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고] 성령 하나님의 구원사역: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1)
김승진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Aug 02, 2018 01:29 PM KST

편집자 주] 구원 개념은 이미 과거에 받았던 구원(중생)과 현재 받고 있는 구원(성화)과 장차 미래에 받게 될 구원(영화) 모두를 포함한다. 이 세 가지 구원에서 궁극적으로 중심된 역할을 하는 것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비록 죄인인 인간이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감동과 감화, 즉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과거적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셔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I. 들어가면서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맹인이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그는 눈이 밝아져 만물을 보게 되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셨다. 아직 예수님을 보지 못했던 그가 대답하기를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요 9:36)라고 말하였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그러자 비로소 맹인이었다가 밝은 눈으로 보게 된 사람이 "주여, 내가 믿나이다"(요 9:38)라고 고백하였다.

그의 첫 번째 진술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눈을 고쳐 주신 분을 믿고자 했다. "주여, 내가 믿으려고 합니다, 내가 믿겠습니다, 내가 믿고 싶습니다"라는 진술은 마음의 문이 열려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믿음의 결단을 하지는 않은 상태다. 아직 불신의 상태요, 죄인인 상태요, 죄사함 받거나 구원받은 상태가 아니다. 만약 비록 그러한 사람이 교회당(church building)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교회(church)나 교회회원(church member)이 아니다. 여전히 전도대상자(prospect)요, 방문자(visitor)요, 손님(guest)이다.

"내가 믿나이다"라는 그의 두 번째 진술이 신앙고백이다. "내가 믿습니다, 내가 믿었습니다, 내가 믿고 있습니다"라는 진술은 믿음의 결단을 한 상태인 것이다. 침례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진술하는 사람을 교회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한 진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뱁티즘을 베풀지 않는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신자에게 뱁티즘을 베푼다(신자의 뱁티즘, Believer's Baptism). 그러한 고백을 뱁티즘(침례, Immersion Baptism)이라는 의식으로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선포하는 신자(Believer)를 교회회원으로 받아들인다(김승진, 『영·미·한 침례교회사』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16], 61-2).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진술하는 사람은 아직 예수를 믿은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믿나이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은 신자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에게는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는 진술과 "내가 믿나이다"라는 고백 사이에는 엄격하게 말하면 지옥과 천국을 가로지르는 구렁텅이가 있다. "내가 믿고 싶습니다"에서 "내가 믿습니다"로 나아가는 것을 "영적인 도약"(spiritual leaping)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믿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은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셨기 때문에 그러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이고, 결과적으로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구원(Salvation)이라는 말은 무척 포괄적인 낱말이다. 성경에는 구원과 관련하여 시제를 달리하는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다:

(고후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럽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래서 구원을 과거적 구원과 현재적 구원과 미래적 구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William W. Stevens, 『조직신학개론』, 허긴 역 [서울: 요단출판사, 1979], 315-37). "과거적 구원"이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던 순간에 받게 된 구원을 가리킨다. 이를 중생(regeneration) 혹은 거듭남(born-again)이라고 한다. 새 생명(신생, New Life)을 얻었다고도 하고, 영적인 출생(spiritual birth), 혹은 위로부터의 출생(birth from above)을 했다고도 말한다. 좁은 의미로 구원을 말할 때에는 대체로 이런 뜻으로 사용된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예수님이 이르셨을 때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다(Ibid., 326-31).

"현재적 구원"이란 예수를 믿은 신자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 그 분을 닮아가는 과정, 즉 성화(sanctification)를 가리킨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말씀은 계속적으로 성령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성화되어 가라는 의미다(Ibid., 331-7). 신앙생활을 하면서 매일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보다 거룩하게 변화될 것을 권면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미래적 구원"이란 중생하여 성화의 삶을 살아가던 신자가 육체적인 죽음을 맞아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에 들어가는 영화(glorification)를 가리킨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고린도후서 5장 9절에서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넓은 의미의 구원 개념은 이미 과거에 받았던 구원(중생)과 현재 받고 있는 구원(성화)과 장차 미래에 받게 될 구원(영화)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Ibid., 337-40). 이 세 가지 구원에서 궁극적으로 중심된 역할을 하는 것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비록 죄인인 인간이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감동과 감화, 즉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영적인 도약"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과거적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셔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성령은 죄를 책망하시고 죄인임을 깨닫게 하신다

