙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몇 가지 예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고대교회 당시 지중해 연안에 살고 있던 유럽인들은 희랍적인 이원론(Greek Dualism) 사상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나님은 지고의 존재이고 비가시적이고 영적인 존재여서 선(Goodness) 그 자체이신데, 어떻게 그 분이 물질적이고 가시적이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악(Evil), 즉 육체를 가진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에 대해 큰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Who is Jesus Christ?)라는 문제, 즉 기독론(Christology)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관심사였다.

313년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신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밀라노칙령(Edict of Milan)을 발표한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 274-337)은, 325년에 터키 땅 니케아(Nicea, 오늘날의 지명은 Iznik)에서 최초의 공의회(Ecumenical Council, 종교회의, 325)를 소집하여 감독들로 하여금 이 문제에 관해 토의와 논쟁을 하게 하였다. 회의 결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유사한(homoiousios, similar) 본질이 아니라 동일한(homoousios, same) 본질이시며(consubstantial), 동등하게 영원하시며(coeternal), 동등하시다(coequal)"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Earle E. Cairn, Christianity through the Centuries: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6], 125-9). 최초로 개최된 범세계적인 종교회의인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성(full humanity)과 완전한 신성(full deity)을 가지신 분으로 결론을 내렸다.

오늘날 전 세계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대체로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형성된 기독론을 믿고 있는데, 침례교인들도 니케아 신조의 기독론을 따르고 있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B. 성자 하나님: ...... 그 분은 하늘로 승천하셨고 지금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존귀하게 되셨다. 그 분은 유일하신 중보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시다(the One Mediator, fully God, fully man). 그 분의 위격으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화목을 이루셨다...."(Blount and Wooddell, ed., 203).

2. 세 위격들을 가지신 한 하나님

"세 위격들을 가지신 한 하나님"(One God in Three Persons)은 통상 "삼위일체"(Trinity)라고 불린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을 가지고 계시는데, 세 위격은 각각 독특한 사역을 감당하시며 동시에 상호 독립적이시다.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지만,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고 성령은 성부가 아니시다라는 것이다(Bruce L. Shelley, Church History in Plain Language [Dallas, TX: Word Publishing, 1995], 104-7 참조).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교리가 확정된 것은 두 번째 공의회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Council of Constantinople, 381)에서였다. 로마제국의 황제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c.346-395)는 381년에 로마제국의 새로운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이 때 "세 명의 위대한 갑바도기아 사람들"(The Three Great Cappadocians; Basil the Great, Gregory of Nyssa, Gregory of Nazianzus)이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결국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하였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채택하여 이것을 "니케아 신조"(Nicene Creed)라고 명명하였고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하였다(Ibid., 105).

침례교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도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오늘날 유니테리안들과 일부 이단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침례교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거의 모든 교파들과 교단들의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 제2조항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The eternal triune God)은 자신을 우리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 계시하신다. 삼위는 분명한 개인적인 속성들을 가지고 계시지만 본성과 본질과 존재에 있어서 나뉨이 없으시다"(Blount and Wooddell, ed., 201). 그러면서 아버지 하나님(God the Father)과 아들 하나님(God the Son)과 성령 하나님(God the Holy Spirit)을 구분하여 각 위격의 사역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Ibid., 201-5).

3. 천지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로마가톨릭 교인이든 정교회 교인이든 프로테스탄트 교인이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모두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God the Creator)으로 믿고 있다. 침례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의 첫 구절이 그 사실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또한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절정으로서 인간을 만드신 것으로 믿고 있다. 닷새 동안 인간을 위한 삶의 환경을 조성해 놓으신 후에, 여섯째 날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1:27).

침례교인들도 하나님께서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으며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믿는 점에서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한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에서는 "하나님은 ...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시고 보존자이시고 우주의 통치자(Creator, Redeemer, Preserver, and Ruler of the Universe)이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Ibid., 200).

4.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과 세상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죄를 범했고 그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다. 인간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다. 거의 모든 교파와 교단의 그리스도인들이 죄(hamartia)로 말미암은 인간의 타락(Fall)을 믿고 있다. "하마르티아"는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벗어난 상태, 즉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을 고의적으로 배신한 인간의 마음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고 경고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범했고 죄의 삯인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롬6:23). 이를 원죄(Original Sin)라고 부르고 있다.

