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고] 그리스는 예뻤다(3)
유연희 (감신대 외래교수)

입력 Aug 01, 2018 12:11 PM KST

편집자 주] 구약학회는 지난 7월 9일부터 16일까지 7박 8일 간 그리스를 탐방했다. 탐방에 동반한 유연희 교수가 여행기를 보내왔다. 유 교수의 납량(納凉) 기행문을 읽으며 지중해 연안을 함께 다녀보자. 기행문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메테오라 수도원

발람수도원
(Photo : ⓒ ulsoonkim)
▲메테오라는 ‘공중에 매달린’이라는 뜻이다. 그 지역에 있는 발람(Varlaam) 수도원.

주일이라 해뜨기 전 예배를 드린대서 동네 교회에 갔다. 우리 말고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7시 무렵에 온 동네가 다 들리도록 큰 종소리가 울렸다. 오른쪽에 50대의 검은 가운의 신부, 왼쪽에 70대의 신부와 평신도가 계속 성경을 읽고 사이사이 비잔틴 성가를 불렀다. 전면 지성소는 가운데 문이 열려있었고 뒤태만 보이는 하얀 가운의 신부 둘이 오가며 탁자 위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양쪽의 사제들이 계속 여러 책을 넘기며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하모니로 읽고 화답하고 노래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지만 한 시간 있는 동안 열 명이나 되었나 싶다. 흥미로운 것은, 예배 중인데 몇 사람이 지성소 쪽으로 가서 벽면의 인물 성화에 차례로 입맞춤을 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중간에 들어오기도 나가기도 한다고 했다. 의자는 몸이 불편하면 앉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내내 서서 예배드렸다. 의자는 뒤집으면 무릎 꿇고 기도하거나 책을 두는 강독대가 되는 디자인이었다. 8시 무렵이 되자 다시 큰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지성소에서 신부가 은빛 판(복음경?)을 들고 나왔고, 모든 신부와 교인이 가서 거기에 입을 맞추었다. 그 후 우리는 나왔는데 예배는 두 시간쯤 한다더니 역시 계속되고 있었다.

아침식사 후 수도원으로 향했다. 370미터 높이의 사암 꼭대기에 지은 수도원들이라니. 동행하는 여행사 사장님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고 했지. 방대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두르거나 촛대처럼 솟아있는 절경이었다. 풍화 작용과 지진으로 그런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매달린'이라는 뜻이다. 바위도, 수도원도 공중에 떠있는 듯했다. 무슨 이유로, 무슨 재주로 저 높은 바위 봉우리마다 수도원을 지었을까? 놀라움, 신비함, 신기함, 아름다움, 감동스런 ... 형용사가 부족했다. 11세기부터 은둔자나 도피자들이 동굴에서, 개별적으로 구멍을 내고 수행하는 것이 이 수도원들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엄격한 정교회의 규율, 외부적으로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이슬람의 위협(14세기) 같은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참 험난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15-16세기에 전성기로서 24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지금은 6개만 남아 있다.

우리는 발람수도원과 루사노 수녀원을 방문했다. 발람수도원은 14세기 중반에 발람이 정착하여 수도원을 시작했다. 교회에는 성인들의 그림과 더불어 신앙인이 다양하게 고문당하는 장면도 많았다. 기둥에 그려진 수도자, 흰 수염이 땅까지 길게 내려오고 바짝 마른 이집트 수도자가 인상적이었다. 고문서, 성서, 오랜 아이콘들을 전시한 곳도 있었다.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고 고행을 선택한 수도자들. 생필품이 필요할 때는 사람이 망태기를 타고 절벽 아래를 오가거나 물건을 올려 보내는 모습이 자료 화면에 나왔다. 발람수도원에는 여전히 밧줄을 당기고 내리는 도르래가 있었다. 구멍이 성성한 망태기를 타고 오르내릴 때마다 믿음이 간절하게 솟구쳤을 것 같다. 1960년대에 정부에서 도로를 건설해서 이제 접근이 쉬워졌다.

루사노 수녀원은 15세기에 성 스테파노 수도원으로 시작했는데, 세계 제2차 대전 때 폭격당했고, 이어 시민전쟁 때 추가 손상을 입었으며, 나중에 사회주의 반군에 의해 대부분의 프레스코화도 손상되었다. 1961년까지 버려져 있다가 수녀원이 되어 현재 20여명이 상주한다. 입장할 때 복장 규정이 있어서 남자는 반바지는 안 되고 여자는 민소매와 바지가 안 되었다. 빌려주는 치마, 두르개가 있었다. 정교회는 여성 신부가 없고 남성 중심적 교회이니 뭐 쩝, 남의 동네 문화를 따라야지 어쩌겠는가. 반바지를 긴바지로 갈아입어야 하는 남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엄격하지도 않았다. 우리 일행 중 몇 남성이 이 두르개를 쓰고 사진을 찍는 바람에 규범의 해체가 벌어졌다.