무엇보다도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다"(The Holy Spirit is a holy spirit). 거룩하다는 말은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인데, 죄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존재가 성령이시다. 죄가 어두움이라면 성령은 빛이시다. 어두움과 빛이 공존할 수 없듯이 성령과 죄도 역시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은 죄를 책망하시고,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죄로부터 돌아서서 그것으로부터 떠날 것을 촉구하신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6:7-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보혜사 성령-필자 주)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기서 "책망한다"(reprove)는 말은 "빛을 비추어 실상이 드러나도록 보여준다"는 의미다(Landrum P. Leavell II, The Doctrine of the Holy Spirit [Nashville: Convention Press, 1983], 28-9). 성령께서는 죄인에게 빛을 비추어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그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신다. 성령께서는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보게 하시고 그 죄로부터 돌아서도록 촉구하신다. 성령의 "책망"을 받은 죄인은 단순히 후회하거나 자책하거나 미안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죄로부터 180도로 방향을 돌이켜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게 된다. 진정한 회개(repentance)를 가리킨다. 잃어버려진 사람(a lost person)은 자신이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죄인(a sinner)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거룩한 영이신 성령께서 행하시는 "책망"이 뼈저리게 느껴질 때, 비로소 사람은 자신이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죄인임에 대한 깨달음과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만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오직 성령만이 하실 수 있는 역할이다.

여기서 성령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말씀은 성령께서 하시는 분리된 세 가지 역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것은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게 하시려는 성령의 한 가지 역할이다. 즉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하여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고, 죄의 대칭점에 계신 의 자체이신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그리고 죄로부터 돌이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오지 않는 죄인에 대해서는 심판이 이미 임했음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이다.

(요 16:9-11)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께서는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여기서 "세상"이란 불신세상 혹은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본질적인 것이요 관계적인 것이다. 성령께서는 죄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대해 모른 채 태어난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인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all)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있지 않은 상태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죄인 것이다. 죄를 가리키는 희랍어 단어 "하마르티아"(hamartia)는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벗어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아무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모범적인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회복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죄인(sinner)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든지 평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죄인인 것이다. 성령께서 죄의 본질을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죄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불신세상과 불신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죄를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감당하신다(Ibid., 30-1).

성령께서는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성경이 말하는 의(righteousness)는 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세상 사람치고 죄인 아닌 사람이 없고 따라서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의 그 자체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성육신, 요 1:14), 여느 인간들과는 달리 죄가 없으신 유일한 분이시다.

(히 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죄인인 인간이 의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되면 자신의 죄가 보이게 된다.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였다. 이른 새벽에 그는 육신적으로 몹시 피곤했고 밤새 헛수고를 했다는 공허감에 정신적으로도 피폐해 있었다. 그물을 정리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청할 참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의하면 여명이 터오를 때에는 물고기들이 깊은 곳으로부터 호숫가 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아는데, 베드로는 그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갈릴리 호수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그물을 내렸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잡힌 것이다. 베드로는 깊은 물속의 물고기 떼의 동향까지 꿰뚫어 알고 계시는 예수님에게서 신성(divinity)을 본 것이다. 그의 즉각적인 반응이 이러하였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죄인 베드로는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 곁에 있는 것조차 몹시 불편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보여 주시면서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임을 처절하게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말은 성령께서 완벽한 의를 보여주시면서 불신세상과 불신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죄인됨을 깨닫게 하신다는 의미인 것이다(Ibid., 31).

성령께서는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성령은 죄인임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기다리고 있지만,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상기시키신다.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사랑과 긍휼 그리고 공의와 심판은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기다리고 있지만,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한 "세상 임금"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이다. "세상 임금"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성경은 그가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 3:18-19)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데 비해서,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불신자나 회개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신다(Ibid., 31-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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