창세기 3장에는 인간의 범죄와 타락, 더 나아가 피조된 물질세계도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창3:18-19). 여자들은 임신과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되었고, 남자들은 평생에 땀을 흘리며 수고를 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창3:16-17). 무엇보다도 인간은 에덴동산을 쫓겨나 하나님과의 교제단절이라는 저주를 받게 되었고 더 이상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없도록 길이 막히게 되었다(창3:24).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는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선택에 의해(by his free choice) 하나님을 대항하여 죄를 범했고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게 하였다.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범했고, 원래의 무죄상태로부터 추락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후손들은 죄를 범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진 성품과 환경을 유전으로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그들은 범죄자(transgressors)가 되었고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Ibid., 205-6)

5.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2:1) 인간들을 살려내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전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들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푸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죄 없으신 그 분이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들을 위하여(for the sinners) 그리고 죄인들을 대신하여(instead of sinners)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3일 만에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핵심적인 복음의 메시지이다. 침례교인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음을 믿고 있다.

공식적으로 부활절의 날이 결정된 것은 제1차 니케아 공의회(The First Council of Nicea, 325)에서였다. 매년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3월 21일 혹은 22일)이 지난 후 "첫 보름"이 지난 후 "첫 번째 주일"을 부활절로 정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침례교인들은 사순절(Lent)이나 세족목요일(Maundy Thursday)이나 성금요일(Good Friday) 등을 엄격하게 교회적인 절기로 지키지는 않지만, "부활절"(Easter)과 "종려주일"(Palm Sunday, "고난주일")을 중요한 절기로 지킨다는 점에서 다른 교파들과 교단들과 동일한 절기를 공유하고 있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에서도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substitutionary death)과 부활(resurrection)을 생생하게 진술하고 있다:

"그 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순종과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적인 죽음(in His substitutionary death on the cross)으로 거룩한 법을 지키셨다. 그 분은 인간들을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그 분은 죽음으로부터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고, 십자가 죽음 이전에 그들과 함께 했었던 인간의 모습으로 그 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Ibid., 202)

6. 교회를 창설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 후에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눅24:49), 제자들에게 성령의 강림을 기다릴 것을 명령하셨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던 약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심으로(행2:1-4) 지상에 최초로 교회가 탄생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지역교회(local church)는 성령을 모신 신자들의 공동체였다. 그 날 이후 성령 하나님께서는 신자들과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임재하신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는 신자들과 교회를 향한 성령의 역할을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그 분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교화시키고 신자들을 위로하며, 그들이 그 분의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성령의 은사들을 부여하신다. 그 분(성령-필자 주)은 최종적인 구속의 날까지 신자에게 인을 치신다.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께서 신자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보증이 된다. 그 분은 예배와 전도와 봉사를 위해서 신자와 교회에게 교훈하시고 능력을 베푸신다." (Ibid., 204)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 하나님과 그 분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교파와 교단에 따라 강조점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신자들이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있다. 침례교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다수의 침례교인들이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 운동(Pentecostal and Charismatic Movement)에 대해 다소 소극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는 있지만,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과 열매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충만한 삶에 대해 균형 있게 강조하고 있다.

7.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종말

격심한 핍박을 받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이 큰 소망이었고 위로였다. 그래서 그들은 아람어 "마라나 타"(Marana Tha, "오 주여, 오시옵소서")를 인사말로, 그리고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사용하였다(고전16:22; 계22:20).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을 믿고 있다. 재림의 절차나 순서 그리고 종말의 상태에 대해서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침례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는 제10항목에서 "마지막 일들"(Last Things)이라는 소제목으로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시간과 방법으로 세상을 적절한 종말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 분의 약속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 중에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personally and visibly) 이 땅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죽은 자들은 일으킴을 받을 것이고,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불의한 자들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보내질 것이다. 의로운 자들은 부활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거할 것이다." (Ibid., 216)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5] 서구 그리스도교 신학의 터전을 마련한, 아우구스티누스!

"서방신학은 동방신학보다는 출발이 좀 늦었으나 곧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암브로시우스 등의 교부들이 주축이 되어 착실하게 발전해갔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4] 카르타고 학파의 거침없는 변증과 교회론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의 신학을 오늘날 살피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들의 신학은 현실적이고 참여적이고 실존적이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