그리스인들은 정교회 종교지도자들을 존경한다고 한다. 터키 등의 압제 하에 있을 때 수도자들은 숨어서 성서를 필사하며 언어를 보존했고, 비잔틴 성가를 다듬었고, 아이콘 성화를 그리며 그리스 정신과 문화를 보존했기에 더욱 그렇다고 한다. 도덕적 부패도 흔치 않다고 한다. 길에서 신부가 지나가면 인사하며 예를 표한다고 한다. 하늘에 닿을 듯 떠 있는 공중 수도원을 보며 '종교가 무엇이길래, 신앙이 무엇이길래'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신앙인으로서 얼마나 쉽게 살고 있는가를 성찰했다. 이번 그리스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세상에 둘도 없는 메테오라 수도원이었다. 남편이 함께 왔더라면 정말 좋아했을 곳이었다. 사진으로 약을 올려줄까 하다가, 성화를 사다달라는 부탁을 기억하고 수도원에서 하나 샀다.

이 놀라운 수도원 장관을 뒤로 하고 떠나는 아쉬움을 양고기 스테이크 점심이 달래주었다. 이제 7시간쯤 걸려 아테네로 내려가 묵으면 마지막 밤이다. 내일 아테네 관광을 하면 한국행인 것이다. 오다 보니 해바라기 밭도 많고, 밭 한가운데 수십 개의 벌통을 놓은 것도 종종 보인다. 엊그제는 산토리니의 이아마을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보았는데 오늘은 해가 산으로 넘어간다. 몇 시간 동안 한적한 길에서 버스로 굽이굽이 산과 들을 보며 다니니 행복이 차오른다.

함께 간 일행도 서로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 갔다. 여행 초반에 60대 전후 몇 명이 같은 식탁에서 식사한 적이 있었다. 돌직구를 잘 날리는 한 여성 학자가 무슨 말 끝에 "통합측(장로교회)은 외식하는 사람들이예요"고 했다. 그러자 통합측 남성 학자가, "아니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정색을 했다. 여성분은, "내 친구들이 통합측인데 본인들이 한 말이에요"라고 한다. 나는 "에구, 좀 심한 농담이시네요"고 지나가게 했다. 근데 또 무슨 말 끝에 그 남성분이 "남편이 아내에게 손찌검을 할 때는 엄청 오래 참다가 하는 거예요"라고 했다. 우리 여성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그건 아니죠. 아주 위험한 말씀을 하시네요"라고 했다. 며칠 후 그 남성분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문화충격을 겪었어요. 내 주변에서 잘 볼 수 없는 종류의 여성들을 한꺼번에 많이 보네요." 나쁜 뜻 같지는 않았다. 또 얼마 후 내가 멀리서 보니 그 여성분과 그 남성분과 다른 남성분이 같은 식탁에서 열심히 대화하며 식사하고 있었다. 왠지 웃음이 났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벗이 되어가고 있었다. 학회 회장이 여행을 마칠 무렵에 "여러분의 관대함과 아량에 감사드립니다"고 말한 것이 왠지 뼈와 살이 있는 말 같았다. 전반적으로 일행은 성숙한 인간미를 보였고, 서로 챙겼다.

밤에 아테네에 도착하여 한식을 먹었다. 파르테논 신전 근처에 있는 아레오바고 언덕(아레스​의 언덕, 마르스​의 언덕)이 호텔과 가까워서 밤 산책을 갔다. 저편에 신전이 조명으로 매우 아름다웠고, 언덕 아래 아테네 야경도 사방으로 멋지게 내려다보였다. 언덕은 한밤인데도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400만 명이 사는 도시가 뜻밖에 북두칠성까지 보이는 밤하늘을 갖고 있었다. 내일 다시 오마 약속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아테네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오전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다. 유적지에는 파르테논 신전, 니케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 에레크테이온 신전,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현재도 사용)이 있었고, 어젯밤 올라간 석회암 언덕, 아레오바고는 얕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이 언덕은 고대 아테네의 법정 역할을 했는데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가 여기서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도시​에서 섬기는 신​을 무시​하며 새로운 종교​를 실천'한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탈출 제의를 거절하며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셨다.

