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제주4.3 70주년, 평화기행 떠나다 ①

[현장] NCCK 정평위, 제주 NCCK 학살현장 찾아 1박 2일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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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제주는 유채꽃이 한창이다. 그러나 제주의 4월은 침묵의 봄이다.

제주의 4월은 침묵의 봄이다. 제주도민들은 40년 넘게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슬퍼하려 해도 슬퍼하지 못한 세월을 보내야했다. 1948년 벌어졌던 제주4.3 사건이 비극의 씨앗이다.

먼저 제주4.3은 민중봉기의 성격을 띠었다. 4.3은 1948년 4월 3일 이승만 정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게릴라 조직들이 제주 각지의 경찰서를 습격한데서 비롯됐다. 제주도민들의 봉기는 성공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제주에 들어온 미군, 그리고 미국에 기대 권력을 쥔 이승만이 도민들의 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기 때문이었다.

제주4.3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또 있다. 바로 '개신교'다. 이승만 정권은 민중봉기를 잠재우고자 서북청년회(서청)를 제주에 보냈다. 서청은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주축이 됐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보수 장로교단에 속한 개신교인들이었다.

서청과 개신교의 관련성으로 인해 개신교는 제주4.3의 가해자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대해 개신교계는 오랫 동안 이 사건을 외면해왔다. 보수 성향이 강한 목회자와 신도들은 공공연히 "서청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주장했다. 2014년엔 정함철, 주옥순 등 극우인사들이 주도해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제주4.3은 올해로 70주년을 맞는다. 여러모로 상징성이 크다. 제주4.3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당시였던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사건 발생 66년만의 국가기념일 지정이었다. 그러나 정작 박 전 대통령은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앞선 이명박 전 정권 시절부터는 제주4.3을 폄훼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됐다.

그러다 2017년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제주를 찾아 "정권교체가 되면 제3기 민주정부에선 4.3추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해서 국가적인 추념행사로 위상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집권 후엔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올해 70주년 제주4.3추념식에 참석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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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평화기행 차 14일 제주를 찾은 최형묵 NCCK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사진 가운데), 김기리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대행(사진 맨 오른쪽) 등 NCCK 지도부는 첫 방문지인 제주4.3평화공원 안에 마련된 위령제단에 헌화 및 분향했다

개신교에서도 여기에 발맞춰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진보 성향의 개신교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아래 정평위)와 제주 NCC가 14일과 15일 양일간 ‘2018 부활절 맞이 제주4.3 평화기행'(아래 평화기행)에 나선 것이다. 이미 진보 성향의 장로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주노회는 2008년부터 매년 자체적으로 제주4.3의 흔적을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었다. 그러다 NCCK와 공동으로 평화행진을 주관했다. 개신교 교단 연합체가 제주4.3을 재조명하고자 제주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NCCK측 관계자는 "개신교가 제주4.3 학살에 개입했음에도 오랫 동안 외면해왔다"라면서 "사순절을 맞아 아픈 역사의 정의로운 화해를 모색하고자 평화기행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평화행진엔 70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엔 목회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개신교 연합체가 제주4.3 흔적 찾기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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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제주4.3 평화공원 내 마련된 행방불명인 표석

평화행진 참가자들은 첫날인 14일엔 제주4.3 평화공원과 너븐숭이 기념관을, 15일엔 제주 남원 의귀마을 4.3길, 섯알오름 양민학살터를 차례로 찾았다.

최형묵 NCCK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김기리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대행 등 NCCK 지도부는 첫 방문지인 제주4.3평화공원 안에 마련된 위령제단에 헌화 및 분향했다. 또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과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 전 조사관을 지낸 최태육 목사를 초빙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먼저 양조훈 이사장은 14일 제주 평화기념관에서 진행된 특강을 통해 제주4.3의 진상규명 움직임이 민주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이사장의 강연 취지를 아래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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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14일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2018 부활절 맞이 제주4.3 평화기행'차 제주4.3 평화공원을 찾은 참가자들에게 강연하고 있다.

"제주4.3은 5.10선거를 통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이에 따른 탄압에 맞선 저항의 역사였다. 동시에 분단과 냉전의 모순이 집약된, 세계사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사실 무장봉기는 제주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제주의 봉기가 유독 심한 탄압을 받은 이유는 냉전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국이 오키나와까지 육박해오자 제주에 7만 병력을 주둔시켰다. 원폭 투하로 일본이 물러가고 미군이 들어왔다. 이후 미소 냉전이 본격화되고 온 세계가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었다. 이 과정에서 미소 양국은 반대세력을 가차없이 대했다. 제주4.3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후 반세기 동안 제주4.3은 금기시 됐다. 그러다 40주년을 맞는 1988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4.3 취재반이 출범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제민일보> 4.3취재반을 이끈 주역이다 - 글쓴이) 과거사 진상규명과 중앙정치의 민주화 수준은 정비례한다."

강연은 최태육 목사는 개신교계의 신학적 각성을 촉구했다. 최 목사는 ""해방 이후 기독교는 냉전 이념을 신학화하는 데 가장 열을 올렸다. 공산주의를 ‘적룡', 즉 사탄으로 표현했다는 뜻"이라면서 "국가권력이나 목회자가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사탄이라고 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사탄으로 지목한 사람을 죽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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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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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2018 부활절 맞이 제주4.3 평화기행' 참가자들은 14일 오후 제주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에 선 위령비를 찾았다.

최 목사는 그러면서 제주4.3 사건 초기에 지휘명령권자였던 조병옥의 사례를 든다. 조병옥은 이승만과 함께 감리교단에 속한 개신교인이었다. 최 목사는 조병옥이 제주4.3을 "건국을 방해하는 책동"이자, "민족을 소련에 팔아 노예로 만들려는 공산분자의 음모"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조병옥은 이 같은 자신의 인식을 신학화하는데까지 나간다. 최 목사의 설명은 이렇다.

"조병옥은 자유민주주의를 긍정적 자아로, 이에 동조하지 않는 개인과 단체를 부정적 타자로 규정했다. 그런데 그는 이를 신학화한다. (중략) 공산주의 진영, 즉 '사탄의 진영'은 무저갱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반면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공산주의 악도의 도량'을 막는 세력이다. 그는 신학적 해석을 통해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을 사탄의 진영과 의의 진영으로 발전시켰다."

이 같은 신학화는 결국 4.3의 무자비한 진압에 강력한 동기로 작용한다. 다시 최 목사의 말이다.

"4.3사건 당시 조병옥은 미군정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매우 능동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제주4.3사건에 대한 성격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건을 진압하고자 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행동한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간의 상호 적대행위, 즉 냉전이라는 이념을 자신의 신앙체계 안에서 신학화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실현시키기 위하여 방해가 되는 악의 근원과 사탄의 진영, 즉 공산주의와 여기에 동조하는 세력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냉전 논리의 신학화는 7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 1일 보수 개신교계 주도로 서울 광화문 도심에서 열린 '3.1절 구국기도회'가 아주 극명한 사례다. 이날 기도회에선 '문재인의 정체는 빨갱이', '개헌은 북한이 원하는 연방제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식의 구호가 넘쳐났다. 최 목사는 이런 현상이 "개신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신념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면서 "당시 기독교(개신교)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신념이 이들로 하여금 학살가담을 적극화했다"고 결론 지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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