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God Seekers)

장윤재 목사(이화대학교회)

- 이사야 55:6-9, 로마서 16:17-19, 마태 6:3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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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지금으로부터 170년 전인 1848년 1월 14일 아침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목수 제임스 마샬은 '눈 덮인 산맥'이라는 뜻의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 산맥 기슭, 아메리카 강변의 한 제재소 방수로를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 혹시 방수로에 이상이 있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방수로엔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 밑바닥의 진흙 위엔 자갈과 암석 조각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닥을 내려 보던 마샬은 자갈과 암석 조각 사이에 희미한 광택을 내는 콩알만 한 물체가 섞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둑에 쭈그리고 앉아 그 물체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그것 몇 알을 주워 들고 자신의 상관에게 달려갔습니다. 두 사람은 방문을 꼭 걸어잠근 채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아메리카 백과사전』에 쓰인 대로 약제용 저울을 이용해 몇 번이고 테스트를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이 물체가 순도가 매우 높은 금이라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확신했습니다. 둘은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 비밀은 전국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소문은 카우보이들을 거쳐 서쪽으로는 하와이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남쪽으로는 멀리 페루와 칠레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6개월 뒤에는 미 동부지역 주요도시에까지 소문이 닿았습니다. 처음에는 연안 무역에 종사하던 선원들과 멕시코와의 전쟁 때문에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 금을 찾아 몰려왔습니다. 주둔군 사령관은 워싱턴 중앙정부의 확인 요청에 "소문이 과장이 아니다"라고 보고했고, 이에 미 조폐국 국장이 "여기서 발견된 금광석 중에는 순도가 98.7%나 되는 것도 있다"고 공식 확인해주었습니다. 1848년 그 해 12월에 들어서는 급기야 당시 포크(James Knox Polk) 미국 대통령은 빗발치는 질문에, "터무니없는 공상적 소문만 빼면 사실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이른바 그 유명한 '골드러시'(Gold Rush)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습니다. 골드러시란 '일확천금을 하려는 광분'으로 새 금광지로의 쇄도를 뜻하는 데, 그 절정이 바로 그 다음 해인 1849년이었습니다.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Forty-niners"라는 이름의 팀을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어느 도시에 속한 팀인 줄 아십니까? 예, 그것은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소속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한 번쯤 가 볼만한 곳이지요. 스콧 매켄지(Scott McKenzie)가 부른 팝송 '샌프란시스코'처럼 아름다운 금문교(Golden Gate Bridge)가 있는 이 도시에 가려면 왠지 머리에 꽃을 꽂고 가야 할 것 같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노래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 hair...") 그런데 이 "Forty-niners"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십니까? Forty-niners란 숫자로 forty-nine, 즉 49를 가지고 만든 말로 우리말로는 '49년도의 사람들' 정도의 뜻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1849의 49에서 나왔습니다. 1849년에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문에 미국 전역은 물론, 멀리 중미와 남미, 그리고 유럽, 심지어는 중국에서까지 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 약 10만 명이 몰려왔는데, 바로 이들을 가리켜 "Forty-niners," 즉 '49년도의 사람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쇄도로 말미암아 미국 서해안의 소도시들이 갑자기 동부의 대도시 못지않은 도시들로 번창했는데, 그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샌프란시스코인 것입니다. 오늘날 샌프란시스코에 "Forty-niners"라는 미식축구 팀이 있는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로 삽시간에 몰려든 이들 덕분에 캘리포니아는 1850년에 미국의 정식 주로 편입됐습니다.