사도 바울은 아고라(광장)에서 아테네의 에피쿠로스(쾌락주의) 학파와 스토아(금욕주의) 학파와 열띤 논쟁을 벌였다. 또 예수와 부활에 대해 설파했다. 부활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지만 청중은 새로운 얘기를 하는 바울에 귀를 기울였다. 바울은 또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는다. 인간이 빚은 금상, 은상,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기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눈앞의 거대한 신전들을 보며 그렇게 말한 바울의 담대함이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오늘날 바울을 기념​하기 위한 동판​이 언덕의 서편 기슭​에 있다.

아크로폴리스에 이르러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9시에 그리스 군인들이 국기를 게양하는 예식을 마치고 구령을 붙이며 걸어 지나갔다. 한국은 남대문, 덕수궁 앞에서 교대식을 하는 수문장들이 화려한 옛날 옷을 입고 있는데, 그리스는 검은 베레모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군복을 입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도 신전이 모여 있는 일종의 아고라(광장)이다. 중앙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세워졌고,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네 여신(전쟁의 승리와 지혜의 여신)에게 바쳐졌다. 당시에는 12m나 되는 조각상 '아테나 파르테노스(처녀 아테나)'가 있었다고 한다. 5세기 이후 이 신전은 교회로 쓰였고, 황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나 파르테노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졌다. 그 후 신전은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이슬람의 사원과 탄약고로 200여 년간 쓰였고, 폭격을 맞기도 했다. 한쪽에서 복원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테네 여신으로서는 자신의 집주인이 바뀐 이 역사가 꽤 씁쓸할 것 같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남쪽 벽을 떠받치는 6개의 여신상으로 유명하다. 현재 4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고 나머지는 대영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직접 본 여신상은 정교함과 예술성이 놀라웠다. 우아하게 땋은 머리 장식에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가 당대 남성 조각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인상을 나타내지 않았나 싶다.

아테네 시내를 자세히 볼 시간은 없었다. 그리스 건물은 지진 때문에 7층 이상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한다고 한다. 고층 건물이 없으니 도시가 고즈넉했다. 아파트마다 층층이 베란다 정원이 있었고 이웃과 소통하는 문화를 드러내는 듯했다. 그리스에서 하도 잘 놀고 잘 먹어서 그런지 그리스에 대해 가이드가 한 말이 다 믿어졌다. 추수할 때 많이 남겨두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게 하고, 시장에 가면 노인이나 어려운 이들에게 거저 주기도 하고, 마트 입구에는 사람들이 구입한 물건을 두고 가서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게 하고, 지나다가 과일을 따려고 하면 주인이 봉지 들고 와서 그냥 따주고, IMF가 8년째 이어지지만 굶어죽는 사람들이 없고, 얼마 전 근대 올림픽 경기장에서 음악회 할 때 난민에게 줄 식료품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백만 톤이 넘게 모였다는 등, 그리스에는 관대함과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부러웠다. 또 학교는 학생들에게 노는 것을 가르쳐준다. 분명 중학생들 얘기였다. 학생 의결기관이 클럽에 가는 것을 결정하면, 학교 측과 경찰은 버스로 학생들을 금요일 밤에 클럽에 데려간다고 해서 놀랐다. 학생들은 레몬에 알코올(2, 3도) 섞은 음료를 마시며 자정부터 새벽 6, 7시까지 밤새 논다는 것이다. 졌다. 또 그리스에서는 대학원까지 무료라니, 등록금이 없어서 밤새 편의점 알바하고 와서 수업 때 조는 한국 학생들이 떠올랐다. 그리스는 1년쯤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우리 일행은 오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크로폴리스에서 신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내려왔다. 일주일간의 그리스 여행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좋은 분들과 맛난 것 먹으며, 서로에게서 배우며, 많이 웃고, 떠들고, 신났다. 그리고 그리스의 고대와 현대를 오가며 신들과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래도 한국의 집에 가고 싶어졌다. 엊저녁에 가족과 통화했는데, 냥이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인지 안하던 짓을 했다. 엄마가 아끼는 화초를 쥐어뜯어서 바닥에 수북이 쌓아놓았단다. 남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열흘 더 있다오지 그래." 내가 없는 동안 평화를 누렸는데 이제 폭염보다 무서운 마누라 잔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니 그리스에서의 장기체류를 권한다. 나는 그리스에 내 잔소리 재능을 좀 두고 가는 걸까. 그리스는 나를 좀 변화시켰을까. 나도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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