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개신교, 한 정치인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했나

'미화', '우상화' 운운하며 정죄한 일부 그리스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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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지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날 국회는 조기를 걸어 고인을 애도했다.

지난 주 가장 큰 이슈는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부고였다. 고 노 원내대표는 진보정치의 상징적인 인물과도 같았기에 그의 죽음이 미친 파장은 컸다. 이런 이유로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취재진들은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소식을 전했다.

개신교 일부 목회자들도 고인의 죽음을 입에 올렸다.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참으로 아까운 정치인 한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다윗처럼 견뎌내 주시지 하는 생각에 하루 종일 마음이 안타깝다"는 심경을 적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고 백남기 농민 사건, 예멘 난민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의제가 떠오를때마다 그랬듯, 개신교계는 이번에도 역시 천박한 민낯을 드러냈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가 포문을 열었다. 유 목사는 '죄를 이기게 하는 복음'이란 제하의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고 노 원내대표의 죽음을 구원론과 연결시켰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속죄의 복음이 필요하다"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아니면 죄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강단에 선 목회자가 사회적인 파장이 큰 사건을 설교 예화로 사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예화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교의 기본 정신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정치인의 죽음과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은 아무 관련 없다.

뿐만 아니다. 소셜 미디어나 포탈에서는 자살 행위 자체를 죄악시 하는 게시물과 댓글이 자주 눈에 띠었다. 소셜 미디어의 경우 이런 게시글 작성자의 프로필은 거의 예외 없이 목회자거나 일반 신도였다. 이런 경향은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똑같이 드러났다.

한국교회는 자살을 죄로 여기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이 성서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성서를 찾아봐도 자살을 죄라고 규정한 구절은 찾기 힘들다. 이와 관련, 서울기독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파면 당한 손원영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모름지기 기독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자살은 어거스틴 이후 매우 불경스런 것으로 오랫동안 이해되어 왔다. 왜냐하면 자살은 신적 영역에 속한 생명을 인간 자신이 임의로 빼앗는 것으로써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종의 신성모독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이 절대화되어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자살을 죄로 강조하고 있다."

손 교수는 이어 '모든 자살은 죄'라는 도식으로 단순화하기엔 그 죽음의 층위가 다양하다고 지적한다. 손 교수의 말이다.

"우선 자기의 죄의 무게를 양심상 더는 감당할 수 없어 죽음을 택하는 소위 "자기보속적인 자살"이 있는가 하면(가룟 유다의 자살),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심정으로 자기의 생명을 내 놓고 죽음의 불구덩이로 스스로 뛰어드는 "자기희생적 자살"(우리야, 다니엘, 에스더 등-물론 이들이 실제로 다 죽은 것은 아니지만)이 있다.

그리고 그 양자 사이에, 즉 양심과 자기희생 같은 거룩한 가치 지향적인 자살 사이에, 수치심이나 인간적 고통(특히 물질적, 정신적)의 도피처로써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자살의 경우를 어느 하나로 단순화하여 자살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성경의 본래 의미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지적에도 소셜 미디어와 포털에 난무하는 악성 댓글들은 사려 깊음과 거리가 멀었다.

시대에 뒤쳐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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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공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본지는 좁은길교회 박철 목사가 고인에게 바친 추도사를 실었다. 공식 페이스북에 댓글이 달렸는데, 그 내용은 차마 옮기기가 민망할 정도로 낯뜨겁고 천박했다. 사려 깊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 사람의 죽음 앞에 회개니, 우상화 운운하는 광경은 이 나라 개신교가 어느 수준인지 여실히 폭로한다.

기자는 사회법이 엄중하게 다스리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오히려 자신을 고난 받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목회자들을 숱하게 봐왔다. 증언과 증거가 존재함에도 목회자들은 뻔뻔하다. 사탄 마귀 어쩌고 하며 자기방어에 급급하다.

반면 고 노 원내대표의 삶은 달랐다. 고인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눈 앞에, 손 닿는 곳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어야 함을 일깨웠고, 실천했다. 그래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영결식에선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몰려 들어 구슬피 눈물을 흘렸다. 그리스도교의 시선에서 볼 때, 그의 삶은 억압 당하는 약자와 함께 했던 예수의 생과 닮았다. 죄 운운하며 고인을 정죄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고 노 원내대표의 죽음이 우리 정치에, 더 나아가 우리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라도 할까?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워 자살을 죄라고 단정하는 자들이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해 얼마만큼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원래 그리스도를 비롯해 모든 고등 종교는 세상을 선도해 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한국 개신교는 세상을 앞서가기는 커녕, 구시대적인 시각에 사로잡혀 세상 사람들의 눈살을 지푸리게 하기 일쑤다. 이런 광경을 세상 사람들은 이제 익숙하게 봐왔다.

길거리에 내버려지고 세상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는 맛 잃은 소금, 바로 이게 한국 교회의 현주소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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