Forty-niners가 캘리포니아로 들어온 길은 대개 세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뉴욕 같은 미국 북동부의 항구도시에서 출발해서 배로 저 아래 남미대륙의 끝을 돌아 샌프란시스코로 올라오는 방법입니다. 대단히 먼 길이었지요. 둘째는 역시 동부에서 배를 타고 중미의 파나마까지 간 다음 육로로 땅을 건너고 다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 길보다는 많이 짧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길은 육로로 대륙을 횡단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제일 많이 이용된 것은 이 세 번째의 루트였습니다. 하지만 이 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에는 미주리 주까지만 철도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단 기차로 여기까지 와서, 다음에는 배를 타고, 오하이오 강, 미시시피 강, 미주리 강을 오가는 배들이 죄다 모여드는 수상교통의 중심지 세인트 조셉(St. Joseph)까지 갔습니다. 골드러시가 시작되고 나서 이 세인트 조셉을 거쳐 간 사람들이 무려 5만 명이나 되었지만 이곳은 당시에 소위 '문명이 끝나는 장소'였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갈 수밖에 없는 3,200킬로미터의 황야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3,200킬로미터라고 하면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4배 길이에 해당하는 거리입니다. 게다가 당시 서부는 이른바 완전한 '미개척지'였습니다. 대초원과 험한 산길, 수많은 강과 골짜기가 곳곳에서 이들을 가로막았습니다. 물론 원주민들과의 충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Forty-niners는 캘리포니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병으로 죽기도 했고, 계곡에서 추락해 죽기도 했고, 강을 건너다 물길에 휩쓸려 죽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기슭에 가면 수없이 널려 있는 Forty-niners의 무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령 무사히 도착했다 하더라도 Forty-niners 가운데 황금 노다지의 꿈을 이룬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금이 나올 만한 주요 광맥들은 이미 캘리포니아 농장주들이 잽싸게 차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을 구경도 못했고 운 좋게 금광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농장주와 결탁한 브로커에게 사기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얼마간의 사금을 손에 넣어, 집으로 돌아가는 뱃삯을 겨우 마련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나마도 없어 낯선 땅에 눌러앉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술집을 차리기도 하고 뜨내기장사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즉, 샌프란시스코의 하층민이 된 것입니다.

Forty-niners의 불행한 결말은 금을 최초로 발견한 목수 마샬과 그의 상관 요한 사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사타는 캘리포니아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스위스 출신의 대지주였습니다. 자신도 자기 소유의 땅을 다 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땅 뿐 아니라 그는 위스키 증류 공장, 모피 공장, 제재소까지 소유하고 있었고, 그의 별명은 '서부의 스위스 황제'였습니다. 하지만 골드러시 와중에 사타는 그의 모든 토지를 이리저리 빼앗기거나 사기 당해버렸습니다. 사타에게 땅을 조금 나누어 받은 마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금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도 이러했느니 외지에서 온 Forty-niners야 오죽했겠습니까. (영어노래 '클레멘타인'[Clementine]도 깊은 계곡 동물 속에서 금맥을 캐다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한 Forty-niner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하지요. "In a cavern, in a canyon, excavating for a mine, dwelt a miner, forty-niner and his daughter Clementine..." - 어떤 계속 한 동굴 속에 금맥을 캐는 '포티나이너' 광부와 그의 딸 클레멘타인이 살았지요...)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Forty-niners가 금에 '눈이 뒤집혀' 산을 넘고 강을 건너기 약 200년 전에, 바다를 건넌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인 1620년 9월 6일, 180톤짜리 작은 범선 한 척이 영국 남부의 한 항구를 떠나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 배에는 정확히 102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그 배의 이름은 "May Flower," 즉 '5월의 꽃'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와 더 나은 생활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당시 유럽에 알려진 지 100년 밖에 안 되는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Puritans," 즉 '청교도들'이었습니다. Puritans란 "Pilgrim Fathers"라고도 불리던 개신교도들을 말하는데, "Puritan"은 글자 그대로 '깨끗하고 순수한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약 100년 동안 영국에서 강력하게 일어난 청교도 신앙운동의 후예들인데, 그들 중에는 영국정부와 국교, 즉 성공회로부터의 탄압이 심해지자 해외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102명이 바로 1620년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미국 건설의 선구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예상과 달리, 이 청교도 개척자들 대부분은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인 남성이 44명, 성인 여성이 19명 있었는데 그 중 50세가 넘은 사람은 단 둘 뿐이었고 40대는 9명뿐이었습니다. 즉 어른 63명 가운데 20~30대가 52명으로 절대 다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9명이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모진 풍랑과 싸워가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배를 이동해 두 달 만에, 그러니까 고향을 떠난 지 정확히 62일 만에 도착한 곳이 지금의 플리머스(Plymouth)입니다. 원래 이들은 뉴욕 근처의 허드슨 강에 입항할 예정이었으나 계획대로 되지 못해 그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플리머스에 닻을 내린 것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때는 11월 9일, 그러니까 벌써 겨울이었습니다. 가져온 식량은 날마다 줄고 있었지만 이미 얼어붙기 시작한 땅은 곡괭이로도 팔 수 없었습니다. 오랜 항해로 남자 어른들까지 병을 얻어 몸져눕기 시작했습니다. 한겨울을 보내고 2월말이 됐을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병에 걸렸습니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그들에게 퍼진 질병은 무서운 전염성을 가진 폐결핵이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이 피를 토하며 죽어갔습니다. 