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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선언 30주년, 민족의식 변화 따른 평화통일 패러다임 필요"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입력 Jan 29, 2018 09:00 AM KST

편집자 주] 이 글은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88선언 3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승민 국장에게 보낸 서한이다. 88선언은 1988년 2월 29일 NCCK 명의로 선포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일컫는다. 서 교수는 88선언의 문안을 작성했으며, 지난 30년 동안 민족에 대한 인식이 변함에 따라서 평화통일 운동의 패러다임도 새롭게 변해야 할 필요성을 이 서한에서 알리고 있다.

경애하는 신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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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김진한 기자)
▲서광선 박사 (이화여대 명예교수)

우리 "88선언" 30주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에 전념하시는 모습, 감동적이고 감사합니다. 어제 (1월 26일) 대화모임 시간에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우리 민족과 국토의 분단 현실을 극복하고 평화롭고 통일된 나라를 위하여 행동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관해 기독교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세대 간의 간극"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의 2030세대들이 이끌어 낸 촛불혁명으로 감격과 감동의 밀월(密月) 기간을 보내면서 품었던 새 나라 새 시대의 꿈에서 확 깨어나 정신 차리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처럼 새 나라의 새 대통령이 남북화해와 평화정책의 일환으로 평창 동계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한 것에 대해 기대가 컸었습니다. 여자 하키팀을 단일화하는 노력, 그리고 태극기와 인공기가 아니라 단일팀으로서의 한반도 깃발을 앞세우고 개회식에 참석하자는 제안과 생각들은 당연한 것이고 뜻 있고 멋있는 발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남북통일을 그렇게도 원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고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나 같은 늙은이들의 생각이었고, 2030세대, 우리가 "88선언"을 세상에 내어 놓을 때 태어난 세대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오늘의 2030세대는 올림픽 단일팀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특히나 아이스하키 팀에 북한 선수가 들어오면서 남한 선수들이 참전을 양보해야 하는 것 등으로 인해서 비판적이고 많이 반대한다는 데 놀랐습니다. 게다가 이로 인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70몇%에서 50% 선으로 하락했다는 분석에 놀랐습니다.

"같은 민족인데, 태극기 인공기 따로 들고 올림픽 개막식에 들어오느니, 한반도기를 들고 들어오면서 우리는 한 민족,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을 온 천하에 보여 주자는 건데, 그러노라고 남한 선수 몇 사람이 출전을 양보하는 것 쯤, 대의를 생각해서 양보하는 것, 멋있고 훌륭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은 "진보 꼰대"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걸 통감했습니다. 2030세대는 "민족"이라는 개념, "민족주의"란 일제시대의 식민지 백성들이나 가졌을까 말까하는 이념이라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케케묵은" 생각이고 파기해야 할 정치적 패러다임이라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분단 70여 년의 세월, 6.25 전쟁, 반공주의 적대의식 교육과 세뇌 교육 그리고 완전 폐쇄정책과 적대관계와 핵무기 개발 및 전쟁 위협 등으로 우리 민족, "한 피를 나눈 형제자매"라는 의식을 가질 수 없게 된 건 사실입니다. 우리는 중국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 대하는 것보다 우리말을 하는 북한 사람들 만나기가 더 서먹하고 더 어렵고 무섭다고까지 느낀다는 것 아닙니까? 거리에서 일본 사람이나 중국 관광객을 만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고 익숙하지만, 북한 사람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만나면, "같은 민족, 우리 북한 이웃"이라는 친근감이나 특별한 애정이나 우정을 느낄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지구화 여풍으로 우리 젊은이들은 한국사람, "한반도에 갇혀 있는 촌사람"이 아니라 세계인, 세계 시민이라는 일종의 자긍심을 가지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세계 언어라는 영어를 열심히 배워야 했고, 대학에서 반 강제로 수학 교실에서까지 영어 수업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왔습니다. 그리고 북한이나 몇몇 나라를 빼고, 우리 여권을 들고 여행할 수 없는 나라가 없어진 형편입니다. 게다가 북한 땅은 "여행 금지 구역"의 빨간 딱지가 붙어 있으니, 우리 땅, 우리 민족이라는 생각이 있을 리가 없어진 것입니다.

어제 모임에서 세대간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충격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미래, 남북 분단의 벽을 평화적으로 넘어야 하는 일을 생각하면 절망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1월 27일 자 <한국일보>에서 김정곤 논설위원의 "'2민족 2국가' 시대를 사는 힘"이란 제목의 칼럼이 내 아침잠을 단숨에 깨웠습니다. 칼럼을 요약한 글이 놀랄 만합니다: "2030 공정정의 요구하며 남북 단일팀 반대/북한은 이미 다른 국가, 다른 민족으로 인식/ 복잡해진 대북정책 환경, 새로운 접근 필요"였습니다.

이 칼럼의 팩트체크(fact check)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인 의식 추적 조사에 따르면 북한주민을 한민족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1996년 90.4%, 2006년 78.8%, 2016년 68.9%로 10년 단위로 급격히 하락했다"는 겁니다. 2018년 1월 31일 현재의 의식조사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이제 이러한 민족의식의 변화에 따르는 평화 통일 운동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하고 변형되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뜻에서 이번 "88선언" 30주년 행사는 깊이 있는 의식의 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도전적인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서 광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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