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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되짚어보기] 북미 정상회담 장소 싱가포르, 나쁘진 않다. 그러나…
12일 싱가포르 확정…굳이 싱가포르로 정해야 했을까? 개운치 않은 뒷맛

입력 May 12, 2018 06:16 AM KST

NorthAmerica

(Photo : ⓒ CNN 화면 갈무리)
북미 정상회담이 12일 싱가포르로 확정되자 세계 주요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확정됐다. 그간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두고 추측이 무성했다. 진원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트위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각 지난 달 17일과 27일 "5곳을 고려하고 있다", "두 개 나라까지 줄였다"라고 적으면서 관심을 증폭시켰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달 3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남·북한 접경 지역인 평화의집·자유의집은 어떤가"라고 적으면서 판문점이 급부상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이 대화문턱을 높이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제대로 성사 되겠느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싱가포르로 최종 낙점된 것이다.

<한겨레>, JTBC ‘뉴스룸' 등 복수 언론들은 일제히 싱가포르가 선정된 벼경으로 중립적 이미지와 이동의 편리성 등을 양쪽이 수용한 결과라는 지적을 내놓았다. 사실 장소가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1953년 7월 한국전쟁 중단 이후 적대적이었던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는 일 자체가 그야말로 역사적이다.

따라서 회담이 열리는 장소보다는 북미 양측이 어떤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이며, 어떤 합의에 이를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은 그토록 소원했던 체제보장을 약속받고, 미국은 ‘핵무기 없는 한반도'라는 이해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회담 장소를 싱가포르로 정한 건 어딘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싱가포르, 빈약한 상상력의 산물?

북한 아동 지원사업을 펼쳤고 수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미래나눔재단 윤환철 사무총장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가 정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트럼프 정권이 어떤 상상력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싱가폴은 '자본주의 세계의 북한' 정도로 비유되기 십상인 체제다. 성과는 천지차이지만 각각 자기 입장에서 본다면 '자애적 절대주의(benevolent absolutism)'와 혈통주의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안 그래도 북한은 외자유치 관련 경제관료들을 해외연수 시킬 때 싱가포르도 꼭 포함했었고, 한 싱가포르의 민간단체는 최근 8년간 북한 내에서 자본주의 경제,경영학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굳이 사상 최초의 북미 회담 장소를 싱가포르로 하면서, 북한에게 "개혁개방 후에도 이 나라처럼 잘 살 수 있다. 퍼스트 패밀리(김정은 체제를 지칭 - 글쓴이) 도 굳건히 유지하면서"라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을까. 군사적 대립의 당지인 판문점이나 평양을 회피함으로써 기대치 고조를 막고, 미국측의 움직임이 좀 자유롭게 될지는 몰라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집중력과 역사적 상징성을 떨어뜨리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윤 총장은 그러면서 "현재 미국의 수뇌부에 한반도 문제를 면밀하게 이해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첩보기관 출신들, 아니 현재도 첩보원인 이들만 나서고 있다면 역사성이나 장기적 메시지를 고려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총장의 지적대로 실제 미국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에서 한반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관리들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북한 문제를 다루는 관리들 대부분은 강경파라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무지는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처음 개입했던 194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 분단, 강대국 정치의 부산물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군대를 보냈다. 이때만해도 미국은 별반 한반도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한반도는 일본의 패전 이후 항복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미국의 시야에 들어왔다는 게 사실에 가깝다.

무엇보다 미국의 우선적인 관심은 일본의 전후처리였고, 이를 위해 2,000명에 이르는 민정관을 양성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그러나 한반도는 접근방식이 달랐다. 미국은 단지 냉전적인 관점, 즉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전략목표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를 장악하면 일본마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이에 딘 러스크 대령과 본 스틸웰 중령으로 하여금 미국의 세력범위를 정하게 했다. 두 사람은 한반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그저 상부의 채근에 못 이겨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38도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점령한다는 안을 마련했을 뿐이다. 사실상 책상머리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된 셈이다. 이렇게 한 나라, 한 민족의 운명이 졸속으로 갈린 경우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한 미 대사관 문관을 지낸 그레고리 핸더슨은 한반도 분단 과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 시대, 이 세계에서 한반도의 분단만큼 그 연원이 놀랍고 충격적인 사례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분단 당시 당사자들의 의지와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 과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없다. 한반도의 분단은 강대국들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의 부산물이다."

미국의 무지는 한국전쟁 이후에도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의 전임자인 오바마 전 대통령만 봐도 그렇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모호한 구호를 내세워 사실상 북핵 문제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이 와중에 북한 핵능력은 고도화로 치달았다. 이러자 오바마 전 대통령은 동북아 정세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결정을 내렸다. 북핵 위협을 빌미로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기 위한 조치들을 착착 취해나간 것이다. 2015년 자위대의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활동을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합의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 정부에 12.28위안부 합의를 압박했다. 한국 정부의 존재감은 미-일 동맹의 하위 연결고리에 불과했다.

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비핵화를 이뤄낸다면, 이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전무후무한 성취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상회담 개최 장소를 정한 과정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미국 고위관리들이 한반도 문제에 무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지난 8일 다시 한 번 북한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기자들에게 "대통령과 은 위원장의 회담을 위한 아웃라인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논의한 의제들을 확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의 성이 ‘김'씨인지 모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일었다.

일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가 정해진데 안도한다. 북미 양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능가하는 합의를 이뤄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미국의 관리들이 전략적 이해관계에 앞서 자신들이 담당하는 지역의 역사, 문화에 더 깊이 공부하고 고민해 주기를 함께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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