12월에 이미 6명이 죽었고, 1월에는 8명, 2월에는 17명, 그리고 3월이 되어 날씨가 풀렸지만 또 다시 13명이 죽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2~3명씩 죽어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해 첫 겨울을 지나고 나니 모두 46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연말까지 또 5명이 죽어 맨 처음 함께 배를 탔던 사람 102명 가운데 정확히 절반이 죽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매년 11월에 드리는 추수감사절, 즉 "Thanksgiving Day"는 바로 첫 겨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봄에 황무지를 갈아엎고 씨를 뿌리고 가뭄과 장마를 이겨내며 여름 내내 열심히 곡식을 가꾼 다음, 11월의 어느 날 평소 도움을 준 미국 원주민들을 초청해 감격의 첫 감사의 축제를 하나님께 드린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교우 여러분, 황금에 '눈이 뒤집힌' Forty-niners와 다른 이 Puritans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지금은 거의 다 퇴색했지만 미국 개척정신의 근본이 되었던 청교도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는 것이 청교도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관장하시는 절대적 주권자, 그가 곧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아무도 이 하나님의 주권과 맞설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는 청교도들은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권력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학자(Richard Buster)는 이런 청교도들을 가리켜, "하나님 앞에서는 진흙같이 겸손하나 세상에서는 능히 권력자들의 목을 타고 앉을 사람들"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둘째로, 청교도 신앙의 또 다른 핵심은 세상의 직업을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천직으로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로 직업을 "vocatio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생업'이라는 말임과 동시에 '사명'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이 세상을 등지고 어느 외딴 곳에 은둔하여 조용히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자리가 따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남을 속여 취하지 않으며 정당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바로 거기에 충실하게 종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기에 청교도들은 직업에 성스러움과 속됨의 구분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은 단순히 밥을 먹고 살기 위한 생활의 방편이 아니었습니다. 일과 노동은 바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의 산 증거였습니다. 만약 일을 생활의 방편이나 호구지책 정도로만 여겼다면 충분한 소득을 쌓아놓은 다음에는 더 이상 일하지 않고 놀고먹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될 것입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일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일생을 일로 시작하여 일로 끝마쳤습니다. 노동의 신성함을 알고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진심으로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청교도들의 문헌을 보면, 그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하루 여섯 시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게 되면, 가정이나 사회가 자연히 부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청교도들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노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돈이 있다고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서 버림받은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들에게 노동은 보람이었습니다.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바로 기도요 찬송이요 예배였습니다. 죽지 못해 억지로 하는 일이 삶의 무덤인 것과 정반대로 말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청교도 정신은 성실하고 정직하며 근검절약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청교도의 한 사람이었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은 곧 돈이며 근면이 시간을 번다. 정직은 곧 신용이며 신용이 가장 큰 자본이다." 때문에 청교도들은 빈곤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멸시받아 마땅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빈곤하게 되는 것은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고 게다가 낭비하는 버릇까지 있는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점은 오늘날 빈곤이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시대변화에 따른 재해석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열심히 일해 소중히 모든 재물을 결코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된 것은 그만큼 더 좋은 일에 쓰도록 청지기의 직책이 주어진 결과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돈으로 먼저 학교를 세우고 자선사업에 힘썼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들 가운데 청교도들이 세운 학교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영국의 캠브리지(Cambridge)는 청교도 운동의 요람이었고, 네덜란드의 라이덴(Leiden), 스위스의 제네바(Geneva), 그리고 미국의 하버드(Harvard), 예일(Yale), 프린스턴(Princeton) 등이 바로 그들이 세운 학교들입니다. 이 대학들은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이 너무도 부러워하는, 세계대학랭킹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대학들입니다. 청교도들은 자신이 힘들여 모은 모든 재산을 잘 관리하여 좋은 일에 쓸 권리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본을 축적하여 숨겨놓고 놀고먹을 권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주신 적이 없다고 철저하게 믿었습니다. 이런 정신은 오늘날 카지노 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로 불리는 우리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너무도 귀한 정신입니다. 성실, 정직, 근검절약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황금만능의 이윤추구에만 몰두하는 요즘 더더욱 그리운 정신입니다.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그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 현재 우리들의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아득히 멀어져버린 아련한 유산입니다.

