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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상회담과 남북한 기본협정
이삼열 박사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입력 Apr 10, 2018 11:40 AM KST
이삼열 이사장
(Photo : ⓒ 이인기 기자)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이삼열 박사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어떻게 달성할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된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갑자기 불어온 평화의 바람 가운데 남북한 정상의 만남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으니, 너무 앞서가지 말고 북미 정상회담이 구체적 방법과 내용을 만들어 가도록 맡겨야 한다는 소극적 견해가 있는가 하면, 방향과 절차를 합의해 오히려 북미회담을 선도해 가야 한다는 적극론도 있다.

김정은이 중국방문에서 북·중 혈맹관계를 재확인하고, 트럼프가 볼트 등 강경파를 등용해 군사적 옵션도 가능하다는 위협을 강조하는 마당에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가야한다는 충고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의 운전석에 앉아 누구도 허락 없이 전쟁을 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문재인 대통령은 그 초석을 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내용 없이 우호적인 예전으로만 보내서는 안 되며 역사적 성과를 내도록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의 비핵화는 군사적 위협 제거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조건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과의 조율 없이 한국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 평화체제라는 목표도 휴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없이 달성될 수 없는데 서명자인 미국과 중국을 제쳐놓고는 논의조차 할 수 없어 이번 회담에서 다루기는 어렵다.

그러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다룰 수 있고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가장 근원적인 토대와 조건이 될 남북관계의 개선과 신뢰구축이며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남북 기본협정 같은 구속력이 있는 법적인 틀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91년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 합의서'가 채택되고 총리급 대표가 서명했지만 국회 비준동의도 받지 않고 약속도 지키지 않아 휴지화했다. 남북한은 아직 서로의 국호도 인정치 않고 영토를 강점하고 있는 주적 관계를 유지해 가고 있다. 동·서독의 72년 기본조약(Grund Vertrag)에 준하는 화해와 불가침, 상호 인정과 신뢰를 말만이 아니라 제도화하는 조치가 없이는 북한은 계속 체제위협을 빙자해 비핵화를 거절할 명분을 삼을 것이다. 북핵위기와 전쟁의 공포는 계속되며 평화의 길은 요원하게 된다.

69년 10월에 집권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서독 수상은 5개월 후인 70년 3월 19일에 동독의 수상 빌리 슈토프(Willi Stoph, 1914~1999)를 에어푸르트로 찾아가 만나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5월 21일엔 슈토프가 서독의 캇셀로 와서 브란트와 회동해 동·서독 관계를 개선하는 20개 조항에 합의했다.

그 뒤로 양독 정상과 에곤 바, 미하일 콜 등 참모들은 미국과 소련, 영국과 프랑스 점령국인 4대 강국을 부지런히 다니며 외교적 설득을 벌여 마침내 72년 12월 21일에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국회의 비준을 받아 평화체제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 토대위에서 유엔 동시가입과 베를린과 본에 동·서독 상설 대표부의 설치가 가능해졌다.

동·서독의 평화공존 체제가 확립되니까 73년부터 헬싱키에서 동·서 유럽 안보협력회의(CSCE)가 열리게 되었고 전후 유럽의 냉전구도를 해체시키며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것은 빌리 브란트의 탁월한 동방 정책의 공로로 이루어진 성과였다.

만약 독일이 미국과 소련의 눈치를 보며 동·서독 화해와 관계 정상화를 미루었다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충돌로 독일의 통일과 유럽의 평화체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처럼 오늘까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적대적 대결과 전쟁위협이 70년을 넘긴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남북이 먼저 서로를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절대로 침략전쟁이나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조약수준의 기본협정을 통해 보장해서 남북 사이의 체제위협과 공포가 사라지고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기본협정은 독일에서처럼 민족의 하나 됨과 통일의 비전을 강조하면서 남과 북이 통일의 그날까지 특수한 관계의 두 나라임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적지 않은 문제를 안은 기본협정을 이번의 정상회담이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원칙적인 선언과 후속 고위급 회담을 통해, 또 관련국들과의 협의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토대가 될 남북 기본협정의 물고를 트는 위대한 역사적 회담이 되기를 바란다.

*상기 글은 필자가 다산연구소 다산포럼에 기고한 글이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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