이제 Forty-niners와 Puritans의 이야기를 종합할 때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선교사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가 남긴 미국 개척시대의 일화를 통해 우리는 두 그룹의 사람들이 각기 어떤 길로 갔는지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글을 인용해봅니다. 이른바 Gold Rush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1852년에 쓴 글입니다. "1852년 어느 날 나는 오마하를 떠나 서부 태평양 연안을 향해 달리는 두 무리의 포장마차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같은 길을 따라 여러 날은 함께 달리다가 마침내 두 갈래 길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무리는 마차의 포장에 'God Seekers'라고 표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온 청교도들의 후예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무리는 마차 포장에 'Gold Seekers'라고 표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황금 노다지를 찾아 헤매는 Forty-niners였습니다. 전자는 서부를 개척하여 오늘의 미국 문명을 건설하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후자는 황금을 얻기는 했으나 금광이 폐광 된 이후 그들의 손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저는 이 회고록을 읽으면서 "God Seekers"와 "Gold Seekers"의 차이가 단지 "L"자 한 자의 차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God"에 "l"자 한 자를 더하면 "Gold"가 됩니다. 대단히 작은 차이지만 God(하나님)과 Gold(황금)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 작아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남미 아르헨티나의 한 대통령이 이렇게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북미나 남미나 똑같은 유럽인에게 소위 '발견'되었는데, 왜 똑같은 기간에 북미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남미는 이렇게 부진한가? 그 이유는 자명하다. 맨 처음 북미의 개척자들인 Puritans는 신앙의 자유, 곧 참 '하나님'(God)을 찾아 대륙으로 건너왔으나, 우리 남미의 개척자들은 '황금'(Gold)을 찾아 남미에 건너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아르헨티나의 전직 대통령은 오늘날 남미의 빈곤과 저개발이 단순히 발전의 연속선상에 뒤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바로 그 발전의 결과요 북미에 의한 남미의 경제적 지배라는 점까지 지적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자유를 찾아 바다를 건너 정착하자마자 먼저 교회부터 짓고, 다음에 아이들을 가르칠 교실을 짓고, 그 다음에서야 자신들이 살 집을 지은 청교도들과, 이들과 달리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권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값비싼 금덩이를 가지고 도망쳐 나와 무위도식하면서 금광을 캐내 부자가 되는데 혈안이 되었던 남미의 개척자들을 비교하며 한탄한 그의 말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개척자와 같습니다. 우리들 삶은 순례자와 같습니다. Forty-niners나 Puritans 모두 개척자들이고 순례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들과 같이 이 땅에서 무언가를 개척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개척과 순례는 어떤 길로 가고 있습니까? Forty-niners의 길입니까, Puritans의 길입니까? 황금을 따라 가는 길입니까,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입니까? 여러분은 "Gold Seekers"입니까, "God Seekers"입니까? 이 세상에는 황금을 찾는 사람들, 즉 Gold Seeker는 참 많습니다. 각종 모임의 이름을 보니 이 세상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도 있고, '웃음을 찾는 사람들'도 있으며, '나를 찾는 사람들,' 심지어 '노가리를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God Seekers가 되십시오.

오늘 읽은 성서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이사야 55:6-7). 여러분, 지금이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입니다. 지금이 하나님께서 내게 가까이 계실 때입니다. 그를 찾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기뻐 받아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재물 신, 돈 신]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 6:24)라고 경고하신 예수님은 이 말씀에 바로 이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25-3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그 후손들이 복에 복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18.1.28